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 미소의 비밀을 아시나요? 아마 세계적으로 제일 유명하고 그 미스터리를 둘러싼 논쟁과 연구가 된 그림을 말하자면 모나리자일 것입니다.
모나리자의 원본은 루브르박물관에서 두꺼운 방탄유리에 사람들의 접근도 6m만 허용되고 있습니다. 한해 약 800만 명 이상이 그 앞에, 그것도 10분을 선다고 하니 가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해서는 다른 설명이 필요 없겠지만 위키백과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년 4월 15일 - 1519년 5월 2일)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근대적 인간의 전형이다. 그는 화가이자 조각가,발명가, 건축가,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 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 음악가였다. 그는 호기심이 많고 창조적인 인간이었으며, 어려서부터 인상 깊은 사물, 관찰한 것, 착상 등을 즉시 스케치하였다.”이렇게 소개 되어 있습니다.
그가 그린 모나리자는 보는 사람에게 신비감을 주고 그 감흥도 무척 오래간다고 합니다. 모나리자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요? 아는 분들도 많으시니 간단히 이야기 하겠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모나리자를 완성한 이후 이 그림은 보존을 위해 세정도 하고 광택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먼지도 쌓여 변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과학기술자인 “파스칼 코테”는 2004년 루브르 박물관으로부터 모나리자의 실사촬영을 허가받아 2억 4천만 화소의 고화질 멀티스펙트럼 HD카메라로 3년여에 걸쳐 모나리자의 비밀에 연구하였습니다.
먼저 눈썹 이야기를 해보죠. 저도 아주 예전에는 처음부터 눈썹이 없는 줄 알았는데 500년전에는 있었답니다. 왜 지금은 볼 수 없는 걸까요. 3가지 가설이 존재하는데 흙과 기름을 섞어 미세하게 그린 눈썹이 밑바닥 물감에 스며든 것, 시간이 흐르면서 기름이 색소와 함께 투명해진 것, 속눈썹을 그릴 때 사용된 광택제를 완벽하게 닦아내지 못해 눈썹이 사라진 것 중 하나랍니다.
두번째 미소의 신비입니다. 모나리자의 눈가와 입가 등에 산화망간 성분의 얇은 막을 최대 30겹까지 입혔다고 합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나타난 ‘스푸마토 기법’은 여러 겹의 물감과 광택제를 덧칠해 사물의 윤곽선을 안개에 싸인 것처럼 흐릿하게 처리하여 깊이감과 그림자의 효과를 만들어내 깊이감과 온화한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원래는 더 강하고 뚜렷했으며 입 꼬리 부분을 검정색으로 처리한 ‘명암법’으로 미소가 더욱 크게 보였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원래 머리모양은 지금과 달리 쪽진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었고, 그윽한 신비의 미소도 알려진 것처럼 평온한 모습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는데 작품 속 주인공의 손 모양이 편안한 자세가 아니라 주먹을 꼭 쥐고 있다고 합니다.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자세를 그리려다 다 빈치가 마음을 바꿔 지금과 같은 그림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TIP 몇가지만 이야기하렵니다.
1. 지난 11월 28일부터 용산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서 ‘세상을 바꾼 천재, 다빈치展(부제: 모나리자의 25가지 비밀)’이 오는 2011년 2월27일까지 열리고 있습니다. 코테가 찍은 '모나리자' 적외선 분석사진, 다빈치의 발명품들과 함께 위에 나오는 이야기 보다 더 많은 사실을 아주 생동감 있게 보고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2. 모나리자는 캠퍼스가 아니라 포퓰러 나무 화판에 그려졌고 누군가는 잘라졌다는 주장도 했지만 화판은 온전하게 남아있다고 합니다. 아마 그림의 크기가 우리 상상보다 작아서 그런 주장이 있었다고 보입니다. 크기가 어느 정도냐고요. 77×53CM 정도입니다.
3. 모나리자의 인기는 그림이 완성된 때부터 높았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프랑스와 1세의 궁정 화가였기 때문에 모나리자는 처음 프랑스 왕 프랑스와 1세의 소유였습니다. 모나리자는 여러 작품들과 함께 욕실에 걸렸는데 습도가 높아 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덫 칠을 하였다고 하는데 검은 색 옷 부분이 반짝거리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높은 습도로 그림이 망가진다는 걸 알고 루브르 궁전으로 옮겼는데 프랑스 혁명 후 이 그림은 국가소유가 됩니다. 좀 황당한 이야기로 나폴레옹은 침실에 모나리자를 걸어두고 ‘마담 리자’ 라고 부르면서 2년 정도 가지고 있다가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18세기, 19세기에도 유럽에서는 가장 유명한 그림은 모나리자였고 많은 화가와 작가들이 모나리자에 대한 찬사의 말을 남겼습니다. 장 밥티스 코로는 ‘진주의 여인’이라는 작품을 모나리자와 비슷한 구도로 선배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아래 그림입니다. 마음에 드시나요?
4. 마지막으로 모나리자의 모델에 관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그림과 다빈치의 초상을 반반으로 하여 비교하고 자화상이라는 주장까지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유해를 발굴하여 비교하려는 발상까지 했습니다.
기록 등을 확인한 정설로는 리자 게라르디니라는 여성이랍니다. 게라르디니는 1479년 피렌체에서 출생하여 16세에 부유한 비단상인 프란체스코 델 지오콘도의 두번째 부인이 되어 다섯 자녀를 낳았다고 합니다. 모나리자가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1506년 게라르디니의 나이 24세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남편이 사망한 뒤 피렌체의 산토르솔라 수녀원에 들어가 4년동안 지내다 1542년 7월15일 사망에서 사망했고 시신은 수녀원 경내 묻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비극이 숨어 있습니다. 이 수녀원은 이후 수백년 동안 담배 공장, 대학 시설로 쓰이다가 1980년대부터 이탈리아 재무경찰의 막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비극은 당시 공사를 하면서 이곳에 '모나리자'의 모델이 묻혀 있는 것을 알지 못했고, 2007년 지하 주차장 공사를 하면서 무덤들의 부서진 잔해와 더불어 수녀원의 기초가 발굴됐고 이 쓰레기들은 피렌체 교외 쓰레기 매립장으로 보내졌다고 합니다.
30년간 리자 케라르디니의 안식처를 찾기 위해 기록과 온갖 연구를 한 다빈치 전문가 쥬세페 팔란티는 게라르디니의 유해가 지금은 약 30m 높이의 풀로 덮인 언덕으로 변한 쓰레기 매립지에 파묻혔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늦게나마 피렌체 시가 이 수녀원 터에 예술센터를 짓고 그녀의 유해도 발굴할 예정이라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페이스북에서 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