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제(秦始皇帝, B.C259~B.C210)는 12살의 나이인 기원전 247년에 왕이 되었다. 시황제는 왕이 되는 즉시 자신이 묻힐 능을 만드는데 70만 명이라는 죄수를 동원하여 그가 죽을 때인 기원전 210년까지 무려 37년 간 그의 능 공사를 하였다고 한다. 더해 왕릉 공사에 동원된 죄수 및 기술자가 도망을 치려 시도하면 활의 일종인 쇠뇌를 쏴 죽였다고 한다. 아울러 능의 위치를 바깥 세상에 알리지 못하게끔 왕릉 공사에 동원된 일꾼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여 70만 명이 모두 능 안에서 죽었다는 게 된다. 어디 70만 명만 죽었겠는가? 바깥에서 왕릉 공사에 필요한 자재를 운반해 온 사람들, 관청에서 공문을 전달하러 온 이들 기타 등등 모두를 합치면 70만 명보다 더 많은 이들이 죽었을 터. 진시황은 백기(白起, B.C?~B.C257)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 기원전 260년 백기는 조나라와 전투를 하여 어린 아이 240명은 살려두고 조나라 군사와 백성 45만 명을 산 채로 땅구덩이에 묻어버리는 그악한 짓을 저지른다. 이를 사서史書에선 '장평長平의 전투'라고 한다. 여하튼 다 같은 진나라 사람인 진시황과 백기는 세계사에 있어 다시 없는 대학살자들이다. 두 위인爲人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
九月,葬始皇酈山。始皇初即位,穿治酈山,及并天下,天下徒送詣七十餘萬人,穿三泉,下銅而致槨
『사기史記』「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9월, 시황제를 여산(酈山)에 매장했다. 시황제가 처음 즉위했을 때 여산을 공사했고, 천하를 통일하자 전국의 죄수 70만여 명에게 지하수가 3번 돌 정도로 구덩이를 깊게 파게 하고 구리를 부어 외곽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