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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해설 (후편)
제3장 복귀섭리연장시대(예수 이후 2000년)
복귀섭리시대의 목적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부터 믿음의 자녀를 불러세워 씨족에서 부족으로 민족에 이르기까지 선민의 터를 넓히어 민족적인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여 그 기대 위에 메시아를 맞아 복귀섭리를 완성하려는데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목적으로 부름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민족적인 믿음의 제단을 쌓고 예수님을 이 제단의 제물로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헌제를 드려야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살해하였으므로 아브라함 이후 2000년간 준비하여온 이 제단은 무너지게되어 복귀섭리시대의 2000년 간을 다시 사탄에게 내어준 결과로 돌아갔음으로 이 기간을 다시 하늘 편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한 예수 이후 2000년 기간이 없어서는 아니될 것이니 이 기간을 곧 재탕감복귀시대라고 한다.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가 좌절되었으므로 그의 후손에서 선민을 불러세워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민족적인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려는 섭리를 하신 것과같이 이 시대는 예수님을 중심한 복귀섭리가 완전히 이루어지지않았으므로 기독신도를 불러세워 새로이 세계적인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여 재림하시는 메시아를 중심하고 복귀섭리를 완성하기 위하여 연장된 시대임으로 이 시대를 복귀섭리 연장시대라고도 한다.
타락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제1차적 책임을 지시고 하나님이 섭리하신 시대가 소생구약시대엿고 아담과 해와 대신 사명자로 오신 예수와 성신(기독론 참조)이 제2차적 책임을 분담하시고 섭리하시는 시대가 곧 장성 신약시대다.
그리고 이 시대의 프로젝트에 적응될 사료에 관하여는 이미 서론에서 상술되어있지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살해함으로써 아브라함이 혈통에서 불리운 선민은 벌써 선민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고 말았음으로 예수님에게 부름받은 영적 이스라엘인 기독신도로써 이루어진 기독교사가 이 시대의 복귀섭리의 원리적 노정을 이루어 나온 역사라고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복귀섭리의 원리적 프로젝트에 적응될 사료는 기독교사인 것이다. 이 시대도 7기간으로 구분하여 섭리하셨다. 그 이유는 7기간으로 구분하여 섭리하셨던 복귀섭리시대의 2000년을 그대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인 까닭이다.
제1절 로마제국 박해시대(400년간)
아브라함의 제물실수로 인하여 상실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이스라엘민족의 애급고역시대 400년간이 있었음으로 민족적인 제단 위에 예수님을 산 제물로 바치는 헌제의 실수로 인하여 상실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는 기독신도들 앞에도 애급고역시대와 같은 로마제국박해시대 400년간이 없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이와같이 이 시대는 애급고역시대를 탕감복귀하는 시대임으로 이스라엘 민족들이 애급에서 당하던 것과 같은 고난을 기독신도들은 로마제국에서 당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러므로 야곱이 12자식을 중심한 70가족이 사탄 세계인 애급에 들어가 400년 간 그들의 박해와 학살을 당하던 것과같이 예수님의 12제자를 중심한 70문도는 사탄세계인 로마제국에서 400년 간 그들의 박해와 학살을 당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스라엘민족은 애급에서 400년을 고역한 후에 애급왕 바로를 굴복시키고 해방을 당한 것과 같이 기독신도들도 로마제국에서 4세기간의 수난기를 거친 후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칙령에 의하여 기독교의 공인을 받음으로써 비로소 그의 기반에서 해방을 당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해방되어 나올 때 모세는 비로소 십계명과 성서를 받고 그를 중심하여 성막을 건설한 것같이 기독신도들도 기독교 공인에 의하여 해방된 후 니케야회의를 비롯한 수차에 걸친 종교대회에서 어거스틴 등을 중심하고 사도신경과 신약성서는 결정되어 이 위에 그때까지 혼란상태에 처한 교회는 복귀되어 새로운 기초를 세우게 된 것이다.
이와같이 되어 이스라엘이 성막을 중심하고 예수님을 맞을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나온 것같이 기독신도들도 교회를 중심하고 재림예수를 맞을 수 있는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받들어 나온 것이다.
제2절 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400년~800년)
이 시대는 복귀섭리시대에 있어서 사사를 중심하고 이스라엘 민족들을 영도하여 나아가던 사사 400년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교구장 (Patriarch)을 중심하고 기독교를 영도하던 시대다.
이스라엘민족이 사탄세계인 애급에서 가나안복지로 들어가 12지파로 분배된 새 땅에 새로운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을 일으킨 것과 같이 기독교도 역시 사탄세계인 로마제국에서 해방을 당한 후 4세기에 몽고족의 일파인 훈족(Hun)의 서침에 의하여 서구로 이동된 게르만 민족에게 기독교리를 전파하여 4세기 이후에는 서구의 새 땅에 게르만민족을 중심한 새로운 선민인 기독신도들을 불러 세우시어 12지파형의 교회를 중심하고 발전한 것이다.
가나안 복지로 들어간 이스라엘선민은 민족적인 가나안화운동을 일으킨 것같이 게르만 민족을 중심하고 서구에서 부름받은 기독신도들은 세계적인 가나안화운동을 전개시킨 것이다.
사사시대에 있어서의 이스라엘의 영도자는 사사였으니 이 사사는 다음 시대에 분립되어 예언자와 제사장과 국왕의 사명을 겸임하였던 것이다. 이와같이 이 시대에 있어서의 기독교국의 영도의 중심은 교구장이었는데 교구장도 다음 시대에 분립되는 수도원과 교황과 국왕의 사명을 겸임하여 통치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교구장은 사사와 동일한 천적인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이스라엘민족은 가나안땅에 들어간 후 잡신을 신봉하는 가나안의 선주민의 영향으로 그들의 신앙에 혼란을 일으킨 것과 같이 서구에 확산된 기독교에도 잡도의 영향으로 인하여 신조의 혼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제3절 기독왕국시대(800년~918년)
이 시대는 사울왕으로 시작된 통일왕국시대를 찰스대제로 시작된 기독왕국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다. 아브라함으로부터 800년 되던 때에 이스라엘민족을 통치할 사울왕이 즉위하였음으로 기원 800년 되던 해 크리스마스날에 기독신도를 통치할 찰스대제가 즉위한 것은 탕감복귀원리로 보아 없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이제 모세에 의한 성막이상이 통일왕국시대의 이상인 성막이상으로 나타난 것같이 어거스틴에 의한 기독교이상은 기독왕국건설의 이상으로 나타나 신정정치의 프랑크왕국을 재건하였다. 사사시대에 있어서의 사사의 사명은 통일왕국시대로 들어오면서 셋을 분립되었으니 첫째는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받는 선지자의 사명이요 둘째는 이스라엘의 성막을 받드는 제사장의 사명이요 셋째는 백성을 통치하는 국왕의 사명이었다.
이것을 탕감하기 위한 기독왕국시대에 있어서도 역시 그 전시대의 교구장의 사명은 셋으로 분립되었으니 첫째는 선지자에 해당되는 수도원의 사명이요, 둘째는 제사장에 해당되는 교황의 사명이요 셋째는 백성을 통치하는 국왕의 사명이다.
이 두 시대에 있어서의 주도권은 제사장과 교황에 있었다. 그러므로 사울왕의 즉위의 주고를 선지자 사무엘이 한 것같이 찰스대제 즉위의 금관은 교황 레오 제3세가 씌워준 것이다. 통일왕국시대가 120년 간 계속된 것같이 기독왕국의 왕조도 119년만에 끊어지고 말았다.
제4절 동서분립시대(918년~1305년)
통일왕국시대의 성전이상이 좌절되면서 이 왕국은 남조와 북조로 분리되어 남북조분립시대가 400년간 계속되었으므로 이 시대를 탕감복귀하는 동서분립시대가 오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왕국도 분립되어 처음에는 동서 프랑크와 이태리로 분열되었다가 동프랑크는 신성 로마제국을 계승하여 이태리왕을 겸임하였으므로 사실상 동서로 분립된 것과 같으며 이스라엘의 중심이 남조에 있었던 것과같이 이 분립된 왕조의 중심도 신성로마제국인 동프랑크에 있었다.
통일왕국시대에 있어서의 이스라엘의 국왕은 제사장의 명을 받아 성전이상을 이루어야할 것이었던 것같이 이 시대에 있어서의 왕은 교황의 명령에 의하여 기독왕국의 이념을 실현해야될 것이었다.
이 시대에 있어서 사실상 제국의 실권은 교황에게 있었음으로 교황 그레고리7세는 독일황제 헨리4세를 파문할 수 있었으며 교황 이노센트 3세는 불국왕 필립2세를 굴복시켰고 영국왕 존을 파문하는 등 교황권은 이 시대에 그 절정에 달하여 기독왕국 전성시대를 이루었던 것이다.
남북조분립시대에 있어서 이스라엘민족들이 이 성전이상에 배치되는 입장에 서게될 때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시어 내적 확청운동을 일으키시었다. 선지자 엘리야를 중심한 4대선지와 12소선지를 보내신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동서분립시대에 있어서도 교황청이 부패함에 따라 그 내적 확청운동은 수도원에서 일어난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토마스 아 켐피스(1380~1471) 프랑시스 교단 등이 나타난 것은 모두 이러한 섭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민족이 선지자들에 의한 내적 확청운동에도 회개하지 아니함으로 애급 갈대아 수리아 앗수리아 바벨로니아 등 이방들에게 붙여 외적확청운동을 일으켰던 것과 같이 교황청이 수도원에 의한 내적확청운동에도 회개하지 않고 타락과 부패가 우심하여지매 그들도 이방인들에게 붙여 외적확청운동을 일으켰으니 이것이 곧 십자군전쟁이다.
예루살렘 성지가 카리프제국에 속하여 있을 때는 그들은 기독교인의 순례자들을 후대하였는데 카리프제국이 셀주크 투르크(Seljuk turks)에게 망하여 예루살렘이 그들에게 점령을 당한 후에는 그들은 순례자들을 학대하였다. 이에 분개한 교황은 이 성지를 회복하려고 십자군을 일으킨 것이다.
십자군전쟁은 1096년에 시작되어 약 200년 간에 7회의 원정을 하였으나 패전을 거듭하였고 설상가상으로 몽고제국의 서침에 의하여 동서로 분립된 기독왕국은 붕괴되어 하나님의 섭리는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된 것이다. 십자군 전쟁은 이와같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지못한 기독왕국을 확청키 위한 것이 그 목적이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섭리에서 이루어진다고 믿고있던 기독왕국이 이교도에 의하여 패전을 거듭함에 따라 교황권은 그 권위와 신망을 완전히 잃게되자 또한 국민정신의 중심을 잃어버렸다. 한편 봉건사회를 유지하던 영주들과 기사의 전사로 인하여 정치적인 기반을 잃고 말았으며 또 장기간에 걸친 전비의 의하여 경제적인 곤궁에 빠지게되어 봉건사회는 붕괴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제5절 교황포로시대(1305~1375)
솔로몬왕의 타락으로 인하여 이루어지지않은 성전이상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남북조 분립시대를 통하여 많은 선지자들을 보냈으며 또 이방인에 붙이기도하여 내적 외적으로 확청운동을 일으켰으나 회개치 않은 결과로 파괴된 성전을 재건설하여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새로운 기대를 조성키 위하여 이스라엘민족은 다시 사탄세계인 바벨론으로 포로되어갔던 70년 기간이 있었음으로 이 기간을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교황포로시대다.
그러므로 교황청의 부패로 인하여 이루어지지 않았던 기독왕국이상을 복귀하기 위하여 동서분립시대를 통하여 많은 수도자들을 보내었으며 또 십자군전쟁에 붙이기도하여 내적 외적으로 확청운동을 일으켰으나 교황이 회개치 않은 결과로 좌절된 이 이상을 다시 세워 재림주를 맞을 수 있는 새로운 기대를 조성키 위하여 역대의 교황이 70년간 포로를 당하는 시대가 오게되는 것이다.
십자군전쟁의 영향으로 인한 봉건제도의 몰락과 근대국가의 성립에 따라 왕권이 신장되었고 한편 신앙열이 냉각하여 교황과 승려가 그 권위를 상실하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교황과 불국왕이 충돌하자 국민이 왕을 지지하게 되어 교황 보니후아키우쓰 8세가 남불 아비뇽에 금고된 후 1대를 지나서 기원 1305년에 구레멘스5세로부터 역대의 교황은 70년간 불왕의 구속을 받으면서 남불 아비뇽에서 포로생활을 하게된 것이다.
제6절 교황귀환시대(1375~1517)
이스라엘 민족을 포로로 잡아갔던 바벨론이 파사에게 망한 후 그들이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140년 기간이 있었음으로 이 기간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교황이 남불 아비뇽으로부터 로마로 귀환하는 140년 기간이 없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에 포로되어 이방의 잡신교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을 멀리하게된 것같이 이 중세인 가운데도 하나님을 반역하는 인생관이 나왔으니 이것이 곧 문예부흥운동을 타고 나온 인본주의사상이다.
이스라엘민족 귀환시대의 목적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민족이 새로이 성전을 건축하고 죄를 회개하며 율법을 공부하여 쇄신된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준비를 하는데 있었던 것과 같이 이 시대에도 교황이 로마로 귀환한 후에는 중세의 기독교계에는 일대혁신운동이 일어나 암운 가운데 신음하던 중세의 기독신자들에게 신앙의 새로운 서광을 비춰주어 재림예수를 맞을 수 있는 새로운 신앙의 기대를 조성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귀환시대는 선지자 말라기를 중심한 성전건설과 신앙쇄신운동으로 다음 시대를 출발한 것이다.
제7절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1517~1917)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이스라엘민족이 메시아 강림준비시대를 지나고 나서 예수님을 맞았음으로 이 기간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시대가 포로되었던 교황이 귀환한 후의 중세 기독신도들의 앞에도 남아졌으니 이 시대가 곧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다.
사위기대를 조성키 위한 복귀섭리가 사탄의 침범으로 인하여 연장을 거듭하여 내려왔던 아담이후의 4000년 역사노정에서 거듭 사탄에게 내어주었던 그 40일 복귀섭리의 기대를 동시에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메시아강림 준비시대가 있었던 것과같이 아담으로부터 6000년 역사노정에서 사탄에게 내어주었던 40일 복귀섭리의 그 모든 기대를 동시에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가 있어야할 것이다.
전절(前節)에 기록된 바와같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민족이 느부갓네살왕에 의하여 파괴된 성전을 신축하고 말라기의 영도에 의하여 사신을 숭배하던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율법을 공부하여 신앙의 혁신운동을 일으킴으로써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던 것과 같이 교황이 로마로 귀환한 이후의 중세 기독교인들은 루터를 중심하고 종교의 개혁운동을 전개시켜 중세 암흑시대의 암운을 뚫고 새로운 복음의 빛을 따라 신앙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여 재림예수를 맞을 수 있는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여온 것이다.
야곱이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귀환하여 애급으로 들어갈 때까지의 40년 준비기간을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메시아강림준비시대요 이 시대를 다시 탕감복귀하기 위한 시대가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임으로 이 시대의 모든 기독신도들은 마치 야곱가정이나 이스라엘민족들과 같이 갖은 파란과 고난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아니된다.
구약시대는 외적조건 즉 율법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세워 내려오던 시대임으로 메시아강림준비시대는 외적고역을 당하지 않을 수 없음으로 파사 희랍 애급 수리아 로마 등 이방에 속방되었던 것과 같이 신약시대는 내적 조건 즉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세워 나아가는 시대임으로 내적인 수난을 당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문예부흥에 의한 인문주의와 자연과학의 발달에 따르는 계몽사조 및 유물사상과 또 종교개혁에 의한 신앙의 자유 및 인격의 존엄성에 대한 절규 등등의 영향으로 종교와 사상에 일대 혼란을 일으켜 기독신도들은 말할 수 없는 내적 고민을 당하는 시대다.
이 시대는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신앙의 기대를 조성하기 위한 심령만을 부흥시킬 뿐아니라 이상세계를 이룰 수 있는 사회환경도 복귀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러므로 자연과학의 발달에 따라 생활환경이 장족의 발달을 하게되는 것도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상세계의 과학적인 생활환경을 복귀하기 위한 섭리에서 보여지는 필연적인 현상인 것이다. 이 시대는 다시 다음의 3기간으로 구분된다.
I 종교개혁기(1517~1648)
중세는 그 봉건제도로부터 오는 사회적환경으로 인하여 인간의 본성을 발휘할 수 없는 시대였다. 예언자의 사명을 다해야할 수도원도 가끔 도덕적으로 타락하였고 국민의 신앙과 안녕질서를 보장해야될 교황권은 착취계급을 옹호하는 기관으로 되어버린 때도 있었으며 교황의 과세와 교회의 간섭은 인민의 생활에 대한 압박과 개성의 자유에 대한 구속을 가중하였고 상하교직은 윤락해버렸음으로 경건된 신앙자들은 눈물과 피로써 개혁운동을 갈망치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운동은 십자군전쟁에 의하여 교황권의 권위가 상실된 후 14세기부터 이미 영국의 승려들 사이에도 태동되었었고 15세기 말에는 교황세력이 강한 이태리에서도 일어났으나 모두 실패하여 처형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제 교황포로는 이 운동에 박차를 가하여 마침내 마틴 루터에 이르러 비로소 무르익은 사회적 정세하에서 폭발되어 혁혁히 전개되어 마침내 신교는 신앙의 자유를 획득하게된 것이다. 이 혁명운동의 세력은 점차로 확대되어 불란서의 칼빈, 서서의 츠빙글리 등이 일어났고 뒤미쳐 화란 영국 스코틀랜드 등 제국으로 퍼지게된 것이다.
이리하여 이 신교운동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국제 간의 싸움은 백여년간이나 계속하여 오다가 마침내 독일을 무대로 하고 일어났던 30년전쟁이 1648년 베스트팔렌(Westphalia) 조약으로 종식되면서 신구종파의 싸움은 일단락을 지은 것이다. 이렇듯이 북구의 게르만족은 프로테스탄트로 승리하였고 나전민족의 남구는 구교의 영토로 남아지게된 것이다.
一 복귀섭리로 본 종교개혁의 의의
로마를 중심으로한 가톨릭구교의 교황은 그 판도내의 모든 권력을 홀로 장악하였을 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정신과 사상까지도 구속하고 있었음으로 인간의 모든 자유는 완전히 교권에 예속되고 말았다.
신앙은 개인과 신 사이에 직접적으로 맺어지는 종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교황과 승려의 개재와 모든 교권은 창조본연의 본성을 찾기 위한 바른 신앙의 길을 막을 뿐 아니라 비신앙적인 행위를 강요하여 인간의 종교심과 도덕심을 부패케 하였음으로 이 불의한 세력에 대한 반발심은 인간본성의 발로로서 중세인의 가슴에 사무쳤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중세인의 사조는 문예부흥으로 인하여 혁신사상으로 대두하게된 것이다.
즉 문예부흥의 영향으로 중세인들은 중세적인 구각을 벗어버리고 인간의 본성의 지위를 자각하여 인간의 자유와 인격의 자주성을 갈망하여 개성의 의식과 사상도 교리의 비판을 중히 여기며 이성과 이지를 높이려는 인문주의에 눈이 뜨게된 것이다.
이와같이 인간이 자유를 부르짖게됨을 따라 신앙의 자유도 강조하게 되었으며 신앙의 자유가 고조됨에 따라 자연히 형식과 의식과 규범에 구속된 교황정치에 반항하게 되었고 따라서 둔세적이요 타계적이요 금욕적이었으며 또한 인생에 관한 제반문제는 오로지 교황에게 예속시키는데서만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중세인들의 신앙사조에 반항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와같이 인간은 교황에 대한 예속적인 입장을 떠나서 각자가 직접 신을 대해야될 인간자신의 책임분담을 찾아 나아가도록하는 복귀섭리의 흐름을 자각하여 개인의 양심과 개인의 신앙의 가치를 드러내어 창조본연의 본성으로 복귀하려는 종교적 양심의 발로에서 종교개혁운동은 폭발된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에 의하여서 비로소 성서는 각국어로 번역되는데 이르렀으며 평민들이 처음으로 성서를 읽어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대하게된 것도 종교개혁의 혜택으로부터 오게된 것이다. 그러므로 근세의 복귀섭리는 종교개혁에 의한 성경 말씀의 복귀에서부터 출발하게된 것이다.
이와같이 종교개혁에 의하여 새로운 시대를 약속하는 뚜렷한 새로운 역사는 전개된 것이니 기독교의 근세사 뿐만아니라 구라파의 근세사도 이 종교개혁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二 복귀섭리로 본 문예부흥과 종교개혁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는 입체의 세계다. 우리가 오관으로 촉감할 수 있는 자연계는 평면적인 세계임으로 이 세계가 무형세계와 완전한 수수의 원리적 관련성을 갖게될 때 창조본연의 입체세계는 형성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천주의 창조를 입체적으로 하셨음으로 천주의 중심인 인간도 입체적으로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평면적인 세계인 자연계와 중심체로 육신을 창조하셨고 입체적세계의 중심이 되게하기 위하여 육신에 영인체를 불어넣어셨다.(창조원리 참조)
그러므로 인간도 창조본연의 입체성을 가진 인간이 되려면 육신과 영인체가 완성되어 완전한 원리적 수수의 상관성을 갖게 되어야한다. 인간은 이와같이 입체적존재로서 완성되어야 입체세계의 화동의 중심체로 되어 창조목적을 완성할 것이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됨으로써 이 창조본연의 입체성을 완전히 상실하였음으로 복귀섭리의 목적은 결국 인간에게서 상실된 이 입체성을 복귀케하려는데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복귀섭리는 위선 평면적인 입장을 먼저 복귀시키는 방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외적인 것이 먼저요 내적인 것은 다음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외적인 천지창조가 먼저요 내적인 인간창조가 다음이었고 외적인 육신창조가 먼저요 내적인 영인체 창조가 나중이었다. 그러므로 먼저 구약시대를 통하여 외적조건인 율법을 세워서 복귀섭리를 하셨고 다음으로 신약시대를 통하여 내적조건인 신앙을 세워서 복귀섭리를 하신 것이다.
앞으로의 이상세계를 이루기 위하여서도 자연과학에 의한 생활환경을 발달시키는 외적인 복귀섭리를 먼저 하시고 타락된 인간자신에 관한 외적인 복귀섭리는 이에 뒤떨어져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입체적인 복귀섭리를 목적하고 이루어 나아가는 역사노정에 있어서 평면적인 복귀섭리가 획기적이며 뚜렷한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 문예부흥운동이다. 그러므로 문예부흥은 자연성능의 평면적인 발전의 현상이다.
중세적인 구각을 벗어버리고 자연을 노래하며 개성의 자유와 자주성을 찾으며 개인의 사상과 교리의 비판을 중요시하며 인간의 이성을 높이며 현실과 실제에 치중하며 실증과 과학을 세우려는 평면적인 발전현상은 인문주의로 표현되었으니 이것은 곧 문예부흥의 산물이다.
이 문예부흥의 영향으로 인하여 뚜렷한 두 갈래의 인생관이 수립된 것이니 첫째는 문예부흥이 어디까지나 평면적으로만 발전되어 그로 인한 인문주의는 유물론적 사조로 흘러 초월신교를 빚어내었고 마침내 이 조류는 유물적인 인생관을 세워 주었으며 이 사상은 계몽시대를 초래하여 오늘의 유물사관의 세계를 형성하는데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평면적인 발전과정에 보조를 맞추어 나온 인류의 문화는 평면적인 즉 인간적인 문화를 건설하기에 급급하여 완전히 물질과 기계와 과학 앞에 굴복함으로 인간의 비애와 사상의 혼돈은 날로 우심(尤甚)해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평면적인 발전만을 함으로 창조본연의 입체적인 입장과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이 평면적인 발전과정은 어느 시기에 이르면 진퇴유곡의 처지에 서게될 수 밖에 없다. 이 처지에 서게될 때 인간은 벌써 평면적인 것으로만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짓게 될 것이며 과학의 궁극의 원리로 입체 세계와 상관적인 관련을 지어야만 해결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될 것이니 바로 이 때가 말세다. 오늘의 우리의 환경은 바로 이런 입장에 입각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음으로 문예부흥운동의 평면적인 발전의 영향을 받아 입체적인 발전과정을 취하여 문예부흥 그 자체의 성격과는 다른 방향으로 지향된 운동이 있었으니 이것이 곧 종교개혁운동인 것이다.
즉 인문주의 사상과 자연주의 또는 유물주의 등 합리주의의 평면적인 인간성의 발현운동이 일어나게 되어 신을 인간에서 축출하고 인간은 인간자신의 힘과 지성으로써 인간의 문화를 건설코자하는 평면적인 운동이 전개되는 반면에 한편에서는 이러한 평면적인 운동의 영향을 받아 올바른 신의 모습을 다시 찾아 모든 불순한 제도와 형식을 제거하고 직접적으로 성서의 복음을 받들어 참된 신에 복귀코자하는 입체적인 운동이 종교개혁운동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복귀섭리로 볼 때 문예부흥은 기독신자로 하여금 중세사회의 기반을 벗어나 종교개혁을 성취케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입체적인 창조본성을 복귀하도록 하려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즉 문예부흥의 영향으로 인하여 중세기의 문화를 타파하고 근세문화로 전환함에 있어서 인간본성의 지위와 존엄성이 고조되고 자유와 평등을 절규하게된 것은 입체적인 창조본성의 참된 모습을 바로 찾아 신과의 관계를 올바로 세우기 위함인 것이다.
만일에 문예부흥에 의하여 물질적이요 육적인 평면적 인간성만이 고조되고 종교개혁에 의한 정신적이요 영적인 입체적 창조본성이 고조되지 않았다면 금일의 인간문화는 더욱 비참한 결과를 재래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세인들이 충심으로 요구한 것은 문예부흥이 아니라 종교개혁이요 예술과 학문의 갱생이 아니라 교회의 전체적 신흥이요 고대세계의 발현이 아니라 천래의 새로운 축복의 소식이라함은 지당한 견해일 것이다.
II 종교 및 사상의 투쟁기(1648~1800)
이 기간은 웨스트파리아(Westphalia) 강화로써 30년 전쟁이 종결된 후 불란서혁명에 이르기까지의 약 150년 기간을 말한다.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교권의 기반을 벗어나 신앙의 자유를 얻게된 근세인들은 종교와 사상의 자유에 의한 혼란과 투쟁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이와같이 이 기간은 끊일 사이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 기간에 일어났던 모든 사건은 종교와 사상과의 관련성을 갖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종교 및 사상이 혼효한 중에서 인생의 제반 문제가 얽히어졌던 시대다.
그러나 복귀원리적인 견해로 보면 이 사조는 두 갈래로 지향되어 발전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니 그것은 인간세계를 가인과 아벨의 두 형의 세계로 분립키 위한 탕감복귀섭리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필연적인 현상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一 가인 형의 인생관
문예부흥에 의한 인문주의는 자연성과 인간성의 평면적인 존엄성을 고조하였으며 이 사조는 유물주의와 합리주의에 따르는 자연과학의 발달과 아울러 평면적인 인생관을 자아내었으니 이것이 곧 가인형의 우주관과 인생관이다.
연역법에 의한 합리주의자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와 귀납법에 의한 경험론자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 홉스(Hobbes 1588~1679) 록크(Locke 1632~1704) 버클리(Berkeley 1685~1753) 흄(Hume 1711~1776) 등의 사상은 신을 떠난 이성을 존중하고 경험에 기인한 인간 중심의 철학사상이 되었다.
이 사상의 영향으로 영국에서는 초월신교가 생기고 이것이 다시 불국에서 초보적인 유물론이 되고 독일에서 계몽사상이 되었다. 이 계몽사상의 대표자들은 몽테스키외(Montesquieu 1689~1755) 볼테르(voltaire 1694~1778) 루소(Rousseau 1712~1778)이며 권위와 전통과 관습을 부정하고나선 그들의 반종교적 사상은 기독교와 대척적인 입장을 취하여 가인형의 인생관을 수립한 것이다.
二 아벨형의 인생관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아 정당한 유신론적인 우주관에 입각한 자연성과 인간성의 입체적인 존엄성을 고조하여 창조본연성을 지향하는 입체적인 인생관은 아벨형의 인생관을 수립하였다.
인간의 정신면을 깊이 파고 들어 하나님의 면모를 찾아 볼 수 있는 양심의 윤리성을 강조하는 철학자들이 나왔으니 칸트(Kant 1724~1804) 피히테(Fichte 1762~1814) 쉘링(Schelling 1775~1854) 헤겔(Hegel 1770~1831) 등이다.
이와같이 철학자들이 종교적 또는 사상적 논쟁을 하는 중에 프로테스탄트교회도 일종 중세적인 스콜라 신학과 같은 경향으로 흐를 때에 이에 반항하여 종교적 정열과 내적 생명을 중요시하여 교리와 형식보다도 신비적 체험에 치중하는 운동이 일어났으니 이것이 스페너(Philip Jakob Spener 1635~1705)를 중심하고 독일에서 일어난 경건주의(Pietism)의 운동이다.
이 경건파의 영향이 영국에 파급되어 영국민의 생활 속에 젖은 종교심과 융화하여 종교도덕이 심히 소침상태에 빠졌던 당시에 복음파로서의 새로운 종교적 경종을 울린 교파가 있으니 이것이 바로 웨슬레(John Wesley)의 형제를 중심한 메소디스트 교파였다.
이러한 아벨형인 내적 종교사조의 주동역할을 한 사람은 폭스(George Fox 1624~1690)와 스웨덴보리(Emanuel Swedenborg 1688~1772)이다. 폭스는 성경을 받아 그리스도와 신비적으로 연합하여 내적 광명을 체휼할 때 비로소 성서의 진의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퀘이커(Quaker) 파로서 알려져 있는 이 신비파는 영국뿐만 아니라 미대륙에 있어서까지 박해를 받으면서 포교한 것이다. 저명한 과학자 스웨덴보리의 영안을 열어 그 일생을 통하여 천계의 신비의 일부를 지상에 발표하신 것은 벌써 자연과학의 세계와 종교세계와의 불가분한 연관성을 보여주시기 위한 섭리에서임을 알아야 한다.
이와같이 가인형의 인생관이 뚜렷한 방향을 취함에 따라서 아벨형의 인생관도 뚜렷이 성숙하여 왔다. 이러한 사상의 동향에 따라서 그 위에 건설되는 사회도 뚜렷이 두 형의 사회를 건설하게 되어 끝날에는 가인형과 아벨형의 두 세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2차대전이 종결되면서 공산과 민주의 두 세계는 완연히 분립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가인형과 아벨형의 두 인생관에서 맺어진 결실인 것이다. 우리가 현세를 말세라고 부르게된 이유도 이와같이 하나의 세계로 귀일하는 역사적 추이로 보아서 능히 헤아릴 수 있는 것이다.
III 정치와 경제 및 사상의 성숙기(1801~1920)
전시기에 있어서 사상의 투쟁은 가인과 아벨의 두 형의 인생관을 수립하였고 이 시기에 들어서면서 이 두 형의 인생관은 각자의 방향대로 성숙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같이 두 갈래의 인생관이 성숙하여감에 따라서 사회의 기구도 이 두 인생관에 입각한 사회형태로 정리되어 가면서 정치와 경제도 이상사회에로 전환될 수 있는 전단계의 것으로 성숙하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간은 불란서 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시작되어 1차대전이 끝날 때까지의 기간을 말하는 것이다.
一 정치와 경제의 성숙
이 시대에 있어서의 정치 경제가 어떻게 앞날의 새 세계의 것을 지향하여 성숙되어가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이 기간은 정치와 경제의 면에서 보아 3기간으로 구분하여 고찰할 수 있다.
1 불란서혁명과 영국산업혁명기(40년)
피조세계 전체는 사람 하나를 표본으로 하여 그를 닮도록 창조되었지만 인간시조가 타락되지 않고 이루어야할 인간사회도 완성된 하나의 유기적인 형태와 구조와 기능을 닮도록 건설하시려는 것이었다.
인간이 타락되지 않았다면 아담의 후손은 이러한 사회를 건설하였을 것이고 아담이후 극히 단시일 내에 6천년의 인류역사가 이루어놓은 오늘의 과학세계를 건설하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이러한 사회를 잃어버리고 이러한 과학세계를 잃어버렸음으로 복귀섭리의 목적은 창조본연의 인간과 이 본성의 인간으로 조직된 사람 하나의 모양인 사회구조와 과학의 발달에 의한 생활환경을 복귀하려는데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과학문명의 세계를 복귀하기 위함이다. 그러면 인간의 형태와 구조와 기능을 닮은 사회는 어떠한 것인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인체의 모든 기관이 두뇌의 절대적인 명령에 의하여 기동하는 것과같이 이상사회의 모든 기관도 오직 하나님으로부터의 명령에 의하여 영위되어야하며 두뇌로부터의 명령이 중추신경을 중심한 신경계통을 통하여 사지백체에 전달되는 것과같이 하나님으로부터의 명령은 중추신경에 해당되는 그리스도와 그를 중심한 신경계통과 같은 성도들을 통하여 사회 전체에 유루없이 미쳐져야한다.
그러므로 인체에 있어서의 신경계통에 해당되는 국가의 정당은 그리스도를 중심한 성도들로써 구성되지 않으면 아니된다. 폐장과 심장과 위장은 신경계통을 통하여 전달되는 두뇌의 명령에 의하여 서로 상충과 당착이 없는 원만한 수수의 작용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이 삼장기에 해당되는 입법과 사법과 행정의 삼권도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완전한 수수의 원리적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사지는 인간의 생활목적을 위한 두뇌의 명령에 의하여 활동해야되는 것처럼 사지에 해당되는 경제기대는 이상사회의 목적을 달성키 위한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여야 한다. 인류역사가 흐름에 따라서 사회의 발전과정은 이와같이 사람 하나의 형태와 구조와 기능을 닮기위한 노정을 밟아온 것이다.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과 정당과 정책의 전체적 역할을 국왕 한 사람이 전담하여오던 시대는 변천하여 국왕이 삼권 장악하고 교황을 중심한 사회가 정당과 같은 사명을 하고 정책적 사명을 수도원이 하던 시대로 바뀌어졌고 다시 이 시대의 정치제도는 불란서의 정치혁명에 의하여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으로 분립되었고 정당이 뚜렷한 정치적 사명을 갖게됨으로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완성하게 되었으니 이와같이 정치혁명이 일어나는 것도 사람 하나를 닮게하기 위한 섭리에서 이루어지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이와같이 완성된 이상사회에 있어서의 개체는 인체에 있어서의 각 세포에 해당될 것이다. 각 세포는 각각 성품이 다른 독립된 생리적 개성체이지만 서로 분리되어 다른 세포와의 유기적 관계가 끊어질 때 죽어버리는 것과 같이 이상사회에 있어서의 인간도 이 세포와 같은 관련성을 가지고 서로 맺어지게되는 것이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되는 것도 자연과학의 고도적 발달에 따라 기계화한 다량생산에 의하여 이상사회의 경제적기대를 조성키 위함이다. 창조이상으로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종적으로 각자에게 부여된 창조본연의 가치에는 서로 추호의 차이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횡적인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서로의 차별이 있을 수 없는 것임으로 누구에게나 균등한 환경과 평등한 생활조건이 부여되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러므로 창조이상이 실현된 세계에 있어서는 어느 한 개인이나 한 민족이나 한 국가에만 유복한 생활조건이 부여되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이웃의 희로와 애락이 바로 나의 것으로 반영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생명있는 유기체로서 이루어진 이상사회라 할진대 이 사회의 경제기구도 각 개체의 균등한 행복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면 아니될 것이다.
이와같이 생산과 분배와 소비도 각각 그에 해당되는 인체에 있어서의 위장과 심장과 폐장이 서로 그러하듯이 과부족이 없는 유기적인 수수의 관계를 가져야할 것임으로 생산과잉에 의한 판로전쟁이나 편파적인 분배로부터 일어나는 전체적인 생활목적을 떠난 축적이나 소비가 있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필요하고도 충분한 생산과 공평하고도 과부족없는 분배와 전체적인 목적을 위한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으며 인체에 있어서의 간장과 같이 전체적인 기능의 활동을 위한 저축을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러한 경제기대를 조성키 위한 섭리에서 영국의 산업혁명은 일어나게된 것이다. 산업혁명에 의한 다량생산은 영국으로하여금 광대한 식민지를 개척하여 세계적인 복음전파의 사명을 달성케 한 것이다.
2 열국의 강화기(40년)
혼란된 인생관도 두 갈래로 갈라져 성숙되어가며 불란서 정치혁명과 영국 산업혁명에 의하여 정치와 경제의 제도에 일대변혁을 일으켰으므로 이에 새로운 영향을 받은 열국도 각각 통일강화되어간 것이다. 이태리와 독일이 각각 통일강화되었고 영국은 구주 제일강국으로 강화되었고 기타 오스트리아 미국 노서아 토이기 등도 각각 강화되었다.
불란서 정치혁명의 영향으로 인하여 계급은 타파되어가며 따라서 사회조직에 격변을 일으켜 평민의 노력은 현저하게 증진되었으며 타락으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자유와 인권을 부르짖음이 더욱 높아짐에 따라 민주사회의 기대는 더 공고하여졌다.
3 열국의 식민지 분할기(40년)
산업혁명에 의하여 경제계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과학의 발달에 따라 날로 신기계는 발명되어 공업발전에 박차를 가하게 되니 과잉한 생산품의 판로와 공업원료를 획득할 수 있는 신지역을 개척하기 위하여 열국 간에 식민지 쟁탈전은 일증월가하여 자본주의시대에 따르는 제국주의시대는 초래되었다.
상술한 바와같이 기계공업의 비약적인 발달과 인구의 격증은 이 시대의 부산물로서 실업자를 범람케 하였으나 이러한 시대적인 현상은 식민지 개척에 의한 세계제패의 열로 화하였으며 이러한 시대적 추세는 세계적인 복음 운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특히 기독교 국가인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 세계적으로 식민지를 획득하여 세계적으로 급격한 복음운동을 전개시켰다는 것은 복귀원리에 지대한 의의를 갖고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나 자본주의가 초래되는 것도 하늘의 판도를 넓히기 위한 섭리에서 오는 시대적인 필연적 산물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후편 제4장 제1절 참조)
십자군 전쟁에 의한 동서세계의 접촉은 지리에 관한 많은 지식을 넓혀 주었으며 나침반 사용으로 항해와 탐험이 성행하여 지구상에 숨겨진 땅을 모조리 들추어내게된 것이다.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숨기고 간직하여 두었던 미주대륙이 독실한 기독신도들의 피와 땀으로 개척되어 세계적인 복음운동의 온상이 되었다는 것도 복귀섭리로 보아 중대한 의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림이상의 실현을 위한 미국인민들의 끝날의 사명은 지극히 큰 것임을 알아야할 것이다. 이와같이 각자의 판도를 넓히기 위한 식민지 개척운동은 교통기관의 발달에 의하여 급속도로 진전되었으니 이것도 가인과 아벨 두 형의 세계적인 판도를 조성키 위한 섭리에서 이루어진 현상이다.
이와같이 교통기관의 발달에 의하여 지구의 표면이 축소성을 띰에따라서 일어나는 정치 경제 군사를 비롯한 모든 면에 있어서의 혁신으로 인하여 열국의 식민지 분할정책은 더욱 활발해진 것이다.
4 탕감복귀섭리로 본 세계대전의 필연성
세계대전의 원인으로서 정치적 경제적 사상적 등등의 제조건을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외적인 원인은 이미 많은 사가들이 연구하여왔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원인은 외적인 어떠한 천륜에서 빚어지는가는 아지 못하였다. 그러면 대전의 필연성을 탕감복귀섭리의 입장에서 알아보기로 하자.
인류역사는 악으로 출발하게 되었음으로 원리적 창조세계는 비원리세계로 전개되어왔다. 이와같이 사탄 편은 원리적 역사 프로젝트를 앞질러 원리형으로 전개시켜 나오며 하나님은 그 뒤를 따라 이 비원리적인 역사의 전개를 하나님 편으로 빼앗아 원리적인 역사의 전개로 전환시키면서 창조본연의 세계를 지향하여 내려온다.
참것이 오기 전에 거짓것이 먼저 참것을 흉내내어 역사노정에 나타나는 것도 이러한 원리적 근거가 있는 까닭이다. 한 진리가 나타날 때에는 그 시대의 환경은 비원리세계임으로 핍박을 당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 시대가 바뀌어 원리적 역사 노정으로 전환될 때는 그것은 반드시 진리로써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적그리스도가 먼저 온다 한 것도 이러한 원리로서만 해명될 것이다.
속담에 죄 지은 자가 먼저 죄없는 양으로 발뺌한다는 말도 이러한 원리를 설명해 주는 말이다. 사탄 편을 중심한 악주권 역사의 프로젝트는 재림주의 현현에 의하여 종말을 짓고 하나님을 중심한 선주권 역사로 전환되어 새로운 역사의 전개가 시작될 것임으로 사탄은 최후의 발악을 하게 되는 것이니 이렇게 되어 사탄편의 세계에서 하늘편의 세계에 대한 최후의 발악은 세계대전으로 유도하게 되는 것이다.
재림주의 사명은 6000년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사탄에게 내어 주었던 악주권의 전체적 역사노정을 하늘 편으로 탕감복귀하는 것임으로 1차대전으로 인한 하늘 편의 승리의 기대 위에서 세계 가나안 복귀 40년 노정은 출발되어 제2차 세계대전을 거쳐야 한다.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를 축복하여 죄와 상관없는 자녀를 지상에 편만하게하려하심이 그 창조 이상이었다(창 1/27). 그러나 아담의 타죄로 말미암아 아담을 중심한 이 세계를 사탄에게 내어주었음으로 이 세계를 탕감 복귀하기 위하여 사탄 편의 아담 상징존재인 카이젤을 중심한 독일을 중추로서 사탄 편 세계형을 허락해 놓고 이것을 타도하여 하늘 편으로 탕감복귀하는 전쟁이 없어서는 아니될 것이니 이것이 제1차 대전이다.
이와같이 카이젤은 사탄 편 아담의 상징존재로서 범게르만 정책을 세워 세계를 제패할 왕위의 야망을 가지고 출현하였으므로 그가 패망한 것은 탕감복귀원리에 의하면 카이젤과 같은 하늘 편 세계의 왕으로 오실 아담이 출현함을 표시한다.
하늘적인 역사프로젝트를 사탄이 먼저 흉내내어 이루어 나오는 것이 탕감복귀 역사임으로 노서아에 공산혁명이 일어나는 것도 메시아의 재강림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중심한 그러한 세계가 이루어지게 되었음으로 사탄편의 재림주 상징자인 스탈린을 중심한 공산세계를 사탄이 먼저 전개하게 되는 것이다.
노서아(露西亞)가 1차대전 말엽에 공산혁명으로 인하여 사탄국화한 것은 하늘 편 국가인 미국을 세워 1차대전이 하늘 편 승리로 돌아가게 하였음으로 그의 탕감으로 노서아를 사탄에게 내어주어 가인형의 세계를 이루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탕감복귀의 원리에 의하여 고찰하면 카이젤은 패망하면서 동시에 공산혁명이 일어나는 시기에 1차대전의 승리로 인한 복귀섭리의 기대를 조성한 터 위에 메시아 재강림역사는 태동하여 40년 세계가나안 복귀노정은 시작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제2 아담된 예수님을 보내시어 첫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이루어지지않은 세계를 복귀하시려다가 다시 예수님을 사탄에게 내어주었음으로 그 세계까지 사탄에게 다시 내어주었으니 이것을 다시 하늘편 세계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사탄편의 예수님 상징존재인 히틀러를 중심한 독일을 중추로 하고 형성된 세계형을 허락해 놓고 이것을 타도하여 하늘편으로 탕감 복귀하는 전쟁이 있어야할 것이니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이다.
독일이 1차대전 후 수십년 내에 세계를 제패할 야망을 가질 정도로 발전된 것도 재림역사를 시작 할 수 있는 원리적 조건이 성숙하게 되었음으로 이러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담과 해와와 천사장의 타락으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세계임으로 이것을 탕감 복귀하기 위하여 제2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과 해와신성이며 따라서 어머니신성인 성신과 천사장이 합하여 역사하였으나 이 세계를 다시 사탄에게 내어주었음으로 이 세계를 다시 복귀하려는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한 제2차대전은 이것들을 상징하는 하늘편과 사탄편의 국가진으로서 대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 편의 아담과 해와와 천사장을 상징하는 국가인 미국과 영국과 불국으로 구성된 연합국과 사탄 편의 아담과 해와와 천사장을 상징하는 국가인 독일과 일본과 이태리로 구성된 사탄 편 추축국가가 대립되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1912년 11월 루덴도르프가 요구한 3군단 증설안이 독일의 제국의회에서 용납되지 않았던 것을 보면 독일도 전쟁의 절박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임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2차대전은 독일도 예기하지 않았던 때에 발발되었다고 볼 수 있으니 이것도 신부를 맞을 수 있는 재림역사의 시기가 성숙되어 있음으로 이러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즉 초림예수의 역사가 끝난 기대 위에서 출발하여야할 재림역사 시기가 절박하여 예수님을 중심하고 이루어졌어야할 세계를 상징하는 사탄세계를 조속히 괴멸할 수 있는 탕감조건을 세워야 하겠음으로 2차대전이 이렇게 뜻하지 않은 때에 발발된 것이다.
사탄 편인 소련이 미영의 하늘 편에 가담하게된 이유도 하나님의 섭리로 보면 사탄 편으로 본 예수 상징인 히틀러를 중심한 세계를 괴멸하여 사탄 편으로 본 재림주 상징인 스탈린을 중심한 가인적인 세계를 형성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이와같이 사탄세계를 이루어주는 조건은 도리어 하늘 편을 도와 예수 상징인 하늘 편 국가진에 가담하는 결과가 되어 재림 역사를 시작할 수 있는 기대를 조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2차대전이 종료된 후부터는 재림역사는 현저한 움직임을 보여주어야하며 말세라는 의식은 점점 더 높아지고 신자의 신앙은 날로 혼돈되어 중심을 잃고 은혜를 갈망하여 헤매게 된다. 그러므로 이 때는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님과 세례요한을 따라서 산으로 광야로 찾아 헤매던 때와 같은 시대다.
5 예수님의 3대시험으로 본 세계대전의 필연성
인류역사는 탕감복귀 원칙에 의하여 하늘 편과 사탄 편을 분립하시려는 섭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유구한 역사를 두시고 아담과 해와로 인하여 뿌려진 선과 악의 씨를 싹트고 자라나게하여 각각 하늘 편과 사탄 편의 세계형인 열매로 결실케하시는 분립의 섭리를 하시어 세계대전에까지 이르렀다. 모세가 가나안 복귀하던 노정을 예수께서 걸어야하며 예수께서 걸어야할 세계가나안복귀노정을 전인류가 걸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로써 3차의 시험에 승리하여 세계가나안 복귀노정의 출발의 기대를 잡던 것같이 하늘편 세계에서도 재림주를 중심한 세계가나안 복귀 40년 기간에 있어서 세계를 걸어놓고 세계적으로 넘어야할 3차의 시련인 3차의 세계대전에 승리하여야 그 기대 위에서 복귀섭리를 완성하여 천주창조의 이상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제1차 시험에서 개성복귀의 기대를 조성한 것같이(참고 예수 3대시험의 의의) 하늘 편에서는 제1차 대전으로 인하여 사탄 편을 분리할 수 있는 소생적 기대를 조성하였고 예수께서 제2차 시험의 승리로서 성전 주인공의 위치를 복귀한 것같이 하늘편 세계에서도 제2차 대전의 승리로 인하여 세계가나안 복귀를 완수할 수 있는 장성적 기대를 조성하였다.
이제 예수께서는 세 번째인 최후의 시험에 승리하여 사탄을 완전히 물리침으로 피조세계의 주관성을 복귀할 수 있는 기대를 조성한 것같이 하늘편 세계에서도 제3차 대전의 승리로 인하여 사탄편 세계를 완전히 괴멸하고 천주의 주관성을 복귀할 수 있는 기대를 조성하게될 것이다.
복귀섭리의 종말기에 있어서는 문예부흥도 3차를 거듭하게된 것이다. 문예부흥은 복귀섭리의 평면적인 발전과정을 취해나온 것이라함은 이미 논한 바이지만 이 문예부흥은 더 평면적으로 육성되어 계몽시대를 초래하였으니 이것이 곧 제2 문예부흥이요 이것이 더 평면적인 노정으로 육성을 완성하여 유물사관에 입각한 공산세계를 초래한 것이니 이것은 제3 문예부흥이다.
중세 봉건사회를 붕괴하는 내적인 역할을 제1 문예부흥이 한 것같이 불란서 혁명을 일으켜 전제군주사회를 붕괴한 내적 역할을 한 것은 제2 문예부흥에 의한 계몽사상이었고 민주사회의 일부를 유도하여 공산독재사회를 건설한 내적인 역할을 한 것은 제3 문예부흥에 의한 유물사관이다.
문예부흥에 의한 평면적인 발전과정은 반드시 종교개혁에 의한 입체적인 발전과정을 취하게되는 것임으로 종교개혁도 3차에 걸쳐 일어나지않으면 아니된다.
제1 문예부흥에 뒤이어 루터를 중심한 제1 종교개혁이 있었으며 제2 문예부흥인 계몽시대에 뒤이어 웨슬레 폭스 스웨덴보리를 중심한 새로운 복음과 영적 운동이 말할 수 없는 박해 가운데서 발흥된 것이니 이것이 제2 종교개혁이요 이제 제3 문예부흥에 뒤이어 또 한번 종교개혁이 일어나지 않으면 아니될 단계에 머물러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기독교에 새로운 개혁운동이 일어나지않을 수 없다는 현실이 더 긴절하게 요망되고 있는 것이지만 복귀원리로 보아도 필연적인 노정으로 남아진 것이다.
이제 정치적인 면에서 일어난 변혁을 보더라도 3단계의 과정을 거쳐야한다. 봉건사회는 제1 문예부흥과 제1 종교개혁의 내적인 역할로 붕괴되었고 전제군주사회는 제2 문예부흥과 제2 종교개혁의 내적 원인에 의하여 완전한 하늘나라로 바꾸어지지않으면 아니될 것이다.
이제 종교와 정치의 변혁에 따르는 경제개혁도 3단계의 과정을 거치어 발전되어온 것이니 증기에 의한 제1 산업혁명이 있었고 전기와 가솔린에 의한 제2 산업혁명이 있었으며 이제 원자력을 이용한 제3 산업혁명은 오늘 우리의 당면 과업으로 남아진 것이다.
이제 제3 문예부흥에 의한 공산세계는 괴멸될 것이며 제3 종교개혁에 따르는 신정시대는 올 것이요 이 시대에는 제3 산업혁명에 의하여 고도로 발달된 원자력에 의한 경제사회가 건설될 것이니 이것이 곧 하나님이 6천년 동안 바라시고 이루시려던 에덴동산인 것이다.
二 사상의 성숙
지금까지는 이 기간에 있어서의 정치와 경제가 한날의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전단계의 것으로 어떻게 성숙하여왔는가를 설명하였다. 다음으로는 전시대에 있어서 가인과 아벨의 두 갈래의 인생관으로 갈라진 사상계는 어떻게 성숙하여왔는가를 알아보기로하자.
어떠한 피조물이든지 원리를 떠나서 창조된 것이 없다함은 이미 상술한 바와같다. 그러므로 유형실체세계와 그의 총합실체상으로 된 육신은 물론이어니와 무형실체세계의 그의 총합실체상으로 된 영인체도 원리를 떠나서 창조되었을 수는 없다.
유형실체세계의 원리를 캐어 그 본연의 성상을 찾아나아가는 방법을 자연과학이라하고 무형실체세계의 원리를 찾아서 그 본연의 성상을 찾아 나아가는 방법을 초자연과학이라한다.
그러면 유형실체세계는 자연과학의 원리에 의하여 창조되었고 무형실체세계는 초자연과학의 원리에 의하여 창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세계는 완전한 수수의 관련성을 갖고 있는 화동의 세계이므로 이 두 세계의 자연과학과 초자연과학도 완전한 수수의 관련성을 갖고 완전히 조화되어 어떠한 상충적인 면도 없는 입체적인 과학을 세우지 않으면 아니될 것이다.
이 두 세계는 두 세계의 총합실체상으로 창조된 인간을 중심하고 화동되는 것이므로 이 두 세계의 과학은 하나의 인간에서 조화되어 전체적인 창조의 목적을 향하여 동하고 정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육신과 영인체가 분리된 입장에 서게되었으므로 유형실체세계와 무형실체세계가 서로 화동하여 조화될 수 있는 입장을 취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자연과학과 초자연과학도 또한 그렇게 되어 창조목적을 지향하는 입체적인 과학을 찾지 못한 것이다.
자연과학도 그 자체만으로써 해명될 수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복귀섭리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이 두 과학에 의한 두 세계의 원리를 찾아 육신과 영인체로 하여금 창조본연의 원리적인 상대기준을 조성케 하여 창조의 목적을 달성케 하려는 섭리를 말하는 것이다.
종교는 이 목적을 달성케 하려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임으로 종교와 과학이 상충적인 입장을 취하여서는 아니될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반드시 이 두 과학이 유기적인 입체적 연관성을 갖고 요구하는 목적을 지향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영인체와 육신이 완전한 수수관계로써 조화융합하는 것이 본연의 인간이어늘 이 두 면의 존재를 지배하고 있는 두 면의 과학을 조화시키는 방향을 떠나서 어떻게 본연의 인간을 찾으려는 종교의 목적이 달성될 것인가.
그러면 과학이 발달되어 인지가 밝아짐에 따라서 종교혁명이 반복되는 이유는 어디 있는가 알아야할 것이다. 종교는 두 세계를 지배하는 자연과학과 초자연과학이 유기적인 입체적 연관성을 갖고 요구하는 목적을 지향하는 것이므로 이 두 과학의 발달에 따라서 종교도 발전성을 갖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러므로 한 시대에 있어서의 교리는 과학이 발달된 다음 시대의 인간을 영도할 수 있는 종교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민족과 종족에 따라 각각 다른 종교를 갖게되며 같은 종교에 있어서도 시대를 따라서 많은 개혁을 하게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며 말세가 다가옴에 따라 종교가 분열되면서도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로 귀일되어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총서 참조)
문예부흥 이후 자연과학의 발달에 따라서 흐르는 평면적인 사상은 가인적인 인생관을 수립하였으며 이에 초자연과학의 발전과정을 따라 흐르는 입체적인 사상은 아벨적인 인생관을 수립한 것이다. 그리고 계몽사상기의 가인적인 인생관이 성숙하여 하나님을 반대하는 사상체계가 나타났다.
경험론자 제임스 밀(James mill 1773~1836) 실증주의 콩트(Comte 1798~1857) 진화론자 다윈(Darwin 1809~1882) 등이 나타나서 하나님을 반역하는 사상을 전개시키는 동시에 포이어바흐(Feuer Bach 1804~1872)의 유물론을 채택하고 이에 헤겔의 변증법을 유물론적으로 전성하여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하나님을 반역하는 가인적인 최종의 우주관 인생관을 만들어냈다.
이에 따라서 아벨적 인생관도 성숙하여 신칸트 학파의 빈델반트(Windelband 1848~1915) 릭케르트(Rickert 1863~1936)를 위시하여 실존주의자 쇼펜하우어(Schopenhauer 1788~1860) 키에르케고르(Kierkegoard 1813~1855) 등등의 인물이 나왔으며 영계의 사실을 지상에 잘 드러낸 인도의 성자 싼다씽이 나와서 가인적인 인생관과 대결하게된 것이다.
인류역사의 종말기로 들어오면서 이 두 인생관은 이와같이 각각 성숙되어온 것이니 여기에 천륜의 신비가 그 면목을 드러내면 이 두 인생관도 하나로 통일되고 모든 종교도 하나의 진리로 통일되며 따라서 모든 철학과 윤리 역시 하나의 완전한 진리 밑에 귀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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