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마산합포구 구산면 유산리 마전리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 150301
baehan73name0854
150301·유산리·마전리·당마산 (창원교통방송)
·유산리·마전리·당마산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 배우리
1. 지난 주일엔 설 관계로 쉬었구요. 두 주 전에는 진해만에 있는 몇 개의 섬. 즉 수도동과 연도동 일대를 돌아보았는데요. 오늘은 어디로 가실까요?
마산시내에서 한참 남쪽으로 내려간 예날 의창군 구성면 지역, 그 중에서도 유산리와 마전리 일대, 그리고 있는 그 북쪽의 당마산까지 둘러보고자 한다.
2. 그 지역이 전에 의창군이었다고 하셨는데, 이 지역 사람들이 많이 들어 온 옛날의 의청군, 어떤 고을이었나요?
의창군(義昌郡) [회원, 골포, 창원]
본래 의창과 회원의 현을 합하여 창원군이라 하다가 의창으로 고쳤다.
본래 신라의 굴자군인데, 35대 경덕왕이 의안으로 고쳤으며, 회원현은 본래 골포현인데, 경덕왕이 합포로 고쳐서 의안군에 붙였다.
고려 8대 현종 때 의창과 합포를 모두 금주(김해)에 붙이었다가, 그 후에 감무를 두고, 25대 충렬왕 8년(1282)에 원나라 세조의 일본을 친 공을 상 주기 위하여 의안을 의창으로, 합포를 회원으로 고쳐서 모두 현령으로 승격하였다.
조선 3대 태종 때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같은 11년 (1670)에 복구되고, 26대 고종 32년(1895) 군이 되어 7개 면을 관할하였다.
융희 4년(1910) 마산 부제 실시에 따라 창원군 전역이 마산부에 편입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도로 창원군으로 복구되어 15개 면, 239동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43년 10월 일부를 마산시에 넘겨주었다.
1955년 9월 진해면(읍)을 시로 승격하여 분리시키고, 1973년 7월 마산시에 웅천(웅웁)면 전역을 진해시에 넘겨주어서 10개 면, 12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80년 4월 전 창원 지역 현 마산시 일부를 떼어 창원시를 설치함에 따라 의창군으로 고쳤다.
지금은 경상남도에서 의창군이란 말은 없어졌다.
3. 오늘 이야기해 주신 유산리와 마전리는 이 의창군 시절에 어느 면에 속해 있었죠?
유산리(柳山里) [버들미, 유산] / 의창군 구산면→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4. 유산리라는 이름은 어떻게 나온 건가요?
본래 칠원군 구산면의 지역으로서 버들이 많이 있었으므로 버들미 또는 유산이라 하였다.
융희 2년(1908)에 창원군에 편입되고, 2년 후에 마산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덕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유산리라 해서 창원(의창)군 구산면에 편입되었다.
윗유산 [상유산] 유산 위쪽에 있는 마을.
아래유산-유촌(柳村) 하유산 유산 아래쪽에 있는 마을.
산제당(山祭堂) 산제산 중허리에 있는 당. 산제를 지낸다.
산제산(山祭山) 음달골 안 남쪽에 있는 산. 산제당이 있다.
장고개 유산에서 묘촌으로 넘어가는 고개. 장을 보러 다녔다.
5. 그 옆의 동네가 마전리가 되는 거죠? 여기엔 어떤 이름들이 있어요?
마전리(麻田里) [삼밭개, 마전포, 마전] / 현재 마산합포구 구산면
본래 칠원군 구산면의 지역으로서 삼밭과 개가 있으므로 삼밭개 또는 마전포, 마전이라 하였다.
융희 2년(1908)에 창원군에 편입되고, 2년 후에 마산부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마전리라 하여 다시 창원(의창)군 구산면에 편입되었다.
아랫마전 [하마전] 마전 아래쪽에 있는 마을.
윗마전 [상마전] 마전 위쪽에 있는 마을.
굴곡 마전에서 유산으로 넘어가는 고개. 굴이 있었다.
드무실곡 마전리에서 진동면 인곡리로 넘어가는 고개.
세수골 마전 동쪽에 있는 골짜기. 선녀들이 세수를 하고 놀던 곳이라 한다.
6. 당마산 이야기도 해 주신다고 하셨죠? 이 산은 어떤 산이죠?
당마산(唐馬山)
창원시의 마산합포구 현동 남서쪽에 위치한 산. 228m.
산의 북쪽에 위치한 봉화산에서 발원한 우산천이 남류하며 당마산의 동쪽을 흐른다.
산 정상에서 마산포구의 입구가 보이고, 서쪽의 진동면에서 넘어오는 동전고개, 인곡고개, 토동고개 등이 인접하는 군사적 요충지이다.
산 정상 부근에는 삼한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당마산성(堂馬山城)이 남아 있다.
산봉우리에 당(堂)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한편 최치원이 말을 달리던 곳이라는 것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조선시대의 고지도와 문헌 등에서는 당마산에 관한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다.
근처의 모산, 철량산과 함께 이 지역 산행하는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산이다.
150301·웅천동
·웅천동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 배우리
1. 이 일대가 옛날에 웅천이라고 했다고 하셨죠? 옛날에 웅천이 군(郡) 지역이었다고 하셨는데, 전부터 웅천이라고 불러 왔던 곳인가요?
웅천[ 熊川 ]
웅천군(熊川郡, 1895~1908년) : 조선시대 웅천현이 개칭된 경상남도의 군으로, 1908년 창원부, 진해군과 통폐합하여 창원부로 개편되었다.
웅천면(熊川面, 191~1973년) : 웅읍면이 개칭된 창원군의 면으로, 1973년 진해시에 편입되어 웅천동으로 개편되었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웅천읍 동북쪽 자마산(子馬山,217미터) 위에 한패총(貝塚)이 있는데,이곳에는 선사시대의 주민들이 버린 조개,굴껍질,짐승,물고기뼈 등이 묻혀 있다. 1959년,1961년 두 차례에 걸쳐 고려대학교 김정학 교수팀에 의해 발굴되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은 약 2만여 점에 달하는 대규모의 것으로 그 중에는 토기,철기,골각기 등이 들어 있고,연대는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의 것이라는 것이 미국 미쉬건 대학 방사성탄소 연구소에 의해 확정되었다.
한때 이곳 웅천항에서 일본으로 많이 수출된 토기는 지금까지도 그 곳에서 웅천(熊川)이라 부를 만큼 우명하였고, 각종의 기형올 개발하고 있다.
웅천 지역은 본래 신라의 웅지현(熊只縣)이었는데, 경덕왕 때 웅신(熊神)이라 고쳐 의안군(義安郡: 지금의 창원시)의 영현으로 삼았다. 1018년(현종 9) 금주(金州: 지금의 김해)에 예속시켰다.
조선 세종 때 첨절제사(僉節制使)를 두었고, 문종 때 웅천으로 고쳐 현감을 두었다. 1510년(중종 5) 왜구를 평정하였다고 하여 도호부로 승격되었으나 뒤에 현으로 복구되었다.
1895년(고종 32) 진주 관할의 웅천군이 되었고, 다음해에 경상남도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창원군 웅천면이 되었다.
옛 이름 웅지는 ‘군(君)상(上)(神)’의 뜻을 가지므로, 옛날에 군주가 다스렸던 지역을 의미한다. 웅은 신성하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남해안 지방의 요충지로 발달한 지역이다. 지금의 웅천동 지역으로 추정된다. /// (글. 배우리)
그 동안 방송해 왔던 지역
140504·창원
140511·마산
140518·진해
140525·두대동·용지동
140601·사파동·가음정동
140608·성주동-
140615·불모산동·삼정자동
140622·천선동·안민동·남산동
140629·가포동·우산동·덕동동-
140706·예곡동·월영동·신월동
140713·반월동·완월동·중앙동
140720·교방동
140727·상남동·부림동·오동동
140803·얼음골·황매산·경호강
140810·팔용산·양덕동·봉암동
140817·반계동·사화동·진해선
140824·구암동·합성동·천주산
140831·외감리·감계리·양미재
140907 (추석으로 휴방)
140914·주남저수지·가술리
140921·불모산·대청리(김해)·대장동(진해)
140928·천자봉·풍호동
141005·대암산·불곡사·대방동
141012·비음산·신안리
141019·굴암산·성흥사·웅동
141026·마봉산·소사동·마천동
141102·달천계곡·달천동·외감리
141119·무학산·경전선·북마산역·회원동
141116·마산제1부두·월남동·대곡산
141123·반송동·반송로·반림동·반지동
141130·퇴촌동·봉림동·정병산
141207·단계·용정·용잠·봉산·송정
141214·신방·다호·무정·무점·월잠
141221·남산·용전·용강·구룡산
141228·작대산·화천리
150104·구룡산·고암리·지개리
150111·창포리·시락리·호암산
150118·외산리·내산리·장군산
150125·동해면·구절산·철마산
150201·용정리·진해만
150208·봉암리·외곡리
150215·수도동·연도동
150301·유산리·마전리·당마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