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삿포로돔에서 열린 콘사도레 삿포로와 가와사키 프론탈레의 2017 메이지 야스다 J1리그 7라운드. 양팀 골문 앞에는 한국 선수가 서 있었다. 홈팀 삿포로의 주전 수문장은 25번 구성윤, 원정팀 가와사키는 1번 정성룡이 문전을 지켰다. 6라운드에서는 가시마 앤틀러스와 세레소 오사카의 경기에서 한국인 골키퍼 맞대결이 펼쳐졌다. 가시마에는 권순태, 세레소에는 김진현이 주전 골키퍼로 나섰다.
현재 일본 프로축구 1부 리그인 J1에는 7명의 한국인 골키퍼가 있다. 세레소가 김진현 외에도 20세 이하 대표팀의 골키퍼 안준수를 데리고 있어 총 6개 팀에 한국 골키퍼가 속한 것이다. 1부 리그 전체 중 1/3이다. 2부 리그 J2에도 4명의 한국인 골키퍼가 있다. 현재 J1, J2에는 총 42명의 한국 선수가 등록돼 있는데 그 중 11명이 골키퍼다. 26%가 넘는다. 1부 리그는 18명 중 7명을 차지해 40%에 육박한다.
그 골키퍼들의 면면은 대단하다. 김승규, 권순태, 정성룡, 김진현은 슈틸리케 감독 체제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하 A대표팀)의 골키퍼로 뽑혔거나 뽑히고 있다. 구성윤은 올림픽 대표 출신이고 A대표팀에도 이미 다녀왔다. 현재 대표팀이 선발을 검토하는 골키퍼 후보군 중 J리그 소속이 아닌 선수는 김동준(성남) 뿐이다. 지난해 9월 있었던 최종예선 2연전 당시에는 아예 3명의 골키퍼가 모두 J리그 소속(정성룡, 김진현, 김승규)이었다.

국가대표급 골키퍼가 사실상 대부분 J리그에서 뛰는 현상이 2017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정성룡, 김승규, 이범영이 한꺼번에 J리그로 향했다. 올해는 K리그 최고의 골키퍼인 권순태까지 가시마 유니폼을 입었다. 이창근과 김동준 역시 겨울 동안 J리그의 오퍼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K리그의 수준급 골키퍼는 전부 다 J리그의 타깃이다.
감바 오사카에서 뛰는 오재석은 “각 팀 전력강화부(스카우트팀)가 모두 한국 골키퍼 보강을 노린다는 얘기가 리그 내에 돌 정도다. 덴소컵(한·일 대학 선발전)에서도 J리그 스카우트들이 필드 플레이어가 아닌 골키퍼를 제일 먼저 주목한다고 들었다”라며 분위기를 전했다.
한국 골키퍼의 J리그 진출 혹은 유출이라 할 수 있는 이 현상은 일본 자국 골키퍼들의 기량 저하로 인해 벌어졌다. 베테랑 골키퍼들이 일시에 물러나고 그 자리를 메워야 할 젊은 골키퍼들이 두드러지지 않자 J리그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K리그, 중국 슈퍼리그, 중동 리그들과 달리 J리그를 골키퍼 포지션에 외국인 선수 영입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했다.

폴란드, 미국, 호주 국적 골키퍼들이 왔지만 가장 많은 비중의 외국인 골키퍼는 단연 한국 선수들이다. 두가지 이점 때문이다. 국가대표, 챔피언스리그, 그리고 아마추어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관찰해 오며 스카우트에 이점이 있고 문화적으로 적응이 빠르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스카우트 돼 팀의 최고 인기 선수이자 국가대표까지 발돋움한 김진현의 성공은 한국 골키퍼에 대한 J리그 각 팀들의 긍정적 시각을 심어준 대표 사례다.
J리그 구단들이 한국 골키퍼에 대해 느끼는 매력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피지컬적 우위다. 명골키퍼 코치 출신인 김현태 FC서울 스카우트 팀장은 “일본 골키퍼들의 경우 일단 신장이 문제다. 피지컬이 좋은 외국인 선수들을 상대로 공중전과 경합에서 밀린다”라고 말했다. 김병지 SPOTV 해설위원도 “기술이 문제였다면 코치진 보강으로 해소를 하겠지만 피지컬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이 안 된다”라고 동의를 표했다. 지난해 J1리그의 아비스파 후쿠오카에서 뛰었던 강원FC의 이범영은 “일본 골키퍼들이 민첩함과 빌드업에 강점이 있다면 한국 골키퍼들은 파워풀한 플레이와 슈퍼 세이브를 많이 보여주면서 강인한 인상을 심어준다. 거기에 매력을 많이 느끼는 모습이었다”라며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다음은 정신적 강인함이다. 김병지 해설위원은 “권순태의 경우는 신장이 뛰어나지 않지만 정신적으로 뛰어나다. J리그는 어떤 계획에 따라 선수를 육성한다고 하면 한국은 살벌하게 경쟁을 한다. 거기서 살아 남은 한국 선수의 정신력은 일본 선수들이 따라올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범영 역시 “한국 선수 특유의 기질에 용병이라는 책임감이 더해지며 J리그로 건너 간 선수들 대부분이 호평을 받고 있다”라며 그 점을 인정했다.

현재 J리그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골키퍼들의 대선배인 김현태 팀장과 김병지 해설위원은 지금 현상에 대해 복잡한 심경을 나타냈다. 김현태 팀장은 “골키퍼였던 사람으로서 자부심도 느낀다. 그만큼 한국 골키퍼에 대한 평가가 좋다는 것이니까. 다만 K리그가 문제다. 나도 스카우트를 책임지고 있지만 지금 골키퍼 수급이 너무 어렵다. 수요를 못 따라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병지 해설위원은 “좋으면서도 걱정이 된다. 선수들의 선택을 뭐라 할 수 없다. 시스템, 인프라 면에서는 확실히 일본이 낫다. 대우도 좋다”라며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J리그로 간 국가대표급 골키퍼들은 K리그에서 받던 연봉의 2배 가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K리그에서 국가대표급 골키퍼 연봉은 4억원에서 5억원 선이지만 J리그는 8000만엔(약 8억 5천만원) 정도다. 유럽 진출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에서 골키퍼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해외 진출인데다 A급 대우까지 받을 수 있다. 단지 금전적 대우만 좋은 게 아니다. 골키퍼에 대한 평가와 인식도 K리그와는 차이가 있다.
“선수 입장에서는 팀 내 대우와 팬들의 관심 다 메리트다. 스포트라이트가 다르다.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팀 전력에서 골키퍼를 크게 중요시 생각 안하는데 일본은 평가와 인식 자체가 필드 플레이어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본다. 코칭스태프에서 단순히 막는 선수가 아니라 빌드업의 큰 비중이자 하나의 전술이라고 생각한다.”-이범영
“단지 이기고 지고, 실점했냐 안 했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지더라도 퍼포먼스를 봐야 한다. 최근에 노이어가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2실점 했는데 평점이 8점이었다. 일본도 내용을 평가하는 거다. 반면 한국은 실점율과 무실점으로만 본다. 전력이 약한 팀도 골키퍼가 좋으면 강등을 피할 수 있다. 강등권일수록 승점 15점은 벌어 줄 골키퍼 보강이 가장 중요. 한국인 데이터와 인식 모두 골키퍼에 대한 디테일한 접근이 떨어진다.”-김병지

문제로 인식될 수 있는 부분은 J리그로 향하는 선수의 연령대가 낮아진다는 점이다. 김진현의 경우 동국대 2학년을 마치고 나갔지만 이제는 아예 고등학생 선수들이 향한다. 지난해 여름에는 의정부FC 소속이던 98년생 안준수가 계약을 맺었다. 그로 인해 U-20 대표팀에도 해외파 골키퍼가 생겼다. 지난 더 3월 23일에는 충격적인 소식이 있었다. 1999년생 골키퍼 이윤오가 베갈타 센다이에 입단한 것. 중동중, 중동고를 다니던 그는 고교를 자퇴하고 J리그로 건너갔다. 190cm, 88kg의 대형 골키퍼로서의 잠재력을 보인 선수로 최근 J리그에 부는 한국인 골키퍼 입도선매의 예다.
흐름은 이미 J2리그에서부터 감지됐다. J2리그는 수년 전부터 대학 유망주 골키퍼들을 한국에서 데려왔다. 2017년 현재도 4명의 골키퍼 한호동, 고동민, 박승수, 임진우가 뛰고 있다. 현재 전남 드래곤즈 소속인 이호승, 대전에서 상주 상무로 입대한 오승훈도 J2에서 활약하다가 군입대 이슈에 맞물려 K리그로 왔다.
선수 본인과 부모, 학교의 생각이 맞아 떨어진 부분이다. 한국의 경우 유스 출신이면 큰 대우를 받지 못하고 프로로 가지만 해외 진출의 경우 계약금, 그리고 학교 측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고등학교의 상위 랭킹 골키퍼들이 과감히 대학 진학이나 K리그 진입 대신 J리그 진출을 고려하고 있는 이유다. K리그의 경우 만 19세부터 계약이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해 J리그는 그 전에 프로 계약을 체결하는 맹점을 노린 방식도 눈에 띈다.

김병지 해설위원은 “당분간 이런 일이 계속될 것 같다. 누적되면 K리그 골키퍼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연맹 차원에서 인지를 하고 프로 가계약 등의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라며 방향타를 제시했다. 이범영은 “지금 J리그에 진출한 골키퍼 중는 2가지 모델이 있다. 김승규, 정성룡, 권순태 등 이 곳에서 검증을 하고 간 선수와 김진현, 구성윤처럼 유망주 시절에 나가 J리그에서 커리어를 쌓고 역으로 한국 대표팀에 진입한 경우다. 아마 그 어린 선수들은 제2의 김진현, 구성윤을 꿈꾸며 나간 것이다. 선택의 차이고 케이스가 다른 것이다”라며 이해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한국인 골키퍼들의 J리그 진출에는 명암이 공존한다. 대형 선수와 유망주에 이르는 대거 이탈로 K리그에 골키퍼 공백이 발생했다. 이태희, 윤보상, 홍정남, 강현무 등 새로운 선수들이 나오고 있어 꼭 나쁜 흐름은 아니지만 상위권 팀들이 과거만큼 확실한 수문장을 확보 못해 경기력에 차질을 빚고 있다. 2번 혹은 3번 골키퍼가 주전으로 자리 잡아버렸다. 수원 삼성의 경우 정성룡의 공백을 메우지 못해 지난해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김현태 팀장은 “A급 대우를 받을 수 있고, 경기력의 질을 좌우하는 선수가 다 빠져 나가버렸다”라며 현장의 고민을 전했다. 동시에는 “그만큼 K리그 구단들이 골키퍼에 대한 대우를 생각해야 한다. 필드 플레이어들의 연봉 인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골키퍼는 약했다.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라며 해결책을 던졌다.
글=서호정
사진=J리그, Gettyimages/이매진스
첫댓글 우리가 모르는선수들도 많이 나가있네요ㅎㅎ
그러게요
재원이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