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나의 방계 9대조이신 始자 亨자 할아버지께서, 생부(生父)이신 나의 10대조
할아버지이신 爾자 性자 할아버지의 행적을 기술하시고, 그 끝에 지어 올리신 銘의
내용이다.
<銘> - 銘이란 문체(文體)의 한 이름으로 그릇에 새겨 스스로를 경계하는 글 또는 묘비
등에 새겨 고인(故人)의 덕(德)을 찬양하는 글이다. 여기서는 후자(後者)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 (출처 : 한한대자전 제3판, 민중서림, 2009년, 2390쪽)
恭 惟 皇 考 (공유황고) 삼가 생각하건데 돌아가신 아버님께서는
博 識 君 子 (박식군자) 아는 게 많은 분이셨다
忠 信 行 督 (충신행독) 말은 진실하고 행동은 말과 일치하셨고
孝 友 天 至 (효우천지) 효성과 우애 또한 지극하셨다
文 章 是 事 (문장시사) 글을 읽고 짓는 것으로 일을 삼으셨고
禮 義 交 備 (예의교비) 예(禮)와 의(義)를 두루 겸비하셨다
藻 神 奎 壁 (조신규벽) 빼어난 문장은 밤하늘의 별처럼 빛났고
律 協 金 石 (율협금석) 시의 운율은 악곡에도 잘 부합되었다
執 轡 班 馬 (집비반마) 사마천과 반고를 고삐잡고 함께 가듯
날 步 賈 屈 (날보가굴) 가의와 굴원과도 걸음을 나란히 하셨다
蔚 乎 藝 苑 (울호예원) 문단(文壇)에서 재능을 떨치셨으며
藹 矣 林 府 (애의림부) 문장가들 속에서도 이름이 높으셨다
白 戰 建 幟 (백전건치) 시를 지으면 그 솜씨 떨치셨고
靑 衿 爭 覩 (청금쟁도) 유생들이 다투어 만나보려 하였다
風 雅 已 衰 (풍아이쇠) 세상에는 고상한 글이 이미 쇠하였고
道 學 不 明 (도학불명) 도학도 밝아지지 못하였다
甲 第 嵬 擢 (갑제외탁) 과거시험에서 발탁되셨기에
輿 情 咸 傾 (여정함경) 사람들 마음이 모두 쏠렸다
慶 獲 龍 騰 (경획용등) 용이 나는 경사를 얻으셨고
志 勵 鹿 鳴 (지려녹명) 급제하여 뜻을 세워 힘을 쓰셨다
風 雲 有 契 (풍운유계) 군신 간의 좋은 만남으로 인해
日 月 思 合 (일월사합) 해와 달이 합할 것을 생각하였다
皇 朝 拔 茅 (황조발모) 나라에서 인재들을 등용하여
群 彦 加 額 (군언가액) 뭇 선비들이 우럴어 보았다
一 鳴 驚 人 (일명경인) 한번 분발하니 사람들 놀랐으며
再 捷 指 日 (재첩지일) 두번 째 급제도 멀지 않았었다
鵬 翼 方 展 (붕익방전) 바야흐르 붕새가 날개를 펼치려 함에
驥 步 便 蹶 (기보편궐) 문득 천리마의 걸음이 쓰러지고 말았다
패 水 才 渡 (패수재도) 패수(한강)를 겨우 건너 고향 집에 오셔서
瓊 夢 遽 迫 (경몽거박) 갑작스럽게 별세를 하셨다
顔 回 短 命 (안회단명) 공자님 제자 안회와 같이 단명하셨고
劉 蕡 負 怨 (유분부원) 한나라의 유분처럼 원통하게 되었도다
悲 結 廉 空 (비결염공) 이에 불초의 슬픔이 온 몸에 맺혔고
怨 人 匏 懸 (원인포현) 한스러움이 외로운 박처럼 달려 있다
於 皇 我 考 (어황아고) 아 아 나의 아버님께서는
金 華 之 士 (금화지사) 고상한 선비시고
玉 界 之 仙 (옥계지선) 옥계의 신선이셨다
靑 蓮 之 才 (청련지재) 이태백과 같은 시재를 지니셨고
黃 庭 之 藝 (황정지예) 황정견과 같은 문장가셨다
文 不 才 人 (문불재인) 이러한 선비가 세상에 없게 되니
道 忽 墮 地 (도홀타지) 도덕도 땅에 떨어지는듯 하다
鸞 鳳 已 遠 (난봉이원) 난새와 봉황은 이미 멀리 가고
악 작 不 咬 (악작불교) 봉황새도 울지를 않는다 *악 (獄아래 鳥) * 작 (族아래 鳥)
天 降 翡 翠 (천강비취) 하늘이 비취처럼 귀한 분을 내셨기에
人 慕 玉 簫 (인모옥소) 사람들은 옥피리같이 사모하였다
吁 嗟 孑 遺 (우차혈유) 아아...세상에 외롭게 남겨진 이 몸이여
圮 絶 罔 堦 (비절망계) 선업(先業)은 끊어지고 밟고 올라갈 사다리도 무너졌네
覆 巢 餘 卵 (복소여란) 뒤엎어진 새 집에 알들만 남았으니
無 所 學 識 (무소학식) 이제 배워서 알 곳이 없게 되었구나
力 乏 種 積 (역핍종적) 쌓은 능력은 모자라고
才 滅 雕 琢 (재멸조탁) 시문(詩文)을 다듬는 재주도 없구나
握 筆 縱 橫 (악필종횡) 붓을 잡아 자유롭게 써 보려고 하지만
臨 紙 (임지 ) 종이를 대하니 어둔 길을 더듬듯 하는구나
豈 望 善 述 (기망선술) 어찌 내가 글 잘짓기를 바랄까
謹 撰 先 德 (근찬선덕) 삼가 아버님의 덕을 적을 뿐이네
欲 效 古 人 (욕효고인) 옛 사람을 본받고자 하였으나
恐 缺 眞 跡 (공결진적) 아버님의 진정한 자취를 빠뜨릴까 두렵구나
敢 記 瓜 질 (감기과질) 감히 자손들의 이야기도 기록하여 * 瓜변에 失
附 錄 于 末 (부록우말) 마지막에 부록으로 실어 본다
風 樹 思 切 (풍수사절) 별세하신 아버님 생각 간절하나
泣 血 何 及 (읍혈하급) 피눈물을 흘린 들 어이 그 애통함에 미치겠는가
(참 고)
이 銘을 기록하신 始자 亨자 할아버지(舊名은 泰岳)께서, 자신이 11세에 별세하신 생부(生父)
爾자 性자 할아버지 (필자의 10대조)의 생애를 요약하여 정리한 자료이다. 이 글을 기록하실
때의 연세가 75세시고, 그후 10년을 더 사시다가 85세에 별세하신 始亨 할아버지께서 生父의
별세 후 64년이 지나서 이 명문(銘文)을 기록하신 것이다.
이 글 곳곳에 구구절절이 부친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비록 백부(伯父)
이신 爾자 昌자 할아버지께 입양되어, 낙주공 할아버지의 종가(宗家)를 이어 가셨지만 세월이
흘러갈수록 生父를 그리워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글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 글의 출처(出處)는 '동곡학사구공가장(東谷學士具公家狀)'이라는 이름으로 가문에 전래되어
오던 것을, 이를 소장하던 族弟 周會 군이 충북 영동대학교 호서문화연구소에 번역을 의뢰하여
同 대학의 '신범식' 교수께서 연구자료집에 발표한 것을 발췌해 이곳에 게재하였다. 글의 번역은
同 책자에 게재된 내용을 일부 첨삭하여, 筆者의 관점에서 부분 수정하였음을 밝힌다.
<자료출처>
『동곡학사구공가장 역주, p 285~348, 호서문화 제 2집, 2014년, 영동대학교 호서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