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만한 은박지에 그림을 그리려면
연필이나 송곳 하나면 충분하다
힘조절은 마음의 조절이라고
그가 아이들과 친구 삼아 놀던 파도는
단 한번의 당김으로도 처절하게 반짝인다
상처가 뚫리면 바위 사이에도 색다른 구멍이 생긴다
환한 찰나의 아름다움을 위해 게들은
그가 펼쳐놓은 작은 은박지 위로 기어나온다
이럴때 은박지는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들이
너무 무겁다
빛나는 물질의 바닥이 어둡다는 것을 쉽게 알아챈다 고려청자의 푸른빛 보다 더 어두운 암비빛을 위해
게들은 은종이 위에 펄물을 쏟아부었다
게의 아련한 기억과 기억을 이은 선이 그림이 되고 있다
어디선가 담배냄새가 난다
까마귀 우는 소리 들리고
환각을 건너뛴 저녁이 은박지 위를 걸어나온다
아이들은 어느새 손을 맞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얼싸 안는다 따뜻한 손과 발 엉덩이 위로 분리불안으로 가득한 눈동자가 지나가고
선과 선이 떨어지지 않으려 안쪽으로 뒤엉킨다
서귀포 미술관 유리창에 갇혀있는 내 시선도
그 선에 긁히고 만다
내 눈빛의 최초의 형태가 상실된다
가로 15cm 세로 10cm 그림 하나가 내 눈 속에서
새롭게 완성되고 있다
카페 게시글
우리들의 이야기
은박지는 꿈틀거리는 것들이
보들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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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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