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꽃구경
이 분순
검침 카드를 교체해야 할 세대가 있었다. 수도 검침을 맡았기에, 아침 일찍 수도 검침하고, 남은 검침 카드를 점검해 본다. 다시 제작해야겠다.
제작하기 위해 인쇄소를 향해 집을 나선다.
가는 길에 정말 우연히 갑순이와 개인택시 하는 봉곤 씨가 연락돼서 만나게 됐다. 우리 셋은 초등학교 동창생이다.
계절은 봄을 맞아 꽃 잔치를 벌이고 있다. 어깨가 들썩이고 발걸음이 둥둥 가볍게 뜬다. 이를 눈치챈 봉곤씨가
“우리 셋이 꽃구경 가자. 내가 잘 모시지.”
“오늘 영업은?”
“괜찮아 오늘 마침 비번이야! 개인택신데 내 마음대로 쉬면 되지.”
“뭐야! 갑순이랑 너희 둘이 이미 말을 맞춰놓은 거야?”
벌써 TV에선 꽃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하루쯤 꽃에 묻혀 봄을 즐기고 싶었다.
이미 나이는 깊은 가을로 접어들었는데, 새봄을 맞아들이면 조금이라도 젊어질까?
세 사람은 초등학생이 되어 봄 소풍이라도 가는 듯 즐겁다. 참새처럼 제비처럼 조잘대면서 금오산에 오른다. 금오산으로 넘어가는 도로에 개나리꽃이 이미 노란 물을 뿌려 놓았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또 다른 꽃이 마중 나온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도 두 팔 벌려 환영의 팡파르를 울린다. 어떤 벚나무는 수양버들처럼 늘어져 살풀이하는 무당처럼 너울너울 춤을 춘다. 그 모습 또한 일품이다.
흐린 날씨가 이들의 멋을 좀 구긴 건가? 아니다! 날씨가 흐리면 흐린 대로 햇빛이 나면 그 나름대로 꽃의 진가를 깎아내릴 수가 없다.
꽃 마차를 탄 듯한 기분으로 금오산 고갯길을 넘어서 대성지 쪽으로 간다. 여기도 어김없이 꽃 잔치를 벌이고 있다. 청소년수련원을 지나서 골짝으로 계속 달린다. 가는 길목 이쪽저쪽에서 진달래가 마중 나온다.
꽃에 취한 황혼의 동창 세 명은 나이를 잊고, 꿈길을 걷듯 꽃 터널을 빠져나온다.
들판의 비닐하우스에서 일 년 농사를 짓기 위해 농부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4월은 24절기 중 다섯 번째인 청명을 기하여 농사일을 시작하는 가장 바쁜 시기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이 있다. 농사는 천하의 근본이며 나라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힘이라 했다. 골짜기에 늘어선 땅을 갈아엎고 농사 준비를 하고 있다.
인생도 저와 같은 것이다. 봄날 같았던 시절에 자식 기르고 직장생활을 하며 열심히 살았다. 저 농부처럼….
골짜기를 누비며 칼국수로 유명한 식당을 찾는다. 식당 앞에 차들이 빽빽이 늘어선 걸로 봐서 유명한 식당이 맞나 보다. 앉을 자리가 없어 밖에서 기다렸다가 순서가 돼서 들어간다.
칼국수 세 그릇을 시켜놓고 기다리는데 이윽고 칼국수가 등장한다. 칼국수 옆에는 곱게 채를 썬 생나물에 김치랑 풋고추까지 따라 들어온다. 여기에 밥도 함께 들어온다.
어릴 적 고향 친구와 꽃 구경에 칼국수까지 먹었으니 이만하면 오늘은 복을 듬뿍 받은 날이다.
이제 몇 번이나 이런 호사스러운 봄을 맞을 수 있겠나? 회답은 건강 지키기다. 건강만 따라준다면 다른 문제는 없다.
이제 건강을 지켜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