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창작 자료 2025-1 /최경호
담이 무너지다 /이 영춘
하늘 쨍쨍한 가을 날
하늘 끝 동네, 산꼭대기에 산다는
제자를 찾아 간다
늦가을 잎사귀 같은 개 한 마리 데리고
혼자 사는 제자,
아내는 어찌 되었느냐고 차마 묻지 못하고
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셨느냐고 묻는다
“작년에요! 엄마도 3년 전에 가시고
이젠 담이 다 무너졌지요!“
혼잣말 하듯 중얼거린다
노란 가을 하늘이 귀를 세우고 그 말소리를 들은 듯
눈을 번적 뜨고 내려다 본다
내 가슴도 쿵 무너져 내린다
나뭇잎들도 조용히 귀를 열고
담 무너지는 소리를 들은 듯
푹 고개 떨구고 있다
하늘은 참 파랗기만 한데 ...
* 출전: 계간 ⟪시와 사람⟫, 2025 봄호
* 시인 이영춘 : 197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시간의 옆구리>,
<시시포스의 돌>, <봉평장날>, <그 뼈가 아파서 울었다> 외
* 시시포스 : Sisyphos 하데스에서 언덕 정상에 오르면 바로
굴러 떨어지는 무거운 돌을 다시 정상까지 계속 밀어 올리는
벌을 받은 인간, 오디세우스의 아버지 죽음의 신을 묶어버려
아레스가 구해줄 때까지 죽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 작품론 : 인간의 경계, 생명의 인간적 의미(백인덕 평론가)
* 감상 : 하늘 쨍쨍한 가을 날- 하늘은 참 파랗기만 한 데 (수미일관),
1연에서 : 극단적 상황의 이미지와 개 한 마리와 혼자라는 어휘가 생성하는 이미지
2연에서 : 스승과 제자 간의 도덕적 관계성
3연에서 : ‘담’ 이 무너지다, ‘담’은 경계가 아니라 인간의 울타리, 인간은 혼자가 아
닌데 혼자라는 사실에서 담의 의미가 강조된다.
4연에서 : 절망적인 노란 하늘, 가슴이 쿵 내려앉고, 나뭇잎들이 고개 숙이고 (절
망의 단계)
5연에서 : 하늘은 파란데 (대조법으로 이미지를 극단화 한다)
* 시적 표현 : 하늘 끝 동네, 산꼭대기(극단적 상황), 늦가을 잎사귀 같은 개 한 마
리(이미지 공유,동물과 식물), 하늘이 귀를 세우고, 나뭇잎들도 귀를 열고 (자연과
인간)
** 총체적 감상 : 고독한 인간상의 부각, ‘인간은 가족이라는 담이 있을 때 삶의
의미가 있지만 담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담이 무너진 이후에야 존재의
뼈가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