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신비한 곳이다. 양양군은 그 이름과 지리, 산수, 생리(生利), 역사 모든 면에서 불가사의한 요소를 갖고 있다. 영동의 제1도시 강릉과 외설악 관광의 관문인 속초 사이에서 두 도시의 유명세에 가려 있을 뿐이지 고유한 지리적 조건과 역사, 문화를 가진 점이 그렇다. 베일을 하나씩 들추면 그때마다 놀라운 모습과 흥미진진한 얘깃거리를 쏟아내는 곳이 양양이다.
강릉에서 북쪽으로 7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다 하조대를 지나 해안으로 난 지방도로로 달리면 낙산대교를 만나게 된다. 이 다리 위가 양양의 전모를 볼 수 있는 원의 중심과 같은 지점이다. 남대천과 동해, 설악산, 그리고 군 소재지인 양양읍이 한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산과 강과 바다는 사람이 먹을 것을 구하고 심신의 휴식을 취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환경이다. 양양은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가졌다. 그것도 전국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것이다. 양양의 해안은 절경의 파노라마다. 북쪽에는 ‘해오름[襄陽]의 고장’이라는 지명의 뜻 그대로 동해 일출의 명소이자 관동팔경의 하나인 낙산사 의상대가 있다. 남단에는 ‘동양의 베네치아’라는 별명과 더불어 강원도 3대 미항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남애항이 자리한다. 그 사이의 약 100리에 이르는 해안은 항구와 백사장과 기암이 동해안에서 가장 짜임새 있게 배치돼 있다.
2004년 양양군은 ‘양양팔경’을 선정하면서 의상대, 하조대, 남애항, 죽도정 등 네 곳의 해안 경관을 포함시켰다. 낙산해변을 포함한 20여 개의 모래 해변, 와불과 거북 형상의 바위로 유명한 휴휴암, 암초 위에 소나무가 무성한 조도가 보이는 38선휴게소 등 다른 곳에서는 한몫할 진경들이 끼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그 안에 들어간 이는 인간 세상이 어떤 곳인지 제 형체가 어떤 것인지 모를 만큼 황홀하고 하늘로 날아오른 듯한 느낌을 받는다”며 “이 지역을 한번 거친 이는 저절로 딴 사람이 되고 10년이 지나도 그 얼굴에 산수 자연의 기상이 서려 있게 된다”고 이곳 경치를 극찬했다. 낙산사 의상대를 비롯한 동해안 네 곳의 정자를 두고 한 말이지만 마치 양양의 해변을 묘사한 듯하다.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은 양양의 진산이다. 지번도 서면 오색리 산1번지다. 원래 오색령이었다가 이름이 바뀐 한계령,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한 자연용출 온천과 오색약수, 폭포와 단풍과 주화에 얽힌 전설이 서린 주전골 등 남설악 일대는 사계절 관광․휴양객이 찾는 특급 명소다.
오색령․구룡령․칠갑령 등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들어가는 남대천은 그 길이가 60km에 이르고 하구의 폭이 500m가 넘는 영동 제일의 하천이다. 이중환의 말대로 “산수가 좋은 곳은 생리가 박한 곳이 많다”지만 남대천과 같은 큰 하천을 가진 양양은 생리 면에서도 옹색하지 않다. 낙산대교에서 둘러보면 농사를 짓거나 시가를 조성할 편편한 땅이 제법 눈에 띈다. 낙산대교와 가까운 곳에 1981년 발굴한 오산리 유적이 있다. 당시까지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 된 신석기 유적(8000년 전)으로 밝혀져 세계 고고학계의 주목을 받은 곳이다. 양양에는 도화리 구석기 유적(10만년 전), 지경리(6000년 전)․가평리(5000년 전) 신석기 유적, 포월리 청동기 유적(BC 800), 범부리 고인돌(BC 500~600), 가평리 철기 유적(AD 300) 등 선사시대 문화 흔적이 많다.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전유길 학예연구사에 따르면 양양은 선사시대 거의 모든 문화층이 골고루 확인되는 지역이다.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땅이었음을 말해준다.
양양의 산과 강과 바다는 주민에게 좋은 경관을 통한 이득뿐만 아니라 선사시대 거주민에게서처럼 의식주와 직결되는 자원도 풍부하게 제공하고 있다. 조선시대 관찬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에도 나오는 송이와 연어가 대표적인 예다. 설악산과 점봉산 일대의 송림에서 산출되는 송이는 단단하고 영양이 풍부하며 휘발성 향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일본인들도 그 품질을 인정하는 ‘양양 송이’는 2006년 산림청 지리적표시제 1호로 등록됐다. 양양군은 송이축제와 송이밸리 건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송이의 인공 재배 연구와 가공식품 개발 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양양대교 입구 남대천 변에 있는 영동내수면연구소는 국내 유일의 연어 전문 국가 연구기관이다. 양양 남대천은 동해안에서 큰 하천이고 오염되지 않아 회귀어종의 대표적인 모천으로 자리잡았다. 연구소에서는 매년 연어 치어 1000만~1200만 마리, 시마연어 치어 약 2만 마리를 방류하고 있다. 참송어․바다송어라고도 불리는 시마연어는 영동지역 고유 어종인 산천어 가운데 바다로 내려가는 종으로서, 연어보다 맛이 좋고 값도 더 나간다. ‘연어 박사’로 불리는 성기백 수산연구사에 따르면 남대천 연어의 회귀율은 0.5~0.7%이고, 2006년부터 인공 방류한 시마연어는 아직 공식적인 회귀 기록이 없다. 연구소는 삼척 오십천, 울산 태화강, 섬진강 등에 치어를 방류하는 한편 북한 안변 남대천(동해안에 남대천이 10여 개 있다)에도 부화장 건설과 기술 지원을 하고 있다. 자원 공동 활용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다.
2007년 남애항과 가까운 현남면 원포리에 들어선 (주)워터비스 공장은 요즘 새롭게 뜨는 바다 자원의 가치를 보여주는 사례다. 먹는 해양심층수 1호 업체인 워터비스는 이곳을 심층수 생산의 최적지로 보고 연장 거리 17.5km, 수심 1032m에 취수구를 설치했다. 심층수 시장은 2012년 2000억에 이르고 빠른 성장이 예상된다. 워터비스는 먹는 해양심층수와 혼합음료, 각종 산업 원료의 생산뿐만 아니라 해양 워터파크와 테라소테라피 등 심층수를 이용한 산업을 발전시켜 양양을 심층수 산업의 중심권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남애항과 낙산해변 중간쯤에 국가어항인 수산항이 있다. 지난 가을 이례적인 연어병치 풍어로 전국 낚시꾼들이 몰렸던 곳이다. 이곳에 요트 계류장이 들어선 것은 양양의 바다 경치에다 양강지풍(襄江之風)이라는 특유의 계절풍 덕이다. 향토사학가 이재풍씨에 따르면 양양의 바람은 옛날부터 유명하다. 예전에는 양양과 간성의 바람이란 뜻으로 양간지풍(襄杆之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수산항에 건설 중인 요트 계류장은 5월까지 60척의 접안 시설이 완료된다. 금년 6월 해양경찰청장배 전국요트대회가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다.
양양을 둘러본 사람이라면 쉽게 눈에 띄는 이곳 특징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마을 표석이 대부분 돌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양양에는 돌이 많다. 낙산사 해수관음상이나 휴휴암 관세음보살상과 같이 최근에 만든 대규모 석상은 빼놓더라도 국보․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9개 가운데 8개가 석탑․탑비․부도와 같은 석조 유물이다.
이 가운데 국보 122호인 진전사지 삼층석탑이 있는 진전사는 우리나라 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의 발상지로서 의미가 크다. 강현면 둔전리 설악산 자락에 위치한 이 절은 헌덕왕 821년 신라 선종의 종조인 도의국사가 창건했으며, 염거화상․보조선사가 이곳에서 가지산문의 맥을 이은 선종대찰이었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선사도 이곳에서 삭발하고 득도했다. 진전사는 폐사된 채 있다가 2005년에 다시 지었는데, 이 절의 금강 스님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의도적으로 절을 소각하고 인근 주민까지 몰살해 기억에서 지워버린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일제시대까지 둔전사로 불리다가 ‘진전’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편이 발견되어 이름을 되찾았다. 진전사는 문화체육관광부가 2008년 말 조계종 선종의 근원지라는 이유로 전통사찰로 지정한 데 힘입어 복원 불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강원도가 한때 원양도(원주-양양), 강양도(강릉-양양)로 불린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양양은 과거부터 영동의 중심지였다. 고려 때 양주군이었다가 조선 들어서 태조의 고조부 목조의 외향이라고 해서 양주부로 승격됐다. 태종 때부터는 양양도호부로 이름이 바뀌어 군수나 현감보다 품계가 높은 종3품 도호부사가 고을 원을 맡았다. 서해의 풍천, 남해의 나주 지방과 함께 국가적 제례 행사로서 바다 신에게 제사지내는 동해신묘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이런 역사적․문화적 배경 때문인지 이 지역은 연구 대상의 소재들을 많이 남기고 있다. 향토사학가 이재풍씨는 이를 ‘양양학’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고려 때 몽고군 격퇴, 1906년 현산학교 설립, 양양 3․1만세운동, 공산 치하의 각종 반공투쟁 등은 이 지역 특유의 가치관과 자존심을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양양이 강릉이나 속초와 달리 시로 발전하지 못했던 가장 큰 요인은 접근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사정이 달라질 것 같다. 올해 동해고속도로 양양 구간이 완공되고 2014년 동서고속도로가 개통될 예정이다. 서울까지 153km, 1시간 반 거리로 단축된다. 지금은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양양국제공항도 언젠가 활성화될 것이다. 북한과의 교류도 멀지 않은 미래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양양은 ‘환동해의 허브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양양은 말 그대로 밝은 해오름의 시대를 열 것인가.
영동고속도로 강릉분기점에서 동해고속도로를 타면 현남나들목이 끝이다. 다시 7번 국도를 타고 속초 방향으로 달리면 양양읍에 닿는다. 6번 국도를 타고 양평에 이르러 홍천 방향으로 44번 국도에 들어서면 홍천, 한계령(또는 구룡령)을 거쳐 양양읍까지 내달릴 수 있다. 버스는 강남고속터미널(3시간 30분)과 동서울터미널(3시간 20분), 상봉터미널(4시간)에서 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