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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토장정 21 (2011.04.16)
32.3km (422.2km)
(충남 보령시 대천 제방 - 대천해수욕장 - 죽도 - 무창포 해수욕장- 서천군 서면 춘장대 해수욕장)
월 초에 한식이 겹치고 개인적으로 다문화연대의 전국탁구대회 봉사로 장정을 미루다가 중순이 되어 장정을 시작했다.
시절은 꽃피고 새 우는 봄이 되었고 서울에는 산수유, 벚꽃, 개나리 진달래가 순서에 관계없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이번 장정은 꽃구경 장정이겠거니 하며 출발부터가 들떠있고 부산에서 고문님까지 멀고 먼 기차여행을 감행하신다고 해서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을 했지만 대천에 도착하여 세모국으로 아침을 하자는 의견으로 대천시내로 들어와
조개로 국물을 내고 해초 가시리로 맛을 낸 세모국을 시원하게 먹고 나니 출발 시간은 벌써 9시가 다 되어 간다.
먼저 회장님이 선두에 서고 부회장님과 감사님이 뒤를 이어 대천제방을 넘어간다.
오늘 총무님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장정에 참석을 못하셔서 불어나는 제정에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처음부터 지원조로 나서서 다시 대천역으로 고문님을 모시러 나간다.
중간에 잠깐 서서 제방위로 올라가니 제방위로 걷기에 좋은 고무포장이 색상도 예쁘게 깔려있다.
제방을 따라 계속 이리로 걸어와 잠수교를 건너서 대천 항쪽으로 방향을 잡을 것이다.
바로 옆에는 서해안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그 밑에 밀물이 들어오면 잠겨버리는 잠수교가 있다.
물이 들어오면 6km 정도 대천천을 따라 대천시내로 들어와 다시 나와야 하기에 장정은 걸음이 빨라져 있을 것이다.
대천역에 도착하여 천안에서 오는 새마을호 기차를 기다린다.
깔끔하게 새로 지어진 역사는 보령 머드 축제 사진으로 가득하다.
1995년 보령군과 대천시가 합해져 다시 보령시로 태어났다.
대천시가 보령시의 가장 중심이 됐고 대천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역은 아직도 대천역이다.
그러니 보령에는 보령역이 없고 대천역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바로 옆에는 고속터미널은 보령 고속터미널이다.
기차를 타고 오시면 대천역에서 내리시고 고속버스를 타고 오실 때는 보령에서 꼭 내리세요.
출장으로 일본에 자주 다니며 특히 큐슈의 후쿠오카를 자주 가는데
후쿠오카 비행장에서 내려서 혼슈의 히로시마로 가려면 후쿠오카 역에 와서 신간센을 타야한다.
그런데 어느 곳에도 후쿠오카 역은 없다. 하카다 역이라는 생경한 이름의 역이 있을 뿐이다.
또 부산에서 후쿠오카로 배를 타고 간 적도 있는데 후쿠오카 항은 없다. 역시 하카다 항이 있을 뿐이다.
후쿠오카의 옛 이름이 하카다 이었다고 한다. 보령에도 보령 항은 없다. 대천 항이 있을 뿐이다.
요즘 철도는 타고 내리는 플랫트홈에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자유롭다.
검표원이 없어서 올라가보니 바로 플랫트홈이다.
멀리서 새마을호가 들어오고 부산에서 KTX를 타고 천안에서 다시 새마을호를 갈아타고 고문님이 도착하셨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내려와 일행과 합류을 위해 차를 타고 나간다.
마침 근처에 큰 슈퍼마켓이 있어 장정중 소비할 소모품 소주와 안주, 막걸리, 방금 쪄서 나온 따뜻한 족발도 하나 사서
대천 연안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해서 반가운 마음을 막걸리와 함께 가득 컵에 따라 건배를 한다.
다시 감사님이 지원을 하고 나머지가 대천 해수욕장을 향해 장정을 시작한다.
바닷가를 돌아 예쁘게 만들어 놓은 산책로를 지나자 서해안 최대의 해수욕장인 대천 해수욕장의 펼쳐져 있다.
해변의 모래밭이 3km 가까이 되는 여름이면 젊음의 광장, 광란의 해변으로 변해버리는 곳이다.
그 덕에 해변 바로 옆의 음식점과 유흥업소가 광란의 도시를 연상할 수 있게 빼곡히 들어차있다.
그냥 힘들어도 모래사장을 걸어간다. 바람 부는 봄바다에는 엄마 손 잡고 산보 나온 어린아이가
파도소리와 예쁜 장면을 연출하지만 바로 위 상가에서는 목청 높여 손님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쏙 빠진다.
해변이 끝날무렵 상가가 끝나고 보령머드 체험장이 나온다.
해수욕장 끝은 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어 통행이 어려울 것 같아 체험장 옆길로 빠져나와
군부대의 경계를 따라 나오니 다시 모래사장이 열린다. 사람도 없고 나무 조용한 모래사장이다.
방향은 바로 앞에 보이는 남포 방조제로 정하고 해변을 따라 걷는데 점점 분위기가 이상하다.
처음 본 기구들도 보이고 사격 통제소 같은 것도 보이고 갑자기 총을 든 초병들이 쫒아 나와 우리를 끌고 나갈 것 같은
불안한 고요함이 이여진다. 지금도 이곳은 어디 인지 모르겠다.
그곳이 예전 우리 형님이 미사일 발사 훈련을 했다는 대천 항공포 사격장인지 아니면 군 휴양시설인지.
그래도 그냥 이 밝은 대낮에 무슨 일 있겠냐는 생각으로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가고 있지만
모두가 말소리도 작아지고 그렇다고 되돌려가기에는 걸어온 길이 너무 멀고
그렇게 가만 가만 남포 방조제 바로 옆 갯바위에 올라섰는데 이젠 더욱 난감함에 어쩔 줄 몰라진다.
수문 쪽으로 철조망이 굳게 쳐져있고 산으로는 철책 담이 꼼짝달싹 못하게 우리를 막아선다.
길이 없다. 방법도 없다. 포로수용소를 탈출하기위한 절단기로 없다.
이곳저곳에 군사시설이라는 안내간판이 보이고 방범 카메라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것 같고 불안감은 극도로 올라온다.
그 때 간신히 회장님이 길을 발견했지만 그 길이라는 것이 사람 키 절반이 넘는 쇠파이프 난간을 넘어
그 난간을 붙잡고 폭이 10cm도 안 되는 틈에 매달려 그렇게 잠시 올라가 다시 철책을 넘어가는 길이다.
더 큰 문제는 난간 밑 콘크리트 절벽은 방조제 수문 바로 앞, 20m는 족히 넘는 낭떠러지기고 그 밑에는 시퍼런 바닷물이
넘실거리고 있다. 한 발이라도 실수하면 죽는다.
그렇게 잠시 정적은 흐르고 그래도 제일 용감한 수색대 부회장님이 난간을 넘어서 성큼 성큼 발을 띠고 철책을 넘어간다.
성공이다.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에요. 난간을 잘 잡고 만 오세요.”
말은 쉽지 누구는 난간을 못 잡을 가봐? 하지만 한 번이라도 놓치면 바로 풍덩이다.
수영을 배워 놓기 잘했지. 별 위안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부산에서 그냥 놀러왔다가 이런 엄청난 일를 당하신
조금 짧은 고문님이 난간을 넘어간다. ‘아이고 깜짝이야.’ 난간 위를 넘는 순간 두 다리가 허공에 다 떠있네.
조금 짧은 것이 많이 불편하기도 한 것이군. 그래도 날렵하게 철책을 넘어간다.
다음은 내가 약간 멈칫하던 순간 회장님이 무거운 몸을 빙그르 돌려 난간을 넘어간다. 또 깜짝 놀라서 팔을 붙잡았다.
회장님은 무거운 몸과 달리 가벼운 동작으로 난간을 기어올라 철책을 부럽게 넘어간다.
이제는 마지막 남은 나.
아마 포로수용소에서 탈출을 할 때 맨 마지막으로 남아 끝까지 동료를 지키고 본인은 총에 맞아 장렬히 전사하는
책임감 넘치는 주인공같이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때 내 심정은 멀고 먼 길을 다시 돌아 탈출한 동료를 밀고하고
편안한 감옥에 다시 들어가고 싶은 그런 용기 없는 변절자로 돌아와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쫓아오는 놈도 없고 뒤에서 흙을 튀여 올리는 총소리도 없고
다만 되돌아 갈 용기냐 아님 넘어갈 용기냐를 결정만 하면 된다.
그래도 49년을 용기 있게 사는 척하고 살아왔는데 넘어가자.
짧은 다리도 아닌데 나도 순간 난간을 넘을 때는 바닷물로 풍덩 빠질 것 같게 두 다리가 허공에 잠시 머물러 있어서
가슴을 철렁하게 했고 난간을 잡고 좁은 틈을 한 발 한 발 게걸음으로 넘어가 철책기둥에 동동 매달려 있을 때는
이런 미친 짓을 왜하냐고 거친 숨소리를 내뿜었지만 철책을 넘어서자마자 다시금 어깨에 힘을 넣고 쎈척을 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아이고 이제 살았다’를 염불처럼 외고 있었다.
바로 남포방조제로 길이 이어진다. 3.7km의 방조제는 중간에 죽도가 있고 직선으로 끝에는 용두해수욕장이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하고 죽도에 들어가 간단히 칼국수로 점심을 해결한다.
오후의 장정은 부산에서 그냥 잠깐 놀러왔다가 깜짝 놀랐던 고문님이 지원을 하고 나머지가 길을 나선다.
잠깐 걸으니 바로 용두해수욕장이고 좌측 국도로 나지막한 언덕을 하나 넘으니 충청남도 수산연구소가 나오고
그 안으로 돌아 들어오니 무창포 해수욕장의 예쁜 노란색 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니 해수욕장 쪽은 뽕짝 뺀드 소리로 요란하다.
지금이 한창 주꾸미 철인지라 곳곳에서 주꾸미 축제다.
축제에 빠질 수없는 것이 음주가무인지라 흥이 오른 아줌마들께서 노천무대를 모두 장악하시고
노래하는 회장 아주머니 엉덩이춤을 따라하고 계신다.
그 곳을 살짝 돌아 나오니 모세의 기적처럼 바다가 열린다는 무창포 해수욕장이다.
1928년 서해안에서는 가장 먼저 해수욕장으로 개장을 하였다는 무창포는 대천 해수욕장이 개장하기 전까지는
최고로 인기가 높은 해수욕장이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바로 앞 석태도와 썰물이면 바다길이 열려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고 아담한 모습이 아름답다.
잠깐 무창포에서 휴식을 취하고 고문님의 지원을 받고 나는 더 걷고 싶은데 나머지 회원들의 권유로 고문님의 말동무 삼아
차에 올랐다. (앗싸)
봄바람은 더욱 거세져 모래까지 날려서 여간 힘들지 않았는데 3인의 용사의 장정을 뒤에서 묵묵히 돕는 것도
또한 장정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
꽃구경을 생각하고 나온 장정은 꽃구경은 커녕 싱숭생숭하고 변덕스러운 봄바람만 실컷 만나고 간다.
이곳은 서울보다 훨씬 남쪽이지만 꽃이 피는 계절은 아직 더 있어야 된다고 한다.
남쪽이라고 모두 먼저 꽃이 피는 건 아니라는 것을 50이 내일인 이 나이에 처음으로 알았다.
무창포 해수욕장 끝에도 군부대가 자라 잡고 있어서 일행을 국도로 약간 우회 시킨 후 독산 해수욕장으로 인도 한다.
회장님. 부회장님. 감사님이 우리 일토장정의 최고의 정예 멤버다.
우선 부회장님은 보폭이 길어서 빠르고 감사님은 키는 부회장님보다 크지만 보폭은 약간 짧아 종종 걸음으로 따라 붙는다.
그래도 그 중에서 가장 신기한 것은 보폭도 가장 짧고 걸음걸이도 완전히 8자이며
중력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우리 회장님이다. 부회장님이 두 걸음 걸을 때 세 걸음으로 따라 붙고 감사님이 네 걸음 걸으면
여섯 걸음으로 응수하며 유일하게 스틱을 이용하여 걷는데 꼭 네 발로 걷는 것 같다.
어려서의 추억하나가 생각나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본다.
방학 때 시골에 내려가 큰집 큰형수네 친정에 놀러간 적이 있다.
아마 내 나이가 10살 정도이었으니 지금으로부터 40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아직도 그 고생의 기억이 생생하다.
산을 넘고 도착한 사돈댁은 대문도 없던 그 시절에 문 앞이 막혀있었다.
이유인 즉은 사돈댁의 순충순풍 새끼를 잘 생산하는 어미 돼지가 새끼를 10마리가 넘게 낳고 그 새끼들이 조금 자라
돼지 마구를 나와 마당가득 돌아다니고 있어서였다.
지금도 동물을 너무 좋아하는 나는 새까만 눈동자의 아기 돼지에게 폭 빠졌고
한 마리 얻어가서 집에서 키우고 싶다는 의사를 정중히 사돈에게 전했다. 그
때 사형(형수의 오빠)께서는 서울서 온 서울 촌놈에게 온정을 베푸셨고 말씀은 잡을 수 있다면 잡아 가서 키우라고 하셨다.
어려서 체육시간 달리기에는 등수에 밀린 적이 없는 나는 같이 간 조카(촌수가 낮아서 조카이지 나이는 나보다 두 살이 많은)에게
좌측을 맡기고 난 오른 쪽을 맡아서 포위망을 좁혀 갔다.
새까만 색의 아기돼지는 작은 눈 안에 가득한 새까만 눈동자를 굴리며 경계심을 최고로 높여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고
그렇게 잠깐 동안의 긴장감이 흐르는 순간 벌써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 버리는 아기 돼지를 잡으려 한나절을 다 보냈다.
쫓아가면 멀어지고 내가 멈추면 돼지도 멈춰서 날 쳐다보고 약은 오르지만 그 속도에 번번이 떨구고 말 때면
누가 돼지가 느리고 게으른 동물이라고 책에다 써 놓았는지 개탄을 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산골 동네 사람들은 모두 구경을 나와 배를 잡고 웃고 있고 그래도 서울 도련님으로 불리던 나의 자존심은
똥 묻은 내 기차표 캐미슈즈처럼 되어 있었다.
그 때 만고의 진리 하나가 불연 듯 떠올랐다. ‘그래 난 무조건 한 놈만 상대해. 그래 저 놈이다.’
조카에게도 그 한 놈을 지정해 주고 뛰고 또 뛰어 한 시간 뒤에 그 놈을 손에 쥐었다.
그 때부터 난 알고 있었다. 다리 짧다고 뚱뚱하다고 평소에 느려 보인다고.....
결코 돼지는 느리지 않고 엄청 빠른 동물이라는 것을....
그런데 왜 이 순간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소중한 추억일 뿐
절대로 인신공격성 발언은 절대 아님을 밝힌다.
정예멤버는 벌써 독산해수욕장을 지나 바로 이어지는 장안해수욕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모래바람이 얼마나 부는지 모래가 해변의 둑을 넘어 도로에 까지 넘어 와있다.
모래바람을 등지고 부사방조제를 지나 오늘의 종착지 춘장대 해수욕장으로 넘어와 민박집을 예약하고 급히 홍원항으로 향했다. 새의 머리 모양으로 튀어나온 서천군 서면 마량리에는 지금 동백꽃 주꾸미 축제가 한창이다.
포구의 해산물 가게도 그 덕분에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간신히 머리 크기가 실한 주꾸미를 구하고 국물을 낼 조개도 조금 더 사서 민박집으로 돌아와 곧 도착할 정예멤버를 위해
조개를 깨끗이 닦아 끊는 물에 넣고 달콤한 국물을 만든다.
국물이 어느 정도 빛깔을 내고 있는데 보부도 당당하게 (실은 지쳐서 패잔병 같았으나 그래도 고생했으니 오늘은
당당하다고 표현하자) 도착하고 바로 우리만을 위한 주꾸미 축제를 열어본다.
휴대용 버너의 불을 더욱 올리고 물을 펄펄 소리가 날 때까지 끊이다가 느닷없이 주꾸미를 그 물 속에 집어넣어
먼저 다리는 살짝 잘라 소주 한잔하고 머리는 조금 더 놓아두면 찰밥이 모두 익는다.
먼저 가장 실한 머리는 멀리 온 그래서 살아있는 주꾸미는 먹어본 적이 없는 부산 촌놈에게 선사하니
오묘한 찰밥의 맛에 고개를 갸웃한다.
주꾸미 모자에게는 불행하고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대단한 감동을 준다.
먼저 다리의 모양새를 보면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발끝은 왼쪽으로 살짝 돌려 앉아 있는 폼이
흡사 첫 선보러 나온 얌전한 처녀 같고 그 탱탱하고 야들야들한 식감 또한 입에서 이리저리로 돌면서
소주가 없다면 목으로 넘기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다리는 정말 첫 선을 보이는 정도이고 머리는 어떤가!
탁구공 크기보다는 조금 작지만 그 안에 찰밥보다도 더 찰진 알을 가득 담고
그 맛은 사람의 말이 가난하여 표현하기 어려운 담백함이 있다.
물론 알이 덜 차올라 먹물만 있는 경우도 있지만 바다의 모든 향기를 가득 담은 그 맛도 빠진다고는 못 할 것이다.
그렇게 한 마리 또 한 마리를 미안하게도 다 먹고 라면 넣어서 국물까지도 깨끗이 배 안에 밀어 넣고 그 밤을 보냈다.
오늘의 쓰레기 - 얼핍 보면 비치볼같지만 그물이나 부표에 달아놓은 부레입니다.
공인 줄 알고 발로 차면 발가락 다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닷가 모래사장에 많이 보입니다. 대천 해수욕장에서
첫댓글 뭐.......그닥..................
저거는 돼지 이야기쟈나.............
난 돼~~지!고.................그니까 틀린겨............결국인 인신공격이 아닌겨 글지?
글구 저 부사방조제...........
여태까지 걸은 곳 중에 젤로 걷기 싫었던곳이네............ㅋㅋㅋ
두번을 쉬어서 건넜는데도 걷는 속도가 5.4Km/H라니..............와우..................ㅋㅋㅋ
그러니까 당신 야그는 당신 보고 '돼지' 라고 하는건 괜찮고 '돼~~지'라고 하면 안된다는 거 맞지??
철조망...지금 봐도 아찔하네.
가능하면 돌아서 안전한 길로 가야겠지만 피치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낙하산 로프 5~10m짜리 1개 정도는 휴대하는것도 괜찮을듯...
구명줄, 빨랫줄 등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고 3mm 정도 굵기면 생수병 한개 부피도 안될텐데.
쭈꾸미 대가리찰밥(?)..내년을 기약하고.. 왜 내가 선택한 대가리는 다 먹물만 가득..ㅠㅠㅠ.
멀리서 응원온 고문님 고생했슈~~~
그러네요...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암벽등반하는 줄을 10m정도 사야겠어요...제가 준비하지요....ㅋㅋ
회장님 정말 전 회장님 들으리고 한 말은 아니였구요
고문님 전 고문님의 파르르 떠는 그 뒷다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감사님도 분명 찰밥 드린걸로 기억하는데 ㅎㅎㅎ
부회장님 당신은 진정한 수색대입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