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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24편 : 제목 : 면류관의 노래 (승리의 노래)
다윗의 시
※ 개요
시24편은 부제로 “다윗의 시”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는 단지 노래 잘하는 자 다윗이 지은 시임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다윗으로 하여금 고난의 역경을 시22편에 참된 목자의 인도에 대하여 시23편에 그리고 24편을 통하여 면류관의 노래 곧 승리의 노래를 기록하게 하였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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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성도인 우리에게도 성령을 주시고 힘을 주시면 언제든지 즐겁게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다른 자에게나 우상에게 주시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사42;8)
다윗이 이 시를 기록하게 된 동기는 온 우주의 주관 자되시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오덷에돔의 집에서 시온 산성으로 옮겨 모실 때 감격하여 기쁨으로 지은 시입니다. 또한 시편 기자는 “언약궤”가 준비한 시온 산으로 기쁘게 노래하면서 영광의 왕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혹이 다윗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를 인하여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세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행하매 다윗이 소와 살진 것으로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부르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 (삼하6;12-15)
시24편은 시15편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시입니다. 1-2절은 참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의 통치를 찬양합니다. 3-6절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성품을 노래합니다. 7-10절은 택함 받은 당신의 백성들이 들어가도록 하늘 문을 여신 구세주의 승리 즉 즉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거듭난 성도들이 이 시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임마누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마음에 왕으로 모시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찬양하며 왕이신 주님을 모신 자답게 깨끗한 생활과 온유와 겸손한 마음으로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맹세하지 않아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영광의 왕께서 성소의 문으로 들어가심을 찬양한 이 시는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하심으로 영광을 얻으실 것과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실 것에 대한 예언이 담겨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의 고난과 그의 영광에 동참하여 영원한 영광을 함께 누리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랍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8;18)
※ 내용 분석
1. 24;1-2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의 통치를 찬양
2. 24;3-6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성품
3. 24;7-10 승리로 영광을 얻으실 왕의 입성
※ 해 설
1. 24;1-2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의 통치를 찬양
24: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1) 1절 “여호와의 것”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유대인들은 거룩한 땅은 하나님의 것이요 아브라함의 씨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고루한 사상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본 시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다른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곧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까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고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만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이나 땅이나 만물에 대한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천지 만물이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소유된 인간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그 말씀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사45;18)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라” (사43;21)
3) “땅과 거기 충만 한 것” 사람들은 땅위에 살고 있습니다. 우주공간, 달이나 다른 어떤 별 세계에도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인생에게 주셨도다“ (시115;16)
4) 세상의 왕이나 군주들은 이 땅을 나누어 통치하고 있지만 땅의 주인은 아닙니다. 다만 이 땅을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아 다스리고 있을 뿐입니다.
5) 충만한 것은 땅에서 추수한 것이나 땅위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 또는 물질들을 말합니다. 공기도 충만하고 물도 풍성합니다. 땅은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6)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은혜로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된 것입니다.
“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取)치 아니하리니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50;8-15)
24: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1) 2절 “그 터를 바다 위에 새우심이여” 세계가 하나님께 속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에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물에서 뭍이 나오게 하신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잊으려 함이로다” (벧후3;5)
2)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하나님은 땅의 기초를 세우시고 보존하시며 붙드시는 분입니다. 창조하시고 보존하신다는 것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3) 성도들은 전에는 하나님도 없고 소망도 없던 자들이었으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께 속한 자로써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변치 않는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위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4) 2절에서 다윗이 드려내고자 하는 것은 “바다 위에” “강들 위에”이는 모든 피조물의 삶의 터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에게 삶의 기반을 주신 분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롬11;34-36)
2. 24;3-6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성품
24: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1) 3절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거룩한 곳에 설자” 다윗의 중대한 질문입니다. 이 구절에서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그 특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겠는가? 누가 그리스도인인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2) 거룩한 하나님이 계시는 궁전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사람은 인종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성품으로 구별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자가 되기 전에는 거룩한 산에 설수 없습니다. 성결하게 구별된 사람만이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입니다.
3) 모세가 하나님을 뵙기 위해서 높은 산에 올랐듯이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높은 산에 올라야 합니다. 그것은 영광의 하나님을 뵈옵기 위한 것입니다.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뵈옵고 영적 교제를 나눌 것이며 하나님은 이들의 소원을 들어 주실 것입니다
4) 모세가 십계명을 받을 때도 높은 산에서 였습니다.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도 모세와 같이 산에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을 뵙고도 죽지 않았습니다.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이 올라가서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아래에는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 (출24;9-11)
5) 왜 높은 산에 올라가야 합니까? 성경에서 산은 언제나 거룩한 장소로 나타나있습니다. 세상에서 멀리 구별된 곳이요 오직 하나님만 바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6)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높은 산에 오르셨을 때 당신의 변형된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세상을 잠시 떠나 세속과 구별되는 곳에 올라감으로서 변형된 주님을 모습을 보았고 은혜와 신비한 능력을 체험케 되었습니다.
“17: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 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마17;1-2)
7) “거룩한 곳에 설자” 사람은 모두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습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이 없이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전에 설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도 신발을 벗기 전에는 거룩한 곳에 설 수가 없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3;4-5)
8) 거듭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성전 휘장이 찢어져 새롭고 산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 주님을 힘입어 거룩하신 하나님 존전에 담대히 나갈 수 있는 특권을 얻은 것입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10;10)
9) 당신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입니까? 변화를 받아 새 사람이 되었습니까? 마음과 뜻과 생각을 새롭게 하여 주님을 섬기며 영혼들을 사랑하십니까? 복 받으셨습니다.
24: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1) 4절 “손이 깨끗하며” 손은 행위를 상징합니다. 전에는 죄로 말미암아 마귀에게 속했다가 이제는 구원받아 거룩한 성도로 산다는 것은 은혜를 받은 귀한 증거입니다. 빌라도처럼 손을 물로 씻는 다고해서 거룩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세상에서 마귀에게서 구습을 좇는 옛사람으로부터 거룩하게 분리된 사람은 생활에서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더러운 손으로 왕을 섬길 수 없듯이 부정한 손으로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구약의 종교 의식에는 먼저 손을 씻고 예물을 드렸습니다. 우리의 더럽고 부정한 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깨끗하게 씻어졌습니다.
2) “마음이 청결하며” 마음은 그 사람의 내면적인 상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고 중심 즉 마음을 보십니다. 거듭난 성도는 외적으로 죄를 짓지 아니할뿐더러 마음에도 은밀한 죄를 두지 아니하고 사악한 죄를 짓지 않습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막7;21-23)
3)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성산에 오를 자는 영원히 누릴 수 없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세상 것에 탐닉하거나 어리석은 욕망의 노예로 살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2;15-17)
4) “거짓 맹세하지 않는 자로다” 거짓은 하나님께 나온 것이 아닙니다. 마귀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성산에 오를 자는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는 거짓말쟁이로 살지 않습니다. 이는 거룩한 성품과 맞지 않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또 그분과 교제할 성도는 마음의 자세가 올바르고 행위에 있어서도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과 일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친교를 나누는 복된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자들은 자기 아비의 행동을 본받아 거짓말 하는 자들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8;44)
24:5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1) 5절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사람의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하고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고 거짓 맹세치 않는 삶을 살았다 해도 그것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2) 우리의 구원은 행위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의 은혜를 믿음로만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선한 행위를 멸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의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 후의 성도의 삶은 거룩하게 변화 받아 선한 일에 열심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주님의 사랑으로 입혀 주신 거룩한 옷을 입고 사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1;17)
3) 성도는 먼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림으로가 아니라 은혜를 받은 자로 입혀주신 거룩한 옷을 입고 성산에 오르는 것입니다. 선행의 옷이 아닌 주님을 믿음으로 받은 의의 옷입니다. 성도의 선행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그럼으로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고전1;30-31)
24: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셀라)
1) 6절 “여호와를 찾는 족속”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 이 사람들은 중생한 자들이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참된 후손들입니다. 이들은 다른 것보다도 여호와를 “찾는”자들이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들입니다. 얼굴은 건강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얼굴과 그분의 은혜를 구하는 성도들은 영적교제를 간절히 소망함으로 자신을 성결케 합니다.
2) 찾고 구하는 자들은 깨어 있는 성도이며 소망 중에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복된 성도입니다.
“어떤 자의 내게 대한 말에 의와 힘은 여호와께만 있나니 사람들은 그에게로 나아갈 것이라 무릇 그를 노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리라마는 이스라엘 자손은 다 여호와로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 하느니라 하셨느니라“ (사45;24-25)
3) 당신은 찾고 구하는 성도입니까? 당신의 삶은 온전히 세상에서 하나님의 것으로 성별되었습니까? 거룩함이 없이는 주님을 뵈올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좆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12;14)
3. 24;7-10 승리로 영광을 얻으실 왕의 입성
24:7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1) 7절 “문들아 영원한 문들아” 여기에 언급된 문들은 시온 산에 세워진 장막(tabernacle)의 문을 말합니다. 예루살렘에는 아직 성전이 건축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세워질 장엄한 출입구를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참된 성전에 들어가실 것에 대한 예표입니다.
2) 이 땅위의 장막 성전도 솔로몬이 새운 돌 성전도 영원하지 못하지만 우리 주님이 새우신 하늘의 참 성전은 영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9;11-12)
3)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입니다. 성도라면 당연히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기쁘게 모시고 섬겨야 할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3;16-17)
4) 당신은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셨습니까? 마음의 문을 열면 영원토록 주님을 모시고 살 수 있습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1;20-21)
5)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도다” 우리 주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고 우리의 죄를 없이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영원한 영광의 문을 여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승천하셨을 때 영원한 성전의 문을 의인화하여 승리의 노래를 부른 것입니다.
6) 영광스러운 문들도 만왕의 왕이신 왕을 맞이하기에는 비천한 것임으로 다윗왕은 “너희 머리를 들라”고 한 것입니다. 영광의 왕의 승리의 입성을 선포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우주가 주님의 주권에 복종해야 합니다.
24;8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오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1) 8절 “영광의 왕” 이 왕이 누구 십니까? 문을 지키는 자들의 노래 소리를 듣고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 분은 두말할 것 없이 다윗 왕입니다. 다윗 왕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합니다. 그분은 어떤 특성과 성품을 가지셨습니까?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2) 우리 주님은 본래 하나님이셨으나 자기를 낮추시고 종의 몸을 가지시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사망 권세를 잡은 마귀의 일을 멸하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우리 주님은 죄와 사망과 지옥에 대해서 승리하셨습니다. 강하고 능하신 분이십니다. 전쟁에 능하신 분입니다. 마음을 다해 그 분께 감사와 영광과 찬송을 돌려야 합니다.
3) 우리 주님은 한결같은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지키시며 보호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강한 용사이십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에게 축복이 있습니다.
9: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1) 9절 “7절에 있는 말씀”을 여기에서 다시 승리의 왕을 맞이하기 위하여 문을 활짝 열 것을 반복해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반복해서 표현한 것은 간절한 감정을 나태내고 그 표현에도 힘이 있습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최고의 통치자이시며 강하고 능하신 분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4;10 영광의 왕이 뉘시뇨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셀라).
1) 10절 다윗 왕은 우리 주님을 “영광의 왕”이란 장엄한 말로 시24편을 끝맺고 있습니다. 온 우주를 통치하실 우리 주님은 영광의 왕이십니다. 참되신 하나님께 영광이 있습니다.
2)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고 친히 다스리시며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그러나 악인들을 징벌하시는 공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주님을 마음의 문을 열고 모시고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성도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복 있는 사람입니다.
※ 결 론
시24편은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시온 산의 준비된 처소로 옮길 때 즐거워서 지었던 시입니다. 이 시는 시편 15편과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쌍벽을 이루고 있기도 합니다.
“주의 장막에 거할 자” “주의 성산에 오를 자”는 정직한자, 공의를 일삼는 자,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자, 혀로 참소치 않는 자, 벗에게 행악치 않는 자, 이웃을 훼방치 않는 자, 망령된 자를 멸시하는 자,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는 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않는 자, 변리로 대금치 않는 자,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지 않는 자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이렇게 죄를 짓지 아니하고 의롭게 선하게 살았다 할지라도 그 선행으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의인은 세상에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십자가의 은혜를 믿고 구원받아 변화 받고 주님과 동행하며 거룩한 주님의 성품을 닮아 선하게 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변화 시켜 주십니다. 이것은 주님의 일이며 은혜로운 성령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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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주님의 보혈의 샘 곁에 있음을 말합니다. 그 생명수 샘물로 손을 씻어 깨끗해지고 마음이 청결해지며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진실 된 혀를 생명수 샘 되시는 주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씻어지고 거룩해 지고 나서야 의롭다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의 장막이나 성산에 오를 수 없고 영원한 영광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님을 신뢰하는 성도는 개선장군으로 승리하여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신 주님께 승리의 나팔을 불며 올라 갈 것입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고전6;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