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그 후
김 성 문
코로나19는 무서운 전염병이다.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원인불명의 폐렴이 집단 발병하면서 시작됐다. 세계로 감염세가 확산되자 WHO는 코로나19에 대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확진자가 늘어나자 팬데믹을 선포했다. 1948년 WHO가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팬데믹을 선포한 경우는 1968년 홍콩독감, 2009년 신종플루에 이어 세 번째이다.
2020년 6월 중순쯤 모임의 총무로부터 전화가 왔다. K가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났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당시 내 주위에는 코로나19 환자가 없어서 경계심을 늦추고 생활할 때였다. 코로나19의 현실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빈소도 못 가고 집에서 마음속으로 명복을 비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K는 후배로서 나를 잘 따랐다. 활달하고 인정미 넘쳤으며 남을 잘 헤아려주는 성품이었다. 같이 뒹굴고 생활한 추억이 오버랩되었다.
K는 평소 건강하고 체력도 대단했다. K와 같이 모임하는 구성원 모두가 배구를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K가 배구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어느 날 놀라운 제안을 했다. 자기 혼자 9명을 상대로 게임을 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말이나 되는 소리냐면서 손사래를 쳤다. K가 고집을 피워 날을 정해 경기를 하게 되었다. K는 공이 넘어오면 혼자서 토스를 두 번 하여 세 번째는 공격할 수 있고, 9명은 한 사람이 한 번씩 토스하여 세 번째 사람이 상대에게 공격하는 규정이었다.
첫 세트는 9명이 21점을 먼저 획득하여 이겼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경기는 K가 연속하여 이겼다. 우리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놀라운 성적이었다. 믿어지지 않은 결과는 우리 모임의 신화가 되었다. 그런 친구가 코로나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니 너무 놀란 나머지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K는 가족 네 사람 모두가 코로나로 각자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부인과 자녀 두 명은 완치가 되었고 K만 코로나에 굴복하고 말았다. 배구 게임에서 우리 9명을 물리치듯 코로나19를 이겨야 했는데, 비통함을 남겼다.
코로나19가 전염된 지 3년째이다. 나도 3차 예방접종을 마쳤다. 그런데 어디에서 전염이 되었는지 저녁에 열이 나고 목에 가래가 심했다. 이튿날 간이 검사기로 검사하니 양성반응이 나왔다. 급히 집 가까이에 있는 보건소로 갔다. 보건소 검사에서도 이튿날 양성 통보를 받았다. 1주일간 재택 치료는 도를 닦게 했다. 치료제도 택배로 받았고 모든 치료를 가정에서 스스로 해야 했다. 아내는 나를 서재에 가두어놓고 거실에도 못 나오게 단속했다. 나 역시 가족에게 전염될까 봐 중환자가 되어 집중 치료에 들어갔다.
하루가 지나니 목에 있는 가래가 적어지는 기분이고 열도 내려갔다. 사흘 정도 지나면 괜찮을 것 같았다. 일주일 치료 기간이 끝나니 목의 가래도 열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나와 같이 전염된 한 친구는 아직도 입맛이 없어 식사를 제대로 못 하고 있다. 또 한 친구는 체력이 떨어져 잘 걷지도 못한다고 한다. 코로나19의 후유증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우리의 생활 방식이 바뀌고 있다. 같이 코로나19를 앓은 한 친구는 식구들이 외식할 것을 주문해 가정에서 식사하는 때가 많아졌다고 한다. 식사할 때는 친구가 먼저 공동으로 먹는 음식은 조금씩 덜어 먹자고 했다고도 한다. 우리 가정은 오래전부터 부부가 있어도 뷔페식으로 하고 있다. 명절 때는 혼인한 딸들이 뷔페식을 더 좋아했다. 버려지는 음식이 적고 재활용할 수 있는 음식이 많아서 좋다고 한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란 말이 전해 오고 있는데 섭섭할는지는 모를 일이다. 코로나19 이후로는 우리 가정도 음식을 배달로 해결할 때가 많아졌다. 배달 음식도 우리의 식생활에 맞게 잘 조리해서 배달되고 있다. 한여름 삼계탕을 한 그릇 시켜도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더 많은 반찬을 끼워서 온다.
또 한 친구는 식품도 배달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저녁에 주문하면 이튿날 아침 방문 앞까지 배달되어 편리하다고 하면서 추천한다. 우리 가정은 가까운 시장에서 식품을 구매해 음식을 만들었다. 식품 주문을 해 보니 배달처에서는 좀 더 신선한 식품을 배달하기 위해 큰 노력을 하고 있다. 비대면이라서 좋고 코로나19의 전염성도 낮다.
그런데 한여름 변하기 쉬운 식품은 배달 주문 때 신경이 쓰인다. 한 번은 전복죽을 먹기 위해 살아 있는 전복을 배달시켰다. 도착한 전복으로 죽을 끓이는 데 좋지 못한 냄새가 번져 나왔다. 아내는 다른 요리에 열중하느라 상한 냄새를 못 맡은 것 같았다. 아내는 냄새가 조금 나도 그대로 먹자고 했지만, 나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비싼 전복을 사서 정성 들여 끓인 성의는 대단했으나 결국 버리고 나니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K의 가족은 이제 역경을 딛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19의 환자도 많이 줄어들었다. 거리두기 완화로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안 써도 된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거리에 나가 보면 아직도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마스크 착용은 일상화되었다. 나 역시 아직도 마스크를 꼭 착용하고 다닌다.
식당에서는 음식을 각자 앞접시에 덜어 먹는 것이 습관화된듯하다. 한 접시에 있는 음식을 공동으로 먹던 일상들이 지금은 소중한 것들이 되었다. 지금은 모두가 건강 제일주의자처럼 행동한다.
이제는 우리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 질병 없는 건강한 생활을 꿈꿔본다.
첫댓글 코로나 19를 다소 극복했다지만
일상생활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최고의 행복은 건강입니다.
회장님! 그렇습니다. 건강이 최고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