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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도 신춘문예 당선작을 진단한다>
새로움을 향한 길 찾기, 그 성취와 전망
박성민(시인)
1. 자기 인식의 시대정신과 상상력
올해도 치열한 신춘문예의 관문을 뚫고 10개 신문사에서 9명의 신인들이 등장하였다. 다른 등단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춘문예의 위상이나 이 제도를 통해 배출된 시인들의 활약은 갈수록 그 위력을 더하고 있다. 혹독한 습작기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등단한 여러분들께 먼저 축하의 박수를 보내드린다. 이미 느끼신 분들이 많겠지만, 어떤 등단제도든 등단 자체란 것은 이제부터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시를 발표해도 된다는 하나의 시인 자격증에 불과한 것임도 인식하였을 것이다. 신춘문예가 배출한 시인들이 많은 이면에는 소리 없이 사라져간 시인들 역시 적지 않았음을 생각해 보면, 정말 이제부터라는 각오로 쓰지 않으면 안 될 필연적인 당위성 같은 것을 느껴야 할 시점이다.
시는 시인이 ‘어떤’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의 산물이다. 시인이 어떤 오브제를 취하느냐, 그리고 그 오브제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의해서 자신만의 남다른 개성이 형성된다. 시인들마다 세계와 사물을 보는 눈과 시대정신, 시적 태도, 상상력에 의한 표현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올해 신춘문예 당선작들이 ‘어떤’ 세계를 ‘어떻게’ 표현하였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그들의 시조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2. 2011년도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의 경향
올해 신춘문예 당선작들에서 발견되는 공통분모는 세계에 대한 인식이 폭넓지 못하다는 점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기아와 환경 파괴, 생명 경시, 가족 해체 등이 주요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시조의 어원이 시절가조(時節歌調)임을 떠올려보면, 시인들은 빈부의 격차, 문명비판이나 생태학적 상상력, 물신주의 비판, 환상적 리얼리티, 신(新) 서정 등에 관심을 가질 법도 한데, 그 소재나 표현방식을 보면 별로 새롭다는 느낌을 갖지 못하는 것 같아 애석하다.
첫째, 올해 신춘문예 당선작에도 사설시조는 없다. 당선작들로부터 향후 몇 년간 응모작들의 경향을 짐작해 볼 수 있는데, 이는 당선작들의 성향이 신춘 시조의 일기예보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설시조는 아예 뽑지 않는다. 1998년, 김동석의 「겨울지도」(조선일보), 1999년, 송광룡의 「돌곶이 마을에서의 꿈-석화리」(중앙일보), 2000년, 현상언의 「봄, 유년, 코카콜라 뚜껑」(조선일보), 송필란 「가자미」(중앙일보), 조현선 「안부-속앓이 하는 동강아」(농민신문) 이후 10년 넘게 당선작 중 사설시조는 없다. 한 시대를 관통하는, 통렬한 해학과 풍자의 맛이 있는 사설시조의 투고 량이 적은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설시조를 투고하면 심사에서 배제된다는 것을 응모자들이 이미 암묵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까닭이 크다. 사설시조를 능숙하게 쓸 줄 알지만 쓰지 않는 것과, 사설시조를 단 한 편도 써보지도 않아서 아예 쓸 줄 모르는 것에는 차이가 많다. 우탁의 시조에서도 느낄 수 있거니와 평시조에서도 해학과 풍자를 구사할 수 있음에도 올해 신춘문예 평시조들에서는 해학이나 풍자를 찾아볼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극히 한정된 주제를 맴돌게 되는 것이다.
둘째, 환경시나 생태시, 알레고리가 있는 풍자시를 찾아볼 수가 없다. 대부분의 당선작들이 역사성, 힘겨운 삶의 애환, 그리움이나 사랑 등 개인 서정에서 맴돌고 있다. 남북이 분단된 현실이 아직 우리를 숨 막히게 하고 있고, 기아, 질병, 빈부의 격차, 환경 파괴가 심각한 현대사회, 상호 텍스트성과 하이퍼 리얼리티로 상징되는 영상매체의 시대에 시조는 현실로부터 너무 비껴서 있거나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닐까. 실험에 너무 무관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형태상의 실험이 시조로서의 존립기반을 위협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면, 내용상의 실험이라도 시도해 보아야 하는데 신인으로서 실험 자체에 너무 인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 창작 방법은 시인마다 다를 것이며, 어느 시인은 자연이나 개인 서정을 지향할 것이고, 또 다른 시인은 사회의 변혁이나 역사적 인식을 지향할 것이다. 또 세상에 다가서서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거나, 세상과 거리를 유지하며 자연 속 생명을 노래하기도 할 것이다. 생태계가 온전하게 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서식지에 다양한 생물체가 있어야 하는데, 시조의 주제가 어느 한쪽으로 편중되어 다양성을 상실한 현상이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셋째, 2수인 국제신문을 제외하고 다른 당선작들은 3~4수의 연시조다. 기-서-결 혹은 기-승-전-결의 구조적 미학을 위해서일 수도 있고 단 한 편의 당선작만으로 자신의 시적 역량을 보여주어야 하는 신춘문예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길이가 되어야 한다는 측면일 수도 있겠지만 5수 이상을 넘어선 연시조 역시 없다. 길어야만 내용이 풍부하고 짧으면 빈약한 것도 아니고, 짧다고 해서 함축적인 것도 아니며, 중요한 것은 시적 형상화 능력이나 시적 긴장감, 자연스러운 율격 속에서 빛나는 작품성인데, 이러한 길이 역시 신춘문예 시조의 정형적인 틀로 굳어진 듯하다. 배행 역시 초장이나 종장, 어느 한 장만을 구별 배행한 몇 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장별 배행이다.
넷째, 대부분의 당선작들은 자연 서정시와 결합된 내용들이다. 2011년 당선작들은 크게 역사에 대한 인식, 힘겨운 삶의 애환, 그리움이나 사랑 등 개인의 서정적 측면을 다룬 작품들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시편들의 근본적인 배경은 자연 서정이다. 그리고 현대 도시인의 일상적 측면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향토적 공간이나 모성적인 공간, 국토로서의 공간이다. 보편적이고 반복적인 집단 무의식의 원형 속에 신춘문예 시조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주제의식을 시도하지 않는 것은 일반 독자들이 시조를 고리타분하다고 외면하는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다섯째, 신춘문예 시조들이 일종의 유행적인 경향에 놓여 있는 것도 지양해야 할 일이다. 작고한 비평가, 김현은 “신춘문예의 시를 읽다 보면 거기엔 기성시인들이 갈기갈기 찢겨져 누워있다.”라고 표현했던 적도 있지만, 신춘문예를 통해서 등장하는 신인이라면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자기만의 세계가 구축되어 있느냐다. 누구나 존경하는 선배시인들, 그리고 사사 또는 사숙한 스승이 있겠지만, 선배들의 시, 심지어는 스승의 시와도 차별되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힘들다. 잔인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살모사처럼 존경하는 선배시인이나 스승의 배를 찢고 나와서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황야를 묵묵하게 걸어가 자신만의 단단한 성곽을 세워야 하는 것이 신인이 할 일이며 새롭고 다양한 목소리를 기대하는 독자들이 신인에게 바라는 임무다.
이제 막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시인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한 것일 수도 있고 냉혹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주례사와 같은 찬사와 상찬만으로는 어떤 집단도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필자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이면에는, 신춘고시라 할 정도로 어려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들’이라는 일종의 기대심리가 작용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각설하고, 올해 당선작들을 세 가지의 주제의식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1) 역사성의 시·공간
유년으로 가는 길은 안으로만 열려있다
지나 온 시간만큼 덧칠당한 흙먼지 길,
낮아진 돌담 사이로 먹물 자국 보인다
푸르게 날 선 침묵, 떨려오는 숨결이여
긴 밤을 파고드는 뼈가 시린 그리움은
한 떨기 묵란(墨蘭)에 스며 향기로 깊어지고
허기진 어제의 꿈 은밀하게 달래가며
빗장 풀어 발 들이는 적막의 뒤란에는
낮달에 비친 발자국, 추사체로 일어선다
-성국희, 「추사 유배지를 가다」(서울신문)
성국희 시인은 현존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 추상적인 것에 대한 감각적 형상화 능력이 빼어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의 시는 주로 역사적인 소재를 끌어와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기법을 유지하고 있는데, 올해 신춘문예에서 유일하게 서울신문과 농민신문, 2관왕의 영예를 안게 된 것은 눈앞에 펼쳐진 대상 너머를 꿰뚫어보는 시적 능력이 평가된 것이리라. 서울신문 당선작 「추사 유배지를 가다」는 추사체를 보는 듯 “푸르게 날 선 침묵, 떨려오는 숨결”이 시대를 건너와 독자에게 전달된다. 유배지에서 “긴 밤을 파고드는 뼈가 시린 그리움”으로 완성한 추사체와 세한도는 지금도 선비의 꼿꼿한 기상을 느끼게 한다.
신작 「시간의 길-천전리 암각화」에서도 “먼 길에 발이 부은 물소리”, “내일은 귀먹은 새가 해를 물고 오리라”처럼 빼어난 형상화가 뒷받침되고 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2수와 3수의 순서를 바꾸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한다면, “시간이 서성이다 간 발자국”(과거의 암각화) → “금이 간 세상일”(현재의 삶) → “내일은 귀먹은 새가 해를 물고 오리라”(미래에 대한 투시)로 ‘시간의 길’들이 더욱 선명하게 시각화됨과 동시에 2수 종장의 빼어난 구절이 더욱 돋보이는 역할을 수행했으리라 생각한다.
어디서 시작 되었나 저 깊은 설레임은,
어린 별과 손 맞잡고 귓속말로 건너왔나
선생의 잠든 붓 깨워 소리 없이 오는 새벽
때 이른 조바심을 수 없이 비워내고
맨 몸으로 일어나 찬 서리를 껴안으면
어느새 깊어진 향기 닫힌 문이 열린다
눈꽃, 그 하얀 무게 차라리 눈이 부셔
꼿꼿한 말씀 하나 안과 밖 경계를 넘자
행간 속 도산십이곡, 물소리가 차갑다
-성국희, 「설중매(雪中梅)-도산서원에서」(농민신문)
도산서원에서 퇴계 이황 “선생의 잠든 붓 깨워 소리 없이 오는 새벽”을 그려내고, “꼿꼿한 말씀 하나”로 선생의 지조를 형상화하고 “귓속말로 건너”오는 소리까지를 듣는 시적 능력, “행간 속 도산십이곡” 사이로 차갑게 흐르는 물소리까지를 감각화한 점이 돋보인다. 다만 둘째 수의 종장에서는 구간 걸침으로 다의성을 담보하려는 차원으로 읽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느새 깊어진 향기, 닫힌 문이 열린다”로 쉼표 처리를 하였으면 더욱 좋았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신작 「붓글씨를 쓰며」에서도 화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글씨의 구도를 “빈들과 잠든 산들이 하나 둘 일어”서는 것으로 시각화하고 있다. 그리하여 “구기고 다시 구겨서 햇살 한 올 얻는” 혹독한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눈물 한 방울 낙관처럼 꽂”히는 것으로 끝맺는 이 시의 내용은 시조 창작의 과정, 혹은 삶의 과정으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이처럼 성국희 시인의 시편들은 잊혀지거나 사라져 가는 과거의 시간과 공간을 소재로 빚어진 것들이 많다. 그런데 시에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은 자아와 세계 또는 존재와 세계라는 상호관련 속에서 현실적 정서와 시대정신이라는 무한한 지평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사라진 지속을 되살리는 일, 우리의 오랜 머무름에 의해 구체화된 지속의 아름다운 화석은 발견할 수 있는 공간에 의해, 공간 가운데서이다.”라고 했던 바슐라르의 말을 되새겨봄직 하다. 역사적인 시간이나 공간에서 중요한 것은 그 역사적인 사실이 우리의 현실과 결부되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다음의 작품은 역사성에 바탕을 두면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시적 리얼리티가 가슴으로 느껴진다.
한 방울 핏물 튕겨 뿌리박은 그대 모습
격랑(激浪)을 가로 막고 응시하는 눈빛이여
붉은 해 홰치는 자리
팔을 걷고 섰는가
열원(熱願)은 바위 녹여 바닷물도 식혀내고
동백꽃 봄불 태워 소지(燒紙)하는 기도 앞에
내 조국 아리는 사랑
그 소리를 듣는다
-김덕남, 「독도」(국제신문)
“한 방울 핏물 튕겨 뿌리박은”과 같은 표현이나, “격랑(激浪)을 가로 막고 응시하는 눈빛”, “열원(熱願)은 바위 녹여 바닷물도 식혀내고”에서처럼 느껴지듯이 근래 들어서 이렇게 남성적인 힘이 넘치면서 건강한 시적 사유를 지닌 당선작은 쉽사리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단 2수에 시상을 응축하여 애절하고 비장한 국토사랑을 표출한 점도 매력적이다.
“붉은 해 홰치는 자리/ 팔을 걷고 섰는가”에서는 역동적인 상상력이 불끈대는 이두박근처럼 느껴지며, “동백꽃 봄불 태워 소지(燒紙)하는 기도 앞에”를 읽을 때 독자는 옷깃이 여며지는 숙연함마저 느끼게 된다. 다만 시조가 우리말을 되살리고 아름답게 가꾸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임을 전제로 할 때, 너무 잦은 한자어 구사는 고려해봐야 할 듯싶다. 자수율로 인한 제약의 차원이 아니라면 우리말로 써도 소통이 되는 한도 내에서 가능하면 우리말을 쓰는 것이 좋겠다는 사족을 덧붙인다.
이러한 측면에서 신작 「금 샘」은 「독도」에서의 한자어 사용이 부득이한 경우였음을 보여준다. “조각달 흰 구름도 몸을 적셔 건너가고”와 같은 표현의 묘미, “짚어보면 겨운 삶도 한 모금 차가운 물”와 같이 삶을 통찰하는 시적 능력이 돋보인다. “봄바람/ 잔잔한 물속/ 얼굴 하나 떠 있다”에서는 마치 윤동주의 「자화상」을 읽듯이 역사적인 소재 속에서 자아를 성찰하는 과정까지를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2수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 한 나머지 “첫사랑/ 연붉은 사연/ 꽃잎 하나 떠 있다”라는 부분은 주제의식을 강화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2) 힘겨운 삶의 애환
전갱이 잔뼈 같은 어젯밤 하얀 꿈도
북제주 수평선도 가로눕다 잠기는
은갈치 말간 비린내 눈이 부신 이 아침
바람소리 첫음절이 귤빛으로 물이 들고
닻들도 기도하듯 조용히 기대 누운
기우뚱 포구에 내린 오십견의 저 바다
우리가 불빛들을 희망이라 말할 때
행성처럼 떠도는 비양도 어깨 위에
등 뒤로 가만히 가서 손 한 번 얹고 싶다
-김영란, 「신한림별곡(新翰林別曲)」(조선일보)
「신한림별곡(新翰林別曲)」은 제목만으로 보자면 고려시대 한림의 여러 유생들이 쓴 「한림별곡」이라는 역사적 전통성과 맥을 함께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내용적 측면을 보자면, 시의 제목이 「신한림별곡」인 이유는 바닷가를 연한 북제주군 한림읍이라는 공간적 배경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전갱이 잔뼈 같은 어젯밤 하얀 꿈”같은 개성적 비유가 빛나며, 다소 낯익은 듯하지만 “은갈치 말간 비린내”를 포착하는 감성도 돋보인다. 아픔과 절망, 꿈과 희망을 짧은 시조의 그릇에 담아낸 이 작품은, 힘겨운 삶에 짓눌렸을 제주 사람들의 통점을 “오십견의 저 바다”라고 명명하여 세련된 표현미를 보여주고 있다. 다소 아쉬운 점은 “우리가 불빛들을 희망이라 말할 때”와 같은 상투적 구절이지만, 어깨통증에 시달리는 바다와 “ 비양도 어깨 위에/ 등 뒤로 가만히 가서 손 한 번 얹고 싶다”에서 보여 준, 대상을 감싸 안는 따뜻한 서정이 이 작품의 완결성을 더한다고 본다.
신작 「길 위의 길」에서는 바닷길과 새들이 날아가는 길을 통해서 아무런 흔적이 없는 공간을 “길 위의 길”이라고 표현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아침의 “고요한 속살”을 보고, “누군가 걸어갔을 길 위의 길”을 꿰뚫어보는 능력은 흔한 것이 아니다.
참 고단한 항해였다
거친 저 난바다 속
풍랑을 맨손으로 돌리고 쳐내면서
한 생애, 다 삭은 뒤에 가까스로 내게 왔다
그 무슨 불빛 있어
예까지 내달려 왔나
가랑잎 배 버선 한 척 나침반도 동력도 없이
올올이 힘줄을 풀어 비바람을 묶어낸 날
모지라진 이물 쪽에 얼룩덜룩 번진 설움
다잡아 꿰맨 구멍은 지난날 내 죄였다
자꾸만 비워 낸 속이 껍질만 남아 있다
꽃무늬 번 솔기 하나 머뭇대다 접어놓고
주름살 잔물결이 문지방에 잦아든다
어머니, 바람 든 뼈를
꿈꾸듯이 말고 있다.
-백점례, 「버선 한 척, 문지방에 닿다」(매일신문)
독특한 제목으로 독자의 시선을 끄는 작품이다. 거친 삶의 항해를 마감하고 비로소 문지방에 닿은 어머니의 버선 한 척에서 “얼룩덜룩 번진 설움”을 형상화하여 주제를 선명하게 이끌어 낸 점이 돋보인다. “다잡아 꿰맨 구멍”과 “자꾸만 비워 낸 속”에서는 어머니의 희생이 느껴지며 “올올이 힘줄을 풀어 비바람을 묶어낸 날”에서는 가정을 지탱하기 위해서 강해져야만 했던 모성애가 드러난다. “꽃무늬 번 솔기 하나”와 같은 표현도 버선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마지막 수에서 어머니의 주름살을 잔물결과 자연스럽게 병치하는 능숙함도 보여주면서 어머니의 버선을 “바람 든 뼈”로 묘사하여 독자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인생여정을 ‘항해’로, 삶의 역경을 ‘풍랑’으로, 희망을 ‘불빛’으로 인식한 것은 다분히 상투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신작 「별 이야기 듣는 남자」에서는 보청기를 낀 (늙은)남자를 형상화하는 감각의 촉수가 빛난다. “세상의 모든 말은 벌레 소리로 울어댄다”는 도입부의 표현미가 돋보이며, 1수와 2수는 시적 대상을 자신의 시선으로 포착하는 신선미가 느껴진다. 아이와 남자, 잘 들을 수 있는 귀와 잘 들리지 않는 귀의 대조를 통해 힘겨운 삶의 외면을 드러내면서도 그 안에 해학을 가미함으로써 재미있게 읽혀지는 효과를 준다.
땡볕이 그늘을 끌고 모퉁이 돌아간 곳
누군가 내다버린 꽃무늬 애기 의자에
가난을 두르고 앉아
졸고 있는 할아버지
무거운 세월 이고 허리 펴는 외로움이
털어도 끈끈이처럼 온 몸에 달라붙어
허기진 세상은 온통
말줄임표로 갇혀 있다
살다 떠난 얼룩만이 가슴깊이 내려앉은
폐기물 딱지조차 못 붙이는 그 몸피여!
사는 건 먼지 수북한
그리움 또
견디는 것
오늘도 먼 길 돌아 헤살 떠는 한줄기 바람
먼저 간 할머니 손길 덤으로 묻어온 듯
그 옆에 폐타이어도
슬그머니 이웃이 된다
-고은희, 「의자의 얼굴」(부산일보)
매일신문 당선작이 어머니의 이야기라면, 부산일보 당선작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다. “땡볕이 그늘을 끌고 모퉁이 돌아간 곳”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우리 사회의 음지에 해당하는 노인문제라는 현실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꽃무늬 애기 의자”와 그 의자에 앉아서 “졸고 있는 할아버지”의 대비는 측은한 정경이면서도 입가에 웃음을 짓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대화 상대 하나 없는 할아버지의 침묵을 “허기진 세상은 온통/ 말줄임표로 갇혀 있다”로 표현한 부분과, “폐기물 딱지조차 못 붙이는 그 몸피”에서는 노인문제가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마저 느끼게 한다. 2수의 초장이 다소 상투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마지막 수에서 폐타이어가 슬그머니 할아버지의 이웃이 되는 정경, 상처가 다른 상처를 끌어안는 동병상련의 모습은 고은희 시인의 시선이 얼마나 따스한지를 느끼게 해준다.
신작 「참깨꽃 언어가 속삭이다」에서는 어머니의 음성을 참깨꽃 언어로 묘사한 표현미가 돋보인다. 올해 초에 마음고생이 무척 심했을 고은희 시인이 “제 뼛속 꼭꼭 채우”는 시어들을 더욱 갈고 닦아 자신만의 세계를 확고하게 함으로써 “눈물 끝에 방긋 웃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푸른 오월 하늘에 제비 한 쌍 날아와서
한 올 한 올 물어온 흙더미와 지푸라기
이 세상 가장 튼튼한 집 한 채를 지었다
사글세로 떠돈 세월 돌아보니 아득한데
앞만 보고 달려온 날들의 보상인 듯
한 생애 빛나는 훈장 처마에 걸리었다.
집 이래야 단칸방 남루한 살림이지만
굳이 인가에 와 터를 잡는 이유는
질기디 질긴 인연을 내려놓지 못함이다
결국 산다는 건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강남으로 돌아갈 날 죽지로 헤아리며
해마다 삶의 이력에 둥지를 틀고 산다.
-임태진, 「제비집」(영주일보)
이 작품의 초반부는 우화적인 기법으로 현실을 풍자한, 정약용의 「고시 8」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끝까지 읽어보면, “사글세로 떠돈 세월”을 뒤로 하고 “단칸방 남루한 살림”이나마 “한 올 한 올 물어온 흙더미와 지푸라기”로 단단한 집을 지은 서민들의 삶, 그 힘겨운 이력을 형상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추상적인 소재나 현실을 떠난 자연공간에 시선을 두지 않고, 낮은 시선으로 서민들의 삶을 따뜻하게 감싸 안으려는 의도는 상당히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결국 산다는 건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아포리즘, “강남으로 돌아갈 날 죽지로 헤아리며”와 같은 표현이 새로운지와 주제를 강화하는 데에 기여하는가, 하는 것은 의문이다.
신작 「화재주의보 1」에서도 임태진 시인의 현실 밀착적인 시 경향은 잘 나타난다. 소방관으로서 산불을 끄러간 동기의 사망소식을 무전으로 접했던 아픔이 10년후 화재출동하면서 다시 떠오르는 것이다. 사망한 동기가 “늦겨울 어느 곳으로 발령받아 가는지”라든가 “나보다 그림자가 먼저 소방차에 올라탄다”와 같은 부분에서는 삶에 밀착된 표현의 절실함과 진정성이 느껴진다.
3) 그리움과 사랑, 서정의 풍경들
오래된 LP판이 하나씩 읽고 있는
스산한 풍경 위로 바람이 불어간다
노래가 다 그런 것처럼 스타카토 눈빛으로
산까치 몇 마리가 앉았다가 떠나버린
잎 다 진 가로수들 우듬지 그 사이로
흰 구름 붉은 마음은 서쪽으로 흐르고
음역(音域)의 강을 건넌 짧아진 하루해를
빠르게 궁굴리며 다시 불어온 바람
아무리 되짚어 봐도 길은 너무 아득하다
누구나 한두 번쯤 절망 끝에 섰겠지만
지워진 음표만큼 눈은 더욱 깊어져서
LP판 둥근 세상으로 봄날은 또 오겠지
-김성현, 「겨울, 바람의 칸타타」(중앙일보)
이 작품은 2010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이므로 연도로 보자면 2010년도 당선작과 다루어져야 하나 중앙일보의 특성상 실상 2011년 신춘문예의 다른 당선작들과 보름정도의 차이만을 보일 뿐이므로 2011년 당선작으로 거론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제목의 신선함, 문득 문득 부는 바람을 “스타카토 눈빛”이라고 묘사한 부분, “음역(音域)의 강을 건넌 짧아진 하루해”와 같은 부분에서 빛나는 표현의 묘를 획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레코드판을 보며 이만큼의 사유와 이미지로 확장시키기 쉽지 않음을 생각할 때, 시적 역량이 충분히 감지된다. “지워진 음표만큼 눈은 더욱 깊어져서”와 같은 구절도 삶의 연륜이 쌓이지 않고서는 체득할 수 없는 표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마지막 수에서의 건강한 희망이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한두 번쯤 절망 끝에 섰겠지만”과 “봄날은 또 오겠지”와 같은 유통언어들은 독자의 긴장감을 풀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된다.
김성현 시인은 신작에서 개인적 서정을 보편적 정서로 승화하여 형상화 한 당선작과는 다른 방향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신작 「대합실 노숙자」에서는 노숙자를 눈알이 한쪽으로 쏠린 도다리로 묘사하고 있다. 대합실과 바다, 노숙자와 도다리를 오버랩하여 노숙자의 “비린 몸”과 “냉동된 표정들”, “등에 돋아난 비늘”을 구체화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바라보는 시인의 표상능력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비등점의 포말들
음이탈 모르는 척 파열음 쏟아낸다
적막을 들었다 놓았다
하오가 일렁인다
선잠을 걷어내어 베란다에 내다건다
구절초 활짝 핀 손때 묻은 찻잔 곁에
식었던 무딘 내 서정
여치처럼 머리 든다
설핏한 햇살마저 다시 올려 끓이면
단풍물 젖고 있는 시린 이마 위에도
따가운 볕살이 내려
끓는점에 이를까
-김종영, 「커피포트」(경남신문)
일상적인 사물을 형상화한 작품이지만, 막상 쓰려고 하면 쉽게 쓸 수 없는 소재다. 신선한 비유가 바로 김종영 시인의 매력으로 느껴진다. “적막을 들었다 놓았다/ 하오가 일렁인다”와 같은 표현, “선잠을 걷어내어 베란다에 내다건다”라든가 “식었던 무딘 내 서정/ 여치처럼 머리 든다”와 같은 표현에서는 추상적인 관념을 구체적인 사물로 적절하게 형상화하여 오랫동안 단련된 내공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삶의 비등점을 향해 치닫던 시가 3수에서 다소 힘을 잃었음인지 더 크고 넓은 세계로 나아가지 못한 점이 아쉽다는 생각을 해본다.
신작 「개나리회관」에서는 군입대한 아들을 면회 간 부모의 심정이 애절하게 표출되었다. 만나자마자 다시 헤어져야 하는 부모의 안타까움과 걱정하는 마음을 위로하고 안심시키는 아들, “제 어미 등 다독이던/ 굵은 손”의 군인으로 성장한 아들은 잔잔한 감동의 여운을 준다. 그러나 “그리움 수채화로 무지개를 그려놓고”와 같은 유형화된 표현은 새로움이나 감동을 주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그날 마주보며 깊도록 껴안을 때
정겨운 너의 손이 깍지 끼던 그 자리
내 손은 닿지를 않아 그만큼이 늘 가렵다
찌르르, 앙가슴에 불현듯 전해오는
무자맥질 심장소리에 사과 빛 물든 등 뒤
네 손길 지나간 자리 바람이 와 기웃댄다
그 여름 지나느라 소낙비 지쳐 울고
푸르던 내 생각도 발그레 단풍졌다
아직도 남은 온기가 강추위를 견딘다
-김진수, 「그 자리」(경상일보)
김진수 시인은 등 뒤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너의 깍지 낀 손을 통해 절실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운 이를 껴안았던 심장과 등이 “무자맥질 심장소리에 사과 빛 물든 등 뒤/ 네 손길 지나간 자리”로 묘사되고 “푸르던 내 생각도 발그레 단풍졌다”로 형상화되는 부분에서 시적 역량이 여실히 드러난다. 언뜻 보면 연가풍으로 느껴지는 이 시 속의 대상을 반드시 연인으로만 한정할 수 없는 까닭은, “마주보며 깊도록 껴안”아 주는 소중하고 따뜻한 정경이 연인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말부분에서 “아직도 남은 온기가 강추위를 견딘다”에서와 같은 일상어가 감동의 폭을 약화시킨다는 점이 다소 아쉽지만, 시어 선택에서 고심한 흔적, 따뜻한 서정의 유연함이 돋보인다.
신작 「춘화도(春花圖)」에서는 “화르륵/ 숨차 오른 듯/ 허리 꺾는 꽃 매화”, “발갛게/ 벙그러지던/ 그 입술”과 같은 관능적 표현으로 춘화도를 실감나게 그려내어 마치 김홍도와 신윤복의 춘화를 보는듯한 생생함을 준다. 3수에서 더욱 시상을 과감하게 밀고 나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3. 다양한 시조 미학을 기다리며……
올해의 신춘 시조에서도 우리의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 풍자한 작품은 보이지 않는다. 소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가 말한 ‘잠수함 속의 토끼'는 시인과 작가의 사회적 역할을 암시한 것이다. 잠수함 안의 공기가 부족하게 되면, 잠수함 밑바닥에 있는 토끼가 가장 먼저 알아채고 제일 먼저 산소부족으로 죽는다. 이처럼 사회 속에서 가장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존재가 사회의 부정과 부패를 감시해야 한다. 게오르규에 의하면, 사회 현실과 시대에 대한 고통에 반응하지 않는 시인은 기본적으로 시인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된다. 시인들은 시대를 이끌어가야 하는 존재들이다. 이것이 바로 시인들의 불행이다.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시세계가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끝없는 유목의 공간으로 확장되어 시조가 자유시의 머리 위에 서는 날이 오게 되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자유시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스타시인이 우리 시조시단에서도 탄생되기를 기대해 본다.
박성민: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201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창작기금 지원
<21세기 시조 동인>
발췌 《시조시학》2011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