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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고난(distress)”이라는 단어(차라)는 “환난”이라고 번역되었는데 “좁은”, “고통”, “대적”을 뜻하는 히브리어(차르)의 다른 형태입니다.
우리를 묶고 속박하고 우리를 좁은 곳에 가둬 활동범위를 좁게 만들고 그리하여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것들이 곧 우리의 대적들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적대하는 자들로부터 고통을 당합니다(습 1:17, 슥 8:10).
창세기 35장 3절에 “나의 고난(苦難)의 날에 대답하시고 그 길에 나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께 내가 베델에 제단을 만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고난의 날에 대답하신 신(神)이십니다(창 35:3).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난의 날에 우리에게 대답하여 주실 것을 원합니다.
불로 응답하는 그 하나님, 그가 참 하나님(God)이십니다(왕상 18:24). 야훼께서 엘리야에게 응답하심으로써 참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고난 안에 시간들에게 성채가 되십니다(시 9:9).
2. 하나님께서는 고난 안에 발견되시는 도움이 되십니다(시 46:1).
3. 하나님께서는 고난 안에 이스라엘의 구원이 되십니다(시 81:7).
1. 하나님께서는 고난 안에 시간들에게 성채가 되십니다.
시편 9편 9절에 “하나님께서는 그 압박되는 자에게 성채시며, 그 고난 안에 시간들에게(in times of trouble) 성채시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압박되는 자를 위하여(for) 성채시며 그 고난 안에 시간들에 성채십니다.
“성채(城砦)”라는 한자어는 “성과 울타리”를 뜻하는 말입니다. 사전적인 뜻은 “성과 요새(要塞)를 아울러 이르는 말”입니다.
“요새”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에 튼튼하게 만들어 놓은 방어 시설로, 튼튼하게 만들어 놓는 까닭에 차지하거나 달하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요새를 구축하는 것은 적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서인데, 적이 차지하거나 도달하기 어렵게 요새를 쌓아서 적의 침략을 막습니다.
“압박(壓迫)”이라는 한자어는 “누르고 다그치다”를 뜻하는 말인데, 사전적인 뜻은 “강한 힘으로 내리누름”, “세력으로 내리누름”입니다.
여러 가지 압박으로 누름을 받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성채가 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압박되는 자에게 성(城)과 방어 시설이 되십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일로 눌리면서 살아갑니다. 여러 일로 눌리는 자가 압사(壓死)하지 않게 하나님께서 막아 주십니다.
우리가 받는 고난의 시간들 안에 하나님께서는 성채가 되어 주십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고난의 시간들”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고난의 시간들 안에 성채가 되어 주시는 분이시니, 우리는 고난의 시간들 안에 이런 신앙고백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시편 10편 1절에 “야훼여 왜 당신은 간격 안에(afar off) 서시며 왜 당신은 그 고난 안에(of) 시간들에게 가리십니까?”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 억울함을 당한 성도가 하나님께 거칠게 항의하고 있습니다.1) 시인은 하나님께 멀리 저쪽에(afar off) 서 계시다고 불평합니다.2) 하나님께서 멀리 서 계신 주제는 시편의 애가에서 계속 반복됩니다.3)
시인은 하나님께 왜 고난의 시간에 숨으시느냐고(hide) 따졌습니다. 자식이 두들겨 맞고 있는데 아버지가 겁을 먹고서 골방에 숨어 있다면 자식은 아버지에게 배신감을 느껴 아버지를 믿지 못하고 살 것입니다.4)
자식이 맞고 있을 때에 아버지가 와서 ‘그만 때리시오’ 하고 막아야 되는데, 자기도 맞을까봐 숨는다면 그 아버지를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우리의 고난에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상황을 다 보고 계시면서 왜 침묵하고 계실까요?5)
다윗은 반역자라는 누명을 쓰고 젊은 시절에 사울에게 쫓겨 다녔는데, 마침내는 폭발한 다윗이 하나님께 따지는 내용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대단히 도전적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6)
하나님의 백성은 처음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줄 알고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으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를 고민합니다.7) 그러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고난의 시간들에게 성채가 되십니다(시 9:9).
시편 20편 1-3절에 “야훼께서 고난의 날 안에 당신께 대답하시겠으며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당신을 높은 곳에 세우겠으며(set up). 그가 당신의 원조를 성별에서 보내시고, 시온으로부터 지탱하실 것이며. 당신의 모든 공물을 기억하시고 당신의 번제를 기름지게 하십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고난의 날에 야곱에게 대답해 주셨는데(창 35:3), 하나님께서 고난의 날에 이스라엘의 왕에게 대답해 주십니다(시 20: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을 고난에서 나와서 높은 곳에 서게 하십니다.
다윗은 이 시편을 공동체에 가르쳤는데 왕의 승전을 위한 기도입니다. 공동체의 기도이자 왕의 승전을 위한 공동체의 응원가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의 날에 응답하실 것입니다”라고 공동체가 응원합니다.
전투에 당면한 것이 고난인데 다윗 왕은 많은 전투에 당면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왕국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많은 전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넓히는 삶을 살려면 전투의 고난에 당면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와 응원가는 우리 신자들을 위한 것으로 적용됩니다. 신약시대에 왕의 제사장 직이 신자들에 주어졌기 때문입니다(벧전 2:9). 전투에 직면한 고난의 날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확장하는 삶을 살려고 하는 때에 이런 삶을 막으려고 하는 대적들과 필연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영역을 좁히려고 하는 대적들로 인하여 고난에 당면하게 됩니다.
이 고난의 날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하셔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 전투의 날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시기를 함께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입니다”라고 서로를 응원하며 함께 기도합시다!
내가 당면하여 있는 고난이 하나님의 왕국을 확장하기 위해서입니까? 하나님의 왕국을 찾는데(마 6:33) 대적들로 인한 고난에 처하였습니까? 우리를 막는 대적들 때문에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까?
한 단계 올라설 수 없게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턱은 무엇입니까?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될 수 없게 막고 있는 대적들 때문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역이 넓어지면 그만큼 대적들의 영역은 좁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쪽이 넓어지면 한쪽은 좁아지니 둘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 전투를 ‘영적 전투’라고 하는데 우리는 영적 전투를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영적 전투에서 이길 수 있게 해 주실 것을 기도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승리하지 못하게 전력을 다해 우리를 막는 대적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이길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셔야 합니다.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왕께 응답하실 것입니다”라고 기원합니다(May).
여기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왕께서 지금 하나님의 전쟁을 싸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위한 전투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의 날 안에 대답하시기를(answer) 기원합니다. “고난”은 “대적”들로 인해 “좁은” 환경에 처하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막는 대적들을 물리치고 넓은 곳으로 나아갈 것을 기원합니다. 지금 우리는 고난의 날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입니다. 고난의 날 안에 하나님께서 그의 싸움을 싸우는 우리에게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높은 곳 위에 세우심으로써 고난의 날에 응답하시며, 그는 안전한 높은 곳 위에 세워짐으로써 전쟁에 이기게 됩니다. 고난의 날에 하나님께서 우리로부터 멀리 계시지 않으십니다(시 22:11).
시편 34편 6절에 “이 가난한(poor) 자가 불렀고 하나님께서 들으셨고, 그를 모든 그의 고난들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가난한 자”는 괴롭힘을 받게 되어 가난해진 자를 뜻합니다(창 15:13). 이집트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무거운 짐으로써 400년간 괴롭혔습니다. 하나님께서 과부와 고아를 괴롭히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출 22:22).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괴롭히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우리는 괴롭힘을 받는 영혼을 만족시켜 주어야 하며(사 58:10), 그러면 그 암흑 안에 우리의 빛이 떠오르고 그 정오와 같이 될 것입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키실 것입니다(사 58:11).
사람이 자기 잘못 때문에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는데, 그와 같은 때는 회개하여야 합니다. 회개하고 돌이킬 때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것과 같이 그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괴롭힘을 받는 영혼을 만족시키면, 그도 우리를 만족시키십니다.
어찌되었든 이런 이유로 괴롭힘을 받게 되는 자가 “가난한 자”입니다. 가난한 자가 하나님께 소리칠 때에,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출 22:25).
하나님께서 야곱의 고난의 날에 그에게 대답해 주셨습니다(창 35:3). 우리가 우리의 고난에 날에 부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답하십니까? 그 영(spirit)에 가난한 자가 부르고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들의 외침을 잊지 아니하십니다(시 9:12). 그들이 외쳤고 그가 들으셨고 모든 고난들에서 구하셨습니다(시 34:17).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시간에 의인들의 안전한 장소십니다(시 37:39). 하나님께서는 올바른 자들을 도우시고 해방시키실 것입니다(시 37:40).
2. 하나님께서는 고난 안에 발견되시는 도움이 되십니다.
시편 46편 1절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피난처와 보호시며, 고난(trouble) 안에 매우 발견함을 받으시는 도움이시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잘못된 대상을 그 피난할 반석으로 삼고 그 신(神)들로 섬긴 사람들은 막상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신 32:37). 누구를 피난할 반석으로 삼고 나의 신(神)으로 섬기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가 피난할 반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다른 피난처는 없습니다. 다른 피난처들은 가라앉는 모래 위래 쌓은 것입니다. 그 피난처들은 우리를 보호할 수 없습니다.
룻은 하나님의 날개 아래 피난하기 위한 목적으로 왔습니다(룻 2:12). 야훼께서는 내가 그 안에 피난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며(삼하 22:3), 그는 그 안에 피난하는 모두에게(to all) 방패십니다(삼하 22:31).
하나님 안에 피난하는 모든 자들은 영원히 기뻐할 것입니다(시 5:11). 기뻐하게 해 달라는(let) 시인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안에 피난하였으니, 그의 보호로 인하여 기뻐하게 하셔서 기뻐하게 될 것이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안에 피난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 안에 신뢰한다는 고백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가 믿는 대상 안에 피난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 안에 피난하는 것으로 증명됩니다. 다윗은 그의 하나님 안에 피난하였습니다(시 7:1, 11:1).
다윗은 신(God) 안에 피난하였으니 보존하여 달라고 합니다(시 16:1).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이 그 안에 피난할 나의 반석이십니다(시 18:2). 그는 그 안에 피난하는 모두에게 방패십니다(시 18:30). 하나님 안에 피난한 자는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시 25:20, 31:1, 71:1), 왜냐하면 그 안에 피난하는 모두에게 그의 보호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피난하는 모두는 평생 지속적으로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피난하는 모든 자는 죄가 있지 아니할 것입니다(시 34:22).
아담의 자손이 하나님의 날개의 그늘 안에 피난할 것입니다(시 36:7). 다윗은 하나님의 날개의 그늘 안에 피난할 것이라고 하였으며(시 57:1), 다윗은 하나님의 날개의 은신처 안에 피난할 것이라고 합니다(시 61:4).
인류 안에 신뢰하기보다 하나님 안에 피난하기가 좋으며. 귀족들 안에 신뢰하기보다 하나님 안에 피난하기가 좋습니다(시 118:9). 귀족들은 위기의 순간에 우리를 도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 피난하는 사람들에게 방패십니다(잠 30:5).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 피난하는 사람들을 아시는 분이십니다(나 1:7). 낮고 가난한 백성은 하나님의 이름 안에 피난할 것입니다(습 3:12).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피난처와 보호자(strength)가 되시며 고난 안에 매우 발견되시는 도움(present help)이십니다(시 46:1).
하나님께서 우리에 피난처와 보호(protection)가 되십니다(시 46:1). “보호”(오즈)는 “힘”(오즈)과 발음과 형태가 같으므로 “힘”으로 번역되었으나 문맥은 “보호”를 지지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 보호를 주시기를 기원합니다(시 29:11). 하나님께서 피난처와 보호자가 되십니다(시 46:1).
요셉의 아버지 야곱의 신(神)께서 요셉을 도우실 것입니다(창 49:2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다윗을 도우셨습니다(삼상 7:12, 대상 12:18).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들을 도우셨습니다(대상 15:26). 하나님 안에 돕기와 넘어지게 하기에 능력이 존재합니다(대하 25:7-8). 하나님께서 유다의 왕을 도우셨습니다(대하 26:7).
하나님께서 돕지 아니하신다면 우리를 도울 자가 없습니다(시 22:11). 다윗의 마음은 하나님 안에 신뢰하고 그는 도움을 받았습니다(시 28:7). 다윗은 하나님께 그에게 돕는 자가 되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시 30:10). 하나님께서 올바른 사람들을 도우시고 해방시키실 것입니다(시 37:40).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에게 돕는 자가 되십니다(시 54:4).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의 영광의 일에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시 79:9). 우리를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우셨고 위로하셨습니다(시 86:17).
하나님께서 돕지 아니하시면 도울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시 107:12). 다윗은 그의 하나님께 그를 도와주실 것을 기도한 것입니다(시 109:26).
다윗은 하나님께서 돕는 자들 가운데 계신다고 하였습니다(시 118:7).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우셨습니다(시 118:13). 그의 손이 나를 돕습니다. 그의 정의들(judgments)이 나를 도울 것입니다(시 119:175).
하나님께서 유다의 대적들로부터 돕는 자가 되실 것입니다(신 33:7). 그 신(神)과 같이 없으니, 우리의 조력자에 하늘을 올라타시는 분이시고 그 장엄 안에 구름을 그와 같이 하시는 분이십니다(신 33:26).
다윗은 그의 도움에 서둘러 달라고 합니다(시 22:19, 38:22, 40:13). 하나님께서는 고난 안에 발견되시는 현재의 도움이십니다(시 46:1).
시편 50편 15절에 “고난의 날에는 나를 부르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끌어내고 너는 나를 영화롭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니엘 디포(Daniel Defoe, 1659경~1731)의 『로빈슨 크루소』에서, 무인도에 정착한 로빈슨 크루소는 배에 있는 상자 속에서 성경책을 꺼내 시편 50편 15절을 읽게 되었습니다.8)
무인도에 남겨진 로빈슨의 처지는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가 상자 안에서 찾은 성경에서 그 눈에 띈 구절이 이 구절입니다.9) “고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는 시편 50편 15절 말씀입니다.
“고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끌어낼 것이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날에 하나님을 “부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고난의 날에 하나님을 부르면 하나님께서는 고난에서 “끌어낼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그의 명령에 순종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그의 약속이 따르고 그의 약속이 이행됩니다. 하나님을 부르면 그가 우리를 우리가 처한 고난에서 끌어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날에 그를 부를 때에 끌어내실 것을 말씀하셨고, 끌어냄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인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실 수 있으시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10) 하나님께서 “고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고난을 당한 날에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우리는 고난의 날에 반드시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우리가 부를 대상은 다른 종교인들이 믿는 다른 신(神)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부르는 자를 끌어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반드시 그 고난으로부터 끌어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을만한 분이셔서, 그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행하십니다. 믿을만한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는 자를 끌어내시겠다고 말씀하셨으므로 그는 그를 부르는 자를 반드시 끌어내실 것입니다. 그러하지 아니하시면 하나님께서는 믿을만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을만하시니 그가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을 반드시 끌어내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면, 우리를 끌어내심으로써 영화롭게 되십니다. 고난의 날에 하나님을 부르면, 우리는 고난으로부터 끌어냄을 받아 좋고 하나님께서는 그 일로 인해 영화롭게 되셔서 좋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의 날에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고난의 날에 하나님을 부름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를 부르는 것이 삶의 목적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때에 하나님을 부르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끌어내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의 날에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시 50:15).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건지실 것을 약속하셨으므로 우리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to) 불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라고 명령하신 까닭에, 우리는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우리는 고난의 날에 역경의 유익을 누려야 합니다. 역경의 때에는 어려움을 몰랐다면 알지 못하는 구원을 경험합니다.11)
하나님께서 부르라고 명령하신 것은 도울 의지를 보이신 것입니다.12) 하나님께서는 도우시려고 “고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고난의 날에 하나님께 구원받은 이들이 즐거워서 노래 부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으로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13)
“약속(約束)”이라는 한자어는 “묶음”이라는 뜻을 가진 말인데, 약속한다는 것은 그 약속에 자신을 묶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심으로 끊을 수 없는 줄로 자신을 묶으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날에 자신을 부르는 이들을 도와주셔야 합니다.14)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번복하실 수 없으신 까닭에 반드시 도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반드시 완벽하게 이행하실 것입니다.
고난의 날에 하나님을 부른다면 고난에서 끌어냄을 받을 것입니다.15) 하나님께서 그의 방법에 의해 우리를 고난에서 끌어내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시나, 때가 되면 고난에서 끌어내십니다.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믿음만 가진다면 현재를 위한 진정한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16)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려고 오실 때에 바람의 날개를 타고 오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불러야 하나님께서 나에게 대답하십니다.17)
하나님께서 끌어내신다고 하신 “너”에서 “나”를 제외시키지 마십시오! 내가 고난의 날에 하나님을 부르면 하나님께서 나를 끌어내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18)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심에 의해 영광을 받게 되실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에서 끌어냄을 받고 우리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자비를 풍성하고 값없이 베푸는 분이시므로 우리는 그에 합당한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1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끌어내심에 의해 영광을 받고 싶어 하십니다.20) 우리가 고난의 날에 하나님을 부를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고난으로부터 끌어내심에 의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고난 안에 이스라엘의 구원이 되십니다.
시편 81편 7절에 “너는 고난 안에 불렀고 내가 너를 구하였노라 내가 천둥의 덮개 안에 너에게 대답하였노라(answer)”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로 야훼 하나님께 불러야만 하겠습니다(시 3:4). 그가 그 성별의 산으로부터 우리에게 대답하실 것입니다.
다윗은 그가 부르는 때에 대답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시 4:1). 그가 부르는 때에 하나님께서 들으실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시 4:3).
다윗은 하나님을 불렀으니 대답하시리라고 기도하였습니다(시 17:6). 그는 하나님의 귀를 기울여 주시고 들어 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완전히 찬양되실 하나님을 부르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시 18:3). 그가 하나님께 부르고 하나님께서 그의 음성을 들어 주십니다(시 18:6).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그 어명에 절대 복종하는 사람이 부를 때에 하나님께서 대답하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시 20:9).
다윗은 하나님을 불렀고, 침묵하지 마실 것을 구하였습니다(시 28:1). 다윗은 하나님을 불렀으므로, 부끄러워하지 아니할 것입니다(시 31:17). 사악한 자들은 부끄러워할 것이며 그들이 저승에 침묵을 지킬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불렀으며 하나님께서는 들으셨습니다(시 34:6). 그리고 그를 그의 모든 고난들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고난 안에 시간들에게 성채가 되시는 하나님께 피난하고, 고난 안에 발견되시는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을 찾고, 고난 안에 이스라엘의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부르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1) 김서택, 『시편 강해 1』 (서울: 도서출판 이레서원, 2018), 121.
2) Jacobson 외 2명, 『NICOT 시편』, NICOT 성경주석, 182.
3) 김정우, 『시편 주석 Ⅰ』, 315.
4) 김서택, 『시편 강해 1』, 122.
5) 김서택, 『시편 강해 1』, 122.
6) 김서택, 『시편 강해 1』, 122.
7) 김서택, 『시편 강해 1』, 122.
8) Charles H. Spurgeon, 『기도와 영적 싸움』, 김귀탁 옮김 (고양: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2), 14.
9) Charles H. Spurgeon, 『찰스 스펄전의 야베스의 기도』, 유재덕 옮김 (서울: 도서출판 브니엘, 2009), 181-182.
10) Spurgeon, 『찰스 스펄전의 야베스의 기도』, 191.
11) Spurgeon, 『찰스 스펄전의 야베스의 기도』, 192-193.
12) Spurgeon, 『찰스 스펄전의 야베스의 기도』, 194.
13) Spurgeon, 『찰스 스펄전의 야베스의 기도』, 197.
14) Spurgeon, 『찰스 스펄전의 야베스의 기도』, 199.
15) Spurgeon, 『찰스 스펄전의 야베스의 기도』, 200.
16) Spurgeon, 『찰스 스펄전의 야베스의 기도』, 201-202.
17) Spurgeon, 『찰스 스펄전의 야베스의 기도』, 203-204.
18) Spurgeon, 『찰스 스펄전의 야베스의 기도』, 205.
19) Spurgeon, 『찰스 스펄전의 야베스의 기도』, 207.
20) Spurgeon, 『찰스 스펄전의 야베스의 기도』, 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