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릉을 오르지 못한 아쉬움보다 대청봉에 오른 기쁨
1. 일시 : 2003. 8. 5(화)
2. 여행요약 : 기상(04:30) → 야영장 출발(05:40) → 소공원 매표소(06:00) → 비선대(06:50) → 비선대 출발(07:05) → 귀면암(07:50) → 양폭대피소(09:10) → 희운각대피소(11:00) → 점심식사 후 출발(12:00) → 소청봉(13:50) → 15분휴식 후 출발(14:05) → 중청대피소(14:25) → 15분 휴식후 출발(14:40) → 대청봉(15:10) → 하산시작(15:40) → 오색매표소(19:20)
▲공룡릉과 운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설악산 대청봉을 올랐다. 삶이 그만큼 바쁜 것인지, 산이 너무 먼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디든 다녀와서 일주일을 넘긴적이 없던 기행문을 2주일이나 지나 쓰기 시작하는 것은 분명 삶이 바쁜 것 같다. 여하튼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본 대청봉은 정말 장관이었다. 2주일이나 지나 그 감흥 그대로 그려내기가 어렵겠으나 이제부터 서서히 풀어 나가려 한다.
설악산은 중학교 수학여행때 비선대앞에서 사진 한 장 남긴 것과, 몇 년전 울산 바위를 오른 것, 그리고 이번이 세번째이다. 4박5일의 이번 휴가를 다 기록하자면 한페이지 용량으로 너무 방대해질 것 같아 설악산 대청봉을 오른날을 가장 중점으로 적을까 한다.
<산행전날>
▲설악 오토 캠프장
우리에겐 휴가 첫날 비를 맞으며 텐트를 치는 징크스가 있다. 그래서 어둠속에 비를 맞으며 텐트 치는 일만은 없어야겠기에 해지기 전에 텐트를 치고자 서둘러 출발했다. 설악산까지 5시간의 긴 여정이다. 그나마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 7시간에 비하면 많이 짧아진 거리다.
텐트, 아이스박스, 5일간의 옷가지들과 산행베낭으로 꽉찬 트렁크 문을 닫고, 11시가 조금 못되어 드디어 출발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긴 죽령터널을 지나고, 제천, 원주를 지나 영동고속도로로 주문진까지 가서 낙산사를 지나, 해맞이공원 앞 설악산 소공원으로 가는 삼거리에서 소공원 쪽으로 좌회전해서 보니 쌍천과 어우러진 설악산 풍경이 한눈에 보였다. 내일 저 산을 오른다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뛰었다.
4시가 조금 지나 야영장에 도착했다. 몇 년전보다 잘 정돈된 모습이었다. 적당한 장소를 찾아 텐트를 치고, 양념갈비를 구워 내일 땀으로 소비될 체력을 비축(?)했다. 새벽 5시 출발 예정이라 일찍부터 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평소 습관이 워낙 늦게 자는터라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았다. 더구나 밤 11시가 다 되어 옆자리에 텐트를 치는 가족들이 있어 잠은 완전히 달아나 버렸다. 새벽 한시경 잠이 들었을까, 아뿔싸 눈을 뜨니 벌써 4시반이다.
<산행당일>
▲아침 햇살이 눈부신 설악산
햇반을 데워 아침을 먹고, 이슬에 젖은 상태인 텐트도 적당히 말아 넣고, 소공원으로 향했다. 야영장에서 소공원까지는 10분정도의 가까운 거리다. 등산화로 갈아 신고, 매표를 하고 보니 6시였다. 출발전 마음을 새롭게 다지듯 배낭을 단단히 고쳐메 보았다.
아침 햇살이 서서히 번져가고 있는 소공원의 설악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비선대 대피소
매표소에서 비선대까지는 거의 산책로에 가까웠다. 지리산 등반때의 경험으로 미루어 우리 속도보다 조금 빨리 걸었다. 우리의 걸음 속도가 워낙 느리고, 중간 중간 사진을 찍어대는 나 때문에 우리의 등반 시간이 표준 등반 시간보다 많이 걸린다. 6시 50분 비선대에 도착해서 점심으로 먹을 김밥 도시락을 주문했다. 미리 싸진 도시락이 아니라 15분을 기다리고 보니, 늦잠으로 촉박해진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곳에서 1.5L 생수병에 물을 가득 채워 출발했다.
10분쯤 지났을까? 금강굴 이정표가 나타났다. 여기서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금강굴 아래에 적힌 마등령은 보지 못하고, 시간이 촉박하니 금강굴은 다음 기회에 가자며 그 방향을 포기하고 계속 걸었다. 30분쯤 가다보니 계속 계곡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이 계곡이 천불동 계곡이라 생각하니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공룡릉과 다른길이 아닌가. 7시 30분. 다시 되돌아가서 8시가 넘어 금강굴에 당도한다해도 해지기전에 중청에 당도할 자신이 없었다. 하는수 없이 공룡릉을 포기하고, 천불동계곡을 따라 계속 걸었다. 길을 잘못 들어서서 이젠 오히려 시간이 넉넉해졌다.
▲천불동계곡의 기암절벽 & 양폭포
7시 50분 귀면암에 도착했다. 여름 휴가철인데도 설악산 등산하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모두들 바다로 간 것일까. 귀면암까지 오면서 혼자서 대청봉을 오른다는 아저씨 한분과 아들 친구들과 오신 것 같은 아주머니, 나이가 제법 있으신 남자분 두분이 만난 사람 전부였다.
비선대에서 약 3시간정도 이어지는 천불동 계곡은 계곡 양쪽으로 깍아지른 듯한 기암 절벽과 유리알처럼 맑은 물이 어우러져 가슴이 벅찰만큼 아름다웠다. 오련폭포, 양폭포, 천당폭포를 지나도록 계곡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더니 마지막으로 이름없는 폭포를 하나 지나 10시쯤 드디어 계곡이 끝났다. 3시간이나 계곡을 따라 걸으며, 저 높은 산을 언제 올라가려나 할만큼 계곡은 깊었다. 계곡이 끝나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조금 오르다 서 있기를 반복하며,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계곡이 깊을 때부터 걱정하던 일이었지만, 정말 가파른 길이었다. 11시 희운각에 도착했다. 계획대로 공룡릉을 넘어 왔더라면 오후 4시는 넘어서야 도착했을 것이다.
점심을 먹으려고 김밥은 꺼내 놓고 보니 1인분에 딱 한줄뿐이었다. 어짜피 공룡릉을 넘지 않아 시간이 넉넉하던터라, 물을 끓여 컵라면과 같이 먹었다. 희운각대피소에는 다람쥐가 정말 많았다. 사람들이 귀엽다고 조금씩 먹이를 준게 길들여졌는지, 사람들 발아래를 떠나질 않았다. 너무나 적극적인 다람쥐 모습이 오히려 무섭게 느껴졌다. 수도시설이 따로 되어 있지 않고, 대피소에서 파는 생수는 너무 비싸서 대피소아래 흐르는 계곡물을 담아 다시 출발했다.
▲희운각대피소 & 신선대
희운각에서 소청봉까지도 역시나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 되었다. 우리보다 나이가 더 많으신 두 부부들이 우리를 앞질러 가고 보니, 에그 이래서야... 하며 자신이 한심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조망이 좋은 곳에서 잠시 쉬면서 내려다 보니, 신선대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원래 계획했었던 공룡릉이 운무 사이로 뽀족한 능선을 자랑하고 있었다. 직접 밟아 보진 못했지만 내려다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언젠가는 저 공룡릉을 밟아 보리라 다짐하며,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소청봉 & 용아장릉
소청봉에 오르자 우리가 올라온 쪽의 외설악뿐만 아니라 반대편 내설악의 모습까지 환히 내려다 보였고, 가장 높은곳에 있는 암자라는 봉정암과 용아장릉이 손에 잡힐 듯 한눈에 들어왔다. 한편엔 용아장릉을 또 한편엔 운무에 휘감긴 공룡릉을... 설악산의 웅장함이 모두 발 아래 있고 보니 세상을 다가진 것 보다 기분이 좋았다.
▲중청대피소 & 대청봉
20분후 중청대피소에 다다르자 큰 헬기가 짐을 내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대피소에서 판매하는 물건들을 실어 나르는 중이었다. 그것을 보고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져서, 대피소에 당도하자말자 아이스크림 파느냐고 물었더니, 아저씨께서 아주 황당한 얼굴을 하시며 없는데요한다. 생수 2병을 사서 빈 물병을 채우고 대청봉으로 향했다.
대청봉 오르는 길에는 이름모를 꽃들이 많았다. 꽃사진 몇장을 담고,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공룡릉과 용아장릉을 몇 번이고 뒤돌아 보며, 오후 3시10분 드디어 설악산 정상 대청봉에 섰다. 마침 날씨가 쾌청해서 속초 시가지와 동해안의 모습까지 선명하게 발아래 있었다.
힘겨운 공룡릉을 각오하고 내일에나 밟았을 대청봉을 하루 일찍 정복하고 보니 공룡릉에 대한 아쉬움보다 설악산의 웅장한 아름다움으로 벅차오르는 기쁨을 감당할 수 없었다. 30분 정도 정상에서의 기쁨을 만끽한후 오색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길 역시 굉장히 가파른 길이었다. 1700m이상의 고봉을 3시간 40분만에 하산하는 길이니 그 가파름이야 당연한 것이었다. 더구나 하산하면서부터 명희의 오른쪽 무릎이 아프기 시작해 거의 절면서 내려왔다. 10년 넘은 등산화마저 앞이 벌어져 손수건을 찢어 동여 맺더니, 아주머니들은 신발이 돈달라하네 하며 지나 가신다.
어둠이 깔릴 무렵 오색매표소에 다다랐다. 이번 여름 휴가 일정이 같아 오색에서 만나기로 했던 언니와 형부가 마중을 와주었고, 오색에 있는 형부 이모님댁에서 언니가 해주는 맛있는 저녁을 먹고, 소공원에서 차를 찾아왔다.
등산 다음날부터는 오색에 머물며 계곡에서 물눌이도 하고, 백담사에도 다녀오고, 오색온천도 즐기고, 밤에는 대포항에서 아이쇼핑도하고, 낙산해수욕장에서 폭죽놀이 구경도하고, 멋진 레스토랑에서 티타임도 즐겼다. 평상위에 텐트를 치고 자다가, 강원도 호우주의보가 내려 천둥번개에 놀라 퉁퉁 부은 다리를 절며 방으로 도망온 일은 지금도 웃음이 난다. 명희야~ 혼자 살겠다고 다리 아픈줄도 모르고 잘도 뛰어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