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하나의 유혹
남국의 여름 날씨는 참으로 변덕이 심하다. 아침에 천둥소리에 놀라 눈을 떠도 우산 없이 출근하기도 하고 땡볕에 시간 맞춰 약속한 장소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흠뻑 소나기를 맞게 되는 것이 이곳 날씨이다. 그런데도 요 며칠 동안은 비와 구름과 안개로 인한 궂은 날씨로 여러 날 맑은 하늘을 보지 못했었다.
맑은 여름날 남국의 밤하늘, 그 빛나는 별들이 보고 싶어 며칠을 기다리는 동안 밤은 고사하고 한낮에도 회색빛 커튼으로 하늘을 가리는 날씨의 심술이 못내 원망스럽기만 했다.
오늘도 아침부터 찌푸린 날씨에 밤하늘의 별들을 볼 수 없으리라 생각하면서 기대도 하지 않은 채 보냈는데 퇴근 후 건물을 나서니 아직 어두워지지 않은 하늘에 하얀 실구름이 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이내 빌딩의 문을 열고 거리로 나섰다.
차함로드(Chatham Road)를 건너 힐튼 타워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와 이미 어두워진 하늘을 살피니 가로등 불빛과 건물마다 뿜어내는 수많은 네온과 전등의 휘황한 빛으로 뒤덮인 도시의 지붕은 거기 하늘이 있음은 알려주면서도 내가 보고 싶어 하는 별들의 모습은 보여주지를 않았다.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발길을 옮기다가 분수대가 있는 공원에서 다시 한번 올려다본 하늘에 얼핏 아스름히 반짝이는 별 하나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고개를 젖히고 찬찬히 하늘을 더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나마 보이던 별(아마도 직녀성이겠지만)도 아슴푸레 보이다 말다 할 뿐 다른 별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찌할까?’ 잠시 망설이던 나는 이스트 침사추이 선착장이 있는 바닷가로 가보기로 했다. 오늘은 어떻게 해서든지 남국의 밤하늘 별자리 모습들을 찾아보리라 다짐하면서.
내가 별에 대해 처음 인식한 것은 여섯 살 때의 어린 시절로 기억하고 있다. 고모님 댁에 갔다가 늦은 밤 어머니가 오셔서 잠든 나를 깨워 업고 집으로 가는 길에 커다란 별(유성)이 길게 꼬리를 그리며 이웃집 담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어린 마음에도 저 집은 이제 큰일 났구나! 하고 걱정했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그러나 큰일은 정작 그 집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운명적인 큰 사건으로 일어났다. 며칠 후 나는 아버지의 장례를 준비하는 어른들 틈에 끼어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했으니까. (정녕 내가 엄마 등에 업혀서 본 별은 아버지의 별이었을까?)
잘 아는 대로, 별과 별 사이의 거리는 광년(光年)으로 표시하고 있다. 광년이란 빛의 속도로 1년을 달리는 거리로 대략 9조 4천 6백억km쯤 된다. 우리가 보는 별은 사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별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별의 거리가 100만 광년이라면 우리는 100만 년 전에 출발한 그 별의 빛을 보고 있는 것이 된다. 따라서 그사이에 어떤 사유에 의해(수명이 다해 폭발했든지 충돌이 있었든지) 그 별이 사라졌을 수도 있으므로 실제로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 별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또 한 가지 우리가 보는 별은 고정된 위치를 갖지 않는다. 제자리에 있지 아니하고 중력에 따라 일정한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고 있으므로 우리는 시간에 따라 위치를 바꾸며 이동하는 별을 보고 있는 셈이다.
천문학자들은 아마도 1만 5천 년쯤 뒤에는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천체의 모습이 꽤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한다. 북극성도 더 이상 북쪽을 가리키고 있지 않을 것이며 북두칠성도 국자 모양이 아닌 다른 형태로 흩어져 있을 것이라고 한다.
흩어지는 별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아무래도 겨울철 별자리인 황소자리의 플레이아데스성단일 것이다. 이 별들은 6개가 한곳에 모여있는데 실은 그 움직이는 방향이 마치 한곳에 모여있던 개구리가 여러 방향으로 튀는 것처럼 6개의 별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한다.
다른 별들이야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든지 지금 나는 유일하게 발견한 저 별 하나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채 저 별(직녀성)의 짝이 되는 또 다른 별(견우성)을 찾아 이 남국의 거리를 헤매고 있다.
직녀성은 보이는데 어째서 견우성을 찾을 수 없을까? 보여야 할 것이 보이지 않으면 더 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직녀성을 보았으니, 짝이라도 맞출 수 있게 견우성을 꼭 찾아봐야지 하면서 선착장이 있는 곳까지 왔다. 견우성을 찾는다고 무슨 횡재를 하는 것도 아니건만 굳이 견우성을 찾는 것은 칠석이 3일밖에 남지 않았기도 하지만 아직 한국에 남아 있는 아내 생각에 짝을 그리는 애틋한 마음이 작용한 탓인지도 몰랐다.
이스트 침사추이 선착장에서 바다를 끼고 신세계 센터까지, 신세계 센터에서 천체과학관을 거쳐 크루즈가 정박하는 스타하우스에 이르는 길은 애비뉴 오브 스타즈 길로 이 길은 낮이건 밤이건 연인들의 발길이 끊이지를 않는 곳으로 '연인의 길’로 불리기도 하는 홍콩의 이름난 해안산책로이다. 오늘도 이곳저곳에서 팔짱을 낀 남녀들이 남의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줄을 지어 활보하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다시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살피며 별자리를 찾는다.
드디어 뿌연 복사 광선 넘어 아련히 빛나는 독수리자리의 주성인 알타이르를 찾았다. 이 별이 바로 견우성인데 독수리자리의 전체윤곽은 확인이 안 되지만 주성인 견우성은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서 실안개 같은 엷은 구름 막 사이에서 백조자리의 데네브도 찾았으나 나머지 별들은 대도시 밤하늘의 현란한 복사 광선과 오염된 대기 탓에 도저히 제대로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은하수도 없고 심지어 북극성조차 보이지 않았다. 다만 여름철 대 삼각형인 견우와 직녀, 데네브의 확인으로 나머지 별들이 있어야 할 위치만 짐작할 뿐이다. 저기가 북극성, 저기는 헤라클레스, 그 너머 왕관자리, 저쯤이 땅꾼, 그 아래가 전갈... 분명히 존재하는 것, 알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니...
견우성과 직녀성의 전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곳에서도 같은 전설을 갖고 있는데 오히려 칠석날에 대한 인식의 비중은 우리보다 한결 윗길이다. 이곳에서는 음력으로 1월 1일인 설 명절은 물론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을 중양절이라 하여 다 명절(공휴일)로 삼고 있다. 주역의 음양오행에서 양이 겹치는 날을 상서롭게 여기는 세시풍속을 법제화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같은 날을 비슷하게 중히 여기나 이곳 사람들의 음력 선호는 유별나서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서양에서도 직녀성의 별자리에 대한 전설이 있다. 거문고자리의 알파성주성)인 베가(Vega)가 바로 직녀성인데 서양에서는 아폴론의 아들 오르페우스가 사용하던 리라(Lyra, Lyre-Harp)를 제우스가 하늘로 올려 별자리가 되게 하였다고 한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의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진 아름답고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이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뒤섞여 전해져 오는데 잠시 이것을 정리하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오르페우스는 태양의 신인 아폴론과 뮤즈인 칼리오페의 아들로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시와 음악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아버지인 아폴론이 헤르메스로부터 받은 거북의 등으로 만든 비파(Lyre)를 오르페우스에게 주었는데 그는 늘 이것을 가지고 연주하기를 즐겼다. 그가 연주할 때면 너무나도 아름답고 황홀한 노래에 새들과 짐승들도 몰려와 귀를 기울였고 심지어 나무나 풀들도 그의 음악에 반응했다고 한다.
하루는 숲속에서 한 아름다운 소녀를 보았는데 그녀는 나무의 요정들 가운데 하나인 에우리디체로 둘은 첫 만남에서부터 사랑에 빠져 하루라도 서로를 보지 못하면 병이 날 지경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매일 숲속에서 또는 냇가에서 노래하며 사랑을 속삭이는 다정한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드디어 둘은 주위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해서 꿈같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하루는 물의 요정 퀴레네의 아들인 양치기 아리스타이오스가 에우리디체에게 반해 사랑을 고백하자 에우리디체가 이를 거절하고 달아나다가 뱀에게 물려 3일 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결국 죽게 된다.
사랑하던 아내의 죽음에 넋을 잃은 오르페우스는 다른 신들의 충고로 제우스를 찾아가 아내를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하고 이를 지켜보던 헤라 여신도 거들자, 제우스는 그의 아우 하데스가 지배하고 있는 죽음의 나라로 가는 길을 가르쳐준다.
오르페우스는 라코니아의 타이레논으로 가서 명부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데 도중에 위험을 만날 때마다 비파를 연주하여 위기를 넘기면서 망각의 강을 무사히 건너 드디어 하데스가 있는 곳에 도착한다.
하데스에게 찾아온 목적을 말하고 아내 에우리디체를 돌려 달라고 요구하나 하데스가 거절하자 비파를 연주해 그의 아내 펠리스포네의 마음을 움직여 하데스를 설득하게 한다. 결국 하데스는 명부 세계를 벗어나기 전까지는 결코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조건으로 에우리디체를 돌려준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승의 빛이 보이는 입구에 이르렀을 때 뒤따르던 에우리디체로부터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아 불안해진 오르페우스가 엉겁결에 뒤를 돌아보고 만다.
순간, 아! 하는 안타까운 비명과 함께 그토록 사랑했던 에우리디체는 다시 명부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동굴은 바위가 무너져 내리면서 메워져 오르페우스는 이승에 나와 비탄에 젖어 울부짖는다. 이제 그의 음악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슬픈 노래가 되었고 트라키아의 처녀들이 오르페우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사랑을 호소하며 매달리기도 했으나 오직 에우리디체 한 사람만 가슴에 품고 있는 그에게는 다른 어떤 여인의 사랑도 받아들일 공간이 없었을 것이다. 자존심을 상한 여인들의 정욕과 복수심에 의해 오르페우스는 살해되어 그의 시신은 찢기고 머리는 헤브로스 강에 떨어져 바다로 흘러갔는데 흘러가는 동안에도 그의 입에서는 ‘에우리디체!’를 애절하게 외치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애처롭게 여긴 제우스는 오르페우스가 사용하던 비파를 하늘로 올려 거문고자리의 별이 되게 하였다는 것이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를 각색한 오페라 공연에서 ‘내 아내 에우리디체’와 ‘아내를 돌려다오’라는 곡을 들었을 때 그 아름다운 선율과 심금을 울리는 애절한 음색에 빠져들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한국에서 다시 한번 이 오페라가 공연된다면 만사 제쳐놓고 날아가 관람할 것이다. 설령 관람료가 항공료만큼 비싸다 할지라도.
사람들의 삶에도 각자의 사연이 있듯이 존재하는 사물마다 나름대로 사연이 있으며 비록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올려다보는 별 하나에도 사연이 담긴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아름답지 않은가?
견우와 직녀가 1년 동안 참아왔던 그리움으로 오작교를 건너 서로 만나는 7월 7일(음력), 까마귀들 머리가 벗겨지는 아픔을 이 전설을 만든 선인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일까? 아니면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란 그런 아픔을 기꺼이 감내하면서라도 소중하게 인식되어야 한다는 패러독스인가?
그 전설을 믿든지 아니 믿든지 나는 반짝이는 별 하나를 보면서 저것이 거문고자리 직녀성이야 하고 인식한다. 우리는 어쩌면 사실과 허구를 우리의 삶 속에 녹여내고 거기서 또 다른 전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면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견우와 직녀는 물론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를 실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성(理性)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거기서 비롯된 전설의 아름다움과 오페라의 감동에 감응하는 감성(感性)이 이를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 나는 시인 윤 동주의 마음처럼 별 하나의 유혹에 이끌리어 이 자리에 섰으나 쉽게 발길을 돌려 돌아서고 싶지 않음은 아직도 찾아내지 못한 나머지 별자리들이 거기 있음이며 풀어내지 못한 마음의 그리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당신이 밤하늘을 쳐다보면
내가 그 별 중의 하나에서 살고 있고
그 별 중 하나에서 웃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모든 별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
당신은(당신만이) 웃는 별을 갖게 되는 거지요.”
"In one of the stars I shall be living.
In one of them I shall be laughing.
And so it will be as if all the stars were laughing,
when you look at the sky at the night...
you-only you-will have stars that can laugh!"
-어린 왕자 중에서-
글/ 필그림(김의중)
첫댓글 회장님의
작품들에서처럼 별과 같이
늘 빛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