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창동 다음 근무지는 화곡동이었다. 화곡동은 내가 운명의 여인을 만났던 지점이다. 어느날 전화가 한통 왔다. 전화를 한 사람은 신정동에서 같이 근무했던 대리였다. "잘지냈지, 우리지점에서 화곡동으로 발령 받아 가는 여직원이 있어 잘 지켜보라고, 괜찮은 여자야" 나는 윗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었고 여직원들에게도 인기가 꽤 있었다. 일도 왠만큼 했지만 외향적으로 변한 성격으로 직원 회식자리나 야유회 자리에서 사회를 도맡아 보았다. 학교에서 배운 활발한 내 성격은 사회에서 좋은 점수를 딸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주로 서무(총무)일을 많이 맡았다. 서무 일이란 지점 살림을 하는 일이고, 특히 지점장 딱가리를 하는 일이었다. 그말인즉 윗사람 말 잘듯고 시키면 시키는데로 잘 실행하는 직원이라는것이다. "참, 사회생활을 잘 한건지, 한심한건지" 그리고 직원들이 일처리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이것저것 직원들을 도와주는 업무였다. 전화를 받은 나는 새로 전근오는 여직원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 전까지도 여러 여직원을 짝사랑했던 나는 관심을 가져보라는 대리의 추천도 있었으니 얼마나 그녀에게 관심을 많이 가졌겠는가, 그 직원을 내 레이더망에 꽉하니 잡아 넣었다. 그녀는 무척 예뻣다. 영화배우 정윤희를 닮았다. 물론 외로움에 떨고 있던 내가 어떤 여인을 보더라도 예쁘지 않았겠냐마는 그래도 닭들속에 들어있는 한마리 학의 자태였다. 그녀는 앞머리를 가지런히 자르고 볼에 홍조를 띠고 입술은 불었으며, 몸매는 하늘하늘 날아갈듯 갸날펏다. 특히 그녀의 매력은 눈이었는데 큰 눈에 흰자위가 하얀눈처럼 맑았고 검은눈동자는 밝게 빛을 풍기고 있었다. 그녀는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을 하고 다녔다. 머리도 생머리를 항상 유지하고 있었다. 순수 그 차체였다. 어디하나 빠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나는 그녀를 꼬시기 위해 작전을 세웠다. 화곡동지점은 1, 2층으로 분할되어 있었고 그녀는 1층, 난 2층에 근무하고 있어 같은 은행에 근무를 해도 얼굴도 못보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녀의 집은 목동이었다. 나는 그녀가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출근을 하면서도 우연히 마주친것처럼 행동했다. 출근길에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녀도 내가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내가 그녀를 소개받은것
처럼 그녀도 나에 대하여 어느정도 정보를 가지고 있는것 같았다. 나는 몇주 동안 그녀의 출근시간에 우연을 가장해 얼굴을 마주첬다. 그리고 약 한달이 지나갈 쯤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그녀는 아무 거리낌 없이 나의 데이트에 응했다. 우리는 지점에서 조금 떨어진 경양식집에서 퇴근 후 둘만의 만남을 가졌다. 그녀와 함께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를 썰었다. 그녀의 눈과 얼굴은 빛나고 있었다. 나는 너무 좋아 말을 잃었다. 주말엔 삼청동에서 데이트를 즐겼다. 삼청동은 그녀가 금융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은적이 있어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지점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삼청동에서 데이트를 하면서 팔장도 끼고 찾 달라붙어 걸어 다녔다. 삼청동엔 수제비집이 유명했다. 우리는 삼청동을 걸어 다니다가 배가고프면 수제비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광화문으로 나오면 노래를 부르는 장소가 있었다.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그 당시 광화문, 종로 등지엔 음료 한잔을 시켜놓고 통키타를 치며 여러사람들이 모여 같이 노래하는 장소가 있었다. 지금처럼 노래방이 성행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우리는 목소리를 높혀 다른사람들과 함께 '한사람' '다정한연인들" 등과 같은 노래를 불렀다. 정말 즐겁고 행복한 시절이었다. 나에게도 사랑하는 여인이 생겼고 그 여인과 다정히 거리를 걷고,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고, 노래를 부를수 있는 행운이 찾아왔다. 우리는 거의 매일 같이 퇴근 후 경양식집에서 만났다. 직장내 연예는가능하면 안 들키는것이 좋았다. 들키게 되면 어색해서 같은 지점에서 근무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어떤 커플들은 결혼식에 가셔야 아니, 저 사람들이 사귀었어 하고 감짝 놀라는 경우도 있었다. 커플인지도모르고 상대방에게 그 상대에 대하여 않좋은 소리를 하고 풍문을 전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그 둘이 사귀는 것을 알게되었을 때 민망함이란 쯧, 그래서 우리도 가능하면 사귀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숨길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기침과 하품, 사랑은 숨길 수 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가 연예를 한다는 사실은 우리만 빼고 전 직원이 다알고 있었다. 그때 당시엔 이상한 속설이 있었다. 여자를 완전히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선 하룻밤을 자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만남을 가지 6개월 정도가 지난 후 그 속설을 실행하기로 했다. 연휴가 있던 어느날 나는 그녀에게 춘천에 있는 청평사로 여행을 가자고 했다. 아침 일찍 떠나면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하다고 그녀를 꾀었다. 청평사는 소양강 댐에서 배르 타고 들어가야 하는 절이었다. 배를 타고 간다는 얘기는 시간이 늦어지면 잠을 자고 와야 하는 장소란 것이었다. 그녀는 내 의도는 전혀 모른채 좋다고 했다. D-day날 그녀는 청바지에 하얀 면티를 입고 나왔다. 특히 허리띠를 꽃무늬가 있는 손수건으로 대신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예뻣다. 우리는 춘천가는 열차를 타고 소양강댐으로 가서 배를 타고 청평사로 들어갔다. 청평사에 도착했을 땐 벌써 오후 서너시쯤 되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소양강을 건너는 배가 끊어지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녀를 가지고 싶었으나 또다른 마음으론 지켜주고도 싶었다. 우리는 마지막 배를 타고 소양강을 건넜다. 청량리에 도착했을 땐 밤10정도 였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오늘은 집에 들어가기 싫은데, 저기 모델에 들어갈까?" 그녀는 아무말없이 나를 따라왔다. 모텔에 들어간 우리는 진한 키스를 했다. 그녀의 몸을 훍던 나에게 또한번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결혼하기 까진 그녀를 지켜줘야지" 나는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해서 방을 나왔다. 그녀는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순진하고 순수하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우스개 소리로 짐승만도 못하다고 생각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녀와 결혼을 결심했다. 결혼을 해야 겠다고 친구들에게 말하니 친구들이 나를 밀어주겠다고 커플로 여행을 가자고 했다. 친구3명과 우리는 커플을 이루워 화진포로 2박3일 여행을 떠났다. 화진포 앞바다는 너무 깨끗했다. 화진포는 고성에서도 북쪽으로 더 올라가는 해변으로 엣날에는 김일성별장이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아름다웠다. 우리는 남자방 여자방 두개를 잡고 해변가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했다. 동네분이 바다에 나가 문어를 잡아오셨는데 엄청나게 큰 문어였다. 우리는 그 문어를 사서 쪄달라고 부탁했다. 문어가 얼마나 컷던지 6명이 배터지게 먹고도 반 이상이 남았다. 우리는 먹고, 마시고, 태양이 작렬하는 바다를 즐겼다. 참 좋은 시절이었다. 나를 밀어주겠다던 3커플중 나보다 더 빨리 결혼을 친구가 있었다. 나를 밀어주는게 아니라 자기들이 먼저 불이 붙허 결혼을 하고 말았다. 어째든 좋은 일이다. 나도 그 후 몇개월이 지나지 않아 아름다운 그녀와 결혼을 했다. 나에겐 인생을 살면서 가장 큰 행운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행운이었는지 알 수 없다. 아름다운 외모와 순수한 정신, 은행원이란 직업을 생각해보면 나보다 훨씬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었을것이다. 그러나 운명이란 덫에 걸려 나같은 놈하고 결혼을 했다. 그녀는 지금도 내 곁에서 마음을 다스리며 일을 하고 있다.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 내가 남아있는 인생 동안 그녀에게 무엇을 해줄수 있을까? 욱하지말고, 응석부리지 말고 조용히 그녀의 말을 따르며 살아가기만 한대도 좋으련만, 나는 아직도 그녀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참 한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