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료는 이순신 장군께서 체찰사의 직책으로 남쪽에 내려 와, 전란 극복에 힘쓰던
완평부원군 이원익 공에게 올린 편지이다. 이 편지에는 상관인 이원익 공에게 잠시
어머님을 뵐 수 있도록 며칠 간의 휴가를 간청하고 있다.
전란의 와중에 수군의 총수(總帥)가 휴가를 청하기가 간단치 않은 일 이지만, 여든이
넘으신 어머님을 뵌지 벌써 3년이나 지났고, 현재는 와병 중이시라는 소식에 이순신
장군께서는 가슴이 미어지셨다.
그래서, 자신의 위치와 막중한 책임감을 되새기면서도 간곡하게 휴가를 청하는 편지를
체찰사에게 보낸 것이다. 최 전방에 나가있는 수군통제사로서의 忠心과 여든이 넘으신
노모를 생각하며 그 안위를 걱정하는 자식으로서의 孝心 사이에서 깊은 고뇌와 갈등속에
안타까워하는 장군의 심정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忠과 孝를 아우르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필자 주)
上體察使完平李公 (상체찰사완평이공)
- 이원익 대감께 올리나이다.
伏以事有不已之勢 (복이사우불이지세)
情有莫急之形 (정유막급지형)
以莫急之情 (이막급지정)
而値不已之事 (이치불이지사)
則寧得罪於忘家之義 (즉영득죄어망가지의)
而勢或屈於爲親之私矣 (이세혹굴어위친지사의)
伏以 : 삼가 엎드려 생각하옵건데
伏惟 : 공손히 엎드려 생각하옵건데
不已 : 그치지 않는, 계속 이어지는
莫急 : 아주 급함
삼가 엎드려 살피건데, 일에는 부득이한 경우도 있고, 정에는 다급할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다급한 정으로 인해 부득이한 일을 만나면, 차라리 집안의
의리를 잊는 죄를 얻을지라도, 형세가 혹 어버이를 위하는 사심에 더 끌리는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某有老母 (모유노모)
今年八十有一 (금년팔십유일)
當壬辰之初也 (당임진지초야)
怯於俱焚 (겁어구분)
幸於苟全 (행어구전)
遂以一家浮海而南 (수이일가부해이남)
寓於順天之境 (우어순천지경)
于是之時 (우시지시)
以母子相見爲榮而不暇計其他矣 (이모자상견위영이불가계기타의)
于是 : 그리하여
榮而不暇 : 눈코 뜰 새없이 바쁘다.
저에게는 노모가 계시는데, 올해 연세가 81세이십니다. 임진년 난리 초기에
모든 것이 불타는 두려움 중에도, 구차히 가족들을 보전하고자 남쪽 바다로
옮기면서 순천 경내에 옮겨 살게 하였습니다. 이 때는 저희 모자가 서로 만나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를 누리는 것으로 여기며 아무 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越明年癸巳 (월명년계사)
皇威掃蕩 (황위소탕)
醜類逃遁 (추류도둔)
此正流民懷土之時也 (차정류민회토지시야)
第以黠虜多詐 (제이힐로다사)
變謀百出 (변모백출)
一隅聚屯 (일우취둔)
夫豈徒然 (부기도연)
更若豕突 (갱약저돌)
則是遺其親於餓虎之口 (즉시유기친어아호지구)
是以 (시이) 不能决歸而式至于今日矣 (불능결귀이식지우금일의)
逃遁 : 달아나다
懷土 : 안락한 거처를 생각함
黠虜 : 간교한 외국인 (오랑캐)
第以 : 다만
徒然 : 공연히, 쓸데없이
이듬 해인 계사년에는 황제의 군사들이 적을 소탕하니 적들이 도망하여
숨었습니다. 그렇게 되어 떠돌아 다니던 백성들이 모두 제 고장을 그리워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간교한 오랑캐들은 속이는 일이 많고 온갖 꾀
를 다 내어 한쪽 구석에 진을 치고 있는 것이 어찌 헛된 일이라 하겠습니까?
만약 저들이 다시 쳐들어 온다면 제 어미를 꿂주린 범의 입으로 보내는 꼴이
되겠기에 쉽게 돌아가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나이다.
雖然 (수연)
某以庸才(모이용재)
叨承重寄 (도승중기)
事有靡盬之責 (사유미감지책)
身無自由之路 (신무자유지로)
徒增陟岵之瞻 (도증척고지담)
莫慰嗟季之心 (막위차계지심)
朝出不還 (조출불환)
尙有倚閭之望 (상유의려지망)
何况不見已垂三載乎 (하황불견이수삼재호)
雖然 : 그렇지만, 설령 ~일지라도
庸才 : 평범하고 어리석은 재주
叨(도) : 외람되게
重寄 : 중책을 맡음
靡盬 : 살피지 않음
저는 원래 용렬한 사람으로 무거운 소임을 맡아, 일에는 허술히 해서는 안될
책임이 있고, 몸은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어 부질없이 어버이를 그리는 정만
더하고 있어서, 자식 걱정하시는 그 마음을 위로해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식이 아침에 나가 미처 돌아오지 않아도 어버이는 문밖에 서서 바라본다
하거늘 하물며 못 뵌지가 3년이나 되었습니다.
頃因家僮 (경인가동)
代人寄書曰 (대인기서왈)
老病日甚 (노병일심) 餘生無幾 (여생무기)
願於未死 (원어미사) 再見汝面 (재견여면)
嗚呼 (오호) 使他人聞之 (타사인문지) 想欲淚下 (상욕루하)
况爲其子者乎 (황위기자자호)
自見此語 (자견차어)
方寸益亂而更無關心之事也 (방촌익난이갱무관심지사야)
얼마 전에 집안의 시동에게 글을 보내셨는데, "늙은 몸의 병이 날로 더해가니
앞날인들 얼마나 되겠느냐. 죽기 전에 네 얼굴이라도 다시 한번 보고 싶구나."
하셨습니다. 아아...남이 듣더라도 눈물이 날 말씀인데, 하물며 그 어미의 자식
이야 어떠하겠습니까? 이 기별을 듣고서는 가슴이 더욱 산란하여서, 다른 일에
마음을 둘 수가 없습니다.
某往在癸未之歲 (모왕재계미지세)
爲咸 鏡道乾原權管 (위함경도건원권관)
而某之父死焉 (이모지부사언) 某千里奔喪 (모천리분상)
生不能侍藥 (생불능시약)
死不得永訣 (사부득영결)
而常以爲終天之慟 (이상이위종천지통)
제가 지난 계미년에, 건원보의 권관으로 재임 중에는 아버님께서 돌아가시어
천리를 달려 와 분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살아계실 때는 약 한첩을 달여드리지
못하고, 돌아가신 후에는 영결조차 하지 못해 그것이 늘 아픔으로 남았습니다.
今者母年已高於時制 (금자모년이고어시제)
堂日且迫於西山 (당일차박어서산)
若又一朝而忽有風樹之悲 (약우일조이홀유풍수지비)
則是某再爲不孝之子 (즉시모재위불효지자)
而母亦不能瞑目於泉下矣 (이모역불능명목어천하의)
이제 어머님께서 연세가 높으시어 해가 서산에 닿은 듯 하온데, 하루 아침에
갑자기 돌아가시어 효행을 다 하지 못하는 슬픔이 있게 된다면, 이는 제가 또
한번 불효한 자식이 될뿐 아니라 어머님께서도 지하에서 눈을 감지 못하실 것
입니다.
某竊自惟念 (모절자유년)
島夷之請成 (도이지청성)
所謂無故之和也 (소위무고지화야)
皇朝之使節已下 (황조지사절이하)
而迄無渡海之形 (이걸무도해지형)
前頭之禍 (전두지화)
恐有甚於往日 (공유심어왕일)
不以是冬歸寧於母 (불이시동귀녕어모)
而春防又及 (이춘방우급)
則决不可離陣 (즉결불가이진)
제가 생각하건데, 왜적이 화친을 청한다고 함은 터무니없는 일이고, 황제의
사신이 내려 온 날도 한참 지났는데, 아직 적은 바다를 건너 갈 기미가 없으니
앞으로 닥쳐 올 화는 지난 때 보다 더 심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겨울에 제가
어머님을 뵙지 못하고 봄이 되면 방비에 급하게 되어, 도저히 진영을 떠날 수
없을 것입니다.
閤下幸察寸草之情 (합하행찰촌초지정)
給以數日之暇 (급이수일지가)
則乘舟一覲 (즉승주일근)
而老母之心 (이노모지심) 庶可少慰矣 (서가소위의)
設有緩急 (설유완급)
則豈以閤 下之命而敢誤機事者耶 (즉기이합하지명이감오기사자야)
그러니 합하께서는 이 애틋한 정을 살피시어, 며칠 간의 휴가를 허락하셔서
제가 배를 타고 가 어머님을 뵙게 된다면, 늙으신 제 어머님께는 다소나마
위안이 되실 듯 합니다. 만일 그 사이에 위급한 일이 생긴다면, 어찌 합하의
허락이 있었다 하여 일을 그르치는 잘못이 있게 하겠습니까?
附答書
至情所發。彼我同然。此書之來。令人心動。第緣公義所係。未敢率爾定奪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