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관의 화엄법계관
- 법계 이해의 세 가지 유형 -
정 엄(서 해기, 동국대학교 강사)
Ⅰ. 들어가는 글
‘法界’는 범어 Dharma-dhātu의 한역으로서, ‘진리의 본성’ 내지는 ‘진리의 영역’을 의미한다. 법계의 용어는 대승경전이나 논서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특히 화엄사상에서는 ‘法界緣起’를 나타내는 핵심개념이 된다고 보고 있다.
화엄사상의 핵심인 법계연기설은 먼저 法上과 靜影寺 慧遠 등 地論學派에 의해서 주목을 받았다. 그 이유는 법계연기는 ‘一乘無盡緣起’라고 하는 화엄사상의 독자적인 연기설인 ‘別門’의 연기와 연기의 존재방식 전체를 포함하는 ‘通門’의 연기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엄종 제2조 智儼에 의해서 화엄경의 세계관․진리관을 나타내는 중심개념으로 채택되었다.
그리고 화엄종 제3조이며 화엄교학의 대성자인 法藏에 의해서 그 체계가 五法界 등으로 정립되었다. 그러나 법장의 제자인 靜法寺 慧苑(673?~742?)은 법계연기설은 소승․삼승의 설이라고 비판하고, 새롭게 法性融通門의 입장에서 事事無碍法界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혜원의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서 징관(738~839)은 혜원이 법장의 법계연기법문을 왜곡하였다고 비판하고, 새롭게 唯心論의 입장에서 法界緣起說과 法性融通門을 대입하여 四法界라고 하는 화엄법계관을 성립하였다.
특히 징관은 그의 주요 저작인 「大方廣佛華嚴經疏」(이하, 『화엄경소』로 약칭)와 이의 주석서인 「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이하, 『연의초』로 약칭)를 비롯하여 『行願品疏』, 『法界玄鏡』 등의 서두에서 맨 먼저 ‘법계’를 제시하고,
화엄경 교설의 중심은 ‘법계’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징관의 화엄사상의 핵심은 바로 ‘法界’에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먼저 징관에 의해서 파악된 화엄사상의 근간인 ‘法界’의 의미에 대하여 논하고, 이어서 화엄경 전체에 녹아들어 있는 ‘唯心’ 혹은 ‘空觀’과의 관련성을 포함하여 ‘법계’의 개념은 결국 ‘一心’과 다르지 않음을 논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화엄법계의 완성을 위한 과정으로서, 화엄종 제사의 법계에 대한 해석을 고려하면서,
법계 해석을 1) 理와 事의 관계를 중시한 경우, 2) 因果․緣起와 관련하여 해석하는 경우, 3) 법계를 궁극적인 상태․만물의 근원으로 보는 경우 등 세 가지 패턴으로 유형화해 보고자 한다.
Ⅱ. 華嚴諸師의 法界觀
징관의 화엄법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화엄종 학자들의 법계 이해와 관련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지엄과 법장의 법계해석을 살펴본 후 이통현장자의 것도 함께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들 華嚴諸師가 이해하고 해석한 법계관은 화엄사상의 근본인 법계연기를 이해하는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1. 智儼
지엄(智儼, 602~668)의 대표적인 화엄경 해설서인 「大方廣佛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이하, 『수현기』로 약칭)에서는 『화엄경』 「입법계품」의 품명인 ‘入法界’와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지엄은 法의 의미로 意所知法․自性․軌則의 세 가지를 들고, 「입법계품」에서의 ‘法’의 의미와 통한다고 한다. 그리고 ‘界’의 의미에도 ‘一切法通性․因․分齊 ’의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지엄의 또 다른 저작인 『華嚴經內章門等雜孔目章』(이하, 『공목장』으로 약칭)에서는 ‘善法眞如가 법계이다’라고 하고, 그 이유는 ‘일체의 성문과 연각과 모든 부처의 묘한 법의 의지가 되는 모습[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즉 다시 말하면 진실한 법의 의지처가 된다는 측면에서 ‘法界卽眞如’의 의미로 파악한 것으로 이해된다.
또, 넓은 의미에서는 八無爲와 苦의 五種인 色․受․想․行․識 등을 통틀어서 모두 다 법계라고 이름 한다고 한다. 이것은 아비달마 등에서 해석되고 있는 전통적인 해석을 포함하여 의미의 대상영역 전체를 ‘법계’로 보고 있는 것이다.
또 『수현기』에서는 ‘법계를 일심의 입장에서 해석한다면 이 염부제가 바로 일심법계와 다르지 않다’고 하면서, 이곳 염부제가 바로 ‘근본적으로 진실의 세계이자 결국은 眞心으로 만들어진 세계’라고 하는 것이다.
2. 法藏
법장(法藏 643~712)의 경우, 법계를 설명할 때 ‘理’와 ‘事’를 관련시키는 경우와 ‘因果’와 ‘緣起’를 관련시키는 두 가지 경향이 있다. 먼저, 전자에 대하여 『大方廣佛華嚴經探玄記』(이하,『탐현기』로 약칭) 권18에서는 「入法界品」의 품명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法’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持自性의 뜻이 있으며, 둘째는 軌則의 뜻이 있으며, 셋째는 對意의 뜻이 있다.
‘界’의 의미에도 또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因의 뜻으로,聖道를 내는 데 의지가 되기 때문이다. 『攝大乘論』에서는 ‘法界는 일체 淨法을 내는 因’이라 하였으며, 또 『中辺分別論』에서는 ‘聖法의 因으로 뜻을 삼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法界라 하는 것이며,聖法이 여기에 의지해서 나오므로 因의 뜻이 있어 界라고 한 것이다.
둘째는 性의 뜻으로, 이는 제법이 의지하는 本性이 되는 까닭이다. 화엄경에서 法界의 法性을 말하는 것 또한 그러한 까닭이다. 세 번째는 分齊의 뜻이 있는데, 이는 모든 緣起하는 모습이 서로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법장의 『탐현기』에 나타난 ‘法’의 의미와 ‘界’의 의미는 기본적으로 스승인 지엄의 『수현기』에 의지하면서도 보다 논리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다시 말하면
, ‘法’의 의미는 『수현기』의 의미를 수용하여 持自性․軌則․對意의 세 가지 뜻이 있다고 한다.하지만
‘界’의 세 가지 의미 가운데 ‘因’의 의미는 진제삼장이 번역한 『섭대승론석』과 『중변분별론』의 의미를 인용하여 ‘淨法의 因’또는 ‘聖法의 因’이라고 한다. ‘性義’는 『화엄경』 「세간정안품」을 인용하여 제법의 의지할 대상인 ‘法性’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分齊’는 연기하고 있는 제법이 상호간에 어지럽지 않으면서 각자 자신의 分을 지키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어서 법장은 ‘入法界’를 有爲法界․無爲法界․亦有爲亦無爲法界․非有爲非無爲法界․無障礙法界의 다섯 문을 세우고 있다.그리고 이 五門을 다시 분석하여
처음의 ‘有爲法界’는 本識能持法種子와 三世諸法差別辺際의 두 문으로 나누고,
두 번째의 ‘無爲法界’는 性淨門과 離垢門으로 나누었다.
그리고세 번째의 ‘亦有爲亦無爲法界’는 隨相門과 無礙門으로 나눈 뒤,후자인無礙門의 一心法界는心眞如門과 心生滅門으로 나누어지나 이 두 문은 일체 모든 법을 다 갈무리한다고 한다.그리고
네 번째의 ‘非有爲非無爲法界’는 形奪門과 無寄門으로 나누었으며, 마지막 다섯 번째의 ‘無障礙法界’는 普攝門과 圓融門으로 나누고 있다.
이어서 법장은 理와 事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법계의 유형은 각각 다르지만여기에는 所入․ 能入․ 存․ 亡․ 無礙의 五門이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所入法界’를 다시 法法界․ 人法界․ 人法俱融法界․ 人法俱泯法界․ 無障礙法界의 다섯으로 나누고,
‘法法界’는 事․ 理․ 境․ 行․ 體․ 用․ 順․ 違․ 敎․ 義의 열 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법계의 분류는 언제나 理와 事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법장의 또 다른 저서인 『義海百門』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
만약에 性相을 두지 않으면 理法界요, 事相에 걸림이 없어 완연하면 事法界이다. 理事가 합해도 무애하여, 둘이면서 둘이 아니고, 둘이 아니면서 둘인 것이 법계이다.
법장은 여기에서도 법계를 理와 事로 나누고, 性과 相의 구별이 없으면 理法界요, 사물이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존재하면서도 아무런 장애가 없는 것이 事法界라고 한다.
그러므로 法界란 理와 事를 서로 합하더라도 서로 간에 아무런 장애가 없기 때문에 서로 다르면서도 동일하고, 동일하면서도 서로 구별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법장이 파악한 법계의 중심 내용은 언제나 理와 事의 관계에 있으며, 이 둘의 관계는 언제나 無礙 내지는 相卽의 관계로 파악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因果와 緣起를 관련하여 법계를 해석한 경우도 보인다. 법장의 저작인 『探玄記』권1 가운데 화엄종의 근본취지인 ‘宗趣’를 논하는 곳에서 법장은 먼저 화엄학자들의 종취설을 들고, 이어서 자신의 견해를 들고 있다.
因果緣起 와 理實法界로써 (화엄경의) 宗을 삼는다.
다시 말하면, (大方廣佛華嚴經의) ‘大 方廣’은 이실법계이며, ‘佛華嚴’은 인과연기이다. 인과연기에는 반드시 自性이 없어야 하며, 자성이 없기 때문에 이실법계인 것이다. 법계가 理實이기 때문에 정해진 자성이 없고, 정해진 자성이 없기 때문에 인과연기가 성립된다.
법장 자신은 화엄종의 근본 취지인 宗趣를 ‘因果緣起理實法界’라고 파악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화엄경의 경명인 ‘大方廣’은 이실법계라고 하고, ‘佛華嚴’은 因果緣起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과연기이기 때문에 반드시 自性이 없어야 하며, 自性이 없으므로 이실법계라는 것이다. 또한 法界의 理實은 반드시 정해진 性이 없어야 하며, 정해진 性이 없기 때문에 인과연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般若인 空의 입장에서 因果緣起理實法界를 이해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엄과 법장이 ‘法界’를 이해하는 방법에는 眞如라는 측면과 다양한 존재의 영역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파악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 중 지엄의 입장은 眞心의 세계, 즉 眞如의 측면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법장의 그것은 眞如 속에 理와 事를 융합시키고,
다시 여기에 般若空 사상에 입각한 因果緣起와 관련하여 법계연기와 인과연기를 동일선상에서 이해하고, 이 둘이 합해진 것을 화엄의 근본취지로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경우 모두 다 뒤에 설명하는 징관처럼 적극적으로 ‘法界卽一心’이라고까지는 강조하지 않는다.
3. 李通玄 장자
이통현(李通玄 635~730)장자의 법계에 대한 이해는 그의 저서인 『신화엄경론』 권3 「入法界品」의 품명을 ‘智’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곳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먼저 그는 ‘明信樂者, 從迷創達’을 入의 의미로,
‘身心境界性自無依’를 法의 의미로, ‘一多通徹眞假是非障亡’을 界의 의미로 파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法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또 純과 智는 모두 중생의 識의 경계가 아니므로 법계라 한다. 또 無明의 識種을 통달한 純은 智의 用이므로 迷의 收에 속하지 않는다. 이것이 無依智의 경계이고 법계라고 한다.
또 智의 본체는 無依이므로 시방세계에 두루 하지 않음이 없어, 널리 眞과 俗이 모두 不思議함을 보며,
毛孔과 身塵과 삼라만상의 끝없는 경계가 佛刹에 중중 무진하여, 智와 凡이 同體이고, 경계와 모습이 相入함을 법계라 한다.
또 하나의 미진 속에 두루 수많은 국토를 포함하고, 허공에 두루 하지 않음이 없고, 국토마다 포함되지 않는 곳이 없으면서도 報境을 파괴하지 않고, 중중 무진하여 진리에 통철함을 법계라 한다.
또 一妙音이 모든 국토에 다 들리고, 一纖毫의 수량이 평등하여 無方이고, 大小의 견해가 없고 만물과 내가 같은 몸이어서 識이 謝하고 情이 滅하여 智에 통하여 無礙한 것을 入法界라 한다.
즉 이통현장자는 ‘法界’를 범부의 情識의 세계를 뛰어넘은 無依智의 세계 내지는 無分別智의 세계로 파악하고 있다. 그렇지만 ‘智’와 ‘凡’의 본체는 동일하여 物我一體라고 한다.
이처럼 이통현장자가 法界를 ‘智’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는 점은 구마라집의 제자인 僧肇의 『肇論』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 점은 이미 木村淸孝박사가 지적한 것처럼 이통현장자가 이해한 法界의 특징이라고 하겠다.
예를 들면 禪定의 관점에서 이통현장자의 ‘智’의 이론은 加行智․根本智․差別智 또는 根本智와 差別智를 기본으로 ‘智’의 사상을 전개시키고 있다. 이 가운데 根本智에 대하여 그의 또 다른 저작인 『略釋新華嚴經修行次第決疑論』(이하,『결의론』이라 함) 권1上에서는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일체가 모두 無인 것을 ‘法身’이라 한다. 여기 法身은 아무 작용도 없는 性의 바다이므로 (法身의) 본체에는 한 물건도 없고, 오직 無依智만이 본래부터 스스로 텅 비어 있을 뿐이다. 性은 古今이 없고 體가 저절로 밝아져서 항상 시방세계를 비추고 있다. 그러므로 (法身은) 本末․方所에 전혀 의지함이 없으므로 ‘根本智’라고 하고 ‘智身’이라고도 한다.
또 根本智와 같은 의미로 이해되는 ‘根本普光明智’에 대하여 『결의론』 권4上에서는, 根本普光明智는 자체가 無性․無相으로서 性은 스스로 光明이며, 量은 法界․虛空界와 같으며, 끝이 없고, 안과 밖이 없고, 大小의 양이 같아 널리 일체 모든 경계를 포함할 수가 있다. 모두가 다 그 (根本普光明智) 가운데 있으므로 體가 같은 것이다.
위에서 말한 ‘根本智’ 혹은 ‘根本普光明智’란 법신의 또 다른 이름이며, 법신이 無依智를 통하여 무한히 밝게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생각할 때 이통현장자가智의 관점에서 파악한 법계는 無依智이며, 無分別智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사상의 근저에는 無性․無相이라고 하는 般若․空 사상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겠다.
다음으로 이통현장자가 파악한 因果論은 『신화엄경론』 권7 「第九因果延促」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法界란 圓寂이므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理智는 虛空이므로 因果가 없다. 단지 유정(중생)들에게 헤아리는 마음 [量]이 있으므로 임시로 그 이름을 붙인 것에 불과하다.
법계는 圓寂이기 때문에 始終이 없고,
理事는 허공과 같기 때문에 인과가 없지만,
단지 중생들에게 사량 분별심이 있기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법계라고 부를 뿐이라는 것이다.
또 『신화엄경론』 권5에서는,
因果란 因果가 없는 因果이다. 단지 아무 의지할 곳이 없는 곳[無依止處]을 因果라고 할 뿐이다.
여기에서 이통현장자의 인과론은 ‘非因果의 인과론’이 기본적인 입장이므로 ‘無依止處’를 因果라고 하는 관점에서 그는 『화엄경』을 分科하고 있다.
또 그는 『신화엄경론』권8에서 화엄경의 경문을 長科經意․明經宗趣․明敎體․明總陳會數의 넷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 가운데 ‘長科經意’를 다시 열 개의 단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서 ‘法界一品 是一切諸佛及以一切衆生之果’라고 하여 「入法界品」을 다른 품에 비하여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또한 이통현장자는 『화엄경』에는 五種의 因果遍周義가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그는 『신화엄경론』권8에서 「세주묘엄품」이하 五品은
① 成正覺因果遍周을 나타낸 것이며, 「불명호품」 이하 6품과 「십주품」․「십행품」․「십회향품」․「십지품」까지는
② 信位及進修因果遍周를 나타낸 것이고, 「십정품」․「십통품」․「십인품」은
③ 定體[因果]遍周을 나타낸 것이며, 「보현행 품」․「이세간품」은
④ 行海[因果]遍周을 나타낸 것이고, 「입법계품」은
⑤法界不思議大圓明智海[因果]遍周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종의 因果遍周法은 동일한 시간과 동일한 法界이며, 똑같은 刹那際이며, 體用이 같으며, 일체제불의 공동의 진리[法]이며, 하나의 인과로서 두루두루 원만하여 앞뒤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그는 『화엄경』의 종취를 ‘一大法界大圓明智’라고 하고, 그 이유를 5종의 遍周因果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통현장자는 『화엄경』 그 자체를 ‘인과’의 입장에서 分科하고,
『화엄경』 그 자체를 실천의 장으로 생각하였음을 추측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Ⅲ. 澄觀의 華嚴法界觀 - 법계 이해의 세 가지 유형 -
징관의 전기에는, 스승인 法銑(718~778)으로부터 화엄을 배울 때, “法界全在汝”라고 인가 받은 것과 자신의 다짐을 적은 열 가지 서원이 있는데 , 이 서원 가운데에는 “坐不背法界之經”이라고 하는 구절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法界之經』은 곧 『화엄경』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그의 관심사는 늘 ‘法界’의 문제였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는 ‘법계’에 대하여 수많은 해석을 하고 있지만, 이들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 세 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 : 理와 事의 관계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法界를 해석한 것이다. 이것은 화엄종 제사들의 전통적인 해석을 이어받은 것으로, 징관이 화엄법계의 체계를 四法界로 정리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둘째 : 화엄의 宗趣를 논할 때 ‘법계’를 인과․연기를 내포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가 ‘법계란 보살행과 관련되는 중요한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셋째 : 그는 法界란 ‘궁극적인 진리’이며 ‘만법을 생성하는 근원’이라고 하는 화엄 性起思想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유형을 중심으로 그의 법계 해석의 특징을 논해 보고자 한다.
1. 理와 事의 관계를 중시한 경우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징관이 해석한 법계의 의미는 기본적으로 理와 事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는데, 이는 『화엄경』 「입법계품」의 品名을 해석한 부분에 잘 나타나 있다. 먼저 그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그가 해석한 ‘法’과 ‘界’의 의미를 살펴보면, 『화엄경소』 권54에서 다음과 같이 개념을 규정하고 있다.
法界란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갈 대상[法]이며, 理와 事 등의 구별이 있다. 그러나 ‘法’은 持와 軌의 뜻을 포함하고 있으며, ‘界’에도 많은 뜻이 있다.
즉 ‘法’에는 持의 뜻과 軌의 뜻이 있다고 한다. 이는 화엄학자들의 전통적인 해석을 답습한 해석이라 하겠다. 또 ‘界’에도 많은 뜻이 있다고 하고, 진제삼장이 번역한『섭대승론석』권15에 나타난 법계의 다섯 가지 의미,즉
性義․ 因義․ 藏義․ 眞實義․ 甚深義를 인용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다 ‘理法界’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이어서 징관은 법계에는 持義와 族義 그리고 分齊義가 있다고 하고, 이들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먼저,
‘持’의 의미는 持自體相과 持諸法差別과 持自種類不相雜亂의 세 가지 뜻이 있으며, 앞에서 설명한 法의 의미와 같다고 한다.그리고
‘族’의 의미는 종족의 의미로서 불교의 우주관인 十八界說을 말한다고 한다. 위의 持와 族은 모두 事法界와 理法界에 다 통하며 ‘分齊’의 의미는 연기하고 있는 事法은 서로 섞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어서 징관은 「入法界品」의 宗趣를 밝히면서,
먼저 ‘義’의 입장에서 들어갈 대상으로서의 진리의 세계 [所入法界]를 ‘一眞無礙法界’라고 한다.
일진무애법계는 性․相의 입장에서 보면 理와 事를 떠나지 않지만, 의미 내용의 입장에는 有爲法界․無爲法界․俱是․俱非․無障礙의 五法界가 있다.
다시 다섯 가지 법계는 각각 두 개의 문으로 나눈다. 먼저 ‘有爲法界’는 本識能持諸法種子와 三世之法差別辺際로 나누고,
다음의 ‘無爲法界’는 性淨門과 離垢門으로 나누었다.
또 ‘亦有爲亦無爲法界’는 隨相門과 無礙門으로 나누었는데,
이 가운데 無礙門은 ‘一心法界’로서 心眞如門과 心生滅門을 갖추고 있으므로 이 둘은 서로 아무런 장애가 없다고 한다.
다음의 ‘非有爲非無爲法界’는 形奪門과 無寄門으로 나누고, ‘無障礙法界’도 普攝門과 圓融門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법계의 중중 무진한 도리를 설명함에 있어서는 마지막으로 설명한 ‘無障礙法界’가 가장 타당하다고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징관의 五法界說은 내용상 화엄교학의 대성자인 법장의 『탐현기』를 계승하고 있으면서도 여기에 다시 이론적으로 『기신론』을 인용하여 보다 체계적으로 발전시켰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갈 법계[所入法界]를 ‘일진무애법계’라고 한 것은 이제까지 화엄종의 전통적인 해석을 능가하는 뛰어난 해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여기에는 후술하는 李通玄의 영향이 있다고 하겠다. 징관의 또 다른 저작인 『華嚴經略策』에서 ‘법계’라고 명명한 이유와 그 의미를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法’이란 軌와 持의 의미가 있다. ‘界’에도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事의 측면에서 보면 ‘界’는 分의 뜻이 있으니,事를 따라서 분별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性의 뜻이 있는데, 理의 입장에서 法界는 모든 법의 本性이 되고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法과 界) 둘이 서로서로 얽혀서 理事無礙法界를 이루므로 事는 理를 攬하여 이루어지고, 理는 事에 의해서 나타난다고 한다.
이와 같이 징관은 「入法界品」의 品名을 해석하여 ‘法界’의 기본적인 개념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화엄종의 전통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여기에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여 종합적으로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界’에는 事의 입장에서 分의 의미로서, 理의 입장에서 불변의 뜻으로 파악하고 있는 점은 뛰어난 해석이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法界 해석의 근본은 언제나 理와 事의 관계를 기본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五法界 가운데 ‘亦有爲亦無爲法界’를 隨相門과 無礙門으로 나누고,
뒤의 無礙門을 ‘一心法界’라고 하고, 여기에 다시 心眞如門과 心生滅門의 두 가지 뜻이 있지만 이 둘은 아무런 장애가 없다[無礙]고 한다. 이 또한 전통 화엄종의 교학에서는 보이지 않는 독창적인 이해라고 하겠는데,여기에는 『기신론』의 영향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징관의 법계해석에는 언제나 理와 事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그에 의해서 완성된 事法界․理法界․事理無礙法界․事事無礙法界로 설명되는 四法界說은 華嚴初祖 杜順의 저작으로 알려진 『法界觀門』에 나타난 眞空觀․ 理事無礙觀․ 周遍含容觀의 세 가지 관문의 영향을 받아 발전시켰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四法界 또한 理와 事의 관계가 중심이라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2. 因果․緣起와 관련한 법계 해석 다음으로 징관은 화엄경의 근본 취지를 논할 때 ‘法界’를 인과 내지는 연기와 관련시켜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앞에서 설명한 지엄이나 법장에 의해 파악된 화엄경의 ‘宗趣論’을 계승한 것으로 여겨진다.
즉, 징관의 『화엄경소』권3에 의하면, 만약에 (화엄경) 經名을 體․宗․用으로 나눈다면, 理實은 體가 되고, 緣起는 用이 되고, 因果는 宗이 된다. 宗을 탐구하여 理實인 본체에 향하게 한 까닭이 다. ‘法界’는 (體宗用) 셋을 다 포섭하고 있다.
여기에서 징관은 경의 제목을 體․宗․用 셋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는 법장의 경우에 화엄경의 종취를 ‘因果緣起理實法界’라고 하였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징관의 종취 이해가 보다 실천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징관은 法界의 명칭을 간략히 事法界와 理法界로 제시하고 그 내용을 다음의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1. 법계를 구별하여 인과를 성취하게 하는 경우 2. 인과를 융합하여 법계와 동일시하는 경우 3. 법계와 인과를 명확하게 드러나게 하는 경우 4. 법계와 인과가 융화하여 어떤 도 性相을 떠나 있어 둘 다 무애자재하게 되는 경우
이들 가운데 징관은 처음의 ‘법계를 구별하여 인과를 성취하게 하는 경우’를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인과는 서로 서로 宗이 되기도 하고 趣가 되기도 한다. 화엄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인과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因果를 宗으로 삼을 뿐, (그렇지만) 의지하는 대상으로서의 법계와 어긋나지 않는다.
여기에서 징관은 명확하게 법계와 인과가 위배되지 않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법계와 인과를 동등한 관계로 설정한 종취론은 智儼 이전의 敏․印 二師와 慧遠․光統 師의 종취론을 종합하여 형성된 법장의 종취론인 ‘因果緣起理實法界’를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
그리고 징관은 『화엄경소』 권4 「十別解文義」의 제3 「以文從義科」에서는 『화엄경』을 所信․差別․平等․成行․證入의 五周因果로 나누어 설명하고, 인과의 입장에서 화엄경을 해석하고 있다.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면,
『화엄경』의 제1회 설처인 菩提道場會에서는 먼저 비로자나불의 果德을 나타낸 후에 「비로자나품」에서는 부처의 本因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所信因果’에 해당한다.
제2회의 「여래명호품」 부터 제7회에 해당하는 「수호광명공덕품」에 이르기까지는 ‘差別因果’에 해당하는데,이들 경전에서 앞의 26품은 因을, 뒤의 3품은 果를 말하고 있다.
다음의 「보현행품」은 因을, 「여래출현품」은 果를 말하고 있으므로 ‘平等因果’에 해당한다. 제8회의 「이세간품」에서는 먼저 五位의 因을 밝히고 나서 다음에 八相의 果를 밝히고 있기 때문에 ‘出世(成行)因果’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입법계품」에서는 먼저 佛果의 大用을 밝히고, 다음에 보살이 用을 일으켜서 因을 수행하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에 ‘證入因果’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징관은 果가 因을 투과하고 있다고 한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法界와 因果를 동일 지평에 놓고 해석한 것과 因果의 입장에서 경문을 나눈 것은 징관에 의해서 확정되었다고 하겠다. 이는 넓은 의미에서는 화엄교학 전체의 특징이 되기도 한다. 이 중에서 징관이 경문을 因果의 입장에서 分科한 것은 이통현장자가 제시한 ‘非因果의 因果論’과는 그 성격이 다르기는 하지만, 화엄경 그 자체를 수행의 장소 내지는 수행의 과정으로 파악한 사실은 이통현장자의 영향이라고 하겠다.
3. 법계는 궁극적인 상태․만물의 근원
징관의 법계 해석의 최대의 특징은 법계를 진리의 궁극적인 상태로서 진리 그 자체이며, 만물을 생성하는 근원이라고 하는 性起的인 관점에서의 해석이다. 이 내용을 중심으로 그의 법계 이해의 특징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화엄경소』권1의 첫 구절에 다음과 같은 ‘法界句’가 있다.
往과 復이 끝이 없고, 動과 靜이 하나의 근원이며, 수많은 묘한 작용을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여유가 있고, 언어와 사고를 초월하여 이 보다 훨씬 더 벗어나 있는 것은 오직 ‘法界’ 뿐이다.
징관은『화엄경소』에서 설명한 ‘법계구’를 다시『연의초』권1에서는 그 교학적 증거(교증)으로서 『화엄경』의 경문뿐만 아니라 『文殊師利所說不思議佛境界經』(이하, 『문수경계경』으로 약칭)과 『中論』, 그리고 僧肇와 정영사 혜원의 사상을 제시하고, 여기에 다시 중국고유사상인 『주역』 , 『로자』․『장자』의 사상까지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이들 내용을 모두 다 제시할 여유는 없지만, 이를 요약하면 ‘法界’란 가고[往] 옴[復]에 아무런 장애가 없이 자유자재로 활동할 수 있는 장소이면서, 그 근원은 작용을 하고 있든[動] 하지 않고 있든[靜]간에 동일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法界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어와 사고를 초월하여 이보다 훨씬 더 뛰어난 세계라고 보고 있다. 말 그대로 표현하자면 초월적인 상태와 다르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가 이해한 法界는 단지 초월적인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중생을 향한 자비심의 표상인 보살이 보살행을 실현하는 장소라고 파악하고 있다. 상세한 설명은 別稿를 기하지만, 요약해 보면 『연의초』에서는 “往復無際”를 『文殊境界經』의 “菩薩이 왕복으로 수행하는 열 가지 내용[十菩薩道]”으로 논증하고 있다.
여기에서 징관은 먼저 法界 ‘用’의 입장에서‘往復’을 설명하면서, ‘往’은 涅槃에 향하는 보살의 自利行이고, ‘復’은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의 利他行이라고 한다. 즉 다시 말하자면 ‘法界’란 ‘用’의 입장에서 보면 보살이 自利와 利他를 행하는 장소라는 것이다. 여기에 그가 실천적인 면에서 이해한 법계의 모습이 여실히 나타나 있다고 하겠다.
또한 “無際”에 대하여 징관은 보살행의 바다는 넓고 커서 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낱낱의 행이 전부 진리와 합치하므로 끝이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물론 無際의 설명도 역시 법계의 ‘用’의 입장에서 보살행과 관련시켜 실천적인 면에서 해석하고 있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징관은 법계를 진리의 궁극적인 상태이며 만물의 근원이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이는 그의 화엄사상이 성숙된 시기에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貞元新譯華嚴經疏』(이하, 『행원품소』로 약칭)의 서두에서 잘 나타나 있다.
크고도 크도다, 진리의 세계(眞界)여!만법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空과 有를 다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모양이 없고, 언어 속에 들어있으면서도 자취가 없구나. 妙有는 그것[眞界]을 얻지만 단지 有만이 아니며, 眞空도 그것을 얻지만 단지 空하지 만은 않는구나. 生滅 속에서 그것을 얻기 때문에 眞常이고, 緣起 속에서 그것을 얻기 때문에 서로 비추어 내는구나.
여기에서도 징관은 ‘法界’란 궁극성과 근원성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즉 다시 말하면, ‘眞界’를 진리의 궁극적인 상태이며 이는 곧 만물의 근원이지만, 이는 有와 無의 대립적인 관계를 초월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생멸 속에 眞常이고, 연기하는 가운데 서로 비추어 낸다고 하는 것이다.
그가 진리의 세계인 眞界를 이와 같이 해석한 것은 대승불교의 근간인 ‘空觀’에 대한 이해와 함께 화엄경의 논리를 잘 이해하는 도구로 제시한 『起信論』의 사상이 저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문장에 대하여 징관의 제자인 종밀(宗密 780~841)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종밀의 법계 해석은 그의 저작인 『普賢行願品別行疏鈔』(이하, 『별행소초』로 약칭)를 주목하고자 한다. 종밀은 앞에 언급한 ‘眞界’에 대하여 “法界를 설하여 佛法의 큰 근본[宗]으로 삼는다.”고 하고, 이어서 다음과 같이 부연설명하고 있다.
眞界는 곧 진여법계를 말한다. 法界의 종류는 비록 많지만, 그것을 통괄적으로 나타내자면 단지 一眞法界일 뿐이다. 즉 (眞界는) 모든 부처와 중생의 근원인 청정한 마음이다.
宗密이 이해한 ‘眞界’는 ‘眞如法界’ 즉 ‘一眞法界’이며, 이는 곧 모든 부처와 중생이 다 함께 가지고 있는 본래 청정한 ‘本源淸淨心’이라는 것이다. 종밀은 이의 敎證으로서 『起信論』과 『詳玄錄』을 제시하고 있다.
징관에 의해 확정된 ‘法界卽一心’이 그의 제자인 종밀에 의해 계승된 것이다. 이는 다시 종밀에 의해 禪사상과 결합하여 禪宗에서 강조되었으며, 여기에는 根源性으로서의 ‘본원청정심’ 에 중점을 두었다고 하겠다.
이어서 종밀은 一眞法界의 ‘一心’에서 비로소 眞如門과 生滅門이 열리고 諸法을 성립시키며, 여기에는 緣起門과 性起門이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연기문을 染緣起와 淨緣起로 나누고, 다시 淨緣起를 分淨과 圓淨으로 나누고,
다시 分淨은 聲聞과 緣覺과 權敎의 셋으로,
圓淨은 頓悟와 漸悟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종밀의 ‘法界卽一心’의 해석은 징관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는데, 그 근본사상은 『起信論』에 두고, 당시 크게 성하고 있던 선종과의 관계도 시야에 넣으면서이러한 사상을 전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一眞法界’라는 말은 직접적으로는 李通玄장자의 『신화엄경론』에 그 용어가 보인다.
(화엄경)頓視佛果德 一眞法界本智. (『신화엄경론』권1, 『大正藏』36, 722하) 大智圓周爲國土境界, 總爲性海爲一眞法界. (同 권2, 『大正藏』36, 730중) 故言文殊師利從金色世界來者, 明一切處法皆眞也. 表一眞法界也. (同 권3, 『大正藏』36, 739중)
『신화엄경론』에서 사용된 이들 용례를 분석해 보면, 根本智의 입장에서 모든 세계를 ‘一眞法界’라고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설명한 징관이 이해한 ‘眞界’ 즉 ‘一眞法界’는 같은 진리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통현장자의 설과 공통성이 있다고 여겨지며, 영향관계도 인정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징관이 파악한 ‘一眞法界’의 근본적인 의미는 ‘모든 부처와 중생의 本源淸淨心’이며, 직접적으로는 ‘法界卽一心’이기 때문에 ‘一心’이라고 하더라도 그냥 一心이 아니라 ‘淸淨心’ 에 더 중점을 두었다고 하겠다.
여기에 반해서 李通玄장자의 경우에는 이미 설명한 것처럼 ‘根本智’ 에 중심이 있었다. 그리고 또한 징관이 이해한 ‘法界卽一心’의 근저에는 주지하다시피 항상 ‘空觀’이 자리하고 있다. 이 사실에 대하여 그의 또 다른 저작인 『行願品疏』 권1에서는 법계연기를 開合과 釋相의 두 가지로 나누고, 그 가운데 開合의 내용에 의하면,
法界란 果도 아니고 非果도 아니며, 法도 아니고 非法도 아니다. 이름도 모습도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이 無障礙法界라고 하였다. 이는 寂寥虛曠하면서도 沖深包博하므로 통틀어 만물을 망라하고 있으므로 ‘一心’이라 한 것이다. … 그것(법계)을 안다면 확연히 크게 깨닫게 되지만, 迷한다면 생사윤회가 끝이 없게 된다. 모든 부처가 세상에 나온 근본 목적은 (法界를)열어 보여서[開示] 그것을 깨달아 無障礙法界에 들어가게 하고자 함이다.
이처럼 그의 ‘法界’ 이해의 근저에는 항상 般若․空 사상이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파악한 법계란 바로 ‘無障礙法界’이며, 다시 말하면 이것은 ‘一心’과 다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法界를 깨닫는 것은 無障礙法界임을 깨닫는 것이고, 이는 바로 一心을 깨닫는 것이며, 부처가 되는 것이 된다. 또한, 삼세제불이 출현한 것은 우리들에게 無障礙法界에 開示悟入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法界卽一心’은 바로 華嚴法界를 말하고 있으므로, 법계를 깨닫기 위해서는 ‘보살행’의 실천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연의초』권1에서는 ‘법계’를 가장 중시하여 제일 먼저 내세운 까닭에 대하여 自問하고, 여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여덟 가지로 自答하고 있다. (法界는)화엄경에서 근본으로 삼는 까닭이며, 또 모든 경전에 통하는 본체이기 때문이며, 모든 진리가 공통으로 의지하는 곳이기 때문이며, 모든 중생의 迷悟의 근원이기 때문이며, 일체제불이 깨달은 곳이기 때문이며, 모든 보살행이 이곳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며, (붇다가) 처음 성불하여 頓敎를 설한 까닭이며, 여타 경전에서 漸敎를 설한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징관은 ‘法界’는 화엄경의 근본, 모든 경전의 본체, 모든 부처님이 깨달은 곳, 모든 진리가 의지하는 곳이면서 한편으로는 중생의 迷悟의 근원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중생이 존재하는 한 중생을 구제할 의무가 있고, 이때 필요한 것이 보살행이다. 바로 이 법계야말로 보살행이 나오는 곳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붇다가 처음 성도하여 돈교를 설한 곳이라고도 한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점은 ‘法界’를 모든 부처와 중생의 근본이라고 보는 점과 보살행이 발생하는 근본이라고 파악하고 있는 점이다. 이것은 화엄의 전통설에는 보이지 않는 징관의 독자적인 법계 이해로 여겨지며, 여기에 그의 실천적인 화엄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징관의 화엄사상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一心’에 대해서는 ‘唯心(Cittamātra)’과 관련하여 논할 필요가 있겠다.
이 점은 事事無礙의 궁극적인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十玄門을 채택함에 있어 지엄의 古十玄門보다는 법장의 新十玄門을 택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그가 채택한 新十玄門의 특징은 古十玄門 가운데 ‘唯心廻轉善成門’ 즉 ‘唯心’을 제거하고 있는 점에 있다.
그런데 징관은 十玄門에서 無礙를 성립시키는 열 가지 이유 가운데 제일 먼저 ‘唯心所現故’를 제시하고 있으며, 또 『화엄경소』권3의 ‘總釋名題’의 十門 가운데서 아홉 번째로 ‘攝歸一心’을 들고, 이를 다시 부연 설명하여 ‘上來諸門乃至無盡, 不離一心, 一心卽法界故’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敎證으로 『기신론』을 들고 있다. 『연의초』 권10에서는 ‘唯心廻轉善成門은 여기에서는 十玄門이 성립되는 이유이기 때문에 이것을 세우지 않는 것이다’고 하였다. 그리고 『行願品疏』 권1에서는 事事無礙門이 성립되는 이유를 十門 가운데 맨 앞에 제시하고 있다.
즉, 징관은 十玄門의 성립근거는 ‘唯心’ 즉 ‘一心’에 있다고 보고, 그러므로 古十玄門의 ‘唯心廻轉善成門’은 十玄門의 성립근거가 되는 ‘唯心所現故’와 같은 의미로 보고 있다. 이는 『탐현기』권1에서 법장이 ‘무슨 인연으로 제법이 이와 같이 混融無礙하게 하는가?(有何因緣, 令此諸法得有如是混融無礙)’의 물음에 답하여, ‘緣起相由故․法性融通故․各唯心現故’ 等 열 가지 이유를 들고 있는데, 이를 징관이 계승하여 보다 실천적인 내용으로 변형시켰다고 보아야 하겠다. 이와 같은 징관의 ‘唯心’을 중심으로 한 十玄門 해석은 뒤에 宋의 永明延壽(904~75)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면, 延壽의 『宗鏡錄』 권38에 다음 구절이 있다.
모두 위의 十玄門은 이 唯心廻轉門에서 성취 되었으나 一心의 의미를 벗어나지 않는다. (一心은) 평등심으로 보면 한 가지 뜻이지만 차별심으로 보면 다양한 뜻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延壽의 『宗鏡錄』에서는 징관의 ‘唯心所現’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宋代 이후로는 이 유심사상이 화엄과 선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또한 징관에 의해서 파악된 法界의 의미는 ‘청정한 법계는 깊고 깊어서 능히 항하사와 같은 큰 덕을 포함하고 있다’고 하듯이, 전혀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법계이며 깊고 오묘한 뜻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萬德을 포함하고 있는 세계라는 것이다. 이 법계의 깊은 이치에 대해서는 당시 왕이었던 憲宗(在位805~821)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좋은 예는 『佛祖統紀』 권42의 기록을 보면, ‘華嚴法界란 무엇인가’ 하는 憲宗의 질문에 대하여 징관은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 있다.
法界란 중생의 체성이다. 세존께서는 法界의 본성에 맞추어 화엄경을 설하셨다. (法界는) 理와 事가 융합해 있어 어디에나 널려 있다.
이와 같은 징관의 설법을 들은 憲宗은 즉석에서 法界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한다. 여기에서 말한 法界의 의미는 우리들 중생의 體性, 즉 선이나 악을 일으킬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우리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心]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 평범한 마음의 본성이 바로 法界이며, 진리라고 하는 것인데, 이의 표현이 바로 화엄경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계를 중생의 心體라고 말하는 데는 理와 事의 관계가 서로 서로 圓融하고 遍滿하다는 것이다.
또한 징관이 만년에 저작하였다고 여겨지는 『법계현경』에 의하면, 法界는 화엄경의 玄宗인데, 전부 ‘緣起法界不思議’로써 근본을 삼기 때문이다.
징관은 법계를 화엄경의 ‘玄宗’ 즉 근본이라고 파악하고, 그 이유를 ‘緣起法界不思議’를 宗으로 삼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연의초』 권1에서는 ‘通序法界, 爲佛法大宗’이라고 한다. 즉 여기에서도 법계를 불법의 大宗이라고 한다. 즉 ‘法界’란 화엄경의 근원이며 결국에는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佛法의 큰 근본이 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야말로 징관이기 때문에 가능한 법계해석으로서 그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법계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징관이 파악한 법계는 진리의 궁극적인 상태 내지는 근원성을 나타내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징관의 제자 宗密은 ‘법계’를 해석함에 있어서 전적으로 스승의 해석에 의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종밀의 저작인 『주법계관문』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법계란 청량징관의 新經(『80화엄』)疏에서 ‘모두 단지 一眞法界일 뿐이다’고 한다. 이를테면 (법계는) 총체적으로 삼라만상을 포함하고 있는데, 바로 이것이 ‘一心’이다. 그러므로 一心은 삼라만상과 융합하여 즉시 네 가지 법계[四法界]를 이룬다. 운운……
여기에서 宗密이 주목한 것은 징관의 『화엄경소』에서 말하는 ‘一眞法界’이며, 그것은 일체 만법의 근원으로서 ‘一心’인 것이다. 즉, 징관에 의해서 파악된 법계는 궁극적인 입장에서는 진리 그 자체이며, 불법의 大宗이며, 『화엄경』의 심오한 근본[玄宗]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근원적인 입장에서는 일체 만물이 성립되는 근원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에는 일체중생이 가지고 있는 일심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宗密이 파악한 법계의 의미는 징관의 영향을 받아 ‘法界卽一心’ 이라고 하였으며, 여기에서 보다 발전시켜 一心과 삼라만상이 융화하여 四法界로 전개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종밀의 법계해석은, 자세한 것은 별고를 기하지만, 그의 법계관의 출발점이기도 한 四種法界의 체계가 禪敎一致에로 전개되는 근거가 되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Ⅳ. 나가는 말
지금까지 징관이 파악한 ‘法界’의 주요 의미를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보았다.
첫째는 법계를 이해하는 기본 개념인 理와 事의 관계를 중시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화엄종의 전통을 계승하여 법계를 이해한 것으로, 이때 理와 事의 관계는 無盡․無礙라고 하며, 이를 보다 심도 있게 발전시켜 ‘四法界’로 전개한 것이다. 이 四法界說의 중심은 理와 事의 관계가 無礙하다는 데 중점이 있는데, 여기에는 杜順의 찬술로 알려진 『法界觀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법계를 因果․緣起가 잘 구현된 세계로 이해한 것이요, 그가 『화엄경』의 宗趣를 논하는 과정에서 法界와 因果를 동일 지평에서 해석하고, 因果의 입장에서 經文을 分科한 것이다. 이는 菩薩行과 관련하여 『화엄경』을 그 자체로서 훌륭한 수행의 장소가 된다고 이해한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수행 순서를 ‘五周因果’로 나타낸 것은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셋째는 법계를 究極性․根源性의 의미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법계란 진리의 궁극적인 상태이자 진리 그 자체이며, 만물을 만들어 내는 근원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징관은 법계를 맨 먼저 언급한 이유를 “궁극적인 입장에서는 화엄경뿐만 아니라 諸經典․諸法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원적인 입장에서는 중생들의 迷悟의 근본이며, 바로 이곳에서 諸佛과 菩薩이 출현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法界’란 迷悟의 근본이고, 凡聖을 만들어 내는 근원이지만 결코 ‘淸淨一心’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법계는 보살이 보살행을 행할 장소가 된다고 보고 있다.
주제어 法界 Dharma-dhātu, 眞理의 本性 nature of truth, 眞理의 領域 domain of truth, 理法界․事法界 li (noumenon) and shi (phenomenon), 四法界․究極性․根源性 the ultimate state of the truth the source of everything, 淸淨一心 one mind
Cheng-guan's Meditation of Hua-yan Dharma-Dhātu: - Three Ways of Understanding Dharma-Dhātu -
Ven. Jung om(Seo,Hea-gi)
Dharma-dhātu(法界) means the 'nature of truth' or 'domain of truth', which had been interpreted by Zhi-yen(智儼, 602-668) and his disciple Fa-zang(法藏, 643-712) in the Hua-yen school as a keyword that indicates the view on the world and truth of Hua-yan sūtra(Gaṇḍa-vyūha sūtra or Avataṃsaka sūtra in Sanskrit). Subsequently, Cheng-guan(澄觀, 738-839), constructed the mediation of Hua-yan dharma-dhātu by adopting a theory of dependent origination (pratītya-samutpāda) of dharma-dhātu from a cittamātra (consciousness-only) standpoint. In his major works, Hua-yen-jing-shu(華嚴經疏), Yen-yi-shu(演義鈔), xing-yuan-pin-shu(行願品疏), and pa-jie-xuan-jing(法界玄鏡), Cheng-guan suggests that the central doctrine of Huanyan sūtra exists in 'dharma-dhātu'. The meaning of 'dharma-dhātu' suggested by Cheng-guan can be understood in three ways. First, it is argued that the relationship between li (noumenon) and shi (phenomenon), the the basic concepts for understanding dharma-dhātu, is emphasized. Second, it is argued that dharma-dhātu is understood as a world in which the dependent origination of cause and effect is established well. Third, it is argued that dharma-dhātu is understood as the ultimate state of the truth(究極性)․the source of everything(根源性). That is, dharma-dhātu is the ultimate state of the truth, the truth itself, and the source of everything, and, furthermore, does not leave the state of ‘one mind(淸淨一心)', though it is a basis of ignorance and enlightment(迷․悟) and source of a common mortal and a saint(凡․聖). Thus dharma-dhātu is a place in which Bodhisattva will act. After all, Cheng-guan asserts that 'dharma-dhātu' is nothing but 'one mi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