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전하는 바가 없다. 일설에는 삼국시대 이전에 존재했던 가야시대 때 세워진 사찰이라고도 하며 혹은 원효대사가 같은 백양산 너머에 있는 선암사를 창건하고 산을 넘어와 이곳에 운수사를 지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조선 영, 정조 당시 편찬된 ‘여지도서’라는 고지도에 ‘범어사, 운수사, 선암(선암사를 선암으로 기록하였다고 추정됨), 화지사’가 동시대 같은 분류로 나타나고 있어 범어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에 의해 신라시대에 창건된 고찰임을 뒷받침해 주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또한 창건연대를 뒷받침할 만한 문헌이나 자료가 발견되지 않은 탓에 추정으로만 그치고 있어 안타깝다.
이와같이 운수사는 오래전부터 법등을 이어왔으나 1592년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고 그 뒤 1660년 (조선 헌종1년)에 중건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무렵에 지은 전각의 기와조각들이 경내에서 발견된 적도 있다. 또한 도량 한편에 4~50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팽나무가 한그루 있어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1740년대에 편찬된 동래부지(東來府誌) 불우조(佛宇條)에 보면 ‘初名 新水庵, 즉 운수사의 처음 이름은 신수암이다’라고 적혀 있어 처음에는 신수암이라고 부르다가 18세기 이전에 운수사로 개명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 때 사찰의 규모가 상당히 확장되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 이유로 현 대웅전에 봉안된 삼존불좌상의 양식이 바로 이때에 해당하는 것으로 대대적인 중창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운수사 누각
운수사 누각
운수사에서 바라다본 전경
운수사 대웅보전
운수사 대웅보전내
운수사 대웅전
운수사 대웅전
시도유형문화재 제 91호
맞배지붕에 정면과 측면 각 3칸씩의 규모인 운수사 대웅전은 정확한 건축연대는 알려지지 않지만 건축 양식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여러 의견이 분분한 전각이다. 17세기 건축물로 추정되어 왔으나 일부에서 1900년대 초에 지은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법당 내부에는 목조 석가삼존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양식으로 볼 때 대웅전이 건립된 17세기 초 조선 광해군 때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있는 삼존불좌상은 본존여래상의 높이가 80cm로 비교적 작은 편에 속하지만 상호와 자세가 단정하고 조각 기법이 깔끔하여 당시 불상의 전형적인 작품으로 꼽을 만하다. 그리고 후불탱과 지장보살상 역시 이와같은 시기에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밖에 최근에 조성한 신중탱과 동종이 있다.
운수사 대웅전내
운수사 대웅전내 신중탱
운수사 삼성각
운수사 삼성각내 칠성탱
운수사 삼성각내 산신탱
운수사 삼성각내 독성탱
운수사 용왕각
운수사 용왕각내
운수사 요사
운수사 오층석탑
운수사 전경
운수사 요사
운수사 요사
운수사 찾아가는 길
운수사는 백양산 중턱 백양터널 입구에서 모라동 운수천을 따라 산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승용차로 5분정도 오르면 쉽게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