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 이십일세기 병원에서 거의
이년째 들어가고 있었다
1
머리를 직접 깍아준다며 영등포
여성 발전센터에서
단기 미용을 배워서 바리깡 등을 구입했다
처음 투블럭으로 깍아주었다
그리고 주위 환우들에게 권유했으나
실실들 웃으며 다음에요
하며 도망을 간다
동생도 다음부터는 미용실로 가겠다고 한다
바리깡과 가위등은 한 번 쓰곤
지금껏 장롱 밑에 얌전히 앉아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미용실 가는 것이 세상으로 나가는 명분이며
섬세한 손길을(?) 느낄 수도 있는 길인데 ‥
내가 생각이 짧았다고 느꼈다
게다가 미용솜씨도 바가지 머리로
만들어 놓았으니
2
전동차로 전의 병원에서는
환우의 발등을 타고 넘더니
이번에는 길에 세워둔
외제 오토바이를 쳐서 쓰러뜨렸다
전화가 와서 어떻게 할 것이냐며 따지고 물었다
아시다시피 환자가 전동차로 쳤는데
어떻게해요 되물었다
한참을 전화가 오고 가고 하다가
위로금 정도의 금액으로 해결을 했다
이 사건을 끝으로 전동차는 안에서나
밖에서나 타지 않게되었다
섭섭했겠으나 이러다 큰일나겠구나 하는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3
손톱 발톱을 깎아주는데 두발로
걸어다니는 사람들도 환자인지라
마귀 발톱처럼 길어진
발톱을 혼자서 깎는데 어려움이 있다
동생을 깍아주고 나면 같은 방
환우 서너명의 손 발톱을 깍아 주는 것도 일과였다
커피도 마시고 농담도 하고 앉아 있다보면
오후가 되고 가야할 시간이 된다
올라갑니다 하고 일일이 인사를 하면
그렇게 미안해하는 표정의 분위기일 수가 없다
그리고 다소 쓸쓸한
해는 서산으로 가고
저녁의 힘은 얼마나 센가, 다들 집으로 간다고
허림 시인님은 말을 했지만
온가족이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인데
누구는 남고 누구는 간다
4
생각한다
이곳에서 이렇게 동생이 있어
한나절 함께 웃고 떠들고요
손 발톱 깍아주고 소소한 일들
챙겨주지만 제 삶은 이게 다가 아니예요
전 이곳만 나가면 갈 곳 못 갈 곳 다가고
맛집도 찾아가고 근사한 곳에서
술 한 잔도 할거예요
좋은 사람들과 영화도 볼거예요
그 뿐인가요
달려가 강가의 미명도 볼 것이고요
산으로 내리는 노을도 만날거예요
그러니 내게 그렇게
미안해하지 말아요
5
그런 날은 차를 타고 갈 수가 없었다
차는 주차장에 그대로 둔 채
병원에서부터 걷는다
부천에서 가끔 마을버스를
타고 넘어오던 길을 기억해내며 걷는다
여우고개입구에서 구비구비 돌아가면
부천역으로 연결된다
두 시간 조금 넘게 소요되는 길이다
어둠이 내린길을 나도 홀로 걷는다
병원에 남겨놓고 가는 사람들에게
덜 미안할 것 같아서이다
걸어가면서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계속해서 되뇌였다
여우고개에는
지금도 미안해요 라고
찍힌 발자국이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