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반점 오후 2시 무렵
이 영 신
헬멧을 쓴 방한 작업복의 배달라이더가
출입문에 비켜서서 마냥 음식을 기다리며 서 있다
얼마큼 돌고 돌아와 여기까지 온 것일까
아득히 들리는 듯 마는 듯 애처로운 소리
‘아가, 밥은 먹고 다니는 겨?’
다시 귀를 기울인다
‘길 꺼지면 어쩌나, 빙판길은 어쩐다냐...’
들릴 듯, 여린 한숨소리
다그르르, 커피 머신의 기계음에
묻혀 버려 어디론가 사라진다.
|나의 詩論| 유유히 훨훨 날아라
시인은 누구나 늘 좋은 시 쓰기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을 것이다. 각기 시를 보는 관점도 다르고, 좋아하는 시의 취향도 제각각이며, 자신이 써나가는 시의 지향점도 다를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시인에게 있어서, 좋은 시 쓰기에 대한 염원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한 편 한 편 시를 써나가면서 마치 마음에 날개가 솟아나듯이 두 날개를 활짝 펴보는 꿈은 참 자유롭다.
시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자.
「보배반점 오후 2시 무렵」 제목에 미리 시간과 공간을 명시해 놓고 있다. 마치 무대 설정을 해 놓은 느낌이다. 보배반점은 서울 변두리에 있는 중국음식점이다. 보통 때면 한가해지는 시간대인데 몹시도 추운 그날 손님이 좀 많았다.
문을 밀고 들어 온 배달라이더가 한편으로 비켜서 있었다. 헬멧에 무릎보호대, 방한화를 신고 추위에 대비해 완전무장한 그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한쪽 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이 대화의 창구인 셈이다. 화면에 시선을 두고 순번을 기다리는 그가 마치 붙박이 가구인 듯 그렇게 서 있었다. 식탁에 앉아서 일석삼조라는 메뉴의 짜장면과 짬뽕, 볶음밥으로 맛있는 식사를 하고 있는 화자는 그를 힐끗 바라봤을 뿐이다. 왠지 가슴에 찌르르 통증이 왔는지도 모른다. 이미 점심때가 지나가고 있는데... ‘아가, 밥은 먹고 다니는 겨?’하는 물음은 메마른 도시생활에서 내 혈육이 끼니때를 놓치지는 않을까? 근심하는 엄마나 할머니의 마음일 것이다. ‘빙판길은 어쩐다냐...’하는 말은 온 사방이 얼어붙은 겨울철이기에 언제나 날씨가 풀릴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 마음이 이웃에 미치고 세상 전체로 확장이 된다면 좋을 것이다.
중국 송나라의 기철학자 장횡거(1010-1077)는 「서명西銘」에서 ‘민오동포民吾同胞 물오여야物吾與也’라고 했다. 사람은 모두 나의 형제이며 세상 만물은 나의 친구이다.라는 이론을 펼쳤으니 그 경지는 우주만물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 세계일 것이다.
한참을 문 앞에 서있던 그는 비닐가방에 잔뜩 담긴 음식을 부리나케 챙겨서 달려가 고객의 집 초인종을 누를 것이다. 식당에 설치된 커피 머신의 ‘다그르르,’ 돌아가는 기계음에 이런저런 도회생활의 아픈 이야기들이 함께 묻혀 버리는 것 같았다.
지난 1월에 제 8시집을 출간한 뒤에 현재 ‘서울’을 소재로 하여 아홉 번째 시집을 염두에 두고 시를 쓰고 있다. 시집의 갈래를 서울의 역사, 문화, 풍물, 서울과 나, 이렇게 네 갈래로 하여 나아갈 계획이다. 십 대 끝자락에 발을 디뎠던 서울생활 50여 년, 사학자가 되겠다는 부푼 꿈으로 시작된 춥기만 하던 낯선 도시, 우여곡절의 서울살이였다. 현재 서울을 소재로 삼아 쓴 시가 20여 편 가량 된다. ‘정다산의 눈물 줄기’ 라든가 ‘인왕산 치마 바위’등의 시는 역사와 현실 속의 내가 씨줄과 날줄로 빚어낸 결과물이다. 늘 머릿속의 잡다하게 뒤엉키고 흔들리는 오만가지의 생각들. 그 중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벼릴 것은 별러서 정수를 뽑아내고자 하는 것이 시인이 빚어내는 한 편의 시일 것이다.
서울은 조금만 여유를 갖고 들여다보면 역사의 현장과 군데군데 생생한 이야기들이 참 많이 서려 있다. 요즘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넷플릭스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미국의 애니메이션 영화로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한국말이 툭툭 튀어나오는가 하면, 우리의 문화와 먹거리, 서울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나온다. 낙산의 성곽길이라든가, 한옥마을과 지붕, 지하철역, 고궁 등이 나오므로 ‘서울’시를 쓰고 있는 나를 즐겁게 한다.
한 동안 자괴감에 빠져 이젠 시를 그만 쓰겠다는 치기 어린 생각에, “얼마나 좋으냐? 평생 몰두하는 학문의 세계는 생애 동안에 한 발짝 나갈까 말까 이지만, 이 예술의 세계, 이 자유로움!”이라 하신 박제천 선생님(1945년-2023년), 스승께 시는 물론 사는 법까지 배우면서 시를 써왔다.
내 나름으로는 시집을 낼 때마다 시 세계를 바꾼다는 생각을 해왔다. 예를 들자면 『저 별들의 시집』에서는 하늘의 별과 사람은 별개가 아니라는 인식으로, 별세계와 사람과의 합일을 꿈꿨다. 『오방색 주역시』에서는 우주만물의 이치를 품고 있다는 주역, 그 64괘를 소제목으로 붙여서 시를 썼다. 오묘하기 짝이 없어서, 상수역이니 의리역이니 논의가 많은 주역이지만, 시 속에서 무슨 일인들 못하랴 하는 심사가 작용했다.
시 쓰기는 나에게 있어서 자기 극복의 수단이다. 아프고 쓰라렸던 기억, 차마 털어놓지 못했던 부끄러움까지도, 글자로 형상화하여 시 1편이 완성되면 객관화가 가능해진다. 시를 쓰면서 나만의 기호를 군데 군데 심어놓는 것도 재미이다. 말하자면 시란 내 삶의 정신일기이자 발자국이다. 오로지 문체가 빛나 유유히 훨훨, 하늘을 날으는 봉황*의 꿈을 꾸고 싶다.◑
*유협의 『문심조룡文心雕龍』을 변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