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4월12일 토요일
순례지: 경기도 남한 산성 성지
남한산성 순교성지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26km, 성남시에서 북동쪽으로 6km 떨어져 있는 남한산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사적 제57호 남한산성은 편리한 교통과 수려한 경관으로 주말 등산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1636년) 이후 처형터가 있어 기해박해(1839년)와 병인박해(1866년) 당시 광주(廣州) 일원, 양주(楊洲), 용인(龍仁), 이천(利川)에서 잡혀 온 교우들이 치명 순교한 곳이다.
원래 남한산성이 위치한 자리는 신라 문무왕(661-681년)이 쌓은 주장성(일명 일장산성)의 옛터로 그 후 몇 차례 축조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남한산성은 조선 인조 2년(1624년) 때 크게 고쳐 지은 것으로 후금국의 위협과 이괄의 난을 계기로 2년간에 걸쳐 축성되었다고 한다.
성의 둘레는 약 8km에 달하고 높이는 7.3m가량이다. 동서남북 4군데에 문루가 있고 역시 4방위에 각각 장대(將臺 : 옛날에 장수가 올라서서 명령, 지휘하던 대)가 있었는데 현재는 수어장대(守禦將臺)만이 남아 있다. 또 원래 9개의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장경사만 남아 있다.
남한산성으로 들어서는 길은 두 군데로, 서쪽으로는 성남 방면, 동쪽으로는 경기도 광주 방면으로 연결된다. 치명터가 동문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순례객들은 동문으로 들어서야 한다.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서문으로 와서 로터리를 거쳐 동문으로 빠져 나오는 길도 가능하다. 사실 대중교통 편은 성남 방면이 더 노선이 많다.
새로 복원되어 깔끔하고 세련된 모습을 자랑하는 남한산성 입구 정문을 지나면 동문이 나온다. 동문 오른쪽으로는 산비탈을 거슬러 올라가며 육중한 성벽이 위용을 자랑한다. 동문을 지나 몇 걸음을 옮기면 오른쪽으로 도랑 건너편에 '천주교 순교 성지'라는 철제 푯말이 서 있다. 여기에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곳은 서기 1791년 신해(辛亥), 1801년 신유(辛酉), 1839년 기해(己亥), 1866년 병인(丙寅) 네 차례에 걸쳐 한덕운, 김덕심, 정은 등을 위시하여 70명 이상(실제 순교자 2-3백 명으로 추산) 순교한 곳임."
순교성지의 이정표를 본 순례 객들은 바로 이곳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막 지나온 동문을 통해 신앙 선조들은 오랏줄에 묶여서 살아서 들어왔지만 혹독한 고문 끝에 결국은 시체가 되어 성 밖으로 던져졌다.
더욱이 살아서 동문을 들어온 이들은 죽어서는 물이 빠지는 구멍으로 성 밑에 파놓은 수구문을 통해 내팽개쳐졌다. 그래서 수구문(水口門)은 시구문(屍口門)이 되었고, 이곳으로 흘러내리던 물도 핏물이 되었으며 동문 밖 계곡에는 시신이 쌓였다.
시구문은 동문을 바라보며 왼쪽 길 바로 밑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얼핏 보면 잘 알 수 없고 얼기설기 철조망으로 가려 놓은 밑으로 잘 들여다보면 어른 두어 명이 허리를 굽히고 다닐 만한 크기의 사각진 구멍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옆길로 돌아 비탈길을 내려서 시구문 바깥쪽으로 내려서면 마치 당시의 처참한 광경이 눈에 보이는 듯 선하고 그 험한 고통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내고야 말았던 선조들의 굳은 신앙이 메아리치는 듯하다.
동문의 애달픈 이야기를 뒤로 하고 비탈을 따라 1km 정도 걸어 올라가면 남한산성 로터리가 나온다.
이 로터리에 천주교도들을 수감했던 옥터와 처형터가 있다. 동문 쪽에서 올라오면서 로터리에 도착하면 오른쪽에 있는 주차장이 옥터로 추정된다. 정면에는 섭정 10년간 2만여 명의 천주교인을 학살한 것으로 전해지는 대원군의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세워져 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일러 주는 듯하다. 어느 사찰 승려들이 세워 준 것으로 전해지는 불망비와 마주한 곳이 바로 처형지였다고 교회사가들은 전한다. 여기서 처형된 교우들이 시체가 되어 산비탈로 질질 끌려 내려가 동문 밖 개울로 던져졌다.
당시의 슬픈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터리에는 산행 나온 사람들의 즐거운 목소리가 가득하고 처형터에 연이어 늘어서 있는 식당에서는 오랜만에 특미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가롭다.
경기 도립공원인 남한산성은 수림과 유적 기념관 등이 잘 정리되어 있다. 수어장대, 숭열전, 청량당, 현절사, 침괘정, 연무관 등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부터 제6호까지로 지정되어 있으며, 본성 축성 당시 창건한 성내 9개 절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장경사와 병자호란 기록화 전시장 등도 한번 둘러볼 만하다. 2014년 6월 22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이 신청한 남한산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수원교구는 남한산성 순교성지의 교회사적 의미를 살리고자 1998년 9월 30일 남한산성을 성지로 선포하고, 공영주차장 인근 작은 개천 옆으로 1978년에 마련한 부지 위에 순교자현양비(2004년 9월)와 한옥 양식의 성당을 건립하였다. 성당 뒤편 야산에는 야외 미사터와 십자가의 길 14처를 조성하여 순례자들을 맞이하였다. 2015년 4월 25일에는 기존의 협소한 성당을 대신할 새 성당을 맞은편에 건립하여 봉헌식을 가졌다. 새 성당은 철근 콘크리트 구조와 목구조를 혼합한 한옥 형태의 2층 건물로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기존의 성당 건물은 남한산성에서 순교한 복자 한덕운 토마스를 기념해 토마스홀로 명칭을 변경해 순례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