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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바다 건너 푸른 추자도로 -
닷새 동안 100㎞쯤을 걸었다. 이젠 휴식을 취해야 한다. 너무 무리하게 트레킹을 강행했다가는 중간에 아웃되고 만다. 그래서 오늘은 트레킹 강도를 낮추고 추자도로 가서 조금만 걷고 낚시나 하며 쉬려고 한다.
추자행 배 시간에 맞추어 7시20분 숙소에서 출발하여 현옥식당으로 간다. 오늘 아침은 모두 된장찌개를 시킨다. 이 집에서는 급할 때는 백반정식이나 된장찌개를 시켜야 빨리 나온다. 일인분씩 그릇에 따로 각각 주는 줄 알았는데 삼인분이 한 냄비로 나온다. 그래도 역시 푸짐하다.
식사 후 택시를 타고 제주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하니 8시가 된다. 너무 빨리 왔다.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8시30분에 주민증을 제시하고 승선표를 산다. 그리고 이층의 승선 개찰구로 올라간다. 9시에 개찰을 시작하는데 경찰, 여객선사의 직원들이 몇 차례나 신분증과 선표를 꼼꼼히 대조한다. 제주는 무비자 지역으로 이곳을 통해 중국인 등 외국인들이 불법으로 육지로 입국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아서라는데, 宋山은 주민등록증이 너무 오래되어 사진이 식별이 되지 않는다고 새로 발급받으라고 경찰관에게서 한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드디어 오전 9시 30분. 제주항을 떠나 추자도로 향하는 핑크 돌핀호에 승선을 하니 돌핀호는 쾌속선으로 푸른 제주와 추자의 바다를 미끄러지듯 달린다. 아니 물살 위로 통통 튕기며 간다. 날씨는 맑아서 제주에 온 이래 가장 좋다. 만일 날씨가 좋지 않다면 추자도로 올 수가 없고 또 강행군 트레킹을 할 것인데 천만 다행이다.
배가 많이 흔들리자, 중앙 자리에 앉아있던 배 타기에 익숙치 않은 관광객들은 혼비백산하여 급히 자리를 뒷자리 중간으로 옮긴다. 林山도 놀라 급히 뒷자리로 옮기고 宋山도 뒤에서 부른다. 나는 그냥 앞 창가 자리에서 뭉개고 앉아 가는데, 옆자리의 사람은 멀미와 구토가 장난이 아니다.
제주 택시를 탈 때 만났던 기사분 중에는 선원 출신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는데, 그 분들 말씀이 요즈음은 세월호 여파로 예전보다 여객선 운항관리와 여객 안전에 더 철저하다고 한다. 그래도 배를 타는 데 익숙치 않은 경우에는 두려움을 가지고 ‘만약에…’하고 긴장을 하며 탄다.
배 안은 주민들과 낚시꾼, 여행객들로 가득하다. 특히 낚시꾼들이 가장 많은 걸로 보이는 것은 그네들이 가지고 가는 장비들이 어마어마해서 눈에 돋보이는 까닭일 게다. 10시55분. 배는 출발한 지 정확히 1시간 25분만에 추자항에 도착한다.
추자도 올레 18-1코스의 주요 경로는 추자항→봉글레산→나바론 절벽→추자등대→묵리 교차로→신양2리→모진이 몽돌해안→황경한 묘→신대산 전망대→예초리 기정길→예초포구→돈대산→묵리 교차로→추자교→추자항에 이르는 17.7㎞로 제주로 돌아오는 배 시간 때문에 하루에 코스를 다 돌기는 시간이 부족해 좀 어렵다.
< 추자도 일주 지도 안내판 >
그래서 우리는 어제까지의 닷새 동안 100㎞를 걸은 피로도 풀 겸해서 버스를 타고 하추자 포구로 가서 낚시를 할 수 있으면 하고, 신대산이나 돈대산 트레킹을 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상추자항으로 와서, 시간이 나면 봉글레산이나 최영 장군 사당 정도만 돌기로 한다.
돌핀호에서 하선장에 내리니 거의 11시다. 바로 여객터 미널 앞에서 11시05분 하추자행 공영 버스가 붕붕거리며 출발 준비를 한다. 놓치면 여기서 1시간 허비하면서 어영부영 지내야 한다. 급히 일행과 서둘러 버스를 타며 버스기사에게 “하추자 가지요” 묻는다. 아무말이 없다. ‘못 들었나?’ 다른 사람이 또 묻는다. 대답이 없다가 어떤 일행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운전 기사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른다. 무안하고 당황한 그 여행객 일행은 부랴부랴 버스에서 내려 버린다.
버스가 하추자를 향해 출발한다. 잠시 승객들이 조용히 기사의 눈치를 보다가 버스 안은 이내 할머니들의 왁자지껄한 수다에 파묻힌다. 섬내 유력한 교통수단인 버스는 하루 1시간 배차 간격으로 상추자와 하추자를 오가며 운행을 한다. 버스 보유 댓수는 고작 2대뿐이며, 정류장은 있지만 손만 들면 버스가 정차한단다. 그러니 버스 기사의 위세가 저리 대단한 게지,
< 추자도 앞바다 풍경 중에서 >
버스가 추자교를 지나 하추자의 신양항을 지나고 좁은 골목의 하추자보건소를 지나 돈대산 올라가는 입구에 이르러 한 부부가 내리자, 우리도 따라 내릴까 말까 망설임이 생긴다. 宋山이 다른 승객들이 가는 종점까지는 가 보자고 해서 종점인 예초 포구에서 내린다. 11시30분이다. 추자항에서 종점인 예초항까지 얼마 걸리지 않는다.
< 예초항에서 보길도쪽을 보며 >
예초항 방파제, 추자 바다의 그 압도적 푸른 빛에 취해서 마구 사진을 찍는다. 예초기정과 신대봉 전망대의 장관이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예초기정을 향해 시멘트길을 걷다 보니 소형차들이 몇 대 파킹되어 있다. ‘웬 차들인가?’ 궁금해서 지나가니 바로 밑 바위에서 여기저기 낚시를 하고 있다. ‘아하! 그렇구나, 여기서는 웬만하면 다 낚시가 되는구나’
예초기정의 절벽가에서 바라보는 추자의 섬들과 바다는 여태까지의 모든 고단함을 순식간에 싹 가시게 한다. ‘아, 추자도 참 잘 왔구나, 진짜로!’ 검푸른 바다, 점점이 박힌 여러 섬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의 아름다움, 그리고 비릿한 바닷내음도 좋다. 추포도, 횡간도, 오형제섬…. 그리고 멀리 흐릿하게 보길도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이쪽 예초기정과 신대봉 코스는 해안가 절벽의 봉우리로 이어지는 길이다. 푸른 바다와 높은 봉우리가 만나서 마치 깊은 산중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봉우리 아래로는 시리도록 푸른 남해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12시20, 제주 올레 코스 중에서 가장 경치가 ‘최상’인 신대봉 조망대에서 바다를 보며 계속 탄성을 지른다.
< 신대봉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
신대봉 길을 내려 걸으면서 만나는 이름 모를 들풀과 눈에 들어오는 바다와 섬들이 어우러진 새로운 풍광에 '아~'하고 연신 감탄사를 내다가 신대봉 아래 작은 몽돌 해안을 지나 어디로 갈까 잠시 망설인다. 고갯길로 가기는 부담스럽고 우측 시멘트길로 가기도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다리에 부담이 가지만 고갯길로 가기로 한다.
12시30분, 은근히 다리를 압박하는 고갯길을 오르노라니 작은 샘물을 만난다. 바로 ‘황경한의 눈물샘’이라 한다.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작은 바가지로 물을 떠 마시니 시원하다. 이 우물은 그 어미니 정난주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애끓는 소망에 하늘이 탄복하여 내린 선물이란다. 그 때문인지 사시사철 마르는 날이 없다고 한다.
< 황경한의 눈물샘 >
조금 뒤로 고갯마루의 정자가 있고 추자십경 안내판이 서 있는 조망처에 이른다. 예초리 산 20번지, 이 산기슭 정자 전망대 옆에 서 있는 추자십경(楸子十境) 안내판은 주변에 있는 추자십경을 빼지 말고 보라는 듯 세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이곳 추자 사람들은 추자도의 독특한 모양과 아름다운 절경 중 대표적인 10가지에 대해 ‘추자 10경’이라고 이름을 붙여 그 명승을 자랑하고 있다.
이 전망대 뒤에 바로 황경한 묘역이 있다. 올레 11코스에서 본 천주교 묘역의 정난주가 바로 이 묘역 황경한의 모친이다. 마리아 정난주는 정약현의 딸이며 다산 정약용의 조카다. 정난주는 남편 황사영이 백서사건으로 순교한 뒤 두살배기 아들 경한과 제주 유배길에 올랐다가, 호송선이 이곳 예초리에 머물자, 몰래 아들의 이름과 출생일을 적어 저고리에 싸서 아들을 바위 틈에 두고 떠났다. 그러자 마침 지나던 예초리 어부 오씨가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서는 데려다가 그 어미의 소원대로 잘 키웠고, 성년이 되자 오씨는 꼭꼭 숨겨뒀던 경한의 내력을 들려줬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들 모자는 평생 만나서 재회하지 못했단다. 뒤늦게라도 화를 입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란다. 그 후 현재까지 황경한의 후손이 잘 이어지고 있고 추자도 오씨와 황씨는 이런 아름다운 인연으로 두 성씨 집안 사이에는 서로 혼인을 하지 않는다 한다.
< 신대봉에서 바라본 몽돌 해안가 >
우리가 황경한의 묘를 지나 왼쪽으로 바다 풍경을 끼고 내려가니 날씨는 마치 3,4월처럼 따뜻하다. 아래쪽의 해변은 아까보다 굵은 몽돌이 있는 신대 모진이 해수욕장 몽돌밭이다.
이 신대 몽돌밭 앞 바다에서 보는 해돋이가 절경인 까닭에 ‘추자 10’ 중 당당히 ‘제1경’으로 꼽힌다는데 우리가 여길 지날 때에는 이미 12시가 지날 무렵이니 당연히 볼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일출을 제대로 보려면 하룻밤을 추자에서 묵고 또 새벽에 이곳으로 와야 하고 그것도 3대의 적덕을 한 인연으로 날씨가 맑을 때에나 일출 관람이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날씨가 맑은 날이면 이곳에서 한라산도 볼 수 있다는데 우리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제주 애월읍 고내봉에서도 어떤 영감님이 제주에서 추자도가 보인다고 해서 보려 해도 날씨가 흐려 못 보았는데, 반대 지역인 이곳에 와서도 보이지 않으니 정말로 보이는 건가, 아닌가?
모진이 몽돌해안에서 다시 해안을 따라 가느냐, 언덕으로 질러 가느냐 따지다가 해안가로 길을 따라가 보지만 이내 막히고 만다. 뒤로 돌아 언덕길로 가다 보니 아까 버스로 지났던 돈대산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마을 골목을 지나 하추자 보건소를 지나 13시05분, 신양항에 도착한다.
신양항의 포구 앞은 시설을 크게 확충하는 작업을 해서 아마도 추자항보다도 더 큰 시설을 갖추게 된 것처럼 보인다. 회백색 어업 관리 시설, 접안 시설 등의 시멘트 건물들이 주욱 늘어서 있지만, 우리가 들어갈 볼 수산시장이나 관람 시설은 없고 조그마한 농협 하나로 마트는 문을 걸어 잠가서 무료하게 버스를 기다리며 추자초등학교 신양분교 운동장이나 한번 둘러보고 오는 것이 고작이다.
하릴없어 버스 시간은 멀었고 가는 데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참조기 가공 공장을 지나니 낸내리 식당이 보인다. ‘문어구이’가 별미라며 주인이 들어가 보길 권한다. 들어가 보니 주 메뉴가 수산물이 아니라 돼지구이다. 육지에서도 먹을 수 있는 육식을 하기보다 수산물이 낫지 않느냐고 의견이 모이자 점심식사가 늦더라도 그냥 걷기로 한다.
아아, 오늘도 하염없이 걷는다. 해양경찰서 추자파출소 앞을 지나고 묵2리 버스 정류장과 새마을회관 앞을 지나 대왕산 올라가는 나무데크 앞을 거쳐 팬션 앞을 지나다 보니 해변가에 홀로 낚시질을 하는 사람이 보인다. 여기서 잠시 쉬기로 하고 낚시를 하는 사내 옆으로 가니, 하필이면 내가 다가서자 주섬주섬 낚시채비를 거둔다. “많이 낚으셨어요?” 잡았으면 어획물을 보여줄 것을 속으로 간절히 기대하며 물어본다. “별로 손맛을 못 봤어요” 하며 사내는 낚시대를 들고 가버린다. 실망을 하며 뒤쫓아 나오니 “올레 오신 분이세요?” 묻는다. “예, 올레 하다 쉬고 있습니다.” “음, 그러면 저기 등대하고, 이쪽으론 썰물 때 대왕산에 올라가 보세요. 바닷물이 폭포처럼 쏟아져요” 사내는 멈춰서서 열을 올리며 설명을 한다. 낚시보다 올레 설명에 열심이다. “아, 네에. 잘 알겠습니다.” 정작 열을 올리는 사람에 비해 우리는 별로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빨리 추자항에 가서 점심밥을 먹고 싶다. 적당히 심드렁하게 대답하고 있노라니, 어떤 뚱뚱한 중년의 여자가 낚시 옷으로 중무장을 하고 뒤뚱거리며 걸어가 그 사내가 섰던 곳에 가서 다시 낚시를 시작한다. 문득 이 풍경에 샤무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 무언극의 남녀배우가 교대로 등장하고 다소 부조리한 듯, 바다를 향해 서서 끝없는 기다림의….
< 추자에서 북쪽 바다를 바라본 풍경 중에서 >
이윽고 연극이 끝나듯이 상추자행 버스가 나타나자, 우리는 잽싸게 승차하고 그곳을 벗어난다. 추자교를 지나니 오른쪽 차창 밖으로 다시 푸른 파도가 넘실거린다. 예초기정이나 신대봉을 보고 나니 나머지 바다를 보아도 그 감동이 처음보다 다소 못하다. 마치 선경에 다녀온 후 지상의 풍경을 보는 것 같다. 오후 두시가 넘어서자 약간 시장하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우리 또래 비슷한 연배의 여행객들의 점심식사 장소를 찾는 이야기 중에 “이따가 중앙식당에서 만나자”는 둥 하는 소리를 듣고, ‘아, 여기 추자에서는 중앙식당이 여행객들이 선호하는 식당인 모양이구나’ 하고 짐작을 한다.
그래도 일단 종점까지 가서 점심밥을 먹을 데를 물색해 보자고 한다. 이 집 저 집을 훑어보아도 마땅치 않던 중에 추자면 사무소 옆에서 아까 버스에서 이름을 들었던 중앙식당이 눈에 띈다. ‘그래 저 집으로 가자. 그래도 버스 기사가 추천하고 여행객들이 찾는 식당이라면 안심해도 돼’ 14시40분쯤 그리 크지 않고 낡은 모습이 역력한 중앙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식당 안쪽의 자리에는 선객들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건너편 좌석으로 자리를 잡으려는데, 주인 마나님이 조금 날이 선 목소리로 그 자리는 안 된다고 가로 막는다. 이 쪽 선객들 옆으로 가서 앉으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식당에 가면 밥을 먹거나 반주라도 한 잔 하게 되면 사적인 대화를 하게 되고,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냥 주는 대로 요기만 하는 것이 아닌, 모르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워낙 개인적인 행위가 아닌가! 편안하고 오붓하게 먹으려는 것이고, 우리나 남이나 쓸데없이 피차간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은 것이 일반적인 식당 손님의 행태가 아닌가! 좀 불만스럽기는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인 마나님이 시키는 대로 먼저 손님들의 옆자리에 붙여서 다가앉는다.
잠시 어색하고 애매한 분위기에 젖지만 우리가 누군가! 노회한 인생의 경험을 한 연배들인데 곧 마음을 풀고 각기 서로 저 나름대로 일행끼리의 대화를 이어간다. 가만히 보니 옆 손님들은 우리가 버스에서 보았던 그 여행객들이다. 옆 손님들이 먼저 음식을 주문하고 우리도 뒤이어 주문을 한다.
추자도 참굴비는 짜지 않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란다. 들은 풍월도 있고 해서 우리는 제주에 와서 처음으로 최고 비싼 1인당 만원짜리 굴비정식을 시킨다. 식사 전에 기다리기도 무료하고 해서 먼저 소주를 달라고 주인 마나님에게 주문한다. 옆 손님들도 막걸리를 청한다. 주인 마나님은 아무 대꾸나 반응이 없다. 옆 손님들이 서너 번 큰 소리를 내어 주인을 불러 보지만 역시 묵묵부답이다. 할 수 없이 옆 손님 중 한 사람이 일어나서 직접 주인에게 가서 막걸리를 달라고 하지만 막걸리 없단다. 먹고 싶으면 옆의 가게에 가서 직접 사서 가져다 먹으란다. “소주도 없나요?” 주눅이 들어 다시 묻고 있노라니 옆 손님이 진열장에서 직접 소주를 꺼내다 준다. ‘아, 다행이다.’
소주를 한 잔씩 나눠 마시면서 한참 기다리니, 이윽고 굴비 정식이 들어온다. 좀 불친절한 마나님과 무뚝뚝한 주인 양반의 서비스에 기분이 살짝 좋진 않지만, 연일 강행군과 늦은 점심의 시장기는 굴비정식의 맛을 감칠나게 한다. 반찬이 조금 모자라서 더 달라고 시킬 때에는 안 줄 것 같아서 약간 주저하기도 했지만, 宋山이 씩씩하게 더 달라 하니, 그래도 주인 마나님이 잠자코 갖다주는 것이 신기하다.
< 추자초등학교 전경, 뒤편에 최영 장군 사당이 있다 >
15시40분. 식사를 마치고 나서 제주 나갈 배 시간에 맞추려면 멀리 갈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다. 최영 장군 사당이 있는 추자초등학교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추자초등학교에 들어서자 교사의 오른 쪽에는 사택인 듯한 건물이 삼사층 높이로 서 있고 운동장은 아담하다. 초등학교 뒤쪽 언덕 위에 최영 장군 사당이 있다. 교사 뒤편으로 조금 올라가자 바로 사당이 있다. 사당 안에는 아까 우리 식당에서 보았던 옆자리 손님 일행이 최영 장군상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 최영 장군 사당, 사람들이 종종 기도를 드린다 >
원래 추자도의 옛 이름이 후풍도(候風島)라 한다. 제주도 ‘목호의 난’을 평정하기 위해 파견된 최영 장군이 거센 바람을 피해 머물렀던 곳이란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목호의 난’이란 원나라가 삼별초를 평정하고 일본 원정에 대비해 제주도에 목마장(牧馬場)을 설치했는데, 이때 소나 말을 기르기 위해 파견하였던 몽골인들이 목호(몽골의 목자, 목동)다.
이 ‘목호의 난’을 평정하던 중에 바람을 피해 추자도로 온 최영 장군이 추자도 주민들에게 어망 손질법(어망편법 시 漁網編法)과 고기잡는 법 등을 알려주었다는데, 섬주민들이 그 은혜를 기리기 위해 이 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섬사람들이 고기잡을 줄도 몰랐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아마 많은 군대 병력이 이곳에 주둔하게 됨에 따라 더 많은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효과적인 조업에 필요한 시설이나 지원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억울하게 죽은 고려의 충신을 기리고자 하는 마음과 최영 장군이라는 빼어난 무장이 가지는 강한 힘의 상징성으로 바닷바람에 맞서 평온한 날씨와 조업을 기대하고 싶은 주민들의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사당 앞에는 드넓은 푸른 바다가 절벽가를 따라서 펼쳐지고 다시 등대와 항구 쪽으로 이어진다. 학교 옆에 큰 체육관 건물이 있다. 추자 생활체육관이라는데 주민들이 생활체육을 통해 여가를 즐기고, 체력 증진 및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추자도 주민들에게 24시간 개방하고 있다고 하는데 주민이 아닌 관광객들이 함께 써도 널널한 공간과 시설이다.
우리가 다시 여객선 터미널로 돌아오는 중간에 있는 편의점 앞 선박계류장에서는 바다에서 낚시를 마치고 난 배들이 들어와 낚시꾼들을 여기저기 내려놓는다. 추자도는 낚시꾼들에게 ‘바다낚시의 천국’으로 유명한데 섬을 둘러싼 모든 갯바위가 낚시 포인트다. 참돔, 돌돔, 농어 등 고급 어종이 풍부해 4계절 내내 낚시꾼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실제로 일본까지 소문이 난 낚시터로, 가수 서태지도 이곳에 와서 낚시를 한다고 소문이 날 정도로 많은 낚시인들이 와서 손맛을 보기를 원하는 곳이란다.
실제로 우리가 본 어떤 바다 낚시꾼은 출조 후에 들고 온 어망을 가지고 큰 소리로 어획물을 자랑하고 있어 다가가 보니 엄청나게 큰 농어와 감성돔을 볼 수 있었다. 아휴, 검정비닐 봉지에 소주를 여러 병 들고, 어망을 둘러메고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숙소로 회 떠 먹으러 가는 그 사내의 뒷모습에선 낚시꾼의 즐거움이 가득 배어 있었다.
16시. 여객선 터미널로 가서 제주행 승선표를 끊고, 남은 시간에 등대산공원을 오르기로 한다. 추자수협 상설 판매장에 가니 엄청나게 큰 은갈치가 저렴한 가격에 팔리고 있다. 상당히 싸다. 이후로 제주의 어느 곳을 가 보아도 수산물이 이만큼 싼 곳이 없다.
< 추자도 등대산 공원에서 바라본 북동쪽 바다 전경 >
야트막한 등대산 공원은 추자도 무장 간첩 사건의 애절한 가족사와 경찰분들의 순국의 현장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고, 푸른 바다는 말없이 이 섬사람들의 아픔을 쓰다듬고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16시15분. 추자 승선장 앞에 있는 올레 18-1 코스 출발점을 뒤늦게 발견하고 인증샷을 한 후에 핑크돌핀호를 타고 추자항을 출발하여 17시45분 제주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한다. 추자에서 제주 오는 시간이 제주에서 추자 가는 것보다 조금 더 걸린 듯하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온다. 택시 기사님이 또 조금 거리를 돌아서 온다. 역시 요금이 조금 더 나온다.
19시. 현옥식당에 들어가 오래간만에 추자도 올레 기념으로 별식 메뉴로 7천원짜리 물회를 호기롭게 시킨다. 그러자 식당 삼촌이 심드렁하게 “그건 여름에 와서 시켜 드시고요”라고 대꾸한다. 엉, 메뉴판을 자세히 보니 계절메뉴라 쓰여 있다. 에구! 여름에만 파는 것을 겨울에 시키다니 쩝. 맨날 먹는 백반으로 저녁을 마치고 20시에 숙소에 도착하여 오늘 하루 일정을 마친다. 오늘 추자도 여행은 정말 행복했어요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