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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누벨바그 감독들은 자신들이 전적으로 중립적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 자주 나왔다. 정치적 참여의 문제와 별도로 예술적인 측면에서 당신은 참여적인가?
누벨바그가 시작되었을 때 몇몇 영화들은 요란한 파티 장면들을 담고 있었고, 그 장면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주벨바그가 오직 파티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꼬리표를 달았다. 그러나 그것은 우연에 불과했다. 마치 한때 장가뱅이 출연한 모든 영화들에서 그가 외인부대원이거나 혹은 탈영병으로 나왔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누구도 어떤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참여'라는 말은 대체로 오용되고 있으며, 보통 좌파들에 의해서이다.
노동자계급이나 사회 문제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고 참여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에 책임을 지는 한에 있어서 참여적이 된다. 예전에는 충분한 자각이 부족했던 탓에 책임감도 적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다. 지금은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점점 더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참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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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벨 바그
는 '새로운 물결'이란 뜻의 프랑스어로 1958년경부터 프랑스 영화계에서 일어난 새로운 풍조를 지칭하며, 좁은 의미로는 영화 평론지 <카예 뒤 시네마>를 본거지로 삼고 활동했던 신예 비평가들이 혁신보다는 기교를, 실험정신 보다는 기존의 것을 유지하는 주류 프랑스 영화의 소위 "품질의 전통"을 거부하고 나선 영화 제작 활동을 말하지만 보다 넓은 의미로 당시 프랑스 영화계의 새로운 풍조 전체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휴대용 장비들을 사용하고 세트 설정 시간이 거의 들지 않았던 누벨 바그의 영화 제작 방식은 종종 그래서 다큐멘터리와도 같은 스타일을 띠었다. 조각 촬영이나 불연속 편집, 롱테이크 같은 촬영 기법들이 사용되었다. 또한 사실주의, 주관주의, 작가주의 등의 혼합은 영화에서 제기되는 질문에 끝까지 답을 주지 않는, 내러티브의 모호함을 만들어 냈다.[2]
1960년 이후로 프랑스 영화의 주류가 됨과 동시에 세계 영화계에 큰 영향을 끼쳤고, 대표적인 감독으로는 《400번의 구타》의 프랑수아 트뤼포, 《네 멋대로 해라》의 장뤼크 고다르,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의 루이 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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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트뤼포는 자신의 어떤 영화를 대중이 좋아하지 않으면 그것은 실패작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신은 <여자는 여자다>가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작이라고 느끼는가?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정 수의 관객들은 그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트뤼포는 반은 제작자이고 반은 감독이다. 즉 오전에는 사업가, 오후에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대중의 문제가 그에게 더욱 절박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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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해야 하고 대중을 위해 있다는 믿음이있어야 하며, 그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예전에는 관객들이 내 작품을 이해하고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예를들어 히치콕은 사람들이 어떤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을 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때로는 앞서 나가야 한다고 느낀다. 여명은 언제나 몇 년후에야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앞서서 어떤 것을 하면서 "사람들이 이해 못할 거지만 상관없어"라는 식으로 말하는 일이 생기게 되면 아마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르고 있을 수도 있고, 그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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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비브르 사 비>의 오프닝 씬이 내게는 오해의 소지가 많은 대담한 연출적 착상으로 보였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한 것이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은 스크린에서 조금 이상한 것을 보는 즉시 그것을 이해하려고 지나친 노력을 하는 것 같다. 사실은 아주 잘 이해하고 있음에도, 훨씬 더 많이 이해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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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여자는 여자다>를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이 그 영화의 의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영화는 의도가 없었다. 테이블 위에 꽃다발이 놓여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이 무슨 의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그것은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그 어떤 것도 입증하고 있지 않다. 그 영화가 즐거움을 주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 영화가 모순적이 되기를, 꼭 함께 있을 필요가 없는 것들이 나란히 놓여있기를, 즐거운 동시에 슬픈 영화가 되기를 의도했다. 물론 그런 것은 가능하지 않고 이것 혹은 저것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법이지만 나는 그 두가지 모두를 하고 싶었다.
23 <루크레시아를 위하여>를 찍으며
영화는 항상 이미지의 관점에서 이야기되어 왔는데 현재 나는 사운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것의 논리적인 결론을 추구하고 싶고 스크린에서의 목소리를 연출하고 싶다. 스크린 위에서 어떤 사람이 그다지 움직임 없이 멋진 글을 읽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아마 영화가 시작하면 카메라와 대본을 든 배우들의 모습이 나오고 그들 곁에 의자를 두거나 그들을 정원에 있게 한 다음, 읽기가 시작될 것이다. 그들이 각자 대사를 읽고 우리가 점차 극 속으로 몰입해 들어가게 되면 더이상 대본은 보이지 않게 된다. 연극에서는 어떤 사람이 죽으면 마지막에는 반드시 그가 일어나야 하고 그사람이 죽었다고 믿지 않게 되는 반면, 영화에서는 그 죽음이 단지 연기일 뿐이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동시에 영화는 실재적이고, 실재를 찍고 있기 때문에 죽음을 믿을 수 있다는 점에서 출발해서 현실로 되돌아 올수 있다. 내가 그 연극에 흥미를 느끼는 또다른 그것이 순수에 관한 것이기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이 루크레시아라고 믿는 한 여성에 관한 것이고, 영화의 끝에는 지로두의 문장이 인용될것이다.
"순수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지만 십년에 한 번 잠깐 동안 그 빛은 빛난다." 내게 그것은 이 빛의 짧은 타오름을 영화로 찍는 작업과 같을 것이다. 이세계는 순수하지 않지만 수수를 대표하는 판 편의 영화가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