*무문관(無門關) 이십일칙(二十一則)
운문시궐(雲門屎橛) 운문의 똥 닦는 막대기.
본칙(本則) 역(譯)
운문에게 어떤 승려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운문이 말했다. 똥 닦는 막대기다. 雲門因僧問, 如何是佛. 門云, 乾屎橛.
평창(評唱) 역(譯)
무문이 말했다. 운문은 집안이 가난해서 밥 한 그릇 차리기 어렵고, 일이 바빠 글을 휘갈겨 쓸 틈도 없었다 하겠다. 여차하면 곧 똥 닦는 막대기를 가져다 문호(門戶)를 떠받치니 불법의 흥망성쇠를 가히 알 만하다. 無門曰 雲門可謂, 家貧難辨素食, 事忙不及草書. 動便將屎橛來, 撐門拄戶, 佛法興衰可見.
송(頌) 역(譯)
게송으로 읊다. 번개가 번쩍이고, 불꽃이 튀는구나!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지나갔도다! 頌曰 閃電光, 擊石火. 眨得眼, 已蹉過.
사족(蛇足)
운문선사(雲門禪師)는 운문문언(雲門文偃) 선사를 말한다. 당말(唐末) 송초(宋初) 때 운문종(雲門宗)을 창종(創宗)한 고승(高僧)이다. 어떤 것이, 부처냐? 고 묻는데 마른 똥 막대기라고 했다. 신성한 부처를 하필 똥 닦는 막대기로 답을 했을까? 묻는 스님의 생각을 송두리, 째 뭉개버린 반어법(反語法) 선문답(禪問答)이다. 공안화두(公案話頭) 선문답(禪問答)은 반어도어(反語倒語)가 많다. 사량계교(思量計較) 분별망상(分別妄想) 차별심(差別心)을 몽땅 궁극처(窮極處)로 몰아붙이는 수단(手段)이다. 청정무구(淸淨無垢)의 표상(表象)인 부처를 똥 닦는 막대기라 했다. 운문선사 말 따라가면 입이 너무 악취한(惡臭漢)이 된다. 운문선사는 부처 알기를 스님들이 매일 먹고 똥 쌀 때 똥통에서 똥구멍 훔치는 막대기 비유(譬喩)로 박살을 내버렸다. 그동안 선문(禪門) 조사들 입에서 나온 선문답 중에서 가장 못 쓰게 부처를 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 버린 공안화두(公案話頭) 관문(關門)이다. 이 문빗장을 풀고 들어가서 당당하게 운문선사 멱살을 잡은 것은 납승(衲僧)의 안목(眼目)과 혜안(慧眼)이 필요(必要)하다. 본칙에 묻는 중은 간시궐(雲門屎橛) 한 마디로 끝난 모양새다. 왜? 부처가 똥 막대기냐? 고, 따져 묻지도 않았다. 그래서 혜개선사는 평창에 운문은 가난해서 밥 한 그릇 차리기도 어렵다 했다. 이 말은 운문을 극찬한 말이가? 조롱한 말인가? 글 쓸 겨를도 없는 궁색한 살림살이라 여차하면 똥 막대기로 문지방 떠받치는 기둥을, 삼지 않을까? 불법의 흥망성쇠(興亡盛衰)가 염려(念慮)가 된다고, 평했다. 본분상(本分上)에서 보면 똥 된장이 차별이 없다. 부처와 똥 막대기가 어찌 다르겠는가? 그러나 차별상(差別上)에서 보면 부처와 똥 막대기는 분명 다르고 둘이다. 운문시궐(雲門屎橛) 공안화두(公案話頭)는 운문선사의 복장(腹藏)을 훤히 들여다, 봐야 답(答)이 나온다. 말에 걸리면 꼭두각시, 놀음이다.
화옹송평(和翁頌評) 역(譯)
운문의 똥 막대기 철옹성 관문은 제불 조사도 입 열기가 곤난하게 됐네, 부처의 가격이 폭락하여 똥값이 최상 값이라, 악취가 진동하니, 코를 막고 모두가 다 달아나네, 그려! 雲門屎橛鐵關門 諸佛祖師難開口 佛價暴落上價糞 惡臭震動掩鼻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