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듣기로, 부르지 않아도 이르는 것은 운명이다. 운명은 하늘에 달린 것으로 사람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오로지 의리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그러므로 “운명으로써 의리에 처한다.〔以命處義〕”라고 한 것이다. ‘의리’는 ‘타고난 본성〔性分〕’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시름과 빈천 속에 살아가기도 하고 자신을 수양하며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는데, 운명은 이러한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공(李公) 휘 제우(齊宇)는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기고 도량도 넓어서 사람들 사이에 공의 멋진 풍모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각위증(脚痿症)을 앓아 걸음걸이가 불편하였다. 사람들이 억지로라도 과거에 응시해 보라고 권유하면 “이는 운명이니, 운명을 어길 수 있겠는가. 정해진 운명인데 마음으로 번민을 한다면 나에게 실로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하였다. 이로 보아 공은 이치에 통달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좇는 사람이라 하겠다.
공자(孔子)가 “규문(閨門) 안에 예가 다 갖추어져 있다. 집안에 엄한 아비와 엄한 형이 있는 것은 나라에 높은 임금과 존경하는 어른이 있는 것과 같고, 집안에서 처자를 사랑하는 것은 나라에서 백성을 사랑하는 것과 같고, 집안에서 노복을 부리는 것은 나라에서 도역(徒役)을 부리는 것과 같다.” 하였으니, 선비가 어려서 배운 것을 어른이 되어 실행에 옮길 나이가 되었을 때 이를 나라에 시행하지 못하면 집안에서 시행하는 법이다. 공은 선친인 장령공(掌令公)을 섬길 때 안색을 살펴 봉양하였다. 계모인 조씨(趙氏) 부인을 친어머니와 똑같이 받들어 초상에는 슬픔을 다하였고 제사는 정성을 다해 모셨다. 아우들과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가난하게 지내면 아래로 노비에 이르기까지 누구 할 것 없이 도와주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환심을 얻었다. 집안에서의 이러한 행실은 이른바 “정치하는 데에 미루어 행한다.〔施於有政〕”라는 것에 해당하지 않겠는가.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산 뒤로는 평상시 공부할 때 경전과 사서(史書)들을 대부분 손으로 베껴 쓰면서 날마다 외우고 익혔다. 그리고 다시 규범과 도리를 설명하여 자식들에게 가르쳤다. 아들 흥경(興慶) 씨의 말을 빌리자면 “자식에 대한 선친의 사랑이 깊기는 하지만 공부를 가르치실 때는 조금도 가차가 없었다. 다만 지금까지도 유훈을 받들어 따르지 못하고 있으니 이는 불초한 나의 잘못이다.” 하였는데, 이 말 속에서도 공이 솔선수범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공의 자는 수옹(壽翁)으로 세종대왕의 별자(別子)인 담양군(潭陽君) 거(璖)의 후손이다. 담양군에서 4대를 내려와 호조 판서로 호가 파곡(坡谷)인 성중(誠中)이 있는데, 선조대왕 때의 명신(名臣)이다. 성중이 의주 목사(義州牧使) 유징(幼澄)을 낳았고, 유징이 관찰사 명웅(命雄)을 낳았으며, 명웅이 별검(別檢) 진규(震奎)를 낳았고, 진규가 공의 선고(先考)인 장령 귀령(龜齡)을 낳았다. 비(妣) 평강 채씨(平康蔡氏)는 현령 정후(正後)의 따님으로 현종 7년 병오년(1666) 봄 2월 9일에 공을 낳았다. 공은 향년 53세로 세상을 떠났으니, 숙종 44년 무술년(1718) 겨울 10월 1일이다. 묘소는 담양군(潭陽君)의 묘소 아래에 있다. 부인인 공인(恭人) 풍양 조씨(豐壤趙氏)는 상지(尙志)의 따님으로 공의 묘소에 합장되었다.
아들 둘에 딸 넷을 낳았다. 장남은 흥경(興慶)이고, 둘째 항경(恒慶)은 양자로 나갔다. 딸은 조당(趙戇), 조명희(趙命煕), 남정로(南廷老), 최일익(崔日益)에게 시집갔다.
흥경은 아들 하나에 딸 하나를 두었다. 아들은 정협(廷協)이고 딸은 아직 어리다. 항경은 아들 둘을 두었는데 정구(廷耈)와 정익(廷益)이다. 사위 조당은 딸 셋을 두었는데 장녀는 이성신(李星臣)에게 시집갔고 나머지는 아직 어리다. 조명희는 아들 둘에 딸 둘을 두었는데 모두 어리다. 남정로는 양자 모(某)를 두었고, 최일익은 딸 하나를 두었는데 아직 어리다.
명(銘)은 다음과 같다.
하늘이 공을 옥으로 만들 때 / 天庸玉汝
부모님 모두 살아 계셨고 / 有尊者存
처음에 열렸다 나중에 끊어졌으나 / 開而斷
순순히 의리 따라 행동하였으니 / 恂恂以義敦
이로써 공을 칭송하노라 / 是以爲言
[주-D001] 운명으로써 의리에 처한다 : 《근사록(近思錄)》 권7 〈출처(出處)〉에서 이천(伊川) 정이(程頤)가 “현자는 오직 의리만을 알 뿐이요 운명은 그 속에 내재되어 있으며, 중인 이하 사람은 운명으로써 의리에 처한다.〔賢者惟知義而已 命在其中 中人以下 乃以命處義〕” 하였다. 이 말에 대해 우암 송시열은 혹인(或人)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를테면 벼슬하여 진출하기를 구하려던 사람이 그 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구하지 아니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宋子大全 卷121 答或人》[주-D002] 공자(孔子)가 …… 같다 : 《효경(孝經)》 전(傳) 12장(章)에 나온다.[주-D003] 정치하는 …… 행한다 : 어떤 이가 공자에게 왜 정치를 하지 않느냐고 묻자, 공자가 “《서경》에 효에 대해 말하기를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여 그것을 정치하는 데에 미루어 행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도 정치를 하는 것이다. 어찌 꼭 벼슬을 해야만 정치를 하는 것이겠는가.〔書云孝乎 惟孝 友于兄弟 施於有政 是亦爲政 奚其爲爲政〕”라고 대답한 내용이 《논어》 〈위정(爲政)〉에 나온다. 《서경》은 〈군진(君陳)〉을 가리킨다. 성호는 이 말을 인용하여 이제우(李齊宇)가 신체적 장애로 관직에 나가서 나라를 위해 일하지는 못하지만 집안에서의 행실로 보아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주-D004] 하늘이 …… 때 :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그대를 빈궁하게 하고 시름에 잠기게 하는 것은 장차 그대를 옥으로 만들어 주려 함이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어려운 역경을 통해 인격을 완성함을 말한 것이다.[주-D005] 처음에 …… 끊어졌으나 : 이제우가 뛰어난 자질을 타고 태어났으나 나중에 각위증으로 걸음이 불편하여 과거를 포기한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