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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보는 남도음식
송수권/ 전 순천대 교수, 한국풍류문화연구소장
〔 1 〕
시는 개인적인 한을 드러내는 언어지만 시가 역사의식 추동력 곧 민중의 한으로 표출되지 못할 때는 민족시인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시는 원칙적으로 사유재산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공유재산이 되기 때문이다. 시의 기능 중 예언적 기능을 담당하는 언어를 주술적 언어라 함도 이 때문이다. 이 기능은 한 시대의 바람이 어디서 오는가를 알려주는 바람닭과 같은 존재고, 날이 어떻게 새는가를 알려주는 새벽닭 ― 즉 개벽신화에서 보여주는 천왕닭(제주신화)과 같은 존재임을 말한다.
캄캄한 대숲 오래된 집 부뚜막엔 언제나 왱병 한 개가 놓여 있습지요. 왱병속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가전비법으로 전해져 오는 식초 눈이 살아있어 들척지근* 혀끝이 오그라붙기도 하지요. 남도 사람들은 이 맛을 두고 왱병이 운다고 합니다. 봄바람 불어 한 번, 가을바람 불어 또 한 번, 그래서 앵병을 아예 왱병이라고 고쳐 부르는데 그 병 모가지만 보아도 눈이 절로 감겨오고, 황새목처럼 목이 쩔룩거려옵니다.
봄은 주꾸미 철이고 가을은 전어 철입지요. 부뚜막 왱병이 한 자리 얌전히 있지 못하고, 오도방정 떠는 통에 구들장 들썩거려, 빙초산 초파리들처럼 잠 못 이루는 밤이 시어집니다. 앞대 개포, 주꾸미 배 들었나, 전어 배들었나, 한겨울 밤에도 허리가 쑤시고 아린 가슴 늙은이는 잠 못 듭니다. 죽을 때도 허공에 마지막 깍지손 얹고, 왱병 모가지 잡는 시늉하며 손 무덤짓습니다.
그래서 남도 사람 소리는 왱병 모가지 비트는 소리로 통성도 되고, 수리성이 됩니다. 또 이것을 시김새 소리라고도 합지요. 시김새** 붙은 소리는 왱병** 속에서 왔기에 소리 중에서도 땅을 밟는 뱃소리, 하다못해 한바탕 바가지로 설움을 떠내는 큰소리꾼도 되고 명창도 되는 것입지요.
―「왱병」전문(시집,『남도의 밤 식탁』)
*들척지근: 달고 신맛(달시큼한)
**시김새: 삭힘새. 삭힘새는‘곰삭다’라는 음식에서 온 말.‘개미’또는‘그늘’로도 쓴다. 그늘 있는 소리, 그늘있는 시, 그늘 있는 사람(품새가 넉넉한 사람) 등 시김새가 붙으면 천구성이 아닌 득음으로 이를 수리성이라고 한다.(판소리)
***왱병: 전라도 사투리(앵병): 부뚜막 위에 놓인 가전 식초병, 옛날에는 촛병의 초눈(초산박테리아)과 이궁지의 불씨를 죽이면 그 집 며느리는 쫓겨났다는 속설이 전해온다.
서정주는「질마재 신화」의‘상가수上歌手소리’에서‘우리네 그 참 재미있는 똥오줌 항아리, 거길 명경明鏡으로 해……. 망건 밑으로 흘러내린 머리털들을 망건 속으로 보기 좋게 밀어 올려 쐬뿔 염발질을 줌잖게 하고 있었어요. 명경도 이만큼 특별나고 기름져서 이승 저승에 두루 무성하던 그 노랫소리는 나온 것 아닐까요?’라고 했지만 나는 그 기름진 소리(남도소리)는 소망통이 아니라 대숲 우거진 광대들의 마을, 그 부엌의 부뚜막에 즘잖게 앉은‘왱병(앵병)’속의 초맛에서 왔다고 해석해 본 것이다. 그 왱병은 우리 음식맛을 길들이면서 봄바람, 가을 바람이 터지면 왱왱 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도 가락이야말로 비탈밭에서 태어난 정선 아리랑과는 그 격이 다른 것이다. 목을 흔들어 내는 그 정선 아리랑과는 달리 배를 울려서 내는 통성이요 피를 석 동이쯤 쏟아야 나오는 수리성인 것이다. 판소리가 그렇고 진도 아리랑이 그렇지 않은가? 또 목에 수리성이 끼면 그늘 있는 소리. 음식에서도 삭힘새 곧 숙성된 맛이 들면 그늘 있는 맛(개미) 시도 그늘 있는 시가 된다. 이 그늘에서 바로 남도가락인 시나위(산조)와‘허튼 기법’이 나온 것이다. 이것이 남도 예술이며 퓽류로서 근검과 절제의 정신으로 다스려진 남도 식탁이며 기질을 형성한다.
그 식탁에도 청기와 탁기가 있음은 물론이다. 이 기준점은 음식에 스며 있는 유감주술(類感呪術)이나 신인공식(神人供食)으로 따져보면 안다. 남도 기생은 예로부터 평양 기생과는 달리‘4불여’라고 해서 고를 내도 왼쪽으로 내고 씨름꾼 또한 왼씨름을 한다. 이처럼 음식에서도 지방색의 격식이 드러나며 식탁에도 청기와 탁기가 있다. 질펀히 퍼질러지거나 퍼먹는 사람을‘귄’있다고는 하지 않는다.‘귄’있는 사람의 기질도 청기와 탁기로 가름할 수 있다. 대개 종가집이나 누정 문화의 음식이 일반 서민 음식과 구별되어 왔음도 이 때문이다. 이것이 이른바 식성(食性)이며‘사람은 음식에서 길러진다(食性之人性)’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조심스럽지만 송순의 시조「십년을 경영하여 초려 한 간 지어내니……」와 정철의 장진주사, 또는 면앙정가나 성산별곡의 장가(長歌)만 보더라도 그 기질적인 식성과 성품이 드러난다. 또한 이 기준점은 출처(出處)로서도 알 수 있다. 출은 말이요 처는 본이기 때문이다.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것을 우리는 본말(本末)이 전도 되었다고 말한다. 소쇄원 48영 중 41영에는 청기를 자랑하는 순채(散池蓴芽)가 등장한다. 순채는 선비들이 선호했던 물풀로 무색 무취 무미의 나물이다. 순채나물, 된장국은 광복 직후까지 남도의 맑은 냇물에서 흔하게 자랐던 풀이다. 한일 국교정상화가 되었을 때 이 땅에 맨먼저 들어왔던 사람들은 순채 나물을 따기 위해 온 수채꾼들이었다. 순채는 동의보감에도 그 효능이 나와 있듯이 모세혈관의 청혈제로 쓰이는 탁기가 아니라 청기를 뿜는 일급수에서만 자라는 물 속의 안테나와 같은 풀이다.
소쇄원도에 의하면 소쇄원에는 상지(上池)와 하지(下池)가 있다. 작은 띠집으로 엮은 소쇄정 옆에 소당이라 이르는 상지가 있고, 그로부터 원림의 입구 쪽으로 내려가면 하지가 있어 상지의 물은 하지로 흘러 못물에 노는 어류와 물풀이 함께 그러져 있다. 그 곁에 그 형상을「散池蓴芽(산지순아)」라고 쓴 글씨까지 보인다. 연지(하지)에 흩어져 있는 물풀이 바로 순채다.
순채는 농어회와 함께 가을철에 식도락가나 선비들이 찾았던 시식(時食)이다. 순채국과 농어회를 일러 순갱노회 또는 순로(薄鱸)라고 한다.
장한(張翰)이 강동으로 향한 후로는
풍류를 아는 이 그 누구던고
반드시 사랑하는 농어회(玉膾) 같이 않더라도
기다란 순채 싹(氷紗) 맛보고자 하네
하서 김인후는 48영을 읊어서 소쇄원 담장(애양단)에다 시화를 줄줄이 늘여뜨렸던 인물이고 보면 위의 41영은 하지 연당을 보고 장한의 풍류와 멋을 만끽했을 듯하다.
‘연은 군자의 상징으로 순채는 시절 음식으로, 능화(물풀) 줄기는 책표지의 문양(능화판)으로 썼던 것을 보아 선비들의 성품’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소쇄원 풍류는 한 때 출처가 뒤집히고 본말이 전도되어 청기가 탁기로 흐려진 적이 있었다. 그것이 이른바 서인(정철)과 동인(이발) 즉 학풍(서원문화)과 문풍(시, 문)이 권력투쟁으로 정면 충돌되었다. 정여립 사건에 의한 기축옥사다. 선조실록에는 지금도‘흉혼 독철’즉‘흉하기로는 성혼이고 독하기로는 정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사건은 이쪽 공간의 선비들만 해도 천 여명의 희생으로 기록되니 오늘의 광주민중항쟁 못지 않은 사건이었다.
〔2〕
남도인의 기질은 ①대(竹)의 정신 ②뻘의 정신(개+人+땅+쇠) ③황토의 정신으로 요약된다. 본론에서 취급된 나의 모든 작품들은 이에서 한 치 반 치도 벗어남이 없다. 또한 나의 언어는 남도 토속 언어들이며 시적 상징 기호는 곡선과 느림의 상법(想法)으로 요약된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평론가나 학위 논문들이 증명해주고 있다. (‘송수권 시 깊이 읽기 ’참고)
위에 든 3대 정신에서 벌여진 시나 학문 역사 즉 인문학들을 일컬어‘호남학’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개척정신(개+人+땅+쇠)이 천윤리(天倫理)의 덕목으로 수용될 때 수류화개(水流花開)의 풍류(風流)가 된다. 풍(風)은 하늘이요 류(流)는 땅이다. 이 속에 사람이 깃들면 풍류인(風流人)이며 공자가 예기에서 말한 바,‘노래는 하늘에서 나와 땅에 깃들고, 그 품격은 사람에 의해서 완성된다’라는 말과 같다. 이 기질이 로고스의 측면에선 역사를 극복하는 힘(해학과 풍자)이 되며 파토스적인 측면에선 겨레의 심성인‘멋과 한’의 가락으로 나타난다. 줄풍류와 대(竹) 풍류(소금,중금,대금)가 그것이다.
3대 정신 중 대(竹)의 정신을 드러낸 시를 보기로 하자.
한번은 읍내 장터거리 그 쇠전머리 윷판막의 말뚝을 띄어올라 반벙어리 장쇠아범이 혀 를 집게로 뽑혀도 쌍놈의 말은 쌍놈의 씨로 남는 법이여, 그라믄 쓰간디 그래도 우리 동 학장이들이 바구미같이 바글바글 끓던 그때 그 장날이 멋이었당깨. 이러고서는 한참 외 장을 놓더라는 것이다.
아 동헌 마루를 우지끈 부수고 알상투를 끌어내어 수염을 꼬시르고 깨를 벗긴 채 볼기 를 쳐 三門 밖으로 내쫓았더니 그래도 양반 때는 알았던지 옴팡진 씨암탉처럼 두 손으로 쇠불알을 끄슥드랑깨. 활텃거리에서 작것, 죽창 끝에 안 걸렸드랑가. 뚝소리 내고 떨어졌 당깨. 옴마**. 그란디 한여편네가 엎어지드니만, 옴마, 이 작것. 이 작것. 우리 딸니미 잡 아 먹은 갓끈 달린 이 작것 하드니만 치마폭에다 싸들고 줄행랑을 쳤드랑깨. 혀는 뽑혀 도 말은 바로 허지만 말이여. 내가 그 달딴 녀석 아닌가 말이여. 알긋써. 이러더니란다.
―「줄포마을 사람들」2, 3연
알다시피 남도인이 그 예향의 끼를 발산할 때 쓰는 풍류스런 말이 있다.‘문 안에 들어가면 대(竹)가 있는데 방 안에 들어가면 왜 난초가 없겠는가?’라고 묻는다. 예부터 남도 기생집은 대숲 바람이 불어야 멋이고, 서울 기생집은 인왕산 바위 그늘에 있어야 멋이다라고 했다. 한강 이남은 대고 한강 이북은 돌이다라고, 대원군이 팔역지에서 지방색으로 드러낸 말이다.
풍류도 밥상에서 나온다는 것은 상식이다. 누가 우리 식탁을 빼앗으러 오면 난세에는 죽창(竹槍)을 들고 나가는 것이 남도 농민(의병)이고, 태평성대엔 대가 3죽(대금, 중금, 소금)의 피리소리로 뜬다. 이것을 줄풍류가 아닌 대풍류라고 삼현육각에서는 부른다.
따라서 식탁에서 오는 이 정신은 구강성, 즉흥성, (자발성), 내발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 사상은 최치원이 말한‘국유현묘지도’로서 선, 불, 유의 접화군생(接化群生)에서 온 것이다. 위에 든 즉흥성, 구강성, 내발성만 보더라도 허튼 기법(덤벙기법)으로 놀다가도 수 틀리면 멍석을 깔아줘도 하지 않는다. 이른 바‘신바람’의 역사이다. 예술성 또한 그렇다. 사람도 시도 품새가 넉넉하면‘그늘’이 있는 사람과 시로 표현 된다.‘그늘’이 있는 음식 또한 그렇다.‘게미가 쏠쏠하다’는 말은 바로 이 말이다. 이것이 남도의 삶이며, 가락이며 정서다. 나의 시에 토속어가 질리도록 많이 나온 까닭도 이 눙치는 탯말에서 시가 탯줄(배냇줄)을 걸고 말가락으로 가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 출생 비밀과 토속 공간이 그 왱병 모가지 속에서 맛의 유전자로부터 어떻게 나왔는지를 밝혀 본 시다.
왜 이리 좋으냐
소반다듬이, 우리 탯말
개다리 모자 하나를 덧씌우니
개다리소반상이라는 눈물나는 말
쥐눈콩을 널어넣고 썩은 콩 무른 콩을 골라내던
어머니 손
그 쥐눈콩 콩나물국이 되면 술이 깬 아침은
어, 참 시원타는 말
아리고 쓰린 가슴 속창까지 뒤집어
흔드는 말
시인이 된 지금도 쥐눈콩처럼 쥐눈을 뜨고
소반상 위에서 밤 새워 쓴 시를 다듬이질하면
참새처럼 짹짹거리는 우리말
오리, 망아지, 토끼 하니까 되똥거리고 깡총거리며
잘도 뛰는 우리말
잠, 잠, 잠하고 부르니까 정말 잠이 오는군요. 우리말
밤새도록 소반상에 흩어진 쥐눈콩을 세며
가갸거겨 뒷다리와 하니, 두니, 서니, 숫자를 익혔던
어린시절
가나다라 강낭콩
손님 온다 까치콩
하나. 둘 다섯 콩
흥부네 집 제비콩
우리 집 쥐눈 콩
소반다듬이 우리말 왜 이리 좋으냐
―「소반다듬이」전문 (창작과 비평 2009 가을 호)
개다리 소반상이란 서민들의 밥상을 이름인데 상다리가 개다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반대말이 호족상이다. 이 상 위에서 나는 콩을 다듬고 시도 썼다.
아세요, 젓가락 장단으로 오는 거시기 맛, 소 혓바닥 이보구니 살을 긁어나가듯 포정 (丁)이 갈빗대 살을 쳐나가듯 야금야금 쥐 소금 먹듯 맛으로만 쳐가는 맛, 에라, 모르 겠다, 종당에는 숟가락 째 퍼다가 썩썩 밥 비벼묵고 밥도둑이라 부르는 젓갈 맛, 내변 산 외변산을 한바꾸 뺑 돌아나오다 출출한 배 거머쥐고 들르는 곰소항 나들머리, 뽀로 염전 위에 있는 삼거리 젓갈 백반집, 이 세상 모든 맛을 거시기 밥상에 모아두고 파는 갈무리집, 그 집 아세요 .
그때쯤은 황혼이겠지요, 염전에 쌓아둔 소금 더미에 살짝, 술밥 같은 저녁노을이 앉았 네요, 길 따라나선 알라바마에서 온 친구 윌슨이 그걸 보고 까마구 어깻짓을 하며 오우, 빅 아이스크림이라 했고, 나는 이 병신 머더리야, 저게 진짜 소금산이라고 갈매기 어깻 짓을 했지요, 풍경도 이만하면 아심찮은 상처가 되는 것을 알았지요
우리는 그 염전머리 갈무리 집으로 갑니다, 웬 늙은이들만 늦가을 터진 감꼭지들처럼 오글오글하더라고요, 처음은 경로잔치 집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주인 이바구로는 애 달 린 어머니나 새내기들은 오지 않는다는 군요, 짭짤한 맛, 짭쪼롬한 맛, 쌉쏘롬한 맛, 달 크작시큼한 맛엔 통 저붐이 가지않는다는 군요, 그러니 꼭지들만 오글오글할 밖에요
맛에도 초발심이 있고 향수와 U턴이 있다나 어쩐다나, 내외변산을 뺑돌아 나오듯 박하 지젓, 무젓, 멸젓, 고노리젓, 딘팽이젓, 곤쟁이젓, 엽삭젓, 모치젓, 새뱅이젓, 강다리젓, 홍 애위젓, (거북이 뒷다리만 없군요)그 쫄굿거리고 아삭거리며 느믈느믈 고리고리한 맛을 한바꾸 돌아 나오는데 윌슨은 노, 탱큐로 에그 프라이만 연발했고, 나는 젓가락 장단에 혀 말고 코를 처박았지요. 또 윌슨은 젓가락 끝에 겨우 물엿으로 과 낸 콩자반 한 알을 지구처럼 들어 올리더니 망둥이처럼 좋아서 풀쩍거렸지요, 아서, 음석 가지고 장난치면 천벌 받지, 또 머퉁이 줬지요. 그때, 갓동지* 국물 한 방울이 창에 튀어 소금산 한 채가 발그족족, 까나리 액젓처럼 흘러내리고 있었어요
*갓동지:갓김치(갓+동(속대)+지(김치)
―·「소금산」전문(문학의 문학 2009 봄 호)
성경에 나오는 모세5경 중의「레위기」에는 너희가 먹을 수 있는 것은 딱정 벌레와 개미 떼와 …… 사막의 이동식탁이지만 우리 식탁은 이처럼 붙박이 식탁인 것이다.「꿀과 젖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가자!」의 구호가 아니라 사시장철 우리 강산은 유도강산 불도강산 선도강산으로 그 변화무쌍한 계절감각을 누비며 철따라 나오는 먹거리도 다양하다. 그러니 한시라도 집에 있기 민망하다. 버스간에서 윌슨이 본 풍속도는 어땠을까. 효도관광이니 무슨 관광차 안에서 치맛말을 아예 흘러내리「니나노판」을 하는 짓을 보면 이상한 민족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詩란 세상을 걸고 넘어지는 시나위 가락 같은 주문(呪文)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한 민족의 공동체 정신도 이해가 가능해지리라 믿는다.
“봉당 밑에 깔리는 대숲바람 소리 속에는 / 대숲바람 소리만 고여 흐르는
게 아니라요/ 대패랭이 끝에 까부는 오백년 한숨 / 삿갓머리에 후둑이는
밤쏘낙 빗물소리// 머리에 흰 수건 쓰고 죽창을 깎던 간肝 큰 아이들, 황토
현을 넘어가던/ 징소리 꽹과리 소리들……”
이는 필자의‘대숲바람 소리’란 시의 일부분이지만, 이처럼 대숲바람을 귀에 밟히고 살아온 사람들이 곧 남도사람들인 것이다. 죽순 맛을 모르고, 대숲머리를 휘돌아 들판으로 나직이 흘러 나가는‘저녁 밥 짓는 연기’의 그 향수와 배고픔을 모르면서 맛과 풍류를 논하기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남도의 맛과 멋은 식탁에서 온 것이며‘검약과 절제’의 선풍인 풍류정신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 3대 정신은 첫째 황토의 정신, 둘째 대竹의 정신, 셋째 갯벌(개+人+땅+쇠)의 정신으로 요약된다. 이것이 남도 두레판이며 니나노판인 것이다.
《송수권 저『남도의 맛과 멋』(창공사)》
〔3〕
어느 고샅길에 자꾸만 대를 휘며
눈이 온다
그러니 오려거든 삼동三冬을 다 넘겨서 오라
대밭에 죽순이 총총할 무렵에 오라
손에 부채를 들면 너는 남도 한량
죽부인竹夫人을 껴안고 오면 너는 남도 잡놈이란다
댓가지를 흔들고 오면 남도 무당이지
올 때는 대도롱태*를 굴리고 오너라
그러면 너는 남도의 어린애지
그러니 올 때는
저 대밭머리 연鳶을 날리며 오너라
네가 자란 다음 죽창을 들면 남도 의병義兵
붓을 들면 그때 너는 남도 시인詩人이란다
대숲 마을 해 어스름 녘
저 휘어드는 저녁연기 보아라
오래 잊힌 진양조 설움 한 가락
저기 피었구나
시장기에 젖은 남도의 밤 식탁
낯선 거집**이 지나는지 동네 개
컹컹 짓고
그새 함박눈도 쌓였구나
그러니 올 때는
남도 산천에 눈이 녹고 참꽃 피면 오라
불발기 창 아래 너와 곁두리*** 소반상을 들면
아 맵고도 지린 홍어의 맛
그처럼 밤도 깊은 남도의 식탁
어느 고샅길에 자꾸만 대를 휘며
눈이 온다.
*대도롱태: 대 조각으로 만든 굴렁 **거집: 큰 손님(過客, 巨接)
***곁두리: 두 사람이 받는상(셋두리: 세 사람이 받는 상)
― 송수권 『남도의 밤 식탁』
필자가〈남도의 맛과 멋〉,〈풍류맛기행〉을 연재하면서 서해안의 꽃게 밭인 충청도에 가서 취재한 기록으로는, 뻘밭을 기는 것도 그러거거니와 모로기는 비틀걸음에다 속창아리(창자)도 쓸개도 없이 눈을 치뜨고 거품을 품는 게를 두고 숭한 상것이란 표현을 쓴 충청도 양반이 있었다. 내가 어디서 본 기록으로는 율곡이 쇠고기를 먹지 않았듯이 송시열 가문에서라고 했지만 실은 이 맛을 잊지 못하여 미식가들은 무장공자(無腸公子), 횡횡거사(橫橫居士), 내황후(內皇后), 천상목(天上目), 서호판관(西湖判官)이라고도 했다. 사팔뜨기 천상개비라도 모로 기어 서울만 가면 되지 않던가.
소소한 대숲바람이 불고 풀잎 끝에 이슬이 차다. 이른바 이것이 가을 전어철이다. 고소하고 달기가 일품인 전어회나 구이는 그만이다.‘집 나간 며느리 전어 굽는 냄새에 다시 돌아온다’거나‘가을 전어회를 못 먹으면 한 겨우내 가슴 시리다’는 말, 또‘겨울 숭어 앉았다가 나간 자리 뻘만 훔쳐 먹어도 달다.’,‘열무김치 들어간다 아가리 딱딱벌려라’는 식담은 다 남도식탁에서 흘러나온 푸짐한 말가락이기도 하다.
우리 음식은 흔히 디자인과 색채가 빈약하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펄벅(대지의 작가) 여사가 1958년 한국에 왔을 때 록 플라워(꽃열쇠)를 얹은 구절판을 선물했는데 뚜껑을 열고 5방색의 주조에 간색까지 뜨는것을 보고“이 음식은 너무 아름다워 먹을 수가 없다!”라고 그대로 비행기에 싣고 떠났다는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또 신인공식(神人供食)의‘표준식탁’이라고 할 수 있는 제삿상의 진설 중 과실치례만
하더라도 홍동백서(紅東白西)로 진열된다. 이는 음식의 유감주술(類感呪術)에서 온 것인데 동아시아의 5방색 색채관이나 우주관이 우리 식탁에 와서 절정의 꽃을 피웠음을 알 수 있다.
또 20여년 전 고르바쵸프가 제주도에 와서 3바리(다금바리, 북바리, 자바리) 중 다금바리를 25부위 각을 떠서 맛보고‘환상적’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필자가 그 몇년 후 제주음식 취재를 갔는데 보기 좋게 거절당한 일이 있었다. 이유인즉 우리 식당은 더 이상 신문광고가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인은 유독 쇠고기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한데 우리는 그 쇠고기 부위를 120여 부위로 각을 뜨는 민족이다. 소 혓바닥살인‘이보구니’까지 긁어내어 맛을 보는 희한한 민족이다. 영국이 25부위, 보디족이 40여 부위까지 각을 뜬다고 한다. 로컬 푸드로 이름난 백제 때부터 전승된 마로화적(馬老火炙)인 광양 숯불구이만 해도 백운산의 참나무숯과 더불어‘암소 왼쪽 갈비’또는 어린‘송아지 구이’였다는 기록도 전해오고 있다. 물맛도 유네스코에 등재된〈동의보감〉에는 33가지로 분류해 놓고 있다. 필자는〈남도의 맛과 멋〉을 쓰면서 국민소득 3만불 시대가 와야‘남도 한정식’이 시세가 날 것이라고 썼는데 그때가 오면 아마 양보다 질인 맛과 멋의 시대가 올 것이다. 모든 음식이 깡통 속으로 들어가면서 맛이 없어지는데 민족음식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전주‘비빔밥’이 물만밥의 찬밥신세가 아니라 따순김이 나는 항공기내식의 꽃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전주 비빔밥이야말로 민족의 식탁이 3차 혁명을 거치면서(고추의 등장) 피워낸 최절정에 있는 음식이다.
광양의 마로화적이나 전주 비빔밥 외에도 백성의 고기라 불러온 ‘민어(民魚) 천냥 부레 9백냥’이라는 식담처럼 민어의 부레를 이용한‘감화보금’이나 밥도둑이라 일러온 전어‘밤젓’, 여다홉번 진국을 끓여 붓는 고흥의‘진굴젓’, 노래보다 기생보다 낫다는‘승가기탕’, ‘순채나물’ 등 슬로우 푸드(SlowFood)는 글로벌리즘(세계화)이라는 퓨전식탁이라고 하지만 다시 우리 식탁에서 되살아나야 할 찬품들이다. 동시에 OECD에서 규정한 과다 염분(2.4배) 사용이나 대장암을 일으키는 독성이 있는 향신료나 맛조미료(MSG) 사용도 조절되어 ‘국민 식탁’으로 자리매김 해야 할 것이다. 남도김치나 젓갈류 장떡 등도 이에 해당된다. 또한 헝가리 식탁처럼 비만을 유발하는 음식 소재들에 대해서는 과세함도 옳다.
함(含), 포(哺), 고(鼓), 복(腹)이란 말은 먹고 즐거워 배를 두드린다는 음식의 구강성과 즉흥성에서 온 이 시대의 가장 위험천만한 말이다. 식탁이 온갖 질병과 재앙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악마의 세기로 진단되는 19세기 제국주의 광풍시대는 군대가 한 나라의 정부를 무너뜨렸지만 오늘의「합리적인 미치광이들」이 사는 환상방황(環狀彷徨)을 꿈꾸는 노마드(nomad)시대는 군대가 아니라, 다국적 퓨전음식이 한꺼번에 식탁을 뒤엎고 그 다음 한 국가의 정부가 무너지는 시대다.
손암 정약전이 자산어보에서 그토록 강조한 서문에 쓴 수윤(修潤)이란 말을 다시금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이렇듯 당부하였음에도 한국 현대 시 100년사에서 식담집이나 식요집은 그만두고라도「음식 시집」한 권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런가 하면‘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도라 한다. 유·불·선과 교합하여 뭇 생명과 접촉하여 감화한다(接化群生)’고 풍류정신을 강조하였음에도 이에 관한 석박사 논문 한 편이 나오지 않고 있다.
나는 지금 백석 시집「사슴」을 다시 읽고 있다. 남도정서가 아니라 서북정서에 아우르는 음식 시들이 다소 나오고 있음이다. 그동안 내가 써온 음식시도 시집 한 권이 될 것 같아 시선집「남도의 밤 식탁(2012,작가」을 출판한 바 있다.
여태 시인이라면서 뭣하고 자빠졌느냐고 손암 정약전과 백석 선생이「퉁」을 주는 것만 같아 참 부끄럽다.
벌교 참꼬막 집에 갔어요.
꼬막 정식을 시켰지요.
꼬막회, 꼬막탕, 꼬막구이, 꼬막전煎
그리고 삶은 꼬막 한 접시가 올라왔어요.
남도 시인, 손톱으로 잘도 까먹는데
저는 젓가락으로 공깃돌 놀이하듯 굴리고만 있었지요.
제삿날 밤 괴**꼬막 보듯 하는군! 퉁을 맞았지요.
손톱이 없으면 밥 퍼먹는 숟가락 뭉댕이를
참꼬막 똥구멍으로 밀어 넣어 확 비틀래요.
그래서 저도 ― 확 비틀었지요.
온 얼굴에 뻘물이 튀더라고요.
그쪽 말로 그 맛 한번 숭악***하더라고요.
비열한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런데도 남도시인-이 맛을 두고 그늘이
있다나 어쩐다나,
그래서 그늘 있는 맛, 그늘 있는 소리, 그늘
있는 삶, 그늘 있는 사람,
그게 진짜 곰삭은 삶이래요.
현대시란 책상물림으로 퍼즐게임 하는 거 아니래요.
그건 고양이가 제삿날 밤 참꼬막을 깔줄 모르니
앞발로 어르며 공깃돌놀이 하는 거래요
詩도 그늘 있는 詩를 쓰라고 또 퉁을 맞았지요.
*퉁 : 꾸지람
**괴 : 고양이(괭이->괴)
***숭악한 맛 : 깊은 맛(게미)
-제15시집 『퉁』2013,서정시학
⟪2011.8.29(월), 전남대 호남 연구원 초청 특강 원고 요약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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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나 겨울밤에 떠먹는 식혜, 수정과, 동치미, 떡류 등 이루 다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것들이 다 황토흙에서 또는 질펀한 개펄(광양만, 여자만, 가막만, 해창만, 강진만, 영암만, 득량만, 고흥만)에서 영근 맛들이다.
여기에 다시 생명 구원의 자비정신이 충분히 그 맛을 멋으로 이끌어 승화시킨다. 이것이 남도의 토박이 정신 또는 토반의 정신으로까지 이어져 있음을 본다.
‘평양 기생은 남자를 사귈 때 그가 가진 재산을 보고 서울 기생은 돈을 얼마나 잘 쓰는가를 보는데 목사골 기생은 재산보다 멋을 택한다’는 말은 지극히 타당한 말이다. 임백호가 흑토마에 나주세작을 싣고 퉁소를 불며 서울 출입을 하던 때 장안의 기생들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오금을 못 폈더라는 말 또한 우연히 생긴 말은 아닐 터이다.
지금도 그의 화전(花前)에 관한 시가 전해오고 있다.
작은 시냇가에 솥뚜껑을 돌로 받히고 /흰가루와 맑은 기름으로 진달래꽃을 지져낸다./ 저붐을 집어들고 부침개를 먹으니 꽃향기가 입에 들어 /일년 봄빛을 뱃속까지 전하네
위의 시는 월출산과 금강 8정을 소요할 때 임백호가 쓴 시라 여겨진다. 바탕과 맵시가 어울릴 때 가히 군자(君子)라고 논어에서 말하고 있지만 그는 타고난 바탕에 멋을 더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더 나아가서 이 맛과 멋을 알았기에 당파싸움에 휘말리지도 않고 철따라 오는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안빈낙도의 길을 추구했을 터이다. 여기까지 경지를 밀고 가면 이는 분명 생명 구원의 자비정신에까지 이른다. 우리가 음식에서 말하는 자비정신이란 근검절약의 선풍을 넘어선 그 경지에 이른다는 말이다. 가령 등불을 켤 때도 방문을 열어두면 날벌레들이 불을 보고 달려들어 타죽을 염려가 있고, 공양주가 밥을 지을 때 아궁지에 썩은 나무를 때지 않고 마른 장작만을 취사 선택하는 그 이유를 따져보면 그 썩은 장작에는 온갖 벌레들이 살고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비 실천 정신이 음식에 들어오면 ‘참새 고기를 먹으면 그릇을 잘 깬다’ ‘까마귀 고기를 먹으면 깜박깜박 잘 잊어 먹는다’ ‘기러기를 잡아 먹으면 부부간에이별수가 있다’는 등의 금기어로 나타나며, 이것이 바로 우리 음식문화에서 볼 수 있는 생명정신이다. 즉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불살생(不殺生)이란 계율만 해도 보살계나 사미계나 비구계나 공통된 첫째의 계율이다. 이는 우리 식으로 해석할 때 일체불이묘합(一體不二妙合)의 정신이며 원융회통의 사상이다.
남도 음식에 이런 금기어, 금기식이 발달한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장을 담글 때 사립에 금줄을 치고 황토흙을 뿌리는 그 격식을 무단코 매도할 일만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편의상 ‘밥의 정신’이라고 해두자. 그런 까닭에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고전을 통하여 ‘밥’의 정신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다시 일깨워 신고전주의로 귀속해야 할 때다. 이것이 현재 밥상에서 판을 치는 퓨전식탁이 아니라 웰빙식탁이며 힐링으로서 영혼까지 구제하는 식탁이 될 것이다. 이것이 곧 게미와 밥의 정신이다.
김치와 서정시
같은 접속어로만 가지고 말하더라도
‘하더라도’가 아니라 ‘하였는디’로
‘그런데’가 아니라 ‘그리하였는디’로
전라도 말 가락에만 있는 판소리 표준어
그 세류청청細柳靑靑 휘늘어진 말씨로만 빚은 서정시抒情詩
이제 우리 서정은 비닐깡통 속에 들어 있고
윤 나는 버터의 질 속에 유해 색소와 함께
섞여 있다
감옥소의 뒷마당 내리는 눈 속에
쓰레기 하치장 바퀴벌레의 단단한 갑피질 속에
김치 맛이 돌지 않은 솔벤 유油처럼
우리 서정시는 반들거린다
맵고 짜고 새콤한 그 맛!
통영갓을 썼던 그 시대에도
개털 모자를 쓰고 북만주를 떠돌았던
독립군의 모자 속에서도
얼큰하고 맵고 짜고
헬멧이 유행이었던 일제치하
아니 해방 후 중절모 속에서도
4.19이후 신동엽의 쭈그렁 등산모 속에서도
그 맛은 그 맛인 것
요즘은 물건너 아메리칸들도 좋아한다는군
사할린 콜사코프 남쪽 항구
한평생 안개 속을 떠돌다 눈감은
이노마李老馬 씨의 무덤 속에서도
뻘겋게 빛나는 김치
오늘은 세마치장단으로
오리발 궁둥이를 달싹이는
이승엽 방망이 끝에 터지는 알싸한 그 맛
-제13시집 『남도의 밤식탁』2013,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