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09. 27
'킬러 본능(Killer Instinct)'이란 말을 국내 스포츠에 보편화시킨 인물은 거스 히딩크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다. 히딩크 감독은 2002년 월드컵 당시 인상적인 명언을 많이 남겼다. 간결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히딩크식 화법'은 많은 평가전(비록 0-5로 진 경기에서도)과 훈련기간에 우리 가슴을 자극했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본선 개막을 앞두고 "한국 선수들에게 킬러 본능이 필요하다"는 말로 또 한번 핵심을 찔렀다.
히딩크가 제시한 '킬러 본능'은 당시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됐던 문전처리 미숙을 해결할 골 결정력 정도로 해석됐지만 그건 좁은 의미다. 넓은 의미의 킬러 본능은 '탁월한 승부사들이 경기에 임하는 태도'다. 농구의 마이클 조던, 골프의 타이거 우즈가 그 대표적인 예다. 조던은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에서의 버저비터로, 우즈는 3라운드까지 리드를 잡은 경기의 파이널 라운드에서 결코 역전을 허용하지 않는 능력으로 킬러 본능을 지닌 승부사의 대명사가 됐다.
조던과 우즈의 킬러 본능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체력이나 정신력, 기술의 우월함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의 킬러 본능은 경기를 이해하는 능력, 상대를 연구하고 준비하는 자세, 심장의 박동이 롤러코스터보다 가파르게 울리는 승부의 순간에 능숙한 서커스 단원이 외줄 위에서 젓가락질을 할 정도의 평정심 등이 모아져 만들어진다. 그런 모든 것이 '이기는 방법'으로 모이고, 그 이기는 방법에 익숙한 그들은 승자가 된다.
인터넷 사이트 'CEO 리포트'에 따르면 '킬러 본능'을 스포츠에 일반화한 인물은 액션스타 부르스 리(리샤오룽)였다고 한다. 리샤오룽은 기계적인 동작으로 운동하는 제자들에게 진짜 적을 상대하는 마음으로 혼을 담아 훈련할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리고 킬러 본능은 결국 경기 자체를 즐기고 사랑하는 자세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히딩크 감독이 원했던 것도 결국 문전처리 능력의 완숙함이 아니라 축구 자체를 즐기라는 것이었으며 그런 자세가 킬러 본능을 키워주고 승자를 만들어 준다는 논리다.
프로야구 시즌이 막바지다. 삼성과 현대의 1.2위 경쟁, 한화.KIA.두산의 3.4위 다툼, 이대호의 타격 3관왕 여부 등이 마지막 날, 마지막 경기, 마지막 순간에 결정날 수 있는 형국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야말로 킬러 본능이 아닌가 싶다. 1년 농사를 결정짓는 그 승부의 순간, 승부의 타석에 들어서는 선수에게 머리띠라도 두르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각오가 필요할까. 아니다. 과도한 성적에의 압박, 승리에의 부담은 킬러 본능을 갉아먹는 저해요인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말은 '즐겨라(Have fun!)'라는 한마디. 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단 '진정' 즐길 수 있다면.
이태일 / 야구전문기자
자료출처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