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일 하늘언어교회 강론
본문: 출애굽기 20장 7절
7절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제목: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한국 언중의 정서적 조명
본문 말씀은 십계명 중 세번째 계명입니다. 하나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거나 사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계명중에 세 번째일 만큼 중요한 계명인데도 정작 이 계명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 이름은 지고자 즉 지극히 높으신 분의 이름입니다. 인간의 언어로는 감히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분입니다. 그분을 어떤 형태로든 이름으로 부른다면 그 이름은 이름이 아닌 은유의 형태를 띠게 됩니다. 즉 비유가 아니고서는 그분을 지칭할 도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다시말해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하든 하느님이라고 하든 여호와나 야훼라고 하든 모두가 그분에 대한 직접적인 이름이 아니고 은유법이 된다는 것입니다. 은유란 직유처럼 직접적인 비유를 하지 않고 에이는 비이다식으로 비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예수님 말씀처럼 비유가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이름조차 거론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언어의 한계입니다.
그런데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렇게 이름조차 부여할 수 없는 분에게 붙여진 이름조차 그 이름에 합당하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너무 흔해 빠진 사물의 이름을 부르듯 함부로 부르고 사용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단이나 사이비뿐 아니라 정통교회든 성직자든 예외 없이 그 이름을 가볍게 사용하는 경향성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 이름으로 함부로 맹세를 남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름으로 잘못된 설교나 성경 해석을 남발하기도 합니다. 그 이름으로 무례한 전도나 강압적인 개종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 이름으로 상대방을 몹시 불쾌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 이름으로 중독적인 종교 행위에 탐닉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 중에 그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이름에 대한 정서를 보면 더 심각한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한국어에는 경어법이 발달해 있어서 상대를 높이고 자기를 낮추는 어법이 보편화 되어 있습니다. 상대를 높이는 방법에는 주로 ‘님’을 붙이는 관습이 있습니다. 자기보다 지위가 높거나 나이가 많은 이들에게는 님을 붙여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것이 우리의 언어 예절입니다. 아버님, 형님, 목사님, 선생님 등으로 예의를 차립니다. 심지어 요즘에는 나이나 직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공식적으로 부를 때는 누구에게나 님을 붙여 부릅니다.
그런데 의외에도 하나님이나 예수님에게는 님을 빼고 부르는 경향이 심합니다. 성경이든 찬송가든 사도신경이든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이나 예수님에 대한 호칭에는 님이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고유명사로 알려진 여호와나 야훼에 님이 붙은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예수께서, 예수여 등 님을 빼고 호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수님의 직분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에도 님을 붙여야 하는데 그런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기독교의 신앙 대상에 대한 경어법의 오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명한 예는 타종교의 숭배 대상과 그 성직자들에 대한 호칭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무리 완고한 기독교인들도 불교의 신앙 대상에 대해서는 부처님이라 하고 그 성직자들은 스님이라고 합니다. 배타적인 기독교인은 타종교를 극도로 싫어합니다. 그런데도 호칭으로는 오히려 싫어하는 타종교 관련자들은 부처님 스님 등으로 높이고 우리의 믿음 대상인 예수님은 그냥 예수, 그리스도 이렇게 반말 투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심리적으로 면종복배의 징후일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무서우니까 겉으로는 순복하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배반하는 것을 면종복배라고 합니다. 형식적인 기독교인들이 면종복배의 심리 때문에 타종교인은 높이고 우리의 주님은 님을 빼고 부른다면 속내를 나타내는 것이므로 솔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큰 문제는 그러한 면종복배의 심리적인 의도가 전혀 없는 신실한 신자들마저 그렇게 부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 석가탄일을 부처님 오신날이라 하니까 우리도 그렇게 부르고 성탄일은 예수 오신 날이라고 하니 우리도 예수 오신 날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즉 님을 넣고 빼는 것은 무슨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습관이 굳어져서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하나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조차 모른 채 함부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의식과 무지로 인한 망령됨은 알게 된 즉시 고치면 됩니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는 반드시 님을 붙인다, 이 원칙만 기억하고 실천하면 됩니다.
사도신경을 할 때도 삼위일체 하나님에게는 모두 님을 붙여서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님 또는 하늘 아버님으로 불러야 합니다. 예수는 예수님으로, 성령은 성령님으로 불러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님으로 불러야 하고 여호와나 야훼는 여호와님, 야훼님으로 불러야 합니다.
다음으로 한국의 문법적 특징이 서양의 언어관습과 많이 다르다는 점도 인식해야 합니다. 대표적으로 주어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다릅니다. 영어에서는 주어를 반드시 문두에 내세웁니다. 심지어 가주어라 하여 실제로는 필요하지 않은데 형식적으로 주어를 내세우는 경우도 많습니다.
반면에 한국어에서는 주어를 오히려 생략하는 것이 세련된 문장으로 인식됩니다. 즉 앞 뒤 문맥상 주어를 알 수 있는 경우에는 주어를 생략하는 것이 훨씬 깔끔하고 가독성도 좋습니다. 그래서 영어나 헬라어에서는 일일이 하나님 이름을 주어로 내세우더라도 한국어에서는 하나님 이름을 생략하는 것이 정서적으로 더 강하게 어필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또 한가지 한국어에는 간과할 수 없는 언어관습이 있습니다. 한국어에서는 위 사람 특히 아버지를 비롯한 조상님의 이름을 이름자 그대로 부르지 않는 관습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이름이란 말도 높여서 함자라고 합니다. 한국인은 조상의 이름을 부를 때는 글자마다 자를 붙여서 홍자, 길자, 동자 이런 식으로 읽습니다. 한국인의 이런 관습을 성경상의 이름들에 적용할 수는 없겠죠. 한국의 이름들은 대부분이 한자이기 때문에 한글자씩 자를 붙일 수 있지만 성경상의 이름은 그렇게 부를 수가 없습니다.
이름과 관련해서 생각해봐야 할 또 한가지 차이점은 서양에서는 중요인물에 대해서는 이름을 명료하게 드러내고 자주 거론하는 것을 미덕으로 보는데 반해 한국의 언중들은 정말 소중한 사람의 이름은 함부로 거론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가족, 친구, 은사 등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이름을 함부로 거론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한국인의 정서입니다.
이러한 한국적인 정서로 봤을 때 하나님이나 예수님에 대해서도 그 이름을 자주 거론하기 보다는 주어 생략법이나 은폐하여 보호하는 어법을 적용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지나치게 공격적인 전도방법을 동원하는 바람에 종교적인 개념을 거론하기만 해도 말을 차단해버리는 안티 감정이 극렬하게 조성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을 수 있는가를 재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되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언어적 정서 때문에 아무리 독실한 신자라고 해도 번역된 성경을 읽다보면 지나치게 자주 거론되는 신명칭에 대해 거부반응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소중하게 여기는 것도 과도하게 자주 접하면 뇌는 그것을 너무 흔해서 하잘것 없는 것으로 여기는 인지 현상이 있습니다. 물론 성경이 쓰여지던 당시에는 전쟁시였거나 우상의 심각한 만연 등 피치 못할 상황 때문에 구약성경과 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수없이 반복적으로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인의 심리 특히 한국인의 정서는 그때의 유대인 상황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미묘하고 다원적입니다. 따라서 옛날 방식이나 영어권 전통에 따른 신명이나 주어의 지나친 강조는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즉 함부로 남용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실천해야 할 사항을 세 가지로 제시했습니다.
첫째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에는 반드시 ‘님’자를 붙일 것.
둘째 하나님 이름의 사용 빈도를 줄일 것.
셋째 주어를 생략하는 언어 관습에 따라 하나님 이름도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는 생략하는 것을 고려할 것.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공부하고 고려해야 할 사항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일일이 공부하는 일은 극히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새해를 맞이해서 우리 한국인의 언어적 문화 속에서 고려해볼 만한 사항을 세가지로 압축해서 제시해보았습니다. 이렇게 단순한 노력만으로도 다양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선 기독교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과 거부반응을 줄일 수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 기독교인들도 보다 세련되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해갈 수 있습니다. 끝으로 이러한 조심성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해드리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함부로 남용하는 죄만은 줄여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신년 강론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대망의 계묘년 새해를 맞이하시는 모든 독자님들의 삶에 건강과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신세계가 펼쳐지기를 기원합니다. 밝고 영롱한 꿈과 소망을 파종하고 일구어 가는 여정에 하늘의 깊으신 가호가 늘 함께 하시기를 거듭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