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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와 컵 사이
홍 예 영
기계에서 종이컵이 내려오더니 반경 안을 두리번거린다. 빈 컵으로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여유는 단 몇 초, 어리둥절할 사이도 없이 컵에는 순서를 따라 뜨거운 물이 부어지고 커피가 채워진다. 커피를 담는 사이 뜨거워진 컵은 향기를 머금는다. 단번에 취할 만큼 매혹적인 향기다. 성숙한 여인보다 향기는 더 치명적인 유혹이어서 입술을 대려는 순간 나는 컵을 가까이하지 못했다.
컵이 눈을 뜨더니 나에게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컵은 컵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 많은 과정을 거쳤으며 몸속에 담긴 내용물로 몸이 달아올라 처음으로 입술을 가까이 하고 있는데 적어도 통성명이라도 하고 싶다 했다. 신생아실에서 태어나는 아기를 대할 때처럼 자신을 보아달라고 더듬거렸다. 이름표를 단 신생아와 첫 대면할 때로 돌아가 달라, 조립된 거대한 틀 속에서 이름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 잠시 독백을 들어달라고 웅얼거렸다.
처음에는 컵의 마음을 읽지 않으려 했다. 오랜 동안 도시생활에 길들여져 있어 나는 일회용, 한 용도로 쓰다가 버리기는 자주 일어나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일생도 어쩌면 한 용도로 쓰이다가 폐기되는 것 아니겠는가? 태어남과 죽음까지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기계문명이 낳은 신생아인 컵의 일생과 대화를 해보기로 했다.
1. 순간이었다 이름을 가졌던 것은
모든 이름이 붙여진 것들은 자기의 역할을 하고 그 이름을 앞에 두고 사라진다. 컵은 어디서부터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돈의 액수나 취향에 따라 율무, 카푸치노, 카페라떼 등 컵의 이름은 순간에 바뀐다. 이국적인 이름일수록 이 도시에선 인기가 많다. 자신의 목소리를 유행시키려고 몸이 달아오른 아이돌들이 시선을 받기 위해 낯선 이름을 내거는 일은 흔하다. 그들은 가끔 저 북극의 빙하 한 조각에게 붙여진 이름을 찾아 목을 길게 뽑기도 한다.
‘가짜 수풀의 초록 사이로 매끈하게 오가며 뼈가 보이는 분홍살덩이’는 컵보다 조금 용량이 큰 수족관에서 움직이는 생명체다. 사람들은 그것에게 엔젤이라는 품격 있는 이름을 붙여두었다. 그러나 다가가 엔젤이라 불러보면 알게 된다. 엔젤은 불러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방어태세를 갖추고, 자신의 방향에만 열중해 있다.’ 그들이 아는 천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생명체는 또 다른 의미의 컵인 수족관에서 자기 몫의 삶을 꾸려갈 뿐이다. 그 모습은 차라리 길 위의 순례자를 닮아 있다.(「수족관 엔젤」)
엔젤이 자신의 이름을 모르는 경우라 한다면, 시 「그런데 누구시더라」는 자아 정체성에 대해 혼동을 하는 수신자를 다루고 있다. ‘클라라’는 ‘요즘 남편의 관심을 받는’ 여자다. 그러나 클라라가 누구냐고 여러 번 묻는 수신자는 한 때의 자신이 클라라와 닮아 있었다는 기억을 고백한다. 수신자도 ‘낯선 남자의 뒤통수와 향기’를 즐거워했었던 적이 있었으니 그런 자신 역시 클라라라고 불리어야 하지 않을까, 당신에게도 클라라와 같은 속성이 있지 않느냐고 전화를 건 친구에게 동의를 구한다. 자신의 이름이 저 수족관의 엔젤만큼이나 엉뚱하게 붙여졌다는 데 수신자의 고민이 있다.
대기실에서 글자로 이루어진 미로를 헤매다가 ‘환자 김숙희’라고 스스로를 불러보는 경우를 본다. 시 「그 여자는 자신을 부르기도 한다」에는 거울 앞에서 민망한 표정을 짓는 직립 허상과 마주하고서야 자신의 이름이 환자 아무개임을 깨닫는 상황이 전개된다. 환자 김숙희는 불러주는 사람이 있을 때만 유효한 이름이라 하겠다.
‘순간일보 사십 면 연애 소설 주인공’ 을희를 실제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세상이 숨이 막힐 때’는 ‘백 평의 정원’에 꽃들을 상상으로 심는 인물 역시 엉뚱하다. 그녀는 전화를 걸어 ‘을희가 늙었다’고 푸념을 하며 소설 속의 을희에게 오히려 동질감을 갖는다. 그러다가 수신자에게 ‘살아 있기는 한 거야?’라는 야유를 받는다. 그러나 그녀는 당당하게 ‘살아 있다’고 말한다. (「살아 있기는 한 거야?」)
나는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스마트 폰을 검색하는 이십 일 세기가 빚은 스마트한 무리들 역시 가상의 세계에 탐닉하고 있음을 본다. 가상 세계에서 이름이 붙여진 자들은 접속할 때마다 똑같은 행동을 무한 반복할 수 있다. 변하지 않는 속성의 측면에서 가상 세계의 주인공이야말로 이름을 붙이는데 망설이지 않아도 된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그렇다. 순간일보의 주인공 을희 또한 변하지 않는 속성을 가졌다. 그런 이유라면 전화를 건 장본인이 ‘살아있음’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기는 하다. 몇 개의 시로 미루어 볼 때 이름은 본인의 삶과는 거리가 있으며 가상의 세계에서 붙여진 이름이 차라리 나름대로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
2. 중독은 혀끝에서 달다
통성명을 끝내고야 나는 향기로 달구어진 컵을 감싼다. 달콤하고 따뜻해서 ‘쏟아지는 격정으로 입술을 포개’는 거리의 남녀들처럼 몇 번 더 입술을 댄다. 커피의 적절한 조화는 내 몸을 달아오르게 하는 치명적인 유혹임에 틀림없다. 인스턴트커피의 적당히 쓴 맛과 부드러움과 달콤함이 커피에 대한 중독을 이끌고 있다는 것을 돌아보다가 시를 쓰는 행위 역시 몇 개의 언어만 선택하여 조합을 하는 행위, 그 또한 언어에 대한 중독이 아닌가에서 잠시 머뭇거리고 만다. 나는 가끔 내가 좋아하는 언어만 사용하는 행위가 시라는 그물망에 힘겹게 매달린 모습이 아닌가를 돌아본다.(「일회용 반성문」)
중독은 ‘혀끝에서 달다’. 독자는 천길 절벽에서 넝쿨 하나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인물, 달디 단 꿀물을 즐기고 있는 한 시인을 상상해도 좋겠다. 그 공간의 어디선가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위를 쳐다보니 쥐 한 마리 넝쿨을 쏠아가고 있다. 쥐는 다시 보니 시간이라는 괴물, 그래도 절벽에서 대롱거리며 말한다. ‘달다’.
「컵 속의 도시」에는 색깔에 대해 중독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비오는 날 노란 레인 코트를 걸치고 ‘도돌이표 음악’이 된 뉴스를 거느린다. 붉은 신호등에서 멈추고 초록 신호에는 건너가고 있다. 노란 색깔의 물결 위로 그 모든 경계를 무시하며 떠도는 새들의 무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도시인의 얼굴들은 서로를 닮아가고 있어 구별이 힘들다. 손을 들어 아는 척하는 누군가를 바라보는데 ‘그저 그런 이웃사이, 그 얼굴이 그 얼굴’이어서 알아보지 못하고 만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이도 마찬가지다.(「지워지다」)
요즈음 도시인들은 성형을 많이 한다. 심지어 광대뼈를 깎아 일생동안 음식물을 잘 씹지 못하는 불편함 속에서 살아가야 하지만 작은 얼굴을 만들기 위해 안달이 나기도 한다. 그들은 분명 혀끝에 단 성형에 중독돼 있다. 그들은 목을 길게 하여야 미녀 축에 낀다고 여기는 태국의 카렌 부족을 연상시킨다.
똑같은 얼굴 속에 스스로를 지워버린 사람들이 ‘시대의 유행만큼의 굽 높이로 걸어가고, 약속이나 한 듯이 리본을 뒤로 묶고’ 무대에서 제 역할을 떠나지 못한다. 꽃다발을 들고 익사하는 또 다른 의미의 꽃인 그녀를 구하려고 다급하게 출발하는 꽃집 주인은 ‘상가와 결혼식장의 꽃 주문 비율’을 아주 잠시 바꿀 수는 있다. 그러나 도시인들의 사랑은 숫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B612호의 사랑법」)
이문휘야말로 돈을 숫자로 환산하는 자본주의의 꽃인 은행가 사람이다. 그녀는 손님에게 자동 기계처럼 ‘도장과 주민등록증’을 달라고 한다. 그러다가 ‘손님은 도장과 주민등록증’이라는 실수 아닌 실수를 하고 만다. 그녀는 ‘그림 속 인물들에게 설원의 흰 색깔’을 입히는 상상을 펼친다. 숫자와 더불어 기계가 아닌데 기계가 되어서 실수를 하고 그때마다 그림 속으로 떠나는 자기 치유를 되풀이한다. 그러나 되풀이할 뿐 숫자로 얽혀진 은행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 「이문휘가 사는 법 」)
출생 15명 사망 48명 혼인 27쌍 이혼11쌍
인구증가 50명 차량증가 95대 인구이동 1653명
우편물배달 884천통 범죄발생 126건 화재발생 3건
교통사고 발생 21건 전력사용량 15813 M W H
쓰레기 발생량 1251톤
도시가스공급량 1041
안 찾겠다 꾀꼬리 꾀고리 꾀고 오리
어느 숫자에 야무지게 걸렸을까
당신의 머리카락 보이지 않는다
- 「D시의 하루」일부
도시는 그들을 숫자 속에 꼭꼭 숨겨놓았다. 도시는 그들을 숫자로 기록하는 또 다른 의미의 생명체다. 거인의 모습을 하고 ‘안 찾겠다 꾀꼬리 꾀고리 꾀고 오리/당신의 머리카락 보이지 않는다’를 연발하는데도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못 찾는 게 아니라 찾지 않아도 아무도 머리카락을 내밀지 않는 놀이를 하고 있다. 어느 숫자에 야무지게 파고들어 있을까, 숫자에의 중독은 별마다 숫자를 매기며 신나하는 어린왕자가 만난 학자를 닮아 있다. 도시인들은 일생 동안 스스로를 숫자로 단단하게 결박하고 있다.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중독에 빠져 있다.
3. 일회용 소모품들
이제 컵은 구겨지고 던져질 차례다. 공동묘지에서 묘비명을 읽어가듯 나는 이미 던져져 나뒹구는 컵들을 바라본다. 커피 컵이었던 율무 컵이었던 익명으로 돌아간 그들에게 붙여진 이름은 쓰레기이다. 종이에서 컵이 되었지만 일회용이라는 것이 도시 컵의 현실이다. 도시는 도시에 필요한 것들을 양육하고 버린다. ‘종이와 컵 사이/잠시에 선택이란 없다’ 종이컵이 되고 내용물이 채워지고 뜨거운 입술을 마주했으며, 버려지는 과정이 진행될 뿐이다.
컵처럼 구겨지는 토끼는 도시인도 일회적인 삶을 꾸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잠시 자신의 역할을 쉬고 싶다’고 말한 뒤 토끼로 변해버린 그를 받아줄 병원은 없기 때문이다.
‘입원하면 치료비가 오 만원인데 토끼 한 마리 값은 오 천 원인 건 아십니까? 토끼는 작아서 경험이 없네요’ 집에서 제일 먼 곳으로 검색된 세 번째 동물 병원마저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토끼의 설사는 죽음으로 가는 순서랍니다 토끼는 입원이 안 돼요 쓰러지는 것까지가 토끼의 역할이거든요’
토끼를 태어나게 할 수는 없으나 죽이는 것은 쉽게 결정하는 도시 토끼의 배역은 귀를 세워 소리 잘 듣기 할 말이 있을 때는 대답대신 입술만 오물거리기 주어진 털옷으로 여름과 겨울을 버티기 깨어 있을 땐 균형이 맞지 않은 다리로 깡충깡충 재주부리기
- 「토끼는 입원이 안 된다」 일부
토끼는 몸값이 입원실 하루 비용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그냥 죽이는 게 현명하다. ‘대답대신 입술만 오물거리’는 일회용 소모품인 토끼 환자는 ‘균형이 맞지 않은 다리로 뛰며 깡충깡충 재주부리기’를 끝내야 한다. 도시는 새로 태어난 토끼만으로도 충분히 활력이 넘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환자에게 달려가는 응급차의 경고음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응급차는 사고가 날 것에 대기할 뿐 아니라 기다리고 있음이 도시의 단면이다. 그러나 정작 도시인들은 남의 일이라 생각하며 안이하게 하루를 채우고 있다. 마침내 때가 되면 그들 역시 일회적인 삶의 본보기인 토끼와 종이컵처럼 재주부리기를 중단한 채로 응급차에 구겨지고 던져질 것이다. 그때까지만 꿀맛에 비유되는 현실에 중독될 수 있다.
4. 다시 컵일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의미의 자동 기계다. 나 역시 태어나자마자 주입된 내용을 담았다. 재활용이 되어 다시 종이컵으로 태어날 확률을 묻는 나는 이 시대가 담은 종교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폐기될 순서를 기다리며 구겨지고, 지워지는 얼굴을 보며 윤회의 고리를 떠올리고 죽음은 재탄생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꺼내본다.
살아있다는 것은 벗어나려는 몸짓, 나는 시 「우리들의 모퉁이」를 읽으며 길을 탐색해 본다. 이 시는 ‘감옥의 하루’에서 죄수들이 음식을 먹는 이유를 묻는 데서 시작된다. ‘사슬길이 만큼’의 거리를 오가는 개 한 마리 음식 앞에서 망설인다. 그러다가 마침내 먹기로 한다. 먹는 이유는 가마솥과 같은 화탕 지옥으로 가려는 것이 아니라 사슬 길이를 벗어날 힘을 비축하기 위해서다.
이 시가 이끄는 사유를 따라가자면 사슬을 발목에 달고 저녁 산보를 하는 죄수들은 탈출을 꿈꾸기 위해 먹고 있다 하겠다. 수족관의 엔젤 역시 벗어나기 위해 수초 사이를 뒤적인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감옥의 하루’라는 그림을 보자면 죄수들이 저녁식사 후 뒷마당을 돈다
시선의 높이는 저마다 다르다 발목언저리에 사슬을 두른 죄수들에게
저녁을 먹은 다음 운동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보신탕집이 즐비한 골목에는 특별한 분위기가 스며있다 청 빛에 도달하지 못할 냄새를 품고 공기는 칙칙하다 냄새에 민감한 개는 제 종족들의 살이 끓는 냄새를 모를 리 없다 생명체가 살이 찌면 가야할 곳은 건너 가마솥 안, 아는 척하지 않는다
사슬길이 만큼만 오간다
허드레 음식을 마주할 때는 두 가지 마음
비루먹은 모습으로 지상에서 머물 시간을 벌 것인가?
사슬을 떼어버리고 달아날 힘을 키울 것인가?
복날이 다가오더니 밥그릇 비우는 속도가 빨라졌다
꼬리 흔들기에 힘이 실렸다
누군가 신호를 하자 시끌벅적
막다른 골목길 질펀하게 젖어 있다
그 모든 소리를 섞어
새로운 고리를 마련하는 우리들의 도시.
- 「우리들의 모퉁이 」 전문
등을 보인 누군가가 자판기에 다가서더니 동전을 넣는다. 자판기는 돈을 세더니 덜커덩거리는 기계음으로 물건을 선택하라고 재촉한다. 커피가 종이컵에 채워지자 자판기는 원래의 고요로 돌아가고 노을 속에 침묵하는 산 그림자의 먹먹함으로 나는 또 묻는다.
다시 컵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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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번 쓸 것은 한번만 쓰고 버려야 하나, 또 쓰고 또 쓰고 해야 하나. 편리한 세상에서 편리하지 않음을 선호하며 살 수 도 없고, 요즘 생각과 현실과 습관 사이에서 번민아닌 고민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