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심 가득한 불광 법회가 그립습니다.
강동1구 자현성 정영애
대립과 갈등으로 가득한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스님과 신도가 하나가 되어 환희심으로 가득했던 법회가 그립습니다.
처음으로 느낀 환희심
45년 전 꽃다운 나이 스무 살 때 광덕 큰스님의 법문을 듣고 환희심을 느꼈던 그 순간을 오랜만에 되새겨 본다. 1978년 나는 중구 태평로에 있는 삼성물산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때 직장 동료를 따라 처음 대각사에 갔다. 매주 목요일 저녁 7시에 대각사에서 광덕 큰스님의 금강경 강의를 듣기 위해서였다. 퇴근하고 바삐 서둘러도 이미 대각사 마당에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마당 맨 끝에서 큰스님의 목소리만 들으며 중요한 것은 메모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많은 사람이 거의 직장인으로 젊은 청년들이었다. 그 당시에 [불광]을 비롯해 [뿌리 깊은 나무], 깊은 물] 등 소책자로 된 책들이 인기가 많았다. [불광] 책 구독자들이 큰스님의 법문을 듣고 싶어서 법문을 청하여 법회가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젊은 청년들이 많았다. 청년들은 법회가 끝나고 늦은 시간인데도 법회의 여운이 남아 다방에 모여 철학을 이야기하곤 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대각사에서 공부했던 세로로 쓰인 금강경 책을 꺼내 보았다. 스무 살의 소녀를 매주 대각사로 이끌었던 큰스님의 주옥같은 말씀이 깨알 같이 적혀 있었다. 새삼 읽어보니 그때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 나는 듯하여 그때 메모한 글을 옮겨 본다.
, 밝은 얼굴은 밝게 생각하고 옳게 생각할 때의 모습이다.
. 흐르는 물이 곧 법문이다.
. 귀. 목. 입은 도구다.
귀가 귀가 아니고 목이 목이 아니고 입이 입이 아니다.
. 깨달은 중생이 부처고 미흡한 부처가 중생이다.
. 인간의 차이는 깨달음에서 온다.
. 보살행은 중생. 가족. 이웃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다.
. 부처님의 법은 증감이 없으므로 항상 밝다.
. 선근은 모든 선을 싹틔우는 뿌리다.
. 세상에는 부모로 모실 분과 스승으로 봉양할 분은 수없이 많다.
. 수행은 연습이다.
. 말은 창조의 위력이 있다. 말은 신념의 발산이다.
말은 존재의 숲이다. 말은 바라밀의 집이다.
. 마음은 평등고하가 없다.
. 효란 봉양을 한다. 마음을 편하게 한다. 잘못을 깨우쳐 준다.
큰스님께서 “형제 여러분” 다음으로 많이 쓰셨던 어휘가 환희심이었던 것 같다. 환희심이라는 어휘를 말씀하실 때는 맑은 모습으로 힘있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때 느낀 감정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한마디로 환희심이었다.
큰스님의 많은 말씀 중에서도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말씀이 있다. 내가 전법 할 때 가장 많이 쓰는 “깨달은 중생이 부처고 미흡한 부처가 중생이다.”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부처라 생각하고 부처님을 닮아가려고 애쓰며 살고 있다.
창립 불사의 열정
그때 우리는 법문은 대각사에서 듣고 초파일에는 보현사로 갔다. 우리는 더부살이하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창립 불사 모연을 참으로 열심히 했다. 그때 큰스님의 말씀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공덕 중에 제일 큰 공덕은 불사하는 공덕이다. 그러니 큰 금액의 불사보다 적은 금액으로 많은 사람을 불사에 동참시킬 것을 마음에 새기고 묘연을 하라”고 정확한 지침을 주셨다. 정확한 지침 때문에 부끄러움을 많이 타던 나도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나설 수 있었다. 공덕 중에 제일 큰 공덕이 불사 공덕이니 적은 금액이라도 불사에 동참하여 큰 공덕을 얻으시라며 묘연문을 내밀었었다. 마치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을 천국으로 보내기 위해 전도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고향에 내려가서도 불사에 동참해야 하는 이유의 설명을 어찌나 잘하였던지 할머니들의 주머니 끈을 풀게 하였다. 자식. 손주들 이름을 다 올리고 싶어 300원, 500원 1000원, 2000원을 내주셨다. 내가 받는 동참금 중 가장 큰 금액이 4000원이었다. 실제 여러 곳에서 큰돈을 불사하겠다고 해도 스님께서 사양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잠실에 터를 마련하고 땅을 다지는 지신밟기도 하고, 상량식도 함께했다. 불사의 진행을 보며 우리 절이 생긴다는 환희심에 가득 찼다.
절이 완성되어 절에 갈 때마다 보광당 입구 벽에 붙은 스텐판에 적혀 있는 명판을 봤다. 깨알 같은 글씨로 새겨진 이름 중에 내가 묘연한 사람들의 이름을 찾아보면 뿌듯해졌다.
중창 불사 후 가장 아쉬웠던 것이 동참한 사람들의 이름을 새길 공간도 많은데 왜 묘연자의 이름이 새겨진 명판이 없을까 궁금했다. 그때 스텐판에 새겨진 창립 불사 동참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판은 어디로 갔는지도 궁금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창립 불사의 명판을 찾고 중창 불사의 명판도 만들어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설치해 제사 손님이나 처음 오신 분들도 명판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 하도록 했으면 한다.
제가 결혼하여 불광사에서 먼 곳에 살기도 하고 아이들 키우느라 한동안 절에 나오지 못했다. 다시 절에 나오게 되면서 잊어버린 호법 번호를 찾으러 사무실에 갔다. 호법 번호를 좀 찾아 달라고 했더니 옛날 카드가 없어져서 찾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만들었다. 큰스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던 호법 카드가 없어졌다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자랑하고 싶었던 불광법회
초파일이 다가오면 금액을 정하지 않고 등을 미리 다 달아놓고 금액 상관없이 접수 번호순으로 이름을 붙였다. 그 당시에도 다른 절에는 등값이 매겨져 있었는데 우리 불광사는 등값이 정해져 있지 않고 누구나 성의껏 등을 밝히는데 의미가 있었다. 우리는 불광사만의 자랑거리로 여겼고 등 묘연하는 것도 즐거웠다. 신도를 돈으로 보지 않고 또 등급을 매기지도 않았다. 큰스님께서는 이미 불광형제들을 부처로 보셨기 때문에 누구나 평등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다. 큰스님이 안 계셔도 큰스님께 법문을 들었던 불광 형제들이 목숨 걸고 불광법회를 지키려고 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때는 제등행열을 여의도에서 조계사까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인원이 제일 많은 불광사 불자들이 선두로 출발했다. 수많은 목탁 대원들의 목탁 소리에 맞춰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며, 한강 다리를 건널 때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내 가슴은 뛴다. 여의도에서 조계사까지 긴 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마하반야 바라밀을 염송하며 행진했다.
부끄러운 불광사
불광 사태가 나기 전까지 다문화 전법 팀장으로 결혼 이주여성과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매주 일요일 60여 명이 보리당에서 각려효스님을 모시고 법회를 했다. 새해 법회나 특별한 법회가 있을 때는 아이들 포함 200여명이 되었다. 보리당 바닥에 은박지 메트를 길게 여러 줄로 깔고 앉아서 베트남 음식으로 강동 1구 보살들과 함께 공양했다. 불교대학 모임 참모임에서는 큰 TV를 보시해 주어 너무 감사했다. 시간이 가면서 베트남 불자들과 우리 불광 형제들이 함께 법회를 보고 베트남 음식으로 공양도 함께했다. 어른들은 타국살이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음식과 함께 나누고 아이들은 놀이방에서 우리 봉사자들이 돌보고 참으로 정겨웠다. 베트남 법회에 동참해보니 스님과 불자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법회가 어떻게 저렇게 재미있을 수 있지? 우리도 저렇게 재미있는 법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불광 사태로 인해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보리당 문을 잠그고 열어주지 않아서 안에 있는 물건을 꺼내는 것도 힘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법회 할 곳이 없어진 베트남 법회는 매달 전국 사찰을 찾아다니며 템플스테이로 법회를 이어갔다. 지금은 파주에 사찰부지를 마련하고 하우스를 지어 법회를 보며 불사에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아마도 우리가 불광사를 창건할 때의 마음일 것이다. 한국으로 시집온 한 새댁은 베트남에 사시는 어머니의 임종을 컴퓨터로 보았다. 어머니의 49재에 참석하지 못하여 눈물 흘릴 때 베트남에서 49제 지내는 시간에 맞춰 대웅전으로 데리고 가서 함께 기도했다. 땅에서 보면 안보이지만 어머니가 하늘에서 보시면 베트남이나 한국이나 한눈에 다 보실 수 있으니 가족들과 함께 재를 지내는 것과 같다고 설득하여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을 경감시킬 수 있었다. 부처님오신날이 가까워지면 언제 아이들과 절에 갈 수 있느냐고 물을 때 부끄러움을 느꼈다. 정상화가 가까워졌다고 하니 빨리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참고로 “불광법당불사동참기” 라고 쓰여진 창립불사 묘연책을 사진으로 첨부합니다. 필요하시면 책자도 드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