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뜬금없는 6시간의 비상계엄령사태로 어수선한(?)마음으로 모인 3번째 그림책 모꼬지 모임이었다.
1.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이세 히데코 글,그림 / 김정화 옮김 / 백순덕 감수.추천 / 청어람미디어
이세 히데코 작가가 파리로 여행을 갔을 때 골목길에 노인이 실로 뭔가를 꿰매는 작업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서 다시 파리로 가서 그분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보고 책으로 엮었다는 그림책이다.
망가진 식물도감을 고치고 싶어 하는 소녀가 를리외를 아저씨를 찾아가, 소녀만의 책으로 다시 제본, 만들어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재잘거리며 이야기하는 소녀와 무심한 듯 소녀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 를리외르 아저씨의 모습이 가슴을 따뜻하게 해준다.
기계화되고 전산화되어 획일적으로 뚝딱 만들어지고, 그만큼 뭐든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요즘이기에 더 애틋하고, ‘장인정신’이란 단어가 생각나는 책이었다.
책을 읽기 전엔 ‘를리외르’가 그저 책 주인공이 기억하는 아저씨 이름인줄 알았는데, 일종의 전문분야(직종?)를 일컫는 것이었다. ‘를리외르’란 오랫동안 아름다운 형태로 보관할 수 있도록 책을 보수하고 꾸미는 예술제본가를 말한다고 한다. 책의 마지막 속지에 깨알 같은 를리외르에 관한 글도 있다.
이 책에는 그림책에서는 생소한 번역가 외에 감수자가 있다. 이 책을 감수한 백순덕(예술제본가, 렉또베르쏘 대표)이란 분은 프랑스에서 를리외르 공부를 하고 공인을 받은 우리나라 최초의 를리외르라고 한다. 를리외르는 제본에 관련된 일이며 백순덕 이후 우리나라에는 예술제본이라는 이름으로 몇 군데 공방이 생겼고 작품 전시도 하고 있다고 한다.
2.<반짝, 가을이야> 하선영 글/ 황지원 그림/작은코도마뱀
올해 늦게까지 여름 날씨가 이어진 탓에 더욱 짧게 느껴진 가을이라 더 반가운 그림책이었다.
이 책은 계절 빛깔 그림책 시리즈(봄의 입맞춤/ 춤추는 여름/겨울로 가자!)의 세 번째 이야기로 아름다운 가을의 풍경을 눈으로 즐길 수 있는 그림책이다. 책의 주인공은 가을이 재미없다며 반짝 지나갔으면 했지만, 엄마가 데려간 할머니 댁에서 가을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게 되는 내용이다. 화사한 단풍으로 물든 가을풍경은 물론 다양한 가을열매들을 만날 수 있다.
여기서 어치 선생님의 깨알 정보! 감나무는 한 나무에 열매를 맺는 암꽃과 꽃만 피는 수꽃이 다 있다는 것! 꽃받침의 갈라진 수와 씨방의 수가 같다는 것. 그래서 꽃받침을 보면 씨앗의 개수를 알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3. <색깔전쟁> 시모 아바디아 글.그림/ 스푼북
엊그제 있었던 비상계엄선포 사건으로 지도자의 가치관과 신념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는 이 시기에 적절했던 책이었다.
책 표지부터 노란색 바탕에 빨간색과 초록색의 글자가 한자씩 대립하듯 제목이 적혀있는 이 책은 평화롭던 두 마을에서 같은 시각 각 마을에서 태어난 각각 다른 아이가 한 명은 초록색만 좋아하면 자라고 다른 한 명은 빨간색만 좋아하면서 자란 두 아이가 싸움하는 이야기이다. 처음엔 그저 두 아이의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로 시작된 다툼은 각자 마을 사람들에게 거짓말과 가짜뉴스를 퍼트리며 각기 마을의 지도자가 되고, 마을 전체의 싸움으로 퍼져 결국 두 마을 다 파국으로 간다. 한 지도자가 왜곡된 사실로 마을 사람들을 선동하며 마을 전체의 분쟁이 되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세계 곳곳의 분쟁국에서도 찾을 수 있는 모습일 것이다. 특히 지금의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통감하리라...^^:
그러나 모든 것이 파괴되고 다음 장으로 넘겼을 때 초록색 마을 사람도, 빨간색 마을 사람도 다른 색을 이야기 하는 모습으로 희망을 주는 것 같았다.
4.<사과꽃> 김정배 글/ 김휘녕 그림/ 콩(KONG)출판사
화사한 사과꽃이 활짝 핀 나무 그림에 평온한 느낌마저 드는 표지와 달리 전쟁의 아픔을 담은 그림책이었다. 전쟁이라는 이야기 소재와는 상반되게 책속의 아지 자기한 표현들은 너무 세심하고 다정(?)했다.
주인공 아이가 태어나던 해 아빠가 심은 사과나무는 전쟁 때 돌아올 거라는 약속을 하고 아이 곁을 떠난 아빠를 대신해 매해 화사한 꽃과 빨간 사과 열매로 아이를 찾아온다. 시간이 지나 마을 사람들과 어른으로 자란 아이가 사과나무에 열린 사과를 씻어 절대 쪼개지 않고 베어 문다는 글에서 전쟁으로 가족과 헤어진 사람들의 아픔이 아련하게 전해졌다.
여기서도 어치 선생님의 생태 이야기~ 꽃사과와 아그배 열매 구분 비결, 사과꽃과 잎의 비밀... 같이 기억해야 겠죠?
5. <눈이 내리면> 유리 슈레비치 글. 그림/ 서남희 옮김 / 시공주니어
칼데콧 아너 상 수상 작품으로 12월, 겨울맞이로 딱인 그림책이었다. 비록 눈 구경이 힘든 경산도인이나 그래서 더 눈에 대한 동경과 환상을 품고 있기에 눈을 기다리는 설레는 맘으로 읽기 좋은 그림책인 것 같다.
한 송이 눈이 내릴 때부터 온 마을이 하얀 눈으로 덮이기까지, 소년과 마을 어른들의 상반된 모습이 재미를 더한다. 한 송이 눈에도 신난 아이와 반대로 고작 한두 송이 눈이라, 일기예보에는 눈 예보가 없었기에 냉소적이었던 어른들이 점점 쌓여가는 하얀 눈을 덮어쓴 모습도 유쾌했다.
올해 겨울에는 아들과 하얀 눈을 밟아 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그리고 이 겨울이 끝나기 전에 우리나라에도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자기 색을 주입, 선동하는 독재자가 아닌 여러 색을 수용하고 인용하는 현명한 지도자를 맞이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후기를 마친다.
첫댓글 우와 짝짝짝~ 정말 잘 쓰셨쎄요~~
알찬 후기 덕분에 무에서 유를 발견하는 것 같습니다~
벌써 12월의 끝자락을 향해 가는 요즘… 후기로 인해
올해 더 값진 연말 느낌납니다 고맙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