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5]
우리 한민족의 직계 조상인 노아의 작은 아들 셈의 현손 욕단 족속은 대홍수 후 함의 손자 니므롯에 의해 도전받는 셈계의 일신신앙을 지키기 위해 멀리 동방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더욱이 그것은 홍수 후에 하느님께서 노아에게 명하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편만하라”(창 9:7)는 말씀에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길이기도 했다. 이별의 아픔을 가슴에 간직한 채 험한 산과 고개를 넘어 새 땅을 찾아 먼 동방으로 가는 길은 실로 수고로운 것이었다. 땅에 번성한 야생 동물들과 싸워야 했고, 한겨울엔 혹독한 추위도 견뎌야 했다. 실로 그것은 고난과 싸우며 인내와 끈기로 전진하는 대장정이었다.
그렇게 알이랑 고개를 넘어가던 욕단계 천손민족 우리 조상들의 가슴엔 한 가지 커다란 근심이 있었다. 그것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 곧 니므롯을 좇아 서부 바벨론으로 떠나는 배역자들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세상 근심과 차원이 다른 거룩한 근심이었다(고후 7:10). ‘알이랑’의 2절은 바로 그것을 노래한 것이다.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
우리 조상은 셈의 자손이기 때문에 산정(山頂)에서의 제사를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육축을 끌고 산을 넘어 동방으로 이동해 왔는데, 이러한 유목민들은 들판이나 산기슭에서 밤을 많이 지새운다. 낮에는 별이 보이지 않지만, 밤에는 하늘에 별이 빛난다. 그래서 청천 하늘에 잔별도 많다고 노래한다. 그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만큼이나 그들의 가슴엔 창조주 하느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악한 사람들 때문에 수심도 많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찬송가 ‘알이랑’은 욕단 족속이 중앙아시아의 산악지대들과 시베리아를 거쳐 이곳 동방에 오기까지 끊임없이 불리어졌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우리 겨레의 삶 가운데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십리도 못가서 발명난다”는 것은 “발병이 나서라도 더 떠나가지 못하고 나의 품으로 되돌아오라”는 회귀원망(回歸願望)의 연정(戀情)을 노래한 것이다. 즉 니므롯을 따라 서부 바벨론을 향해 떠나는 자들에게 배도의 길에서 돌이켜 하느님 앞으로 되돌아오라는 천손민족 욕단 가계의 간절한 기원이며 호소였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가사의 역사적 의미이다.
이렇게 대홍수 후 한 분이신 하느님만 온전히 섬기고자 함족의 배역자 니므롯과 분리되어 먼 동방으로 천동(遷動)한 무리는 오직 우리 겨레의 직계 조상인 셈의 현손(玄孫) 욕단의 가계뿐이었다. 욕단 족속을 제외한 모든 홍수 생존자들은, 심지어 벨렉 족속까지 니므롯의 추종자가 되어 서부 바벨론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욕단의 가계는 분명히 그 암울한 시대의 ‘남은 자’(the Remnant)였다. 이 얼마나 존귀한 백성인가! 그래서 하느님이 욕단계 천손민족을 감추어 두신 것이다. 너무나 귀한 백성이기에 나중에 가장 긴요한 때에 쓰시기 위해서다. 우리는 무엇을 감추어 두는가? 보물만 감추어 둔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중요한 때에 꺼내어 쓴다.
셈족의 정통성은 그때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의 가계가 단독 승계했다. 즉 욕단 족속이 홀로 셈족의 영적 장자가 된 것이다. 왜냐하면 오직 그들만이 함족의 폭군 니므롯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남은 자’였기 때문이다. 우리 겨레의 조상인 욕단 족속이 ‘알이랑’, 즉 ‘하느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 간다고 노래하면서 동방으로 이동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 그들과 동행한 이는 하느님 한 분 뿐이었기 때문이다. 인류 최고의 찬송가 ‘아리랑’의 기원과 유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리랑’은 우리 겨레의 역사적 체험을 간직하고 있는 아주 귀중한 노래이다. 그것은 한 옛적 역사의 여명기에 한민족의 선조들이 「메사」에서 「스발」을 향해 긴 여행을 시작할 때부터 부르기 시작한 겨레의 역사 노래이며, 또한 현존하는 인류 최고(最古)의 찬송가인 것이다. 우리 배달민족의 선조들이 서쪽에서부터 아시아 동쪽의 이 먼 땅으로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산과 언덕과 고개들을 넘었겠는가? 우리 겨레의 직계 선조인 욕단 족속은 그 숱한 고개들을 넘어 갈 때마다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간다”, 즉 “하느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 간다”며 찬송을 부르며 셈족의 종가(宗家)답게 믿음으로 전진했던 것이다.
실로 ‘알이랑’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규명해 주는 선민 한민족의 키워드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알이랑 민족’이다. 즉 우리 겨레는 처음부터 ‘알이랑 정신’ 곧 ‘하느님 중심 사상’과 ‘신본주의 정신’을 가지고 창조주 하느님을 섬긴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천손민족)이라는 것이다.
알이랑 찬송을 부르며 욕단 족속이 동방의 산악지대를 넘어 「스발」을 향해 이동하고 있을 때, 마침내 서부 시날 평지에서는 바벨탑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니므롯의 지도력 아래 시날 평원에 도달한 그들은 서로의 분산을 막고 인류의 힘을 결집시킬 수단으로 땅 사방의 어디에서도 보일 수 있는 바벨탑을 하늘 높이 쌓다가 하느님의 심판을 초래했다.
하느님은 홍수 후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9:1)고 명하셨다. 그러나 시날 평원에 모인 그들은 서로의 흩어짐을 면하고 인류의 힘을 결집시켜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유토피아를 건설하려고 했다. 바벨탑 건설은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독립, 곧 인류 자결권을 선포하는 사건인 것이다. 그들은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3~4)고 하였다. 천연의 물질인 돌과 진흙을 대신하여 자신들이 만든 벽돌과 역청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지혜와 능력에 의지하는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탑의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겠다는 것은 하느님을 배제한 인간의 힘으로 인본주의(人本主義) 낙원을 건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또한 그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높이고 찬양하는 대신에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말하고 있다. 이 얼마나 참월한 행동인가?
그들의 행동은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명하신 하느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인간을 하느님의 자리에 세우는 아주 참람한 일이었던 고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사악하고 헛된 일들을 중단시키고자 언어를 혼잡케 하셨다.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며 바벨탑을 쌓던 그들은 갑자기 서로 간의 말을 이해 할 수 없게 되었다. 일꾼들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로 인해 모든 작업이 정지되었으며 사람들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바벨탑을 떠나 비로소 사방으로 흩어졌다(창 11:7~9). 이는 하느님을 대적하는 폭군 니므롯과 그를 추종하는 인간들의 교만과 반역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었다.
이때 언어의 혼란으로 말미암아 유럽과 아프리카와 바벨론과 근접한 지역으로 대(大)이주가 있게 되었다. 욕단의 형제 벨렉은 현(現) 이라크 남단 유프라테스강 동쪽의 페르시아만 해변가로 이동했다. 셈의 장자인 엘람은 바벨론 동쪽으로 나아가 지금의 이란 땅인 수사 지역에 터전을 잡았고, 바벨론 북쪽 지역은 둘째 아들 앗수르가 자리했다. 이것은 기존의 세계사에서도 분명히 기록하고 있는 사실로서 앗수르는 고대 앗시리아 제국으로 발전하였고, 엘람은 메디아와 페르시아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이란 땅에 존재했던 엘람 왕국이다. 이렇게 셈의 족속은 유프라테스 강의 북쪽 유역과 그 변두리에 정착하여 유대 민족, 앗수르 민족, 엘람 민족 등이 되었다. 또한 야벳 족속은 북쪽으로 가서 흑해와 카스피 해에 정착하여, 지금의 유럽과 아시아(인도)에 거주하는 코카서스 사람의 조상이 되었다. 함의 족속은 남쪽으로 흩어져서 아프리카 민족들의 선조가 되었다. 함의 아들 가나안은 현(現)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하였다. 그리하여 그 땅은 가나안 땅으로 불려졌고, 후에 모세의 영도아래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복당하여 유대 민족의 영토가 되었다.
그러나 ‘알이랑민족’인 욕단 족속은 바벨론 소요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들은 바벨론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욕단 족속은 홍수 이전부터 인류가 사용하던 존귀한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동양의 산악 지대를 넘어 ‘스발’을 향해 여행을 계속 했다.
스발
욕단 족속은 ‘스발’을 향해 동쪽으로 옮겨갔으며 ‘스발’은 그의 목적지였다. 창세기 10장 30절을 히브리어 원문에서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고 그들의 거주지는 당신이 메사로부터 새팔(새파르)로 가면서 동쪽에 있는 산이었다”(And their dwelling was from Mesha, as thou goest unto Sephar a mount of the east. KJV )
‘스발’을 히브리어에서 음역하면 ‘새팔’이다(우리말 성경 개역판의 히브리어 음역 표기는 고대 헬라어 번역 성경인 70인역으로부터 왔다). 여기에서 ‘새팔로 가면서’(as thou goest unto Sephar)라는 말은 욕단 족속이 동양의 어떤 특정한 산지에 정착한 것이 아니라 ‘새팔’을 향해 계속 동쪽으로 옮겨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새팔’의 위치는 어디일까? 어디가 욕단이 최후로 도달한 ‘새팔’인가?
먼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새팔’은 결코 당시에 존재하거나 알려진 도시와 장소의 이름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홍수로 인해 지워졌기 때문이다. 욕단이 천동하기까지 동양에는 아직 누구도 살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창세기 10장 30절에 언급된 ‘새팔’은 현실적인 지명이 아니다. 그것은 ‘예시적’인 지명이다. '예시'란 나중에 원형으로 구체화 될 어떤 진리가 미리 '암시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새팔’의 원형에 해당할 수 있는 지명 및 위치를 찾아야 한다.
‘새팔’은 '새발'
예시적 지명 ‘새팔’은 어디일까? 일단 그곳은 아시아 동쪽의 어느 곳에선가에서 추적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욕단은 동방의 산악지대(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과연 어디를 뜻할까? ‘시베리아'이다. 알타이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좀더 이동하면 ’시베리아‘ 벌판이 펼쳐진다. 시베리아는 고조선의 창건 무대인 만주 대륙이 연장된 땅으로 우리 한민족의 역사의 고향이다.
알이랑 고개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 동쪽으로 멀리 천동한 욕단 족속은 남북 만주 및 시베리아를 아우르는 동방의 새 땅을 '새발'이라고 하였다. ‘새발’은 ‘새벌’의 고어로서, ‘새 땅’ ‘새 벌판’이라는 뜻이다. 욕단의 목적지 ‘새팔’은 바로 우리 한민족의 발상지 ‘새발’(시베리아~만주)을 예시한 것이다. ‘새팔’과 ‘새발’은 발음이 아주 유사하다. ‘ㅍ’을 약하게 소리 내면 ‘ㅂ’이 된다. ‘ㅍ’과 ‘ㅂ’은 모두 ‘파열음’으로서 한 계통의 소리이다. 따라서 자주 혼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안팎’은 ‘안밖’이요, 동이족의 후예인 인디언은 ‘아버지’를 ‘아파치’라고 부른다. 따라서 ‘새팔’ = ‘새발’로 간주할 수 있다.
그리고 ‘새발’의 어원은 ‘새밝’인데 ‘새 밝은 곳’이라는 말이다. 이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인 그 땅이 빛이 시작되는 새 땅, 곧 새밝나라(새光明國)이기 때문이다. ‘새발’의 ‘발’은 ‘밝’에서 가지 쳐 나온 말로서 원래는 ‘광명’의 뜻이었는데 ‘벌’ ‘들’ ‘나라’ 등의 뜻으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새발’의 ‘발’은 곧 ‘벌’인 것이다. ‘밝’은 육당 최남선(六堂 崔南善)이 그의 명저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에서 강조했듯이 우리 배달겨레의 사상의 뿌리를 이루는 본원적인 말이었다. 그것은 신(神)이며 신성(神聖)한 것이다. 그것은 태양이며 광명이고 생명의 원천이다.
‘배달’이라는 말은 ‘밝달’에서 나왔다. ‘배달겨레’ 할 때의 ‘배’의 뿌리도 ‘밝’이다. 그리고 ‘달’은 ‘아사달’ 할 때의 그 ‘달’인데 ‘땅’이라는 뜻이다. 곧 양달이 양지요, 음달이 음지요, 빗달이 비스듬한 땅이다. ‘밝의 땅’은 그래서 ‘배달’이니 이 말에는 우리 배달겨레의 얼과 숨결이 서린다.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 말인지 모른다. 이 ‘밝’에서 가지 쳐 나온 말 가운데 하나가 ‘발’인데, ‘발’은 ‘밝’ 즉 처음에는 ‘광명’의 뜻이었으나 ‘벌’ ‘들’ ‘나라’ 등의 뜻으로 바뀐 것이다. 순수한 우리말로 된 옛 한국의 지명에는 ‘발’로 끝나는 땅이름이 상당히 많다.
욕단의 목적지 ‘새팔’은 ‘새발'인데 그것은 빛이 시작되는 새 땅, 곧 ‘새밝’으로서 ‘광명의 본원지’를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욕단은 알이랑 고개를 넘어 빛이 시작되는 동방의 새 땅, 곧 시베리아로부터 남북만주에 이르는 ‘극동아시아’까지 아주 멀리 천동(遷動)했던 것이다. 만주 벌판이 연장된 땅인 시베리아는 우리 겨레의 역사의 고향이다. 한국인의 주류는 시베리아 바이칼호에서 온 북방계 아시아인이다.
욕단 족속은 왜 그렇게 빛이 시작되는 땅인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땅 끝까지 멀리 이동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욕단의 가계는 바벨탑 건설에 가담하지 않은 셈족의 진정한 장자였다. 그들은 ‘하느님 신앙’이 위협받던 그 암울한 시대에 ‘알이랑 정신’, 곧 ‘하느님 중심 사상’과 ‘신본주의 정신’을 끝까지 지켰던 단 하나의 천손민족이었다. 이렇게 창조주 하느님을 가장 공경했던 욕단계 선민 한국인의 조상은 타민족과 구별되는 천손민족다운 기질을 매우 많이 갖고 있었다. 그 현저한 민족성의 하나가 밝고 환한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섬기는 하느님이 밝고 환한 천국에서 빛 가운데 계시는 ‘빛의 근원이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욕단 족속은 천손민족인 자기들의 삶의 터전으로 빛이 시작되는 땅, 곧 ‘새밝나라’인 ‘새벌’(새팔 = 새발)을 목적지로 삼았던 것이다. 그들은 그 밝고 환한 동방의 새 땅을 찾아가서 신시(神市), 즉 하느님의 나라(천국)를 건설하고자 했다. 욕단 족속이 알이랑 고개를 넘어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땅 끝, 곧 ‘새벌’까지 멀리 천동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빛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공경하던 천손민족 에벨의 혈통 욕단의 가계는 광명의 본원지인 ‘밝의 땅’(밝달)을 찾아 아침에 뜨는 해를 따라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를(파미르고원→ 천산산맥→알타이산맥) 넘어 쉼 없이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알타이 고개를 넘어 동쪽으로 좀더 가면 바이칼 호수가 나온다. 이 바이칼 호는 우리 민족을 포함한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를 주도한 유목민족들을 낳고 길러온 태반이다.
바이칼호수 북쪽으로는 시베리아 대평원이 펼쳐지고, 호수 동남쪽에는 만주 벌판이 한반도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호수 북쪽은 북반구 북단이기 때문에 볕도 약하고 빛도 강하지 못하다. 그곳은 광명의 본원지가 아니다. 그래서 욕단 족속은 아침에 뜨는 해를 좇아서 호수 동남쪽으로 이동을 계속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시아 동녘 해 뜨는 밝은 땅에서 가장(한) 밝은 산인 한밝산(太白山=白頭山)에 집결하였다. 이 가장 밝고 밝은 한밝(太百)은 땅이요 터이니(基, 垈) 곧 밝달(배달)이다. 즉, 광명의 본원지인 ‘밝의 땅’이다!
욕단 족속은 이 ‘밝의 땅’에서 ‘한밝산’을 발상지와 중심터로 삼아 한밝산과 그 변두리에 정착했다! 왜냐하면 그곳이 동방에서 가장 빛 밝고 볕 밝은 땅인데다, 아시아 동쪽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은 셈의 후손인 그들이 산정제사(山頂祭祀)를 드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이 단군신화에 나오는 태백산 천손강림(天孫降臨)의 모티브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배달겨레의 성경상의 시조는 바로 셈의 현손(玄孫) ‘욕단’이다!
한밝산의 밝달 곧 배달은 빛밝(光明)고, 볕밝(暘明)아, 사람이 먹는 풀, 나무, 과일, 새, 짐승 등이 자연히 많아서, 아득한 옛적에는 그곳이 사람 살기에 가장 좋은 땅이며 터였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이 배달을 낙원으로서 하느님이 점지(占指)하신 땅이라고 믿었었다. 하느님의 사람 욕단은 바로 이 백두산과 그 변두리를 근거지로 밝달(배달)나라를 세웠다. 이 한밝은(가장 밝은) 배달에 욕단이 세운 나라는 가장(한) 환(桓)한 나라인 까닭에, 이것을 그들은 하늘나라(天國 = 한나라), 신의 나라(神國 = 神市 = City of God)라 하였다.
이제 우리는 욕단의 목적지 ‘새팔’의 위치를 확실히 찾았다. 예시적 지명인 ‘새팔’은 ‘새벌’(새발)이요, '새발'은 '새밝' 곧 ‘새 밝은 곳’인데 광명의 본원지인 밝의 땅(밝달) ‘배달’인 것이다! 그 땅은 우리 배달겨레가 처음부터 터 잡고 살아온 땅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하나의 선민 욕단의 후손이 누구인지를 아주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존귀한 백성은 바로 알이랑민족 한국인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어떤 성경 연구가들은 욕단의 아들 이름이 역사적으로 아랍 부족의 이름과 같은 스바, 오빌, 하윌라이며 더욱이 아라비아 남단에는 스바, 오빌, 하윌라라는 지명도 나타나기 때문에 욕단이 아라비아로 갔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욕단 족속은 아라비아 남단에 정착하여 현(現)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아랍 부족의 이름은 함의 가계인 구스 민족의 후손에 속한 것이다. 초기 아랍 민족은 구스 민족이 분명하며 그들은 셈족이 아니다. 함의 자손 구스의 맏아들이 스바였으며 손자 중에도 스바가 있었다(창 10:6). 또 하윌라도 구스의 둘째 아들이다. 그들이 그 땅에 살고 있었으니까 그들의 이름을 따라서 지명을 삼은 것이다. 오빌도 스바와 하윌라 부근의 홍해 안에 있는 금산지로 알려진 곳으로서 솔로몬 왕을 방문했던 스바 여왕의 통치 지역이었다. 따라서 그곳도 역시 함 계통의 구스 민족이 살고 있었음이 분명하다(왕상 10:1). 흔히 이름은 가계에 관련된 어떤 의미를 가지지 않고, 서로 분리된 후손들 사이에서 널리 되풀이되어 사용된다. 그리고 현(現) 아랍 민족은 이스마엘의 후손이 퍼져 있고(창 25:13~18), 롯의 후손 모압과 암몬 족속(창 19:36), 그 밖에 셈의 아들인 엘람족, 앗수르족, 룻족, 아람족 등이 섞여 있다. 그러므로 욕단이 아라비아로 가서 아랍 부족의 선조가 되었다고 착각하는 성경 연구가들은 ‘메사’와 ‘스발’의 위치를 결코 찾을 수 없다. 한결같이 그들은 ‘메사’와 ‘스발’이 어디인지를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라비아 주변에는 그런 곳이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기 때문이다. ‘욕단의 후손’이 어디에 있는 누구인지를 찾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창세기 10:30은 욕단계 천손(天孫)이 동양에 거주하고 있다고 말한다. 욕단은 아라비아로 가지 않았다. 성경은 욕단이 동방의 산악지대를 넘어 ‘스발’로 갔다고 말한다. 아라비아는 산맥이나 산악지대가 전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