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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의 숙독 공부법
조선 최고의 '공부의 신'
율곡 이이는 공부할 때 한 단계씩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야 한다고 말하였다. 공부할 때는 단번에 무언가를 이루고자 욕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하나씩 배워 점진적으로 위로 올라가야 진정한 공부라고 주장하였다.
「중용」에 있는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으로부터 시작해야 하고, 먼 곳에 가려면 가까운 곳으로부터 나아가야 한다”는 말을 실천한 선비가 바로 율곡이다.
[자경문을 지어 스스로를 경계하다]
율곡 이이(李珥, 1536~1584년)는 우리나라 성리학의 한 학파인 기호학파를 형성하였고 학문을 백성의 일상생활에 직결시켰으며 동서분당을 조정하려고 노력한 정치가이자 대학자였다. 그는 조선 시대 '공부의 신' 또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철학자'라고 불린다.
율곡은 길지 않은 49년의 인생을 살았기에 그의 문집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철학의 내용과 깊이는 참으로 풍부하고 깊다.
그는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성리학의 큰 봉우리로 칭송받고 있다. 비록 이황과 35세의 나이 차가 있음에도 율곡 이이는 이황과 견주어 결코 뒤지지 않는 선비로 평가받는다.
조선의 선비들은 관료로 출사를 하면 학문을 연마할 여력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학문적 경지가 높은 학자들은 정치에서 한 발 떨어져 은거하며 학문을 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정치가로 퇴계 이황과 함께 16세기를 대표하는 인물 율곡 이이
그런데 율곡 이이는 정치와 학문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사람이라는 점에서 선비들 중 매우 돋보이는 인물이다. 그는 학문의 경지로도 조선 성리학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이황과 쌍벽을 이루었으며 관료로서도 조선 중기 정치 일선에서 국가 경영에 헌신을 한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작자미상 - 평생도 삼일유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다. 서너 살 때부터 공부를 시작해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네 살 때는 『사략』을 읽다가 시골 훈장이 구두를 잘못 떼어 읽는 것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일곱 살 때는 미래에 화를 불러올 인물에 대해 예언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아홉 번이나 연속으로 과거시험에서 장원을 하여 '구도장원'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그가 '구도장원'이라는 전설에 가까운 공부의 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총명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남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늦게 자면서까지 공부하고 자신을 부단히 채찍질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격몽요결』은 평소 율곡 이이의 공부에 대한 생각이 드러난 책으로, 공부를 시작하는 어린이는 물론이고 공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훌륭한 공부 지침서로 전해지고 있다.
항상 다른 이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며 의관을 바르게 갖추고 얼굴빛을 단정하게 한다. 앉을 때는 두 손을 모아 바르게 앉고 걸을 때는 급하게 걷지 않고 점잖게 행동하며 말을 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행동 하나하나도 경솔하게 해서는 안 되며 또한 아무렇게나 지나쳐버려서도 안 된다. (출처-이이, 『격몽요결』 중에서)
율곡 이이는 "공부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누구나 해야만 하는 것이며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자신의 이 말을 그대로 실천하는 「자경문을 지어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자 목표를 세웠고 끝없이 노력하였다. 필자는 그가 단순히 성인이 되고자 목표를 세웠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다운 사람이 바로 성인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가 세운 「자경문」은 모두 11조항이다. 첫 번째 조항에는 "먼저 그 뜻을 크게 가지고 다른 성인을 본보기로 삼아서 자신도 성인이 되고자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리고 그가 스스로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은 「자경문」의 마지막 조항인 "공부는 죽은 뒤에나 끝나는 것이니 서두르지도 늦추지도 않아야 한다"라는 문장에서는 공부에 대한 그의 확고한 의지와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원문은 매우 길지만 율곡의 「자경문」 11조항을 간단하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 입지立志뜻을 크게 가지고 성인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공부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2. 과언마음을 안정시키려면 말을 줄여야 한다.
3. 정심마음을 바르게 하기 위해 잡념과 집착을 끊어야 한다.
4. 근독謹-홀로 있을 때라도 언제나 나태함을 경계하고 삼가라.
5. 독서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친 뒤에 글을 읽어라.
6. 욕심재물과 영화에 마음을 두거나 탐하지 마라.
7. 진성해야 할 일이라면 정성을 다해 진심으로 하라.
8. 정의지심천하를 얻더라도 불의를 얻어서는 안 된다.
9. 감화感누군가 나에게 악한 일을 했더라도 스스로 돌이켜 깊이 반성하고 그를 감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10. 수면마음을 항상 깨어 있게 하고 바른 자세로 자야 한다.
11. 용공지효用공부는 서두르지도 말고, 쉬지도 말고, 멈추지도 말고, 꾸준하게 끝까지 해야 한다.
율곡 이이는 글을 읽을 때에는 반드시 태도를 정숙히 하고 단정히 앉아서 마음과 생각을 한 곳으로 모아 집중하여 한 권의 책을 읽어야 하며, 그 책에 익숙해진 다음에야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결코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았다. 많은 책을 서둘러 보는데 힘쓰지 않았으며 억지로 기억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또한 율곡 이이는 밤에 공부하는 것이 낮에 공부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말하였다. 그의 『경연일기』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밤에는 번잡한 일이 없고 만물조차도 다 잠들어 있기에 자연스럽게 집중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조선 시대 공부의 신인 율곡 이이는 이처럼 자경문을 만들어 스스로 나태해짐을 경계하고 부단히 노력한 공부의 대가였다.
[미래를 내다보며 주창한 '변경장']
세계적인 석학 앨빈 토플러의 학력이 뉴욕대 영문학사가 전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또한 그가 대학을 졸업한 후 공장에서 노동자 생활을 5년 정도 하였다는 사실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는 학사 출신이었지만 독학을 통해 세계적인 미래학자와 석학으로 명성을 떨쳤다.
율곡 이이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49세의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가 보여준 학문적인 성취는 그 어떤 학자에도 뒤처지지 않는다. 특히 그는 '조선 시대에 살았던 미래학자'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정확히 미래를 예측하였다.
율곡이 당시 국가의 장래를 경고하였고 그의 말대로 임진왜란이 터져서 조선이 큰 위기에 빠진 것은 매우 잘 알려진 사실이다. 스물아홉 살부터 본격적인 벼슬길에 들어선 그는 오랫동안 관직에 있으면서 명종과 선조 시대의 언관직과 판서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그러면서도 서울 한강 근처에 있던 독서당 동호東湖 드나들며 어떻게 하면 조선을 중흥시킬 것인지 끝없이 공부하고 연구하였다.
독서당터 讀書堂址
조선시대 뛰어난 선비들에게 특별 말미를 주어 글을 읽게 한 독서당터 일명 "동호당'(東湖堂)이라 하였다.
대제학 변계량이 세종의 명을 받아 젊고 유능한 학자들에게 휴가를 주어 사가 독서를 하게 한 데서 유래한 독서당. 현재 터만 남아 있다.
그는 당시 조선이 중쇠기로 접어들었다고 판단했다. 즉 집으로 비유하자면 건축한 지 오래되어 담이 무너진 상태와 같은 조선을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의 장래가 매우 위험해 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가 위태로운 조선을 걱정하며 내세운 수많은 개혁안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변법경장 變法更張이다.
율곡 이이가 말하는 변법경장은 '나라의 기강이 무너져 제대로 나라가 돌아가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개혁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가 제시한 변법경장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문벌이나 출신보다는 능력 있는 사람을 기용하자.
2. 평민을 포함하여 폭넓게 인재를 양성하자.
3. 중앙에서는 외척의 권력 집중화를 막고, 지방에서는 수령의 자질을 높이며 吏胥들에게도 녹봉을 주어 민폐를 막아야 한다.
4. 붕당을 막기 위해서는 사람의 공론을 존중하고 사기를 높여주어야 한다.
5. 민생을 괴롭히는 방납 시정해야 한다.
6. 왕실 사유재산을 억제하고 왕실의 경비를 줄여야 한다.
7. 군포에 대한 족장과 인징을 금지해야 한다.
8. 공노비의 선상을 개선하여 부담을 줄여야 한다.
9. 사창제를 실시하여 빈민을 구제해야 한다.
율곡 이이는 당시 조선 사회의 병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을 개혁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의 개혁은 급진적이지 않았다. 그는 행동파라기보다는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점에서 미래학자에 더 가까웠다. 예를 들어 기묘사화로 희생된 조광조의 개혁 정신에는 동의하였지만, 조광조가 선택한 방법이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행동파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하여 찬성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도 그의 미래학자다운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한다]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을 통해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공부하지 않으면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학문을 하지 않은 사람은 마음이 막히고 식견이 좁아지므로 반드시 글을 읽고 이치를 구하여 자신이 나아갈 길을 밝히고, 실천을 통해 중도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율곡 이이는 "공부는 왜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해야 하며, 공부하지 않으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답하고 있다. 사람다운 사람은 식견이 넓어야 하고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식견이 좁은 사람은 무엇인가의 노예로 전락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통해 불행한 삶을 살게 될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게 혹은 무엇으로부터 착취당하거나 이용당하면서 살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식견이 좁고 마음이 꽉 막힌 사람들은 쉽게 사기를 당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자주 하게 되어 인생이 남들보다 몇십 배 더 힘들고 고달픈 경우가 많다. 또한 사업을 해도 잘할 수 없고 무엇을 해도 잘할 수 없다.
학문을 시작하는 청년 자제들을 교육하기 위해 율곡 이이가 편찬한 『격몽요결』
율곡 이이는 공부는 특별히 어려운 것이 아니고 특별한 사람만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며 일상생활 가운데 있는 평범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날마다 사용하고 행동하며 머무는 동안 일어나는 모든 일이 공부라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공부가 일상생활에 있는 줄 모르고 높고 멀리 있는 것으로만 생각해 지레 포기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율곡은 말하고 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평범한 사람이라도 타고난 본성은 성인과 똑같기 때문이라고 율곡 이이는 말하였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라도 성인이 되기를 희망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사람들이 그 기질에 있어 차이는 있지만, 그 타고난 본성은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를 통해 참됨과 그릇됨을 알고 잘못된 습관과 편견을 버리게 된다면 자신의 타고난 본성을 되찾을 수 있고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율곡 이이는 글을 쓰는 것을 도의 말단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글을 솜씨 있게 잘 짓기는 해도 근본적인 도에서 벗어나고 쓸데없이 말이 많아 이치를 거스르거나 말은 막히지 않아도 뜻이 막히는 것들은 '유가 하는 행동"이라며 경계하였다.
유란 식견이나 행실이 변변치 못한 선비'를 일컫는 말이다. 그는 성현의 글과 소유의 글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근본을 중심에 두고 말단을 포함하는 것이 성현의 글이라면, 속유의 글은 "말단만 일삼고 근본은 일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율곡이 말한 것은 현대 사회의 학자들도 경계해야 할 것들이다.
조금만 배우고 조금만 뭔가를 깨닫게 되면 그것을 입 밖으로 떠들어 대면서 자랑하기에 온 힘을 쏟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율곡 이이가 말한 이 대목에서 필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은 스스로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 평생을 공부하며 지독하게 자신을 향상해 나가는 사람을 여간해서는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번지르르한 단어를 사용하여 겉만 꾸미는 말을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소유 같은 사람들이 지금 사회에서는 활개를 친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자신을 향상하고 발전하기 위해 더욱더 많이 공부하고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인기에 취하여 더 이상의 학문적인 노력이나 성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공부가 힘든 것은 잘못된 습관 때문이다]
율곡 이이는 사람이 공부에 뜻을 두고 있음에도 이를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로 오래된 습관의 잘못을 지적하였다. 그가 오래된 습관을 타파하자며 열거한 것은 크게 여덟 가지이다.
1. 시간 관리를 철저히 하여 시간 낭비를 조심할 것.
2. 조용히 앉아 자기만의 성찰과 발전의 시간을 가질 것.
3. 편을 가르지 말고 자신과 다른 사람도 인정하고 포용할 것.
4. 번지르르한 글로 자신을 포장하지 말 것.
5. 음주가무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뺏기지 말 것.
6. 한가한 사람들과 어울려 잡담하는 것을 경계할 것.
7. 부자를 부러워 말고 가난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 것.
8. 돈과 명성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절제할 것.
율곡 이이가 습관의 병폐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오래되고 잘못된 습관이 의지를 약하게 하고 바른 행동을 막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수시로 크게 반성하고 노력을 다하여서 나쁜 습관을 고치도록 해야 한다. 그는 공부는 일상생활 속에 있기 때문에 평소 거친 행동을 삼가고 언행을 공손히 하며 일은 진심으로 하고 남을 진실 되게 대하는 것이 모두 공부라고 『격몽요결』에서 밝힌 바 있다.
[율곡 이이의 숙독 공부법]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라
율곡 이이는 한 단계씩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는 것을 공부의 모범으로 삼았다. 공부할 때는 단번에 무언가를 이루고자 욕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다.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하나씩 배워 점진적으로 위로 올라가는 것이 진정한 공부라고 주장하였다.
『중에 있는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으로부터 시작해야 하고, 먼곳에 가려면 가까운 곳에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을 실천한 선비가 바로 율곡이다.
이이는 "공자는 선인들이 크게 이룩한 것을 모은 사람이고, 주자는 현인들이 크게 이룩한 것을 모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오랫동안 차곡차곡 쌓아나가며 공부했던 주자를 먼저 공부의 모범으로 삼고 익힌 뒤 공자를 배운다면 선조들이 이룩한 바를 조금은 따라갈 수 있다"고 임금인 선조에게 아린 적이 있다.
율곡 이이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철학자가 된 이유는 단지 그가 머리가 좋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처럼 공부의 과정을 스스로 깨우치고 체계적으로 쌓아가며 노력한 결과, 조선 시대 최고의 공부의 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 권을 숙독하고 통달할 때까지 읽으라
율곡 이이는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고 선과 악을 파악하며 성현의 뜻을 알기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책을 읽어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필자가 그의 책 읽는 모습을 살펴 본 후 내린 그의 공부법은 "숙독하고 통달하는 공부법"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는 입으로만 읽고 많은 지식을 얻고자 무분별하게 탐독하는 책 읽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책을 읽어도 생각이나 행동이 조금도 바뀌지 않고 그저 지식의 축적과 습득만을 일삼는다
면 올바른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목적으로 책을 읽게 되면 겉으로 꾸미는 말을 많이 하게 되고 책을 읽은 것을 남에게 자랑하게 되며 읽지 않은 책도 읽은 척하게 되니 공부하는 사람은 이를 반드시 경계하라고 하였다.
그는 책을 읽으면 반드시 통달해야 하고 마음으로 체득하여 몸으로 실행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마음으로 체득하고 몸으로 실행하면 생각과 행동이 변화하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공부하는 사람은 인생이 달라진다고 강조한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완전히 이해하여 숙독하고, 통달하여 의문이 없도록 할 때까지 읽는 것이 곡의 공부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만 이 방법은 오늘날에 맞게 변형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에는 참고할 수 있는 책을 쉽게 구하기도 힘들고 그 양도 많지 않았기에 이러한 공부법이 필요했지만 오늘날은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은 참고할 책이 많고 구하기도 쉬울 뿐만 아니라 매우 다양한 작가와 학자의 주장과 의견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책 한 권을 숙독하고 통달할 정도로 깊이 파는 것보다는, 다양한 주장과 견해를 펼치는 여러 방면의 책들을 섭렵한다면 사고가 좀 더 유연해질 수 있다. 또한 서로 다른 생각과 아이디어들이 섞이면서 또 다른 창조를 낳을 수도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율곡 이이의 유품 벼루(출처:문화재청)
雲潑墨文在茲 普厥施龍歸洞 涵鹜池象孔石
상대적으로 책의 종류와 양이 매우 적었던 조선 시대에는 책 한 권을 가지고 통째로 암기하고 숙독하며 통달할 정도로 읽고 또 읽는 공부가 당연하고 바람직했을 것이다. 우리는 깊이 있는 책 읽기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 율곡의 공부법을 현재에 맞게 변형할 필요가 있다.
아홉 가지 생각과 아홉 가지 태도
율곡 이이는 책을 읽는 것에 있어서 생각과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몸가짐과 마음가짐에는 아홉 가지 태도容)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고, 공부하는 데에는 아홉 가지 생각(九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고 말하였다.
율곡 이이가 강조한 아홉 가지 태도는 다음과 같다.
1. 걸음걸이는 무거워야 하고(발을 가볍게 들거나 옮기지 않는다)
2. 손은 공손히 가지며 손을 아무 곳에나 함부로 놓지 않는다)
3. 눈은 바르게 뜨고(눈을 이리저리 굴리지 말고 똑바로 바라본다)
4. 입은 다물어야 하며(밥 먹거나 말할 때 외에는 입을 가볍게 놀리지 않는다)
5. 말소리는 조용히 해야 하고(입을 진중하게 다물고 삿된 소리를 내지 않는다)
6. 머리는 곧게 들며(머리와 몸의 자세를 바르게 한다)
7. 숨소리는 정숙하게 하고 기운을 단정히 해서 숨 쉬는 소리를 함부로 내지 않는다)
8. 서 있는 모습은 의젓하게 하며(한쪽으로 기울거나 비스듬히 서지 않는다)
9. 얼굴빛은 단정하고 위엄이 있게 하는 것(얼굴에 노여운 빛이 있어서는 안 된다).
다음으로 아홉 가지 생각에 대해 알아보자.
1. 환히 보려고 생각하고(무엇이든 바르게 보기 위해 편견이나 욕심을 가지지 마라)
2. 똑똑하게 들으려고 생각하며(듣는 것을 가리지 마라)
3. 안색을 온화하게 가지려고 생각하고(얼굴빛을 노엽게 하지 마라)
4. 태도는 공손하게 가지려고 생각하며(단정한 몸가짐을 가져라)
5. 말은 진실하게 하려고 생각하고(꾸밈없는 말을 하라)
6. 일할 때는 조심하려고 생각하며 (작은 일도 단정하고 조심스럽게 하라)
7. 의심날 때는 물어볼 것을 생각하고(모르는 것은 꼭 물어라)
8. 화가 날 때는 곤란하게 될 것을 생각하며 (화가 날 때는 이치를 생각하며 그 화를 참아라)
9. 이득이 생길 때는 의리를 생각하라(이치에 맞는 것인지 생각한 연후에 재물을 받아라).
공부는 일상생활과 일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항상 취하는 태도와 생각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율곡 이이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새겨들을 부분이 많다.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도 마라"라는 율곡 이이의 말도 모두 이와 같은 맥락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자기의 사욕을 이기는 공부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긴요하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의 사욕'은 내 마음은 좋아하지만 하늘의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율곡이 “말과 잡념이 많은 것이 마음공부에 가장 해롭다"라고 말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정치와 학문 어느 한쪽에 편중되지 않은 정치인이자 학자답게 그는 「자경문」에서 일을 살피지 않고 책만 읽는 것은 무용한 공부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면 아침에 할 일을 생각하고 밥을 먹고 난 뒤에는 낮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 때면 내일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라. 일이 없으면 마음을 내려놓고 일이 있 으면 반드시 생각을 하여 그에 합당한 해결 방법을 얻어야 할 것이다. 책 읽기는 그 모든 것을 한 뒤에 해도 충분하다”고 하였다. 학문과 정치의 균형을 생각한 학자답게 율곡의 실용성이 엿보이는 대목 이라고 할 수 있다.
공부하는 사람이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할 네 가지
율곡 이이는 공부하는 사람이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할 것으로 처음에는 세 가지를 말하였고 나중에 한 가지를 덧붙였다. 그가 말한 세 가지는 몸과 마음에 관련이 있다. 그는 '거경'과 '궁' '여행'을 공부하는 사람이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하는 세 가지라고 말했다. 거경은 마음 수양을 의미하고 궁리는 진리와 이치를 탐구하는 것이며 역행은 몸으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리'는 송나라 때 편찬한 성리학 해설서인 『근사록 近思錄』에서 나온 이념이다. '근사'란 "자하가 간절하게 묻고 가까 이서 생각한 것(절문근사, 近思)"에서 나온 말인데, 사람들이 날마다 쓰는 것(인륜일용, 日用)"과 서로 밀접하게 관련된 사상이다.
율곡 이이가 일상 속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날마다 사용하고 날마다 해야 하는 일 속에 결국 공부가 있기 때문이다.
율곡 이이가 얼마나 지독하고 철저하게 마음을 수양하고 관리하였으며 올바른 생활을 실천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는 『격몽요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일이 있으면 이치에 맞게 처리하고 책을 읽을 때는 성실한 마음으로 그 내용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렇지 않을 때는 "고요히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맑게 가지라고 말하였다.
그는 공부는 평생 해야 하고 절대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서 생각할 수 없기에 "습관과 몸, 마음, 생각, 행동, 일과 같은 것들을 제대로 하고 향상하며 진심으로 대할 것"을 여러 차례 강조하였다. 그러면서도 사물의 이치를 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율곡은 책 속에 모든 것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중국 송나라 때 지은 성리학 해설서 『근사록』
이 세 가지에 덧붙여 율곡은 공부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선비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으로 '경제'를 꼽았다. 그는 『동호문답東湖問答 에서 "선비가 세상에 태어난 이상 마땅히 경제에 마음을 두고 있어야 하는 것이니......”라며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율곡의 균형 잡힌 생각과 실학자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 율곡은 "선비는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돌보는 일을 하여 세상을 세상답게 만들어야 하는 책무를 지고 있으므로 백성의 삶과 가장 직결되는 경제에 항상 마음을 써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배우고 깨달은 것을 통해 나라의 경제와 백성의 생활에 실천하고 적용하여 그들을 잘살게 하는 것이 바로 선비가 알고 실천해야 하는 경제의 본질적인 의미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한 번 율곡이 말한 '공부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네 가지'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1. 거경-마음을 수양하라.
2. 궁리진리와 이치를 탐구하라.
3. 역행-몸으로 실천하라.
4. 경제-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살리는 일을 하라.
『격몽요결』은 율곡이 해주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한 기초 교육에 관한 학습서이다. 저술 직후부터 학생들은 물론 사림에서도 읽어야 할 책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1629년(인조 7)에는 전국 향교에서 교재로 삼기도 했다. 덕분에 활자를 비롯해 목판본이 여러 차례 출간되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책에서 율곡은 학문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일상속에서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책은 성리학이 자연과 사회를 구성하는 근간이 되고 부모와 자녀 간의 효가 사회 질서의 근본이념을 이루며 향촌 지주로 경제적 기반을 가진 사람들이 나라를 이끌던 조선 시대에 '가장 기본적인 교과서'로 받아들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