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명 희
바다가 된 강 너머 피땀으로 쌍아올린 터전이 있는데
무심한 강물만 다리와 길의 흔적을 삼킨 체 소용 돌이 친다
한 나절을 기다려 흙탕물을 헤치고야 만난 참혹함..
백여 톤 가까이 제품들과 원부자재는 오물에 뒤엉켜 나 뒹군다
물의 위력이 철의 위력을 뛰어 넘는가
웬만한 크레임으로도 꿈쩍 않던 육중한 기계들이 제멋대로 쳐 박혀 있다.
엄청난 충격은 사람의 눈물도 마르게 하나보다.
기자들이 다녀가고 뉴스에 장식되어 보지만 어떤 도움도 되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니 소식을 들은 고마운 손길들이 대형 버스로 왔다.
오로지 수작업으로 엉킨 제품들을 분리하여 폐기물 처리하는 데만 한 달여
겹겹이 쌓인 진흙들을 씻어내고 수리하는데 석 달여
큰 상처를 남긴 체 공장은 힘차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제품은 대형트럭에 실려 전국으로 나가고 희망이 생기나 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이 지난 저녁 무렵 걸려온 응급전화
황망한 마음으로 공장으로 향하니 십 여키로 떨어진 곳부터 하늘이 벌겋다.
김천시내 소방차가 모두 출동하여 자정이 넘어서야 화재가 진압되었다.
88올림픽을 앞두고 호텔 공항 등에서나 사용하던 핸드 타올. 냅킨 등의
국산화를 위해 수많은 밤을 새우며 노력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특허를 비롯 인증프로그램들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대기업에 끼친 손해는 용서되지 않았고
개발자의 공로를 인정받아 누리던 독점의 지위는 박탈되었다.
잿더미로 변한 터전위에 다시 공장을 짓고 재기를 노려보았으나
살벌한 경쟁과 대내외적인 악재는 수 십 년 노력에도 불구하고 빈손이 되었다.
수많은 우여곡절들은 그 후로도 내 삶을 뒤흔들었지만
부단한 노력으로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당당히 살아왔다 자부 할 수 있다.
생의 정리기에 들어 주름은 깊어지고 흰서리가 내렸지만 하느님께서 내게
부단히 깨우쳐 주는 겸손함을 잃지 않으려 오늘도 노력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