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쓸까 말까. 비는 아주 간간이 내렸다. 며칠 전 아는 동생이 언니 얼굴 좀 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말에 아점을 하기로 한 날이다.
동생은 문화센터에서 만난지 십년 쯤 됐다. 집이 가깝다 보니 친동생보다 많이 만난 듯 하다. 여지없이 빨간 모닝을 몰고 아파트 앞에 나타났다.
밀린 얘기가 터져 나온다.
언니 나이 든 여자는 어떤 취급 받는 줄 알아?
몰라!
투명인간
나는 요즘 말야 마지막 사랑도 생각해 보곤 해.
이제 접을 때도 됐는데 사랑을 고민한다니까.
언니 못 들어 봤어?
뭘!
언니 나이엔 꼭 사랑을 해봐야 한데.
왜ㅡ.
꽃이 지는 시기잖아?
응.
지는 그때 확 다시 피어오르는 절정이 더 아름답다는데. 꽃도 한 번에 지지는 않잖아.
고ㅡ래? 멋지다
그런 사랑이 또 올까? 왔을까?
어떤 느낌의 사랑인지. 다시 타오르면 대단할꺼 같기는 해.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성격이 좋아 많은 친구가 있다보니 아는 거,들은거가 많은 동생이다.
동생은 요양보호사를 잠시 했었는데 지금은 간간이 나랑 가끔 탁구를 치기도하고 산책을 하기도 하는 동생이다.
동생들이 고향에 있는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라고 들볶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큰 딸이라 또 큰 일 해야겠네. 아직 건강하신데 좀 더 시골 집에 그냥 계시라 하지.
요양보호사가 매일 드나들어도 해결 안 되는 것들이 있고 혼자 나가셔서 길을 잃을까, 쓰러질까.동생들이 걱정들이 많네.
우리는 메밀 옹심이를 먹으러 식당에 들어 갔는데 자리가 없다. 평일인데도 뭔 사람들이 많은지.그냥 나오려는데 동생이 혼자 앉아 계신 오빠 정도 나이 같은 분한테 말을 건다.
같이 앉아도 될까요?
흔쾌히 허락한다.
집이 어디세요?
그 분이 말을 건넨다.
이 근처 살아요.
아ㅡ예. 여기 맛집이라 먼데서도 많이 오거든요.
제가 이 자리에서 사업도 이년 간 했었어요. 마주 앉은 그 분을 비로소 자세히 봤다. 베래모 모자를 쓰시고 약간은 화가 분위기가 풍기는 분이셨다.
저희가 혼자 식사하시는데 같이 테이블을 써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동생과 나는 또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런데요.
예.
곤지암도 있고 초월도 있고 어디쯤 사시는거죠.
또 묻는다.
초월 뭐 아파트에 살아요.
난 속 시원히 내뱉았다. 그 말에 동생은 또 피식 웃는다.
작은 항아리에서 열무김치랑 생채 무침을 집게로 꺼내 접시에 얹어 주고는 많이 드셔요 하고 다시 봐 드렸다.
이년 간 하던 사업은 왜 접으셨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 분은 다 드시고는 아쉬운 듯 쭈빗쭈빗거리다 먼저 가셨다. 동생이랑 옹심이 칼국수를 먹고 요양보호사 할 때 알고 있던 할머니한테 가자며 식당에서 파는 약과를 샀다. 봉현리에 도착해 할머니께 약과를 드리고 나와 비로 물방울이 맺힌 오가피순을 뜯으며 동생은 내게 말한다.
언니.언니는 아주 애교를 타고 났어. 몸 속에서 저절로 우러 나와. 남자가 꼼짝 못하고 빠져드는 애교 말야ㅋ
나 애교 없다고 싫다는 사람도 있는데.
아니거든!
애교는 강릉으로 이사 간 희숙이가 많았지. 코맹맹이 소리 내면서 아무나 오빠 하면서 살살 녹이는 애교.
언니는 아주 저절로 타고 난 애교고, 희숙이는 지가 필요해서 원해서 가식으로 하는 애교고.
오가피나무 순을 따다가 둘은 팝콘처럼 웃음이 터졌다.어느 집 마당 밥태기 나무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꽃이 보인다. 짙은 분홍이 봄의 절정이 온 듯 환하게 봉현리 동네에 불을 킨 것처럼 달아 올랐다. 박완서 소설 친절한 복희씨에서 강간을 당해 얘들 넷을 낳고 평생을 남편을 원망하며 병 수발까지 들고 사는 여자. 어느 날 외지에서 온 젊은 남자가 손을 잡아주며 일하다가 튼 손에 바세린을 발라 주다가 둘이 살짝 흥분을 느끼던 그 장면이, 그 모습이 화사한 밥티나무 꽃처럼 피었다. 아직은 봄이다
프로필
김미화
월간 한맥문학 시부문 등단
문학창조 소설 신인상 수상
광진구청장상 수필부문 수상
조지훈문학상 평론부문 우수상 수상
현대미술대전 사진 입상
첫댓글 출판사 사장님 쟝르 스마트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