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정치성과 조지 오웰의 글쓰기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이다.
문학과 정치성
'문학의 정치성'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불온서적'이라든지,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같은 것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그런데 조금 더 문학쪽에 있는 사람들은 이 '정치'라는 개념을 더 확장해서 사용하는 것 같다. 정치란 정치인들의 정치가 아니다. 이념의 정치가 아니다. 정치란 사회를 특정한 방향으로 바꾸려는 모든 욕구이다.
문학에 독자의 '현실' 개념이 중요해지면 여러가지 질문들이 나올 수 있다. 문학은 순수하게 문학적인 미학을 추구해야 하는가? 문학은 사회에 영향을 주어야 하는가? 문학이 현실과 동떨어진 채 고립된 존재라면 우리의 인생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조지오웰의 정치 개념
문학의 정치성 개념은 조지 오웰의 글에 잘 나타나있다. 조지오웰의 글 <나는 왜 쓰는가>에는 글쓰기의 네 가지 동기가 나온다. 이 글 속에 나오는 글쓰기의 4가지 동기는 현대의 작가들에게도 널리 인용되고 있다.
1. 순전함 이기심 :명성을 날리고 싶은 욕구이다. 진지한 작가들은 대체로 허영심이 많고 자기 중심적이다.
2. 미학적 열정 : 외부세계의 아름다움, 자신의 체감을 나누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단어와 그 배열에서 미학을 추구하는 자세이다.
3. 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기록하려는 욕구이다.
4.정치적 목적 :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욕구, 즉 관점에 영향을 주고자하는 욕구이다.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의 언급은 어떤 책이든 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 아닐까. 책에는 어떻게든 작가의 의지가 담긴다. 팩트만 모아서 나열한 책. 그런 책들도 만든이의 필터링 의지가 작용한다. 책 속의 문장이 "~해야 한다"체가 아니라, 사실을 기술한 것일 지라도, 읽는 독자는 저자의 영향을 받기 쉽다. 저자의 입장이 되어보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거의 모든 책이 정치적일 것이다. 정치적이지 않은 책은 잠오는 책일 것이다.
"글쓰기는 자유를 희구하는 한 방식이다. 따라서 일단 글쓰기를 시작한 이상, 당신은 좋건 싫건 간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
"작가와 독자가 공유하는 모든 세계가 밑에 깔려 있지 않은 책은 없다. 작가가 그의 자유로서 생동시키고 뚫어보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낯익은 세계이며, 독자 역시 그 세계에서 시작해서 자신의 구체적 해방을 시도해야 하는 것이다."
장 폴 사르트르의 '앙가주망'
시대와 작가의 상호작용
(1) 시대는 작가의 글에 영향을 주고, (2)그 작가의 글은 다시 시대를 바꾼다.
(1) 시대 -> 작가
조지 오웰은 자신이 쓰는 글의 양상에 관해 민감하게 인식했다. 시대 속에서 자신의 경험이 어떻게 정치적인 글로 나타났는지 설명하고 있다. 그의 에세이와 작품들을 살펴보면 역사가 작품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인과관계가 그려질 정도이다.
그는 글쓰기에 대해 논하면서 시대를 강조한다. 그리고 그의 글은 소위 역사주의라는 범주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나는 왜 쓰는가>에는 개인의 주체성을 인정하는 시각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시대의 영향에서 완전히 배제될 수 없는 편향을 갖는다’ 라는 언급이 있으며, 다음으로는 문학과 언어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인정을 하고 있다. 오히려 시대적 혼란이 없었다면 자신의 글쓰기 방향성은 달라졌을 것이라 한다.
(2) 작가 -> 시대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비록 그가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거나 혹은 역사와 문학이 상호작용을 한다는 견해를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으나, ‘정치적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러한 방향성을 암시하고 있다. 작가는 어떤 지향성을 갖기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려는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글을 썼고, 실제로 세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동물농장』, 『1984』와 같은 작품은 역사 속에서 반공 이념으로 널리 활용되었고,큰 반향을 일으킨 성공작이었다. 미 국무성의 주도로 『1984』는 세계 각국으로 번역되었는데, 1948년 한국어판이 그 시작이었다. 물론 이념적으로 경계에 서 있다고 평가를 받는 조지 오웰이 살아있었다면 이런 방향성을 어떻게 평했을지는 모르겠다. 그는 추상적 이론을 싫어했다 다만 치열하게 현장을 살아내면서 역사와 글쓰기의 관계를 직접 보여준 작가이다.
문학의 가능성
문학의 정치성. 키워드는 무겁지만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문학에 녹아 있는 것 같다. 김애란의 작품과 같은 일상같은 이야기들도 시대의 속 우리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문학은 사회를 직접적으로 바꿀 수 없다. 문학이 점점 힘을 잃고 있는 지금은 더 그렇겠지. 그러나 "해야 한다!" 라는 어법보다, 문학은 더 세련된 언어를 사용한다. "여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정도이다. '해야 한다'는 거부감이 든다. 우리는 이제 다들 똑똑해서 누가 시키면 싫다.
그러나 저런 이야기가 있어요 하면 일단 귀를 귀울여 본다. 그리고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으면 독자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이대로 괜찮은가.' '과연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가' 질문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사회는 변화한다. 질문하는 사람들은 능동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