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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어록에 나타난 염불선
/ 조준호 (한국외대 남아시아연구소)
목 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염불선의 연원과 위상
Ⅲ. 보리달마와 염불선
1. 보리달마의 불교사적 위상
2. 달마어록과 달마선
3.『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과 실상염불
4. 후대 선불교에 있어 이입사행의 사상적 전개
5. 염불선의 의의
Ⅳ. 마치는 말
주제어 ; 순선, 정통선, 원통불법, 보리달마, 청화, 금타, 염불선
한글요약
불교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수행법이 있다. 석가모니붓다의 대기설법(對機說法)과 차제설법(次第說法)의 정신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수행전통들이 단절되었다.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은 과거처럼 획일적이 아닌 다원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수행법 또한 다양성이 요청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오랜 불교 역사 속에 전개되어 왔던 다양한 수행전통의 복원이 시급하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금타화상과 청화선사의 염불선은 큰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불선에 대한 학문적인 조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본고는 금타와 청화의 수행맥락에 있는 염불선을 조사선의 초조라 일컫는 보리달마의 가르침과 관련하여 논의하고 있다. 흔히 염불선의 효시 또는 연원을 4조 도신에게 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본고를 통해 확인되는 바는 도신의 반야바라밀과과 일행은 이미 달마의 진작으로 증명되는 이입사행론 에 내재되어 있음을 증명한다. 동아시아 대승불교 역사에서 수많은 행법들이 대두되었고 계승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간화선, 묵조선, 염불, 주문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한국불교 전통에서는 간화선이 주류 또는 중심행법으로 내려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타 다른 행법을 낮추어 평가하여 왔다. 특히 염불선 또한 잘못 평가된 대상 중의 하나였다. 본 연구는 염불선이야말로 간화선 이전부터 수행되어져왔던 보편적인 수행법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데 목적이 있다.
Ⅰ. 들어가는 말
불교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그리고 수많은 학파와 종파만큼이나 다양한 수행법이 전개되어 왔다. 이는 중생의 근기와 성향에 따른 석가모니붓다의 대기설법(對機說法)과 차제설법(次第說法)의 정신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근현대 한국수행전통에 있어서는 간화선만이 전부이고 정통수행법인 것처럼 여겨져 왔다. 이처럼 특정한 한 수행법만이 주류이고 전통수행법처럼 강조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특정한 한 수행법에 다른 불교수행법들이 매몰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현재 우리는 불교경전에 붓다가 중생의 근기와 성향에 맞게 제시한 다양한 종류와 다양한 단계의 수행법이 있지만 대부분 사장되거나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 현실에 있다. 안타깝게도 많은 수행전통들이 단절되었다. 되레 그러한 수행을 이질적으로 느끼기까지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은 과거처럼 획일적인 하나가 용인되거나 강조될 수 없는 다양성과 다원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이와 함께 수행법 또한 다양성이 요청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과거에서처럼 어느 특정 수행법만이 전부이고 정통이라는 일변도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대중들의 다양한 근기와 성향에 걸맞게 다양한 수행법이 제시되는 친절한 불교가 되어야한다. 이러한 점에서 오랜 불교 역사 속에 전개되어 왔던 다양한 수행전통의 복원이 시급하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금타화상과 청화선사의 염불선은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다행스럽게 하나의 수행법만이 강조되는 시대에도 불구하고 착실하게 잘 계승해왔기 때문이다. 우리시대에 있어 청화선사의 염불선은 획일적이고 단조로운 수행풍토를 벗어나 근기와 성향에 맞게 불교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불선에 대한 학문적인 조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일찍이 20여 년 전에 발표된 염불선에관한 국내논문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 논문에 의하면 염불선은 불교역사 속에 “실제로 널리 수행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론적인 정립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2) 이후 10년 뒤 염불선을 제창했던 청화는 입적(2003)하고 그리고 다시 10주기를 맞이하고 있다.3) 물론 중간에 몇 편의 논문이 나왔지만 다른 불교수행법에 비하면 매우 미비한 연구결과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청화의 염불선이 불교전문연구자에 다루어진 경우는 매우 드물다. 본고의 주제와 관련하여 간략하게 선행연구를 살펴보면 국내에 있어 염불선의 본격적인 연구논문은 1993년에 발표된 보광의 念佛禪이란 무엇인가?이다.4) 여기에서 일본학계의 연구성과와 경향을 잘 소개해 주고 있다. 이후 정광균(법상)의 念佛에 내재한 禪的요인에 대한 고찰 과 안준영, 念佛禪에서의 깨달음의 문제 등의 좋은 논문이 나왔다. 이러한 가운데 특히 금타와 청화의 수행맥락에 있는 염불선을 보리달마의 가르침과 관련하여 집중적으로 연구한 것은 박건주이다.5) 또한 달마어록이 몇 가지의 한글역과 외국어 번역이 있지만 최근에는 조사선 전공자에게 번역되기도 하였다.6)
1) 1989년 5월 8일, 正統禪의 香薰 이 출간되자 바로 ‘서울 금륜회’를 찾아 숙독을 하고 그 해 여름방학을 맞아 두 달간 태안사 정중당에 머물며 청화선사의 가르침을 가까이에서 배울 수 있었다. 이후 염불선을 나름 체화하려는 노력을 하였으며 조금 공부의 진전이 있는 듯 여겨졌다. 이번에는 학술적인 정리 차원의 염불선에 대한 공부는 염불선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한번 새롭게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2) 한보광, 念佛禪이란 무엇인가?, 佛敎硏究 10호 (서울: 한국불교연구원, 1993), p.166.
3) 현대 한국불교에 있어 대표되는 두 수행자는 단연 ‘성철(性徹: 1912-1993)스님’과 ‘청화(淸華: 1923-2003)스님’일 것이다. 모두 당대에 치열한 (선정)수행과 조직적인 교학을 펼친 위대한 선지식이었다. 당대에도 두 선지식은 한국불교 수행문화와 불교사상을 역동적으로 견인한 역할로서 존경을 받았고 앞으로도 계속 더해질 것이다. 흥미롭게도 두 선지식은 약 11년의 연배차이와 원적은 10년 차가 난다. 모두의 80평생은 석가모니 교조의 80평생을 떠올리게 한다. 성철과 청화는 각각 한반도 남단에 위치한 해인사와 태안사를 무대로 수행과 법을 폈다. 하지만 같은 조사선 전통에서도 각각 ‘간화선’과 ‘염불선’이라는 다른 행법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4) 한보광, 앞의 논문, p.147.
5) 박건주, 달마선 (서울 : 운주사, 2006); 박건주, (중국 초기 선종)능가선법 연구 (서울 : 운주사, 2008); 박건주, 念佛과 念佛禪의 구분 문제, 宗敎學報 (광주: 한국종교간대화학회, 2006.5); 朴健柱, 초기 선종기 禪法의 조류와 楞伽禪의 영향, 韓國佛敎學 (서울: 한국불교학회, 2006.5)
6) 우학편저, 달마대사어록 (대구 : 좋은인연, 2000); 李慧惺 編, 達摩의 禪語錄 (서울: 大光出版社, 1986); 仁海 역주, (달마대사의)소실육문(서울: 민족사, 2008); 성열聖悅 譯註, 달마어록 1, 이입사행론 (서울: 강남포교원, [발행년불명]); 덕산스님 역해, 달마는 서쪽에서 오지 않았다: 염불선으로 본 달마어록 (서울: 비움과소통, 2010); 김호귀 편역, 달마어록 (서울: 정우서적, 2012); 외국어에 대한 다시 한글역은 야나기다 세이잔(柳田聖山 주해; 楊氣峰 옮김), 달마 어록 (서울: 김영사, 1993)과 오쇼라즈니쉬 지음, 이연화 옮김, 달마: 라즈니쉬의 달마어록 강의 (서울: 정신세계사, 단기4325[1992]) 등이 있다.
동아시아 불교사에 있어 순선(純禪)시대는 달마대사로부터 육조혜능에 이르는 초기선종시기를 말한다. 본고는 이러한 시기에 있어 조사들의 가르침에서 염불선 사상의 전개에 대한 논의를 시도해본다. 특히 조사선의 초조라 일컫는 달마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우리의 근현대 불교역사에서 염불선을 펼쳤던 청화선사(淸華禪師: 1923∼2003)7)의 사상과 관련하여 또한 논의해 보고자한다.
Ⅱ. 염불선의 연원과 위상
달마를 초조로 전개된 선종 전통에서 간화선이나 염불선 그리고 묵조선 등이 행법의 차이는 있다하더라도 모두 그 뿌리는 같다. 즉 초조 달마대사로부터 육조혜능에 이르는 시기에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이를 ‘순선(純禪) 시대’라 일컫는다. 때문에 간화선이나 묵조선 그리고 염불선 모두가 조사선의 흐름 안에 있는 것이다. 순선시대는 육조혜능 이후의 시대와 대비된다.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선불교 전통에 있어 혜능 이후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특정한 행법과 선사와 그리고 어록을 중심으로 종파화(宗派化)하는 단계에 이른다. 이러한 과정에서 종파의 입장에 따라 수행법이 갈수록 전문화되고 특정한 한 행법만을 강조하게 된다. 달리 말하면 순선시대의 넓은 폭이 좁혀져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8)
7) 이후 청화스님 또는 청화선사는 ‘청화’로 약하여 논의될 것이다.
8) 사회윤리학에서는 보편주의(universalism)와 분파주의(particularism)는 대치되는 개념이라 한다. 분파주의는 지협주의(parochialism), 패당주의(factionalism)와 관련하여 설명된다. 사회학이나 정치학에서 사용되는 말이 종교사회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종교도 사람의 일과 관련되어 있기에 충분히 정치적일 수 있다. 자신이 속한 것이나 관계에 따라 법이 조작되고 왜곡되거나 더 나아가서는 편파적으로 적용되거나 강조되는 경우가 전혀 없지는 않다. 구도자로서 본연의 진리적 입장이 아닌 자기가 속한 종교집단이나 전통에 대한 맹목적 연대감과 편파성 때문에 보편성과 공정성을 잃을 수 있다. 종교에 있어서도 어느 특정시기에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면모는 이를 따르는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편파적으로 수용된 예를 보여준다. 동아시아 불교사에 있어서도 대체로 달마에서 혜능까지는 창조적 시기로 그 순수성이 이야기된다. 이에 반해 혜능 이후의 신회(神會: 670-762)와 간화선을 제창했던 대혜(大慧: 1089-1163)의 정치적인 면모는 여러 가지로 논의될 수 있다. 신회는 칠조(七祖) 자리를 위해 이전의 스승이었던 신수(神秀)를 방계(傍系)로 만들었고, 대혜는 묵조선(默照禪)을 사선(邪禪)으로 치부하는 수준의 배타적 비판이 그것이다.
여기서는 먼저 간략하게 염불선의 연원에 대해 살펴본다. 앞서 언급하였듯 염불선의 본격적은 논문은 1993년에 발표된 보광의 念佛禪이란 무엇인가? 이다.9) 여기에서 일본학자 가운데 宇井伯壽가 사종염불 가운데 칭명염불을 제외한 삼종의 염불만을 염불선의 범위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藤吉慈海는 “지금 염불하는 자가 누구인가?”를 공안화한 선(禪)을 염불선이라고 하고 있음을 소개하고 있다.10) 역사적으로 최초로 염불선이라는 말은 5조 홍인의 문하에서 찾을 수 있음을 전거를 들어 증명하고 있다고 한다.11) 이때 ‘南山念佛門禪宗’이라는 말인데 이는 대승경전인 화엄경에서 염불수행을 ‘염불문’念佛門: buddhāusmrti-mukha)이라 했던 경전적 용례로서 염불선의 연원을 살펴볼 수 있다.
9) 한보광, 念佛禪이란 무엇인가?, 佛敎硏究 10호 (서울: 한국불교연구원, 1993), p.147.
10) 한보광, 앞의 논문, pp.146-147.
11) 한보광, 앞의 논문, pp.147-148.
좀 더 염불선의 정의와 연원을 살펴보자. 염불선의 선(禪: dhyāa)은 바로 선정(禪定)이나 삼매(三昧: samāhi)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인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경론 가운데 염불삼매경이나 염불보왕삼매론등의 경명은 물론 많은 경전의 내용에서 ‘염불삼매’나 ‘염불정(念佛定)’이라는 말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염불선에 대한 동의어로 ‘삼매 또는 선정에 들어 염불하는 행법’을 일컫는다. 또는 buddhāussati는 ‘염불’이나 ‘염불삼매’로 옮겨졌다. 나아가 ‘사증상심(四增上心)의 염법(念法) 수행’에는 염불선에 거의 근접한 내용을 보여준다.12) 즉 사증상심이란 ‘네 가지 뛰어난 마음’을 성취해야 하는 것으로서 삼보의 염(念 : anussati)과 계(戒)의 염을 더한 것이다. 여기서 삼보의 염이란 다름 아닌 불․법․승의 성질과 가치 그리고 덕성 등을 ‘깊이 되새겨 내면화하는 행법’을 말한다. 일종의 관상법(觀想法)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신 중심의 종교가 입으로 신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불러 기도하고 숭배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신앙의 차원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불보에 있어 “여래는 세존(世尊)이시며, 아라한(阿羅漢)이시며,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신 분이시며(正遍知), 지혜와 덕행을 잘 갖추신 분이시며(明行足), 잘 가신분이시며(善逝), 세상을 잘 아시는 분이시며(世間解), 위없는 분이시며(無上士), 인간을 잘 이끄시는 분이시며(調御丈夫), 신들과 인간들의 스승이시며(天人師), 깨달으신 분(佛世尊)입니다.”라고 하는 것처럼 붓다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성질을 되새겨 내면화하고 체화시키는 신행법이다. 여기서 증상심(增上心)은 초기불교경전에서 삼학 가운데 정학(定學)의 다른 말로 달리 심학(心學: cittasampadā이나 증상심학(增上心學: adhicittasampadā으로 쓰이기도 한다.13) 정학이란 수심(修心) 즉, ‘마음 닦는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을 의미하며 adhicitta 즉 증상심란 ‘진리 통찰을 위한 탁월하고 뛰어난 마음’이라는 의미이다.14)
12) 조준호, 붓다 당시의 재가자의 실천수행 사상, (上月圓覺大祖師 탄신 100주년 기념) 佛學論 叢2, 믿음과 수행 (서울: 원각불교사상연구원, 2011)
13) 대표적으로 Digha Nikāa의 첫 품의 경전들에 많이 나타난다; Aṅuttara Nikaya vol.Ⅲ, p.285 등에서는 염불에 의해 선정을 얻어 궁극의 열반을 성취함을 말한다.
14) 조준호, 초기불교중심교리와 선정수행의 제문제 -화두선 전통과의 교두보 확보를 위하여, 불교학연구 제8호 (2004)에서 재인용
이러한 점에서 청화는 일찍이 염불선을 부처님 당시의 초기불교로부터 구한다. 그에 있어 “염불은 부처님 당시부터서 염불(念佛)․염법(念法)․염승(念僧)이라고 무슨 경전에나 다 나와 있고 원래, 우리가 부처이기 때문에, 또, 부처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염불은 따지고 보면 내가 참 나를 생각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여 불심(佛心) 또는 불성(佛性)의 내면화하고 체화하는 행법임을 분명히 밝힌다. 그리고 다음 문구로 “본래부처가 부처를 생각하기 때문에 역시 선(禪)이 됩니다라는 구절은 염불법이 또는 염불행위가 바로 선(禪)으로 나아갈 때 염불선임을 천명한다. 이는 이미 초기불교에서 붓다가 증상심이 곧 심학이며 선정수행이라는 가르침과 일치한다. ‘본래부처가 부처를 생각’한다는 ‘불불상념(佛佛相念)’은 ‘불(佛)과 불(佛)이 서로 염한다’라는 뜻으로 원래 초기불교에 내장된 염불의 선적 이해를 잘 보여준다.
여기서 본고의 주제와 관련하여 더 흥미로운 것은 보리달마의 벽관(壁觀)의 의미이다. 달마에 있어 실천의 기본교설은 벽관으로 설명되는데 벽관은 ‘벽이 본다’라는 뜻이다. 흔히 달마가 9년 동안 벽을 바라보며 좌선했다는 면벽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달마를 ‘벽관바라문’이라 할 때 벽관의 의미가 문법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러 의미해석이 있는데 예를 들면, 벽관의 벽이란 ‘객진위망(客塵僞妄)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으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심불기(心不起)의 상태로 이해하는 것이 그것이다. 보리달마 연구자의 권위자인 야나기다 세이잔은 달마의 벽관은 서역에 산재하는 천불동내에 마주 보며 조성되어 있는 불상과 관련한 상상력을 펼친다. 그는 “달마의 벽관은 석굴사의 벽면을 장식하는 부처가 부처를 본다는 ‘불불상념(佛佛相念)’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라고 한다.16) 세이잔은 더 많은 설명을 생략하고 있지만 달마의 벽관은 불불상념의 상징적 의미를 나타내는 말일 수 있다.
15) 청화, 圓通佛法의 要諦 (곡성 : 성륜각, 2003), p.224.
16) 야나기다 세이잔(柳田聖山; 김성환 옮김), 달마 (서울: 민족사, 1991), p.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