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02. 08.
지금 상황은 정말이지 ‘가축전염병 잔혹사’라 할 만하다. 역대 최고 수준의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가 끝을 보이는 중에 덮쳐온 구제역을 말함이다.
이번 AI 사태는 작년 10월 말 충남 천안의 봉강천 야생 원앙에게서 AI 감염이 처음으로 확인되면서 시작됐다. 피해는 역대 최고로 전국에 걸쳐 살처분한 가금류가 3300만마리에 이른다. 대규모로 산란계를 살처분한 탓에 지난 설에는 미국산 달걀이 비행기를 타고 국내로 반입될 정도였다. 지금까지 살처분에 따른 피해보상금액만도 2000억원에 이를 정도라니 이번 AI 피해를 짐작할 수 있다. AI는 열에 매우 약해서 섭씨 75도 이상에서 5분 정도만 가열해도 사멸된다. AI가 사람을 감염시키기는 쉽지 않지만 중국에서 보듯이 사람 감염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 감염이 가능하자면 일차적으로 고농도의 AI에 직접 노출돼야만 한다. 우리나라에서 위험군은 살처분이나 매몰작업 등에 참여하는 인력이다. 이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국내 사정을 감안하건대 사람 감염이 일어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실제 지금까지 국내에서 사람이 AI에 감염된 사례는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6차례에 걸쳐 AI가 유행했다. 모두 H5 계열의 고병원성이다. AI가 유행할 때마다 대규모 살처분이 시행되다 보니, 살처분이 최선이냐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H5 계열의 고병원성 AI는 살처분이 최선책 중 하나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고병원성이어서 살처분을 신속하게 실시하지 않으면 감염된 가금류가 바이러스 생산 공장 역할을 하게 돼 확산 방지를 더욱 어렵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신 사용도 논란이 되고 있지만 백신은 고려할 게 많다. 백신 생산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개체수가 많다 보니 신속한 접종도 쉬운 일이 아니다. 백신의 효과도 의문이고 백신 자체가 바이러스 변이를 촉발하는 문제, 특히 백신을 접종한 가금류를 식용으로 사용했을 때 사람에 대한 안전성도 따져봐야 한다.
구제역도 AI와 마찬가지로 바이러스성 가축질병이다. 소, 돼지, 염소 등 발굽이 갈라진 동물이 감염대상이다. 전염성이 워낙 강해 바이러스 농도가 높을 경우에는 공기를 통해서도 확산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확진되면 신속히 도살하거나 매몰 처분한다. 구제역은 현재로서는 치료법이 없어 백신을 접종해 예방하는 게 최선이다. 이번 대규모 AI 사태가 초기 대응 실패로 피해가 커진 점에 비춰, 구제역 발병이 아직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위기단계를 ‘경계’로 취하고 축산농가에 대해 현재 전국적으로 이동제한 조치가 내려진 상태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사람을 감염시키지는 못한다. 면역성이 낮은 사람이 감염된 경우가 있다는 논란이 있긴 하지만 공식적으로 사람이 구제역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는 아직까지 없다. 구제역 바이러스도 AI와 마찬가지로 열에 매우 약해 살균처리돼 유통 중인 우유나 가열해 익힌 고기는 위험성이 전혀 없다. 국내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것은 여러 차례지만, 2011년에 약 300만마리의 소, 돼지 등이 살처분돼 매몰된 적이 있다. 말 그대로 축산농가가 초토화됐었다. 지금 구제역도 그때의 기억과 함께 지금의 AI 사태가 겹쳐져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특히 최선의 예방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백신이 충분한 효과를 내지 못하면서 축산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AI든 구제역이든 전염성이 강한 질병은 초기대응이 전체 국면을 결정한다. 지난 6차례의 예에서 보듯 AI 유행은 이제 상시적이다. 구제역 역시 일단 발병하면 확산이 빠르고 피해 규모도 크다. 모든 화력을 초기 대응에 집중해 신속한 진압을 이뤄내야 한다. 초기 대응에 실패하게 되면, 피해 규모도 그렇지만 살처분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설대우 / 중앙대 교수·분자세포병리학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