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포항역을 추억하며
손진숙
벌써 45년이 흘렀다. 여고시절로 시곗바늘을 되돌려본다.
그때 포항역을 떠올리면 아련한 그리움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아물아물 피어오른다. 포항에 소재한 여고에 입학하여 통학을 했다. 집에서 나와 양자동역에서 기차를 타면 포항역에서 내리고, 학교가 파하여 포항역에서 열차를 타면 양자동역에서 내렸다. 그때 나는 양자동역과 포항역은 하나의 선로로 이어진 형제역兄弟驛으로 여겼다.
기차가 포항역에 서면 곧장 내려 서둘러 광장으로 나갔다. 지각하지 않으려면 해찰할 여유가 없었다. 반대로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대합실에서 기차가 도착할 때까지 서성이며 기다리기도 했다.
대합실에는 긴 나무의자가 몇 개 놓여 있었고 보퉁이를 옆에 둔 시골 아주머니들이나 허름한 차림새의 아저씨들이 앉아 있었다. 시간이 넉넉하면 같이 통학하는 친구들과 의자에 나란히 앉거나 마주보고 앉아 수다를 떨며 깔깔대기도 했다. 그러다가 굴풋하면 출입구 옆 매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다가 허기를 달랬다.
한겨울에는 대합실 중앙에 추위에 떠는 승객의 몸을 녹여줄 석탄 난로가 있었다. 난로 위에는 항상 커다란 물주전자가 보얀 김을 뿜으며 실내에 온기를 더했다. 대합실은 아늑하고 따뜻한 공간으로서 지친 여행객들이 다음 목적지를 향하여 나설 수 있는 힘을 부여했다. 겉보기에는 허술해 보이지만 속이 올찬 촌부와 같다고나 할까.
대합실은 승객들로 옥작복작거리기도 하고, 긴 줄을 서서 더딘 차례를 기다리기도 했지만 광장은 언제나 헌거롭고 원활했다. 무슨 행사가 있어 많은 사람이 집결할 때에도 넉넉한 품으로 수용했고, 행사가 끝나 해산할 때에도 묵묵히 가슴을 열어 허용했다. 광장이 비어 있으면 주변 나무들이 생기를 북돋우고 날아든 비둘기들이 구구구 활기를 불어넣었다.
비둘기들이 먼눈팔기도 하고 훌쩍 뛰기도 하며 먹이를 쪼고 있으면 구경하던 아이가 비둘기를 잡으려고 작은 손을 내밀기도 하고, 먹고 있던 새우깡을 던져 주기도 했다. 광장 한쪽에 서 있는 네모난 시계탑은 무심히 사방을 굽어보고 있었다. 일체중생이 아이의 꾸밈없는 모습과 같다면 이 세상 다툴 일이 무엇이랴!
내가 포항역을 맨 처음 밟은 건 언제였을까? 아득하게 멀어져 간 기억 한 조각이 해바라기꽃잎처럼 피어난다. 어느 해 무더운 여름날, 아버지가 동네 친구분들과 계중에서 포항 송도해수욕장으로 피서를 가는데 웬 영문인지 어린 나도 데리고 갔다. 멋모르고 기대에 부풀어 기차에서 내려 플랫폼을 밟은 게 아마 내 포항역 첫 정복이 아니었던가 싶다. 당시 여름철이면 객실을 몇 칸 더 단 기다란 기차에는 탑승객이 한숨 돌릴 공간조차 없어 땀을 뻘뻘 흘릴 만치 해수욕객들로 가득 찼다.
그 포항역에 마지막 걸음을 한 건 또 언제였던가. 여고를 졸업하고 나서도 가끔씩 열차를 타고 포항역을 통과해 친구 집에도 가고 맞선을 본 적도 있다. 그 맞선이 지금 나를 포항에서 살게 하였다.
포항역 앞 좁은 골목은 이른 아침마다 장터를 이루었다. 순대를 길게 늘어놓은 것처럼 생긴 골목길에는 장거리를 해서 새벽이슬을 맞으며 기차를 타고 온 촌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광주리나 보따리에서 갖가지 채소나 과일들을 꺼내놓고 사 갈 임자를 부르고 있었다. 역전 시장은 매일 아침녘에만 반짝 열렸다. 첫 열차가 도착하여 아침 해가 밝게 떠오르고 다음 돌아가는 기차 시각이 될 무렵이면 장은 걷히고 썰물이 빠져나간 모래사장처럼 한산해졌다.
역 앞 시장에는 촌에서 기른 작물만 팔려고 가져온 게 아니라 시골의 정취와 향취도 함께 실어왔다. 갓 결혼한 나는 포항 역전 시장에서 도토리묵이나 옥수수를 사서 장바구니에 담아 돌아오며 고향에 계시는 그리운 어머니의 정을 풀고 달랠 수 있었다.
포항역 앞에 밀집한 사람들이 제각기 떠나고 역 광장이 한적해지면 약속이나 한 듯 모여든 비둘기들도 무엇이 안달인지 종종걸음을 친다. 옛 포항역에 찍힌 내 발자국의 필름은 이쯤에서 끊기고 만다. 운행이 뜸한 기차보다 배차 시간 간격이 짧은 버스를 이용하는 게 더 편리하고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양자동역은 2007년 수송이 중지되었다. 포항역은 신축한 역사驛舍를 따라 2015년에 이사하여 구 포항역은 철거되었다. 옛 포항역은 내 추억 속에만 아직도 살아있다.
첫댓글 참으로 나와 거의 비슷한 정서를 지니셨군요.
저도 도안역-청주역 기차통학을 했습니다. 중1때 2-3달과 고1때 한학기 했습니다.
도안역도 여객취급을 하지 않아 역무원도 없고 역사도 폐허가 되고 있더군요.
가끔씩 화물열차만 정차하는 것 같았어요.
정서가 같은 진숙씨를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정서가 비슷하니 이 카페에 찾아와 머무시는 거겠지요.
정서가 같은 인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