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불굴의 신념으로 자신의 지적 신념을 실천해 갔던 근대 한국의 지식인의 표상. 올해는 독립 운동가이자 민족주의 사학자로 이름 높은 단재 신채호 선생(1880~1936)이 순국한지 70주기가 되는 해이다. 일전에 광복절을 앞두고 한 TV 프로그램에서 선생이 일제의 호적 등록을 거부하여 지금까지도 무국적자란 사실이 방영된 적도 있지만 선생은 일제에 대한 추호의 타협도 용납하지 않았던 대쪽 같은 기품의 소유자였다. 뿐만 아니라 부인에게 자신은 가정을 돌볼 여력이 없으니 도저히 자식을 키울 형편이 안 되면 고아원에 맡기라고 편지를 쓸 정도로 철저히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을 실천해 나간 지식인의 표상이었다. 국권 피탈 이후 연해주와 중국 대륙을 넘나들며 오로지 조국 광복과 민족사 연구에 모든 열정을 바쳤던 선생은 일본 제국주의가 본격적으로 마각을 드러내던 1936년 그 악명 높은 여순(뤼순) 감옥의 싸늘한 독방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선생의 비장한 삶과 죽음이 오늘날에도 우리들의 가슴을 여미게 만들듯이 민족 사학자로서 선생이 던진 역사의 명제 또한 큰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란 명제가 지금의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 속에도 아와 비아가 있다.<<
역사란 무엇이뇨? 인류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전하며 공간부터 확대하는 심적 활동의 상태의 기록이니, 세계사라 하면 세계 인류의 그리 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며, 조선사라면 조선 민족의 그리 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니라. 무엇을 ‘아’라 하며 무엇을 ‘비아’라 하느뇨? 깊이 팔 것 없이 얕게 말하자면, 무릇 주관적 위치에 선 자를 아라 하고 그 외에는 비아라 하나니(후략), - 신채호 ‘조선상고사’ -
단재 선생이 말한 ‘아와 비아의 투쟁’은 일단 우리 민족과 타민족 또는 무산 계급과 유산 계급의 투쟁과 대결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며칠 전 북한의 핵실험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난 북한과 미국의 대결과 갈등, 역사 왜곡을 일삼는 일본, 중국에 대한 한국의 대응, 해마다 반복되는 격렬한 노동쟁의 등이 이러한 보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단재 선생의 명제는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무릇 주관적 위치에 선 자가 아(我)이고 그 외에는 비아(非我)’라 한 것은 ‘우리’ 속에도 자신을 주체적, 능동적으로 이끌어 가려는 아(我)와 그렇지 못한 비아(非我)가 함께 있어 서로 대립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 개인의 경우를 놓고 본다면,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 속의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인 골룸과 스미골에 비교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본래 준수한 청년이었던 한 몸 속의 그들은 서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항상 절대 반지에 대한 탐욕과 교활한 속성을 지닌 골룸이 행동에 대한 결정을 주도해 나간다. 그리고 그에 따라 모습도 점차 보기 흉하게 변하였다. 만약 착하고 여린 스미골이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다면 그들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 속에서 어떠한 마음가짐이 자신을 주도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참 모습(正體性, Identity)이 결정되는 것이다. ‘나’의 내면에는 항상 쉽고 편안함 또는 탐욕과 쾌락을 추구하는 내가 있는 반면,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을 보다 선하고 긍정적인 단계로 끌어 올리려고 노력하려는 내가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결국 ‘나’란 한 개인 속에도 아와 비아가 함께 자리 잡고 있으면서 항상 갈등을 일으키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인생 행로를 결정지어 나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국가나 민족의 운명도 개인의 경우와 별로 다르지 않다. 일찍이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을 조선 역사상 1천년 이래의 가장 큰 사건이라고 불렀던 단재 선생의 견해를 살펴보자. 선생은 금국 정벌론을 내세운 묘청 세력을 주체적인 아(我)라 할 때, 금의 사대 요구를 수용한 김부식 세력을 비아(非我)라고 파악하고, 양자의 대결에서 비아인 김부식 세력이 승리함으로써 그 후의 우리 역사가 주체적, 자주적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이러한 단재 선생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사실 이런 식의 대립과 갈등은 역사 속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사이 TV 사극에 많이 등장하는 고구려 연개소문의 당에 대한 강경책과 신라 김춘추의 대당 외교, 고려 말 요동 정벌을 둘러싼 최영과 이성계의 갈등, 병자호란 당시 척화파와 주화파의 대립, 또는 개항 이후 전개된 개화파와 위정척사파의 갈등도 결국 ‘우리’의 속에서 일어난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아(我)이고 누가 비아(非我)인가?<<
최근에도 한국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보여주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대립이나 전시 작전 통제권 인수에 대한 수구 세력의 격렬한 반대 등은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이러한 대립과 갈등은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는 명제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보게 한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과연 누가 아(我)이고 누가 비아(非我)냐 하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독립 운동가와 친일 세력을 비교하는 일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단하고 명백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 전개되고 있는 사실에 대한 판단은 개인의 지닌 역사 인식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역사, 특히 현재 우리의 모습과 가장 관련이 깊은 한국 근ㆍ현대사에 대한 엄정한 평가와 서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국 어떤 역사 인식을 가진 이들이 역사의 주도권을 쥐느냐 하는 것이 민족 사회의 미래 운명을 결정하는 첫 번째 요인이 될 것이다.
>>역사의 밭(田)은 과연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만 일구어지는가?<<
아울러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 또한 우리 민족 사회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이 터 잡고 있는 한반도처럼 강대국들의 이해(利害)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곳이 또 있을까? 삼류 깡패와도 같이 힘으로만 윽박지르려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민족의 과거사를 송두리 채 훔쳐가려는 나라도 있다. 우리 민족과 이들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한다면 그곳에는 ‘아와 비아의 투쟁’만이 존재할 것이다. 민족 사회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역사에 대한 무지(無知)와 자신들만을 위한 끝없는 탐욕으로 민족적 대의와 민족 구성원 대다수의 이익을 외면하는 비아(非我)에 대해서는 아(我)의 투쟁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밭은 이러한 투쟁으로만 일구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서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집단끼리도 얼마든지 현명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서로간의 이해를 조율하면서 이른바 윈-윈(win-win)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에서든 민족 사회 내부에서든 마찬가지이다.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민족 사회가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내부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아와 비아의 갈등을 합리적으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것은 대결과 갈등이 난무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마치 이상(理想)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 선대들은 이미 일제 강점기의 민족 협동전선 운동이나 해방정국의 좌우 합작 운동을 통해 그러한 지혜의 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사는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이 이상을 현실화하는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