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2월 11일
‘불안의 전염’ 총선 앞둔 與에 악재… 野도 정치적 이용 땐 역풍
메르스 대처 잘못해 朴정부 지지율 폭락…‘탈미친중’ 文정부, 느슨한 입국통제로 국민안전 걸고 모험
감염공포는 정치불신으로 이어져…與, 불안 잠재우면 호재 반전 - 野도 대승적 태도 견지해야
전염병을 두고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는 것은 참 한심해 보인다. 하지만 총선을 앞둔 만큼 여든 야든 속으로는 손익계산이 분주하다. 청와대는 물론 여야가 모두 정치적 영향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21세기 들어 신종 바이러스가 세 번 있었다.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신종플루(신종인플루엔자H1N1), 그리고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였다. 앞의 둘은 비교적 잘 대응해서 국정에 부담을 주지는 않았다. 노무현 정부의 사스 때는 고건 전 총리가 선제적으로 잘 대응했다. 이명박 정부의 신종플루 대처도 세계보건기구(WHO)가 성공적 대응 사례로 꼽았다. 하지만 메르스는 대응 실패로 박근혜 정부 국정 지지율이 폭락했다. 이번은 어떨까.
‘전염병의 정치학’을 구성하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이들 요인이 교차하면서 정치적 민심이 축조된다.
◇우한 폐렴은 ‘팬데믹’인가
우한 폐렴은 전 세계적 참사를 가져올 대형(Big one)인가, 아니면 통제 가능한 소형(Small one)인가. 전문가들도 둘로 나뉜다. 세계적 확산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와 통제 가능하다는 견해가 갈린다. WHO마저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한편으로는 비상사태임을 알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여행을 막을 필요는 없다는 식으로 중국 입장을 지지한다. 급기야 WHO 사무총장이 친중국파라 정치적 입장에 따라 정책을 결정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어쨌든 현재 보고된 치사율은 사스가 9∼16%, 메르스가 30∼40%인 데 비해, 우한 폐렴은 4% 안팎이다. 주로 침방울에 의해 전염되기 때문에 방어만 잘하면 전염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도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중국 전역에 퍼졌다는 것이 문제다. 숙주가 너무 크다. 중국과 교류가 빈번한 한국이 가장 위험한 국가군에 속할 수밖에 없다. 비록 세계에는 대형이 아니라도 우리에게는 대형일 수 있다. 감염 전문가들은 앞으로 한 달이 고비라고 말한다. 초기에 확진자가 적더라도 잠복기를 거쳐 지역 감염이 급격히 확산하는 변곡점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막을 수 있는가가 정부 대응의 성패를 좌우하는 기로가 될 것이다.
◇ 초기 대응은 적절했나
중국이 완전히 실패한 것은 초기 대응이었다.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과거의 교훈은 초기 대응 수준이 성패를 가른다는 점이다. 그런데 중국은 이 문제를 ‘권위주의’로 대응했다. 역사는 역사의 교훈으로부터 배우지 않는 자들을 벌한다. 중국은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전문가 보고를 무시했고, 이미 감염이 확산하고 있는데도 엄청난 인구가 이동하는 춘제(春節·중국의 설)까지 실질적 통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번 바이러스 발생을 처음 경고했다가 공권력에 협박당했던 의사 ‘리원량(李文亮)’이 이 바이러스 감염으로 사망하자 중국 민심이 들끓고 있다. 이 사태의 가장 큰 정치적 피해자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태로 정보 통제만 잘하면 된다는 식의 전체주의 체제의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한국도 초기 대응에서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컨트롤타워인 질병관리본부의 권한이나 자원이 미비해 현장 수습에만 급급했다. 가장 큰 잠재적 위험 요인은 중국 입국자 통제를 느슨하게 시행했다는 것이다. 바이러스의 입구를 열어놓고 바이러스를 제어하는 매우 위험한 해법을 채택한 것이다. 만일 우한 폐렴이 변곡점을 넘어 확산한다면 이 느슨한 입국 통제가 주된 원인으로 지목될 것이고, 이는 정치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 민생경제와 총선에 미치는 파장은
과거의 경우 신종 바이러스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럴까. 역시 문제는 중국이다. 2003년 사스 때보다 우한 폐렴이 중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 2003년은 중국 경제가 활황이었다. 세계 경제에서의 비중도 4%에 불과했다. 지금은 세계 경제성장 기여율이 27%에 달하는데 경제는 하강기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새로운 경제적 위험’이라고 평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는 한국이 그 직접적 영향권하에 있다. 이 사태로 인한 피해는 소비산업과 민생경제에 집중된다. 공공부문이나 대기업에 다니는 상층 노동자들은 피해가 별로 없다. 피해는 서민들이 몰려 있는 서비스산업과 자영업에 집중된다. 안 그래도 문재인 정권 경제 정책에 따른 피해가 가장 큰 음식·숙박·소매업 등 분야와 그 종사자들에게 피해가 몰릴 가능성이 크다. 4월 총선에서 거리의 민심은 이들이 좌우하는데, 이 사태가 3월까지 길어진다면 대응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여권으로서는 악재일 수밖에 없다.
◇ 전염병의 외교학
애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간파했듯이 공감(sympathy), 특히 측은지심은 인간의 본성이다. 나라 간에도 측은지심이 없을 수 없다. 이웃 나라가 불행을 당했을 때 연민을 표하고, 도움을 주는 것은 외교의 중요한 미덕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사스 때 중국을 방문하고 쓰촨(四川) 지진 때 이명박 대통령이 현지에 위로하러 간 건 착한 외교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국가는 도덕적 존재이기에 앞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우선하는 전략적 존재다. 국민의 안전과 외교의 이익이 부딪칠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딜레마이나 기본적으로는 전자, 즉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 현 정부가 이번 사태에서 보여준 태도는 이 경계를 벗어났다. 국민 안전이 상수이고 중국의 입장이 변수인데, 그 반대로 비친다. 탈미친중(脫美親中)에 대한 의구심이 커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미국 등 주요 국가들과 달리 바이러스의 입구를 열어놓은 것은 국민 안전을 걸고 모험을 강행한 것이다. 몇 해 전 개봉했던 영화 대사처럼 ‘뭣이 중헌디…’를 묻고 싶은 장면이다.
◇ 사회심리적 불안의 전염
불안은 두 가지 연원을 갖는다. 과거의 고통에 대한 기억, 그리고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이다. 메르스 때의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우한 폐렴 확산을 통해 소환되면서 국민의 불안은 커졌다. 불확실성은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고, 그것이 편도체의 공포를 자극한다. 불안은 소통을 통해 전염된다. 합리적 담론보다는 불안을 지지하는 담론에서 사람들은 불안의 근거를 확인하고 더욱 움츠리게 된다. 이 경우 SNS는 불안의 전도체이지 안정의 전도체는 아니다. 불안의 전염은 오로지 바이러스가 확실히 잡혔다는 신호가 확인돼야 막을 수 있다.
불안의 확산이 정치적으로 여당에 득이 될 리는 없다. 그렇다고 야당이 이 지지율을 가져가는 것도 아니다. 불안 심리는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이기 때문이다. 결국 불신의 늪에서 그래도 누구를 더 믿을 수 있는가를 유권자들은 보고 있다.
총선을 불과 두 달여 앞둔 시점에서 우한 폐렴의 확산은 승패의 변수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정부와 집권여당이 이를 조기에 통제해 광범한 불안과 공포를 잠재울 수 있다면 악재가 호재로 반전될 수도 있다. 야당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자세를 보이면 역풍이 일 수 있다. 대승적 태도를 견지하고 말조심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전염병의 정치학’은 그 자체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는 않는다. 바이러스는 정치색이 없는 법이다.
박형준 / 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
문화일보
■ 세줄 요약
초기 대응의 문제점 : 우한 폐렴은 세계적으로는 팬데믹이 아닐 수 있지만, 한국에는 대형인 상황. 초기 컨트롤타워 혼선이 잠재적 위험 요인이 됨. 전염병이 확산한다면 정부의 느슨한 중국 입국자 통제가 정치 쟁점으로 부상할 것.
민생경제에 미칠 영향 : 미국 연준, 우한 폐렴을 ‘새로운 경제적 위험’으로 평가. 중국과 밀접한 한국이 직접적 영향권하에 있으며, 그 피해는 중산층과 공기업·대기업보다는 서민과 서비스산업 및 자영업에 집중될 수밖에 없어.
전염병의 정치학 : 국민의 안전과 외교 이익이 부딪칠 때 정부는 국민 안전을 우선해야. ‘불안의 전염’이 정치적으로 여당에 득이 되지는 않겠지만, 야권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면 총선에서 역풍이 일어날 수도.
■ 용어 설명
‘팬데믹(pandemic)’은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상태를 말함. 중세 유럽 인구 3분의 1을 희생시킨 흑사병, 20세기 초의 스페인독감, 1968년의 홍콩독감, 2009년의 신종플루 등이 팬데믹으로 분류됐었음.
‘새로운 경제적 위험’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우한 폐렴의 영향을 놓고 평가한 말. Fed는 의회 제출용 보고서에서 “중국 경제 규모 때문에 우한 폐렴은 미국과 전 세계 시장으로 번질 수 있다”며 이같이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