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채구를 다녀와서
이흥근
지루한 장마가 이어진지 여러 날이 되었다. 오늘은 저녁에 일을 마치고 동료와 함께 식당에서 휴가 이야기를 나누웠다.
7월 30일부터 8월 3일까지 중국어 동호인과 같이 중국 여행을 갈 생각을 하니 집에 있는 가족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여행할 옷과 그밖에 물건을 챙기고 잠자리에 드니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집안 청소하고 인천공항으로 출발 했다. 전동차를 타고 인천 공항으로 가는 동안 밖의 풍경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같이 여행할 사람들과 서로 인사하고 13시 50분에 비행기에 탑승하여 16시 50분에 중국 성도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기후가 온화하고. 명승고적이 많으며 전통 공예품이 널리 알려진 곳이다. 판다의 고향이며 역사 문화의 도시다. .
현지 가이드의 안내와 설명을 듣고 호텔에 짐을 풀었다. 시내를 관광을 하고 백화점에서 쇼핑하다보니 12시가 넘었다.
우리나라의 96배나 되는 중국을 몇 번 방문하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중국은 풍부한 자원과 천혜의 관광자원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19세기와 21세기가 동시에 공존하는 나라 대국이다.
다음 날 아침 07시 10분에 성도를 출발, 항공편으로 07시 55분 구채구 공항에 도착했다. 해발 3,500m에 위치한 곳이라서인지 공항에 승무원들이 코트를 입고 있다. 이곳은 계절이 바뀌어 가을날 기온이다. 지난주에는 산 정상에 눈이 내렸다고 한다, 황룡은 1992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자원 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쉐푸산 기슭에 계단식으로 3,400여개의 석회암 못으로 에머랄드 및 석회암층 연못의 비경이 아름답다. 장시간 걸으니 다리가 아프고 머리도 아팠다.
여장을 풀고 다음 날 구채구로 출발하였다. 이곳은 1997년에 세계 생물권 보호구로 지정된, 세계적인 명소이다. 작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천 명 정도와 올해 이만여 명이 다녀간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해발이 높고 나무가 없어 산소가 부족하여 호흡이 곤란하며 머리가 아프고 사람이 살기에는 적합한 곳이 아닌 것 같다.
주위에 고산지대에서 자생하는 야생화와 키가 작은 식물이 자라고 있다. 노란 야생화와 야크가 우리를 반겨 주었다. 이곳에는 중국의 56개의 소수 민족 중 하나인 장족이 살고 있다. 집 둘레에 다섯가지 색깔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인다. 집은 2층으로 지상에 창고와 가축을 기르는 곳으로 사용하고 2층에서 생활하며, 지붕 위에는 부처님을 모셨다.
물이 부족하여, 한평생 목욕을 몇 번밖에 하지 않고 살아 간다고 한다. 결혼은 일처다부제로 야크를 200마리 이상 기르며 야생 꿀과. 동충하초 약초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촌장이 있으며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자체에서 해결하는 치외법권지역이다.
생활에 있어 첫째 아들은 가장이 되고, 둘째 아들은 돈을 벌어야 하며, 셋째아들은 라마교 신자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장족은 문화 수준은 낮지만, 그렇다고 불행 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러한 생활과 풍습 들이 우리에겐 생소하고 다른 세계에 온 기분이 든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창밖에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내일을 위해 호텔로 . 돌아오는데 길이 얼마나 험한지 운전하는 기사를 보며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저녁은 한국식 김치찌개로 맛있게 먹었다. 몇 구비의 계곡과 침엽수림을 지나 구채구에 도착했다. 중국인 관광객이 90% 이상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거대한 화분 모양의 분경탄과, 한 송이의 불꽃 같은 화화해와 용이 물속에서 꿈틀거리는 듯한 화룡해와 암 초석이 두 마리의 용을 그려내는 쌍룡해와 19개의 수정같이 맑고 크고 작은 호수들이 모인 수정군 해와 40여 개의 호수가 연결되어 7km가 넘는 계단식 호수의 물이 흘러들어 살아 있는 듯한 물줄기가 인상적인 수정폭포와 구채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로 꼽히는 경해와 바위에 부딪혀 떨어지는 물방울이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이 진주알 같은 진주탄 폭포, 제일 낙차가 큰 고폭포, 공작이 꼬리를 펼친 듯한 아름다운 공작화, 낙일당 폭포에서 당해까지 17km 구간으로 넓은 호수 뒤로 펼쳐진 일년내내 녹지 않는 설산의 풍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과 같다.
마치 동화의 나라에 온 기분이다. 구채구의 물을 보고 나면 다른 물을 보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아름다움 그 자체다.
그 넓은 곳에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식당은 하나만, 이동 화장실로 지저분하지만, 역시 하나 밖에 없다. 자연을 보존하려는 마음이 서려 있는 것 같다.
아쉬운 여운을 남기고 구채구를 떠나 성도에 도착해 입었던 점퍼를 벗었다. 두 시간 동안 고속도로 달려 당 현종 때 승려 해룡이 수해를 막기 위해 3대에 걸쳐 90년이란 세월 동안 낙산을 그대로 깎아 만든 높이가 58.7m로 세계에서 가장 큰 불상인 낙산 대불에 도착했다. 웅장함과 인고의 세월 동안 노력의 결과의 산물은 우리
를 신비롭고 놀라서 입이 벌어지게 했다.
고속도로를 2시간 30분 달리는 동안 산이 없고 넓은 평야에 벼농사와 녹차밭 단지가 펼쳐진 것을 보며 중국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되였다.
성도에 도착해서 삼국지연에 등장하는 유비의 사당과 제갈공명의 시호인 “충무후” 사당을 관람하였다. 삼국지에서 유비와 장비 관운장에 대한 일화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삼국을 통일한 유비보다 제갈공명을 더 존경하는 것 같다. 사당의 위치로 볼 때 중요한 인물에 대하여는 가장 높게 중앙에 세우는 것이 통상 예이나 이곳에는 유비의 사당을 먼저 세우고 중앙에 제갈공명(와룡선 생) 사당을 안치했다. 중국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제갈공명의 아내로 얼굴은 추녀였지만, 삼국을 통일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사당 관람과 함께 그 당시 삼국시대 거리를 재연해 놓은 곳에서 많은 관광객과 현지인들의 인파로 인산인해 속을 걸었다.
중국인들도 점차로 문화에 대한 인식이 높아 가고 있는지 가는 곳마다 중국 관광객이 넘쳐나고 있다. 노천 에서의 경극은 중국의 생활 풍습과 흥미를 제공 해 주었다.
중국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이번 여행을 통해 실감하게 되었다. 드넓은 땅에 풍부한 천혜 자원과 값싼 노동력으로 자급자족 할 뿐 아니라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힘을 키우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