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7. 09
독버섯처럼 퍼지는 현금 살포성 복지정책을 막아야
내년 총선(4월 15일)을 앞두고 정부·여당이 현금성 복지 살포라는 전형적 포퓰리즘에 총력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이미 중앙정부의 현금급여가 지난해 21조 7000억원에 이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현금급여는 수혜자가 기여금·보험료 등을 내지 않아도 지급되는 복지혜택이다. 더구나 정부는 내년부터는 6개월간 월 50만원씩 최대 300만 원의 청년 구직활동수당을 10만 명에게 지급하기로 하고 예산 2019억원을 신청해 놓고 있다. 내년부터는 중위소득 30~60%의 저소득층이나 폐업한 영세 자영업자 등을 대상으로 국민취업 지원제도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2020년 5040억원, 2021년 7200억원, 2022년 8640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저 현금을 살포한다는 주장이나 다름없어 보일 정도다.
지방정부도 만만치 않다. 서울시의 청년수당, 경기도가 하반기 도입예정인 배당수당, 서울시 중구의 어르신 공로수당, 경기도 광주시의 셋째 자녀 양육비, 강원도 정선군 양육비, 인천시 중구의 다자녀 양육비, 인천시 강화군의 양육비, 강원도 기본양육수당, 경상북도 봉화군의 출산 육아지원금 등 현금성 복지가 경쟁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지난해 신설된 현금성 복지만도 489건으로 한 해 비용만 4300억 원에 이른다. 독버섯처럼 현금 살포성 복지정책이 확산하고 있다. 오죽하면 지난 5월에는 전국 시·군·구청장 산하에 ‘복지대타협 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겠나.
상당수 지방정부의 재정은 이미 파탄 지경에 이르고 있다. 2013년 9조원이었던 지방정부의 재정수지 적자가 지난해에는 18조 5000억원으로 불어났다. 내년에는 더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적자는 지방정부를 빚더미에 올려놓고 있다. 지난해 지방정부 채무는 29조 9000억원에 이른다. 이는 중앙정부 채무와 함께 국가채무를 구성하게 된다. 늘어나는 국가채무는 당연히 우리의 후세대가 갚아 나가야 할 부담이다. 갚지 못하게 되면 재정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방만한 지방정부의 재정운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이유다.
지방정부가 나랏돈 63% 사용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문제는 지방정부의 재정적자 확대가 지방정부로의 재원 배분이 적어서 초래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중앙정부보다 더 많은 재원을 사용하고 있는데도 방만한 재정지출로 인해 적자가 확대되고 있다. 2017년 총조세는 345조 8000억 원에 달했다. 그중 국세가 265조 4000억원, 지방세가 80조 4000억원이었다. 그런데 중앙정부 재원 중 138조 7000억원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48조 6000억원, 국고보조금으로 47조 7000억원, 지방교부세로 42조 4000억원이 이전됐다. 결국 가용재원은 중앙정부가 126조 7000억원(37%)이고 지방정부가 219조 1000억원(63%)이었다.
더 큰 문제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지방교부세는 내국세의 20.27%와 18.9%를 각각 교부하게 돼 있어 지방의 청소년 인구 비율이 줄어도 내국세가 증가하는 한 계속 증가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증가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상당액은 교사 처우 개선을 비롯한 복지비 등으로 방만하게 지출되고 있다. 서울시 교육감이 내년부터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매달 20만원씩 지급하겠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가능하다. 최근 드러난 한 연예인의 고액 강연료도 이러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부랴부랴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하니 국민의 혈세를 이처럼 사용해도 되는지 어이가 없다.
설상가상 17개 시·도 교육감은 교육부 장관이 새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고교 무상교육 재원을 중앙정부가 부담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니 방만 운영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무상교육은 올해에는 3학년, 내년에는 2·3학년, 2021년에는 전 학년이 하게 돼있다. 소요예산이 올해 3856억원에서 내년에는 1조 3882억원, 2021년에는 1조 9951억원까지 치솟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고보조금도 방만하게 사용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보조금 중 복지비로 사용되는 비율이 2015년 47.8%에서 올해 59.2%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방 기초단체의 주민 1인당 보조금이 300만~400만 원에 이른다고 하니 가히 대한민국은 보조금 천국이라고 할 만하다. 이 정도 되니 보조금을 받아도 다른 사업은 엄두를 내기 힘들다는 게 지자체들의 하소연이다. 국고보조금을 더 타내기 위해 적자투성이 지방축제도 만발하고 있다. 2017년 사업비 5억 원 이상 지방축제 472개 중 흑자는 4개뿐이어서 3554억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국고보조금을 받아 설립된 체육관 등 공공시설의 88%가 적자라고 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닌가. 그래도 정부는 내년부터 2022년까지 체육관 등 생활밀착형 시설에 30조원을 투입하면서 상당 부분을 보조할 예정이다.
구청장, 청와대에 파산지경 호소
이처럼 방만하게 사용되고 있는데도 견제장치와 통제시스템은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 특히 지방의회 상당수를 여당이 지배하게 되면서 견제장치가 사라지고 중앙정부의 통제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어 선거를 의식한 지자체 단체장들의 방만 운영을 부채질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복지정책 대부분이 지방정부가 일정 비율을 분담하는 매칭 방식으로 설계된 것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중앙정부의 복지가 늘어나면 날수록 지방정부의 복지지출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초연금은 중앙정부 70%·지방정부 30%, 영유아 보육료는 중앙정부 45%·지방정부 55%, 가정양육수당은 중앙정부 45%·지방정부 55%, 생계급여는 중앙정부 60%·지방정부 40%, 장애인연금은 중앙정부 50%·지방정부 50%, 아동수당은 중앙정부 60%·지방정부 40%로 돼 있다.
지방정부 부담분은 다시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가 나누어 분담한다. 이러다 보니 수입이 적은 지자체는 파산지경까지 이르고 있다. 급기야 여당 구청장인 부산 북구청장은 예산 중 복지예산이 70%에 달해 파산지경이라고 청와대에 편지를 보내 하소연까지 하기에 이르렀다.지난 5월 27일에는 전국 226개 시·군·구 지자체장들이 복지대타협 특별위원회 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무분별한 선심성 현금복지를 전수조사해 성과를 검증하겠다고 나섰다.
오정근 /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중앙일보
지방재정 방만 운용 그대로 두고 재정 분권 강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지방세 비중은 낮은 수준이 아니다. 2014년의 경우 한국의 지방세 비중은 23.1%였다. 같은 해 OECD 평균 20.5%보다 높은 수준이다. 더구나 완전히 지방자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연방형 국가와 단일형 국가로 나눠 보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연방형 국가의 지방세 비중은 평균 30.7%다. 한국이 속해 있는 단일형 국가는 16.6%였다. 지방자치 구조가 비슷한 나라와 견줘보면 한국은 지방세 비중이 매우 높다는 얘기다.
정부는 재정 분권이라는 이름으로 지방세 비중을 2019년 25%에서 2021~22년에는 30%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 정도면 완전히 연방형 국가 평균 수준이다. 이를 위해 소비세 중에서 지방세로 할애하는 비율을 지난해 11%에서 2020년에는 21%까지 높인다는 구상이다. 여기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국고보조금·지방교부세가 현재 추세대로 증가할 경우 지방정부의 가용재원은 많이 증가하고 견제 장치와 콘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재정의 방만 운영은 완전히 고삐가 풀리게 될 우려가 크다.
가용재원이 많이 늘어남에도 방만 운영으로 적자가 늘어나면 국가채무가 늘어나 결국 후세대에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 현금복지가 당장은 달콤할 수 있겠지만 결국은 부메랑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지금은 “생산성 향상 없는 현금분배는 인적자원을 파괴한다”고 갈파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로머 뉴욕대 교수의 경고를 되새길 때다. 무차별적 현금 복지는 생산성 하락을 통해 저성장을 불러오고 세수를 감소시켜 재정위기를 앞당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