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코스 : 삼회1리 마을회관 - > 설악터미널
경기 둘레길 60코스를 종주하면서 순서대로 걷지를 않고 숲길을 걷다 물길을 걷고 또 어떤 때는 갯길을 걷는 등 들쭉날쭉 걸어왔지만, 현재 23코스까지는 한 코스도 빠지지 않고 완주를 하였다.
이제 숲길인 가평, 양평 구간을 걸으면 경기 둘레길 걷기도 종반전에 접어들게 된다. 그간 우여곡절도 있어 한때는 경기 둘레길을 종주할 수가 있을까 회의도 하였지만 어떻게 걸었든지 걷지 않은 구간보다 걸은 구간이 더 많기에 다소의 안심이 든다.
이제 될 수 있으면 순서에 따라 차례차례 걸을 것을 다짐하고 오랜만에 걷기 동지 김헌영 총무와 숲길인 24코스를 걷고자 집을 나선다. 상봉역에서 김 총무를 만나 경춘선 전철로 갈아타고 청평역에 이르렀다.
아침을 먹지 않아 청평 터미널 부근의 해장국집에서 선지 해장국으로 아침을 먹고 오늘의 들머리인 삼회 1리 마을회관까지 택시를 타고 가는데 하얀 눈이 날렸을 때 백두 클럽 회원들과 걸었던 그때가 생각난다. 벌써 1년이 되었다.
삼회1리 마을회관에서 북한강을 뒤로하고 큰골 계곡으로 향한다. 길은 포장도로가 되어 숲길의 기운을 느낄 수 없다. 몇 채의 인가를 지나 자동차 주차장에 이르렀다. 넓은 광장의 주차장을 보니 여름철에 물놀이하는 사람들로 매우 번잡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주차장을 지나니 계곡물 소리가 들린다. 큰골 계곡의 시작이다. 아침 일찍 산골의 물소리를 들으니 차가운 겨울 날씨지만 온몸의 때를 말끔히 씻어주는 상쾌함은 있지만, 추위는 느낄 수 없었다.
언제, 어디에서 들어도 물소리는 싫지 않다. 바윗돌에 부딪히는 물소리는 마치 개선장군을 손뼉 치며 맞이하는 환영의 박수 소리 같고 다정한 연인이 귀에 속삭여 주는 사랑의 언어같이 달콤하기도 하다. 둘레길 걷기의 시작을 물소리와 함께하여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았다.
물소리가 끊이지 않을 때 운곡암에 이르렀다. 운곡은 고려말 忠臣不事二君의 지조를 지킨 원천석 선생의 호이다. 운곡암은 선생께서 1380년(우왕 6년) 창건한 사찰로 640년의 역사를 품고 있다.
선생은 일찍이 이방원(李芳遠: 太宗)을 왕자 시절에 가르친 적이 있어, 이방원이 왕으로 즉위하여 기용하려고 자주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 태종이 원천석의 집을 찾아갔으나 미리 소문을 듣고는 산속으로 피해 버렸다고 한다.
고려말을 대표할 수 있는 지식인이자 충신이셨던 선생은 우왕, 창왕을 중 신돈(辛旽)의 자손이라 하여 폐위시켜 서인을 만든 사실에 대해 왕 씨 혈통의 참과 거짓이 문제 된다면 왜 일찍부터 분간하지 않았느냐고 힐문하면서 저 하늘의 감계(鑑戒)가 밝게 비추리라고 질타했던 올곧은 선비였다.
흥망이 두드러지니, 만월대도 추초로다.
오백 년 왕업이 목적에 부쳤으니,
석양에 지나는 객(客)이 눈물겨워 하노라.
고려 5백 년 왕업을 회고한 선생께서 지으신 시를 읊조리며 계곡 길을 따라 오르는데 1자가 쓰인 팻말이 세워져 있다. 계곡을 건너는 첫 번째 다리라는 뜻인 것 같다.
첫 번째 다리는 계곡과 어울리지 않는 시멘트 다리였고 2번째 다리는 징검다리였다. 3, 4, 5, 6……. 12번까지 계속되는 징검다리가 매우 정다움으로 다가오는데 계곡을 오르는 길은 돌멩이 길이 되어 걸어가기를 힘들이게 하였다.
하지만 경기 둘레길 홈페이지에서는 ” 작은 암자 운곡암을 지나면 본격 숲길이다. 맑은 계곡물을 건너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싱그러운 숲길을 간다. 이 골짜기는 이른 봄이면 너도바람꽃, 얼레지 같은 여리고 고운 야생화가 그윽하게 핀다.“고 하였다.
12번째 징검다리를 지나니 농장이 있었다. 이제 계곡 길의 물소리와 헤어지고 절고개를 향하여 오른다. 이제까지는 돌멩이들로 인하여 진행속도를 더디게 하였지만 그래도 계곡을 따라 걸어가는 부드러운 완만한 길이었다면 이제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야 했다.
가파른 오르막길에 늦가을이 되어 낙엽이 등산로를 가려 가는 길조차 희미하다. 여름철이면 숲길이 무엇인지 그 진수를 보여줄 것 같았지만 오늘은 썰렁한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어 추위를 느낄 뿐이다.
가파른 오르막에 숨이 헐떡이고 희미한 등으로의 길 이탈이 염려되었지만 희미한 등로를 이탈하지 않도록 경기 둘레길 관계자들이 부착한 표지가가 군데군데 나폴거리고 있어 길을 이탈하지 않을 수가 있었다.
비록 낙엽이 등산로를 덮었을지라도 숲속의 나무에 부착한 표지기를 벌거숭이가 된 숲길이 되어 쉽게 확인할 수 있어 여름철 숲길의 진수를 느낄 수가 없을지라도 길 찾기에는 오히려 편하였다.
그러나 등산로는 너무 가팔라 숨을 헐떡이게 하는데 밧줄이 설치된 지점에 이르니 급경사의 오르막길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려는지 된비알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기에 두 발로 걸어가는 인간이 두 발로 걸어갈 수 없고 네발로 걸어가는 짐승이 되어 밧줄을 잡으며 오르막을 오른다. 쉬고 오를 수 있는 공간조차 없는 급경사의 길을 오르니 땀방울이 흐르며 안부인 절고개에 이르렀다.
이곳 절고개에서 화야산 2.4km이고 뾰루봉까지는 2.1km이다. 현 위치는 화야산 1-10이었다. ‘힘드네요. 다행히 거리가 짧아서 쉬지 않고 오를 수 있었지만, 급경사는 보아 귀골에서 연인산에 오를 때와 차이가 나지 않네요’라고 동행한 김 총무에게 건네니 미소를 짓는다.
절고개에서 하산하는 등산로에도 밧줄이 걸려있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에서 또다시 네발로 내려간다. 도보여행의 묘미를 즐기고자 찾아오고도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의 길을 접하고 둘레길이라 할 수 없다고 어리광을 피웠다,
임도에 이르렀다. 절고개를 넘어오기가 고통스러웠기 때문일까? 솔고개까지 임도 길이 10여km가 이어진다는 팻말을 보고도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란 말이 떠오른다. 임도는 꼬불꼬불한 산길이 되어 돌고 돌아가고 있다.
’돌고 돌아가는 길’이란 유행가가 입가에 맴돈다. ‘산 넘어 돌고 돌아 /그 뫼에 오르려니/ 그 뫼는 어디요/ 내 발만 돌고 도네 / 강 건너 흘러 흘러/ 그 물에 적시려니 / 그 물은 어디메뇨/…….’ 부르며 흥을 돋워 보기도 하고
한문 공부를 하면서 요즈음 익히고 있는 한자들 馘, 벨 괵. 弢. 활집 도. 庀 갖출 비. 剪, 자를 전. 黏 찰질, 점. 費解: 알기 어렵다. 尾隨 : 뒤 따르다 ...등을 손으로 써보며 그려보기도 해 본다.
그러다가도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언뜻언뜻 나타나는 화야산과 뾰루봉의 우람한 산세에서 가슴을 고동치게 하고 제멋에 피어 흔들흔들 은빛을 발산하는 억새에서 소박한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하며
김 총무가 켜 놓은 엠피스리 재생기에서 흘러나오는 ” 하루를 너를 생각하면서 /걷다가 바라본 하늘엔 / 흰 구름 말없이 흐르고 / 푸르름 변함이 없건만 /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 / 너는 무슨 말을 했던가 / 어떤 의미도 어떤 미소도 /세월이 흩어가는 걸/ “이라 노래에 콧노래로 따라하며/ 임도를 걸어간다.
또한, 논어 옹야 편 1장의 “子曰, 雍也可使南面. 仲弓問子桑伯子. 子曰, 可也簡. 仲弓曰, 居敬而行簡, 以臨其民, 不亦可乎? 居簡而行簡, 無乃大簡乎? 子曰, 雍之言然 ”이란 구절을 학자들이 ‘雍也可使南面’을 1장으로 하고 그 이하는 2장으로 하여야 한다고 하였는데 주자 선생께서는 무엇 때문에 똑같이 1장으로 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는 사색에 잠기며 걷기도 한다.
생각이 많아지니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어느새 임도가 끝나려는지 솔고개 4.3km, 예상시간 1시간 40분을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종착기가 임박하였지만 4km를 1시간 넘게 예상한 시간은 도보여행가에 대한 모독이다..
이제 걷기에 익숙해진 탓인지 목적지까지 10km가 되지 않으면 언제부터인가 다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솔고개까지 4km, 그리고 솔고개에서 설악터미널까지 4km가 남았다면 거의 다 온 것이 아닐까?
하지만 피곤하였다. 이제까지 쉬지 않고 걸어왔으니 잠시 휴식을 취하며 커피 한잔을 마시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았는데 김 총무 하는 말이 ‘정자라도 나오면 커피 한잔을 하려고 하는데 도대체 나타나지 않네요.’라고 말을 건넨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였을까? 서로가 커피 한잔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임도상에는 쉬어 갈만한 곳이 없었기에 쉬지 않고 걸어가는데 모퉁이를 돌아가는 곳에 의자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쉬어가기 더 좋은 곳이 없는 곳이 되어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간식으로 준비해온 빵을 먹으니 피곤함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12시 55분이다. 남은 거리를 헤아려 보니 3시가 조금 지나 목적지에 이를 수 있을 것 같다.
커피 한잔에 샘솟은 힘으로 임도를 내려서니 희곡리 버스 정류장이었고 이제 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희곡 교를 건너니 도로상에 보도, 차도가 구별되어 있지 않아 주의를 요한다는 경고문을 세워 놓았다.
자동차 운행상황에 유의하며 도로를 따라 솔고개에 이르니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식당과 주막집이었다. 솔고개라면 소나무가 상징일 텐데 소나무는 보이지 않고 음식점이 눈에 띈 것이다.
솔고개에서 오늘의 종착지인 설악터미널까지는 도로를 따라가는 길도 있고 곡달산에 오르는 길로 진입하여 진행하는 길도 있었다. 경기 둘레길 지도 앱에서는 도로를 따라 진행하는 길로 안내하고 있었지만, 표지기와 이정표는 산길로 진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산으로 진행하는 길목을 바라보니 솔고개답게 소나무가 줄지어 자라있고 등산로에는 솔잎도 깔려있어 산길로 진입하는데 길이 희미하고 뾰루봉 절고개를 오를 때처럼 가파른 오르막길이었다.
직선의 오르막길을 사선으로 오르다 곡달산으로 오르는 길에 진입하여 잠시 길을 이탈하였지만, 곧바로 바로 잡고 곡달산과 반대 방향의 경기 둘레길로 하산하는데 또한 가파른 내리막길이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타면선 계곡이었다. 수량도 풍부한 계곡물에 온몸을 담가(?) 오늘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탐선 부락의 도로에 이르러 도로를 따라 설악터미널에 이르니 14시 35분이었다.
막국수집에 들려 늦은 점심을 하고 터미널에 이르러 15시 20분에 잠실 가는 광역버스를 탈 수 있었디. 경기 둘레길을 걸으면서 연천 구간부터 현재의 가평 구간까지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아 많은 애로를 느꼈는데 오늘 가평 24코스는 지금까지 대중교통 노선에서 가장 편하게 서울에 이를 수 있었다.
● 일 시 : 2023년 11월 23일 목요일 짙은 안개
● 동행 : 김헌영 총무
● 동 선
- 09시53분 ; 삼회1리 마을회관
- 10시15분 : 운곡암
- 10시45분 : 징겅다리 끝 (농장)
- 11시10분 : 절고개. (화야산 1-10)
- 11시25분 : 임도
- 12시55분 : 휴식
- 13시40분 : 희곡리 버스 정류장
- 13시45분 : 솔고개
- 14시35분 : 설악터미널
● 거리 및 소요시간
◆ 거리 : 17.7km
◆ 시간 : 4시간42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