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천 호연정(浩然亭)
영천시가지를 흐르는 금호강의 북쪽 언덕위에 위치한 호연정(浩然亭). 강의 건너편에 서서 보면 조양각, 창대서원과 간격을 두고 나란히 서있는 정자로 영천읍성지에 포함되는 장소이다. 호연정은 조선시대 학자였던 병와 이형상 선생(1653~1733)이 말년에 기거하며 저술활동을 했던 장소로 병와유고(이형상 유품)가 보관돼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호연정은 가지런한 담장 밖에서 바라보면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만개한 매화나무의 모습이 마치 선비의 단아한 절개를 보는 듯하다. 호연정 안 매화나무아래에 ‘매형(梅兄)’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돌이 있는데 “매화를 좋아했던 선생이 매화는 형이라고 해서 이름 붙여놓은 것이다.”라고 한다.
창대서원(昌臺書院)
1786년(정조 10)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정대임(鄭大任)과 정제(鄭梯)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그 뒤 1955년 유림의 공의에 따라 영천시 녹전동 창대리에서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신문(神門), 4칸의 중정당(中正堂), 3칸의 유의재(由義齋), 2칸의 흥문당(興文堂), 2칸의 한존재(閒存齋), 2칸의 역락재(亦樂齋), 전사청(典祀廳), 신도비각(神道碑閣), 고사(庫舍), 2칸의 서고(書庫), 안정문(安正門) 등이 있다.
사우에는 정대임과 정제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중정당은 강당으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토론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전사청은 향례 때 제수(祭需)를 마련하여두는 곳이다.
동재(東齋)와 서재(西齋)인 유의재와 흥문당은 유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는 곳이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3월 중정(中丁 : 두번째 丁日)과 9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7변(籩)7두(豆)이다. 유물로는 은환도(銀丸刀)·옥각대(玉角帶)·지도·전투복 등이 있으며, 재산으로는 전답 8,000평, 임야 150정보 등이 있다.
임고서원 (臨皐書院)서원은 고려 말기의 충신 정몽주를 추모하기 위하여 1553년(명종 8)에 노수(盧遂), 김응생(金應生), 정윤량(鄭允良), 정거(鄭琚) 등 향내 유림들이 임고면 고천리 부래산(浮來山) 아래 창건을 시작하였다. 1554년(명종 9)에는 명종으로부터 사서오경과 많은 위전(位田)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최초의 사액서원인 백운동서원이사액 된지 불과 5년 만에 사액되었으므로 초기 서원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이 때 역사가 깊은 이 서원이 훼철 된 것은 개경에 있는 숭양서원(崧陽書院)에서 포은 선생을 향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19년 존영각을 건립하여 포은 선생의 영정만 모시고 향사를 지내오다 1965년에 다시 복원하여 위패를 모셨으며, 1980년에 보수정화 하였다. 이곳에 임고서원이 들어서게 된 것은 포은 선생의 부모 묘가 서원 뒤편 부래산에 있기 때문이다. 부래산 기슭에는 포은 선생의 부 일성부원군 운관(云瓘) 묘와 어머니 변한국부인 영천 이씨 묘가 함께 있다. 그리고 서원 바로 옆에 묘소를 지키는 계현재(啓賢齋)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