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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우리 교역자들의 보수 문제
서 론
교역사들의 보수 문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실제적인 관심을 일으켜주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엘렌 G. 화잇의 여러 저서들 가운데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여기에 실린 내용들은 대총회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교역자들의 보수 문제를 결정하는 원칙들을 검토하기 위하여 어떤 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위원회가 연구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작성된 보충적인 권고의 말씀들이다. 이 재료들이 그 위원들에게 큰 도움을 확실히 주었으며 저들의 제의에 의해서 여기에 포함시키게 된 것이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교역자들이 일하고 있는 기관들과의 관련성에 관하여 주신 여러 문서들과 권고문들에서 뽑아 낸 원칙들을 검토하는 일은 큰 유익을 줄 것이다.
특히 재정적인 압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분야에서 많은 급료를 준다는 유혹적인 제의를 받아들이려는 시험을 받는 자에게 제23절 재정적인 이유로 하나님의 사업을 떠나려고 계획하는 자에게 보내는 권면의 내용은 매우 도전적이며 냉정한 생각을 갖게 할 것이다. 엘렌 G. 화잇의 이 모든 기별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정신, 곧 희생의 정신이다.-화잇 출판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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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 교훈*
솔로몬의 배도의 시초를 살펴보면 올바른 원칙에서 떠난 여러 가지 사소하게 보이는 탈선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상을 섬기는 여인들과의 수많은 교제들이 그를 몰락하게 한 유일한 원인은 결코 아니었다. 솔로몬을 사치와 방종에 흐르게 하고 잔인 무도한 압제를 하게 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탐심에 빠져 탐욕의 정신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대 이스라엘 시대에 시내산 기슭에서 모세가 백성들에게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출 25:8) 지으라는 거룩한 명령을 전달하였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기에 충당될 많은 예물들을 바치는 것으로 반응을 보였다. 무릇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와서 성막을 짓기 위하여(출 35:21) 예물을 여호와께 바쳤다. 성막을 짓는 데는 막대한 준비와 거대한 자금이 필요되었다. 또한 가장 보배롭고 값진 다량의 물자가 요구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오직 자원하는 마음으로 바친 예물만을 받으셨다. 모세는 회중에게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출 25:2)는 거룩한 명령을 반복하여 말해 주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거하실 장소를 준비함에 있어서 첫째로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희생적인 정신이었다.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는 책임을 솔로몬에게 지울 때에도 동일한 자아 희생의 정신을 요구하였다. 저들의 너그러운 예물을 가지고 온 무리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윗은 오늘날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대상 29:5)하고 물었다. 이러한 호소는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언제나 기억되어야 하였다.
광야의 성막을 짓기 위하여 선택을 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히 재능과 지혜를 부여해 주셨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 브사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케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 여러 가지 공교한 일을 하게 하시고 또 그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며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층만하게 하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조각하는 일과 공교로운 일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로 수놓는 일과 짜는 일과 그 외에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고 공교로운 일을 연구하게 하셨나니(출 35:30-35), 브사렐과 …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심을 입은 자들은 여호와의 무릇 명하신 대로 할 것이니라(출 36:1). 하늘의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신 기술자들과 협력하였다.
이 기술자들의 후손은 저희 조상에게 부여하였던 재능들을 많이 물려받았다. 유다 지파와 단 지파에는 공예 부문에 특별한 솜씨를 가진 자들로 인정된 사람들이 있었다. 한동안 이 사람들은 겸손과 무아심을 유지하였으나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천천히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당신의 진리를 상실하였다. 저들은 공예 부문의 탁월한 기술을 핑계로 하여 높은 임금을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어떤 경우에는 저들의 요구가 허락된 적이 있기는 하나 대부분 높은 임금을 요구하는 자들은 이웃 나라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저들의 조상들의 마음에 충만하였던 헌신적인 고상한 정신 대신에 탐욕의 정신에 빠져 더욱 욕심을 부렸다. 저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이교의 왕들을 섬기는데 사용하였고 저희 창조주께 욕되는 일에 사용하였다.
믿지 않는 기술자를 채용함
솔로몬이 모리아산의 성전 건축을 감독할 명공(名工)을 구한 것은 바로 이러한 배도자들 중에서였다. 거룩한 건물의 각 부분에 관하여 기록된 자세한 설계가 왕에게 위탁되었으며 그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공사에 요구되는 바로 그 일을 행할 특별한 기술을 받은 헌신한 조력자들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행사할 이 기회를 잃었다. 그는 두로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금, 은, 동, 철로 제조하며 자색 홍색 청색실로 직조하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공교한 공장과 함께 아로새길(대하 2:7) 수 있는 사람을 구하였다.
이 페니키아의 공교하고 총명한 사람 … 단의 여자 중 한 여인의 아들(대하 2:13, 14)인 후람을 보냄으로 응답하였다. 명공 후람은 그 어머니 편으로 오흘리압의 후손이었는데 오흘리압은 수백년 전에 성막 건축을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지혜를 받은 사람이었다. 이리하여 솔로몬이 부린 기술자의 두목에 성화되지 않은 사람 곧 자기의 탁월한 재능을 미끼로 하여 많은 임금을 요구한 사람을 임명하게 되었다.
후람의 수고는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가장 고상한 봉사를 바치려는 의욕에서 고무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 세상 사람들의 우상인 돈을 섬겼다. 그의 몸의 모든 섬유질은 이기심이란 원소로 짜여 있었는데 가장 높은 임금만을 욕심 부리는 것으로 그 기질이 드러났다. 그가 마음 속에 품었던 그릇된 원칙들이 차츰차츰 그의 동료들에게 용납되었다. 저들은 날마다 후람과 함께 일할 때에 그의 품삯과 자기들의 품삯을 비교하는 경향에 흐르게 되고 저들이 해야 할 공사의 성스러운 특성을 잃어버리기 시작하였다. 점차적으로 극기의 정신은 저들에게서 떠나고 탐욕의 정신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높은 임금만을 요구하게 되었고 그것은 허락되었다.
욕심으로 가득 찬 이 사람을 채용함으로 인하여 작용한 해로운 감화는 각 부분의 여호와의 봉사 사업에 스며들게 되었으며 온 솔로몬 왕국에 퍼지게 되었다. 높은 임금을 요구하여 받은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치와 방종에 빠질 기회를 주었다. 이 감화가 멀리까지 끼친 결과에서, 한때 가장 현명한 사람으로 헤아림을 받은 솔로몬이 무서운 배도를 하게 된 중요한 원인 중 하나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배도에 빠진 자가 왕 혼자 뿐이 아니었다. 어디를 둘러보나 사치와 부패상을 볼 수 있었다. 가난한 자들은 부자들의 압박을 당하였고 하나님을 섬기는 데 나타내야 할 자기 희생의 정신은 거의 잃어졌다.
바로 여기에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가장 중대한 교훈 곧 많은 사람들이 더디 깨닫고 있는 교훈이 있다. 탐욕의 정신, 최고의 지위와 최고의 임금을 구하는 정신이 이 세상에 충만하여 있다. 옛날에 볼 수 있었던 극기와 자아 희생의 정신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만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을 격려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정신이다. 우리의 거룩한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어떻게 일해야 할 것에 대한 모본을 보여 주셨다. 주님께서는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고 명하셨고 그들의 봉사의 대가로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지 않으셨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극기와 희생을 분담해야 하였다.
거장(巨匠)이신 주님을 따르노라고 주장하는 자들과 하나님의 동역자들로서 봉사 사업에 종사하는 자들은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지상 성막의 건축자들에게 요구하셨던 정확성과 기술 및 재주와 지혜를 기울여야 한다. 오늘날도 광야에서 성막을 짓던 때나 그리스도께서 지상 봉사를 하시던 시대처럼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희생적 정신이 가납하심을 받을 만한 봉사의 첫째되는 조건으로 여겨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한 오라기의 이기심이라도 당신의 사업 중에 짜이지 않도록 계획하신다.
재림교회 역사에서 얻은 경험
주님의 기관에 침투하여 있는 정신에 관하여 크게 조심하여야 한다. 이 기관들은 자아 희생의 토대 위에 세워졌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의 극기하는 은사들에 의해서 세워졌고 당신의 종들의 무아의 봉사에 의해서 운영되어 왔다. 기관을 위한 봉사에 관련된 모든 것들은 하늘의 표식를 지녀야 한다. 하나님의 기관들의 신성성에 대한 감각을 자극해야 하며 배양해야 한다. 교역자들은 주님 앞에서 저들의 마음을 겸비해야 하며 주님의 통치권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교역자들은 극기의 원칙에 일치하여 생애하여야 한다. 진실하고 자아 희생적인 일꾼으로서 자신의 영적 등불의 심지를 다듬어 빛을 환하게 밝혀 자기가 일하고 있는 기관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무아의 정신으로 노력할 때 그는 고귀한 체험을 맛보게 될 것이며 과연 주님께서 이 기관과 같이 하신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그는 주님의 기관을 위하여 자신의 재능, 봉사 및 지칠 줄 모르는 경계를 바칠 수 있다는 것이 큰 특권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전하는 사업의 초기에 있어서 우리 기관들을 건립하고 그 기관 안에서 수고한 자들은 무아의 고상한 동기의 자극을 받았다. 열렬한 노고를 위해서 저들이 받은 보수란 겨우 밥 세 끼를 먹는 정도의 지나치게 빈약한 보조였다. 그러나 저들의 심령은 사랑의 봉사와 더불어 침례를 받았다. 전적으로 마음을 바친 자의 관대성에 대한 보상은 거장이신 주님의 영과 더불어 밀접한 교제를 하는 생애 가운데 뚜렷하게 나타나 보인다. 저들은 가급적 많은 일꾼들로 여러 새로운 지역에 진리의 기둥을 세울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가장 주도 면밀한 경제적인 생활을 실천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변화가 왔다. 희생적인 정신을 전처럼 볼 수 없게 되었다. 우리 기관에서 몇몇 교역자들은 엄청나게 많은 보수를 받았다. 그러한 고액의 보수를 받은 자들은 다른 교역자들에 비하여 탁월한 재능을 가졌으므로 마땅히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저들에게 재능과 능력을 주신 분이 누구이신가? 보수가 증가됨에 따라서 우상과 같은 탐욕도 증가하였으며 아울러서 영성의 타락도 그와 보조를 같이하였다. 엄청난 죄악들이 침투하여 들어 왔으며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다. 고액의 보수를 탐내는 것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는 의혹과 불신의 사상이 싹트게 되었다. 이상한 원칙들이 마치 악한 누룩이 발효되는 것처럼 거의 모든 신자들에게 스며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를 부인하기를 이미 그쳤으며 십일금과 헌금이 아까워 내지 않는 사람들의 수가 적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를 통하여 당신의 거룩한 사업에 개혁을 요구하신 바 이 개혁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 표면적으로도 단행하여야 한다. 저희 봉사에 대하여 무모하게 높은 평가를 계속적으로 발하는 어떤 이들은 해고당하였다. 그러나 경고의 기별을 받은 또 다른 이들은 마음에 새로운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향하였으며 탐욕적인 정신을 가증하게 여겨야 할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저들은 형편이 허락되는 한도에서 자원하여 저들의 보수를 삭감함으로써 사람들 앞에서 올바른 모본을 세우려고 노력하였다. 저들은 거치른 유혹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구원을 받으려면 마음과 정신의 완전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적극적인 교회사업에 대한 위협
하나님의 사업은 광범위한 모든 분야에 있어서 하나의 동일한 원칙으로 지배되어야 하며 그 모든 산하 부서에 있어서 동일한 정신이 나타나야 한다. 이 사업의 원칙은 선교적인 특징을 나타내야 한다. 기관의 각 부서는 복음사업의 모든 분야에 관련되어 있으며 한 부서를 지배하고 있는 정신은 전체적인 분야에서 똑같이 느낄 수 있는 그러한 정신이어야 할 것이다. 만약 일부의 교역자들이 고액의 보수를 받는다면 다른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는 교역자들도 똑같이 고액의 보수를 요구할 것이며 자아 희생의 정신은 점차적으로 그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따라서 다른 기관들과 합회들도 이 같은 정신을 본받게 될 것이며 주님께서는 결코 이기심에 찬성하실 수 없으므로 주님의 은총이 저들에게서 거두어지게 될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들의 적극적인 사업은 그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이 사업은 오직 꾸준한 희생에 의해서만 발전시킬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혼의 믿음을 시험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무한한 희생의 댓가를 치르시고 우리들을 사셨다. 비록 주님께서는 부요하셨으나 우리들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므로써 우리들이 당신의 궁핍을 인하여 영원한 부요함을 소유할 수 있게 하셨다. 우리들이 소유하고 있는 능력과 지식의 전부는 당신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겨 놓으신 것이다. 그리스도로 더불어 당신의 거룩한 희생의 참여자가 되는 것은 우리들의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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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자의 보수를 책정하는 일반적인 원칙들
희생적인 노고에 따르는 만족과 축복
하나님의 사업에 뜻을 둔 자들은 저들 자신이나 저들이 받게 될 적은 보수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하나님께서 저들이 받는 적은 것으로 저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성과를 거두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저들이 자아 희생적인 수고로 전진할 때에 저들에게 만족감과 축복을 주실 것이다. 또한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온유한 정신으로 수고할 때에 우리들 각자에게 축복하실 것이다. 나는 높은 보수를 바라는 자들을 볼 때마다 나 자신에게 저들은 고귀한 축복을 상실하고 만다고 말해 준다. 나는 이것이 분명한 사실임을 알고 있다. 나는 일의 결과가 그렇게 되는 것을 여러 번 실제로 목격하여 왔다.
형제들이여, 우리들이 보수를 더 받지 않고는 맡겨진 사업을 도저히 수행할 수 없는 사정을 제외하고는 높은 보수를 바라지 말고 우리들이 최선의 능력을 다하여 이 사업을 굳건히 붙잡고 나가도록 하자. 비록 우리들의 사정이 불가능한 형편에 이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이 이 사정을 파악할 수 있게 하셔서 저들이 우리가 하는 천 마디 말보다도 더욱 능가할 힘있는 말을 하게 하실 것이므로 우리들 자신이 느끼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이 필요성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저들은 우리들이 사람들 앞에서 정당한 위신을 찾을 수 있도록 말해 줄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조력자가 되시며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전위(前衛)와 후위(後衛)가 되신다.
우리들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될 때에 우리들이 어디로 가든지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다. 우리들이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니요 성공, 곧 성공적인 생애를 원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극기하는 생애에 대하여 잘 알고 계시므로 그 성공을 꼭 우리들에게 주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치르는 모든 희생에 대하여 아신다. 그대는 혹시 꼭 너그러운 배려를 받아야 할 형편에서 극기의 정신을 발휘하든 안하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주님의 입장에서 보실 때에는 큰 차이가 있다. 나는 계시를 통하여 여러 번 반복해서 보았는데 사람들이 더욱 높은 보수를 바라보기 시작하면 언제나 저들 자신을 불리한 입장으로 몰아넣는 경험을 맛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들의 자아 희생적 생활이 표면적으로 나타날 정도에 이르기까지 어려운 보수를 받게 될 때 주님께서는 저들의 극기를 보시고 저들에게 성공과 승리를 안겨 주신다. 이 사실을 계시를 통하여 나에게 여러 번 반복하여 보여 주셨다. 은밀한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당신의 시련을 당한 종들이 기꺼이 치른 모든 희생을 위해서 공개적으로 보상하실 것이다(원고 12, 1913).
약정(約定)된 금액을 강요하지 말 것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영혼들에게 초청하여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고 말씀하신다. 만약 모든 영혼들이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교훈들을 당신의 학교에서 배운다면 여러 곳에 복음의 선교 사업을 이룩할 수 있는 충분한 재정이 생기게 될 것이다.
아무도 나는 약정된 금액을 위하여 이 사업에 종사할 것이다. 만약 내가 이 금액을 받지 못한다면 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라. 이런 말을 하는 자들은 저들이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있지 않는 것과 주님의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정신을 배우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증거할 뿐이다. …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실 때에 우리들의 가치를 증가시키는 것은 세상 재물로 부요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인정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것은 온유한 정신과 통회하는 마음이다. 이사야서 57장을 읽어라. 이 장을 신중히 연구하라. 이 가운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깨달아야 할 중대한 교훈이 있다. 나는 그것에 관하여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서신 145, 1904).
일을 하고 주는 보수를 받으라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일을 행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우리들은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만 할 작은 봉사들을 기꺼이 해야 할 것이며 작은 기회들을 계발시켜야 할 것이다. 만약 이런 기회밖에 주어진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들은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 일이 미천하다고 하여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하려 하지 않고 시간을 허비하여 세월을 허송한다면 그는 자기가 낭비한 시간에 대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책임 추궁을 받게 될 것이다. 만약 그가 바라는 보수를 받을 수 없다고 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느껴진다면 그는 잠시 멈추어 그날, 그 하루가 주님께 속한 것임을 생각하라. 그는 주님의 종이다. 주님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 것이다. 그는 나는 그 시간에 무엇이든지 할 것이며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내가 번 모든 것을 바칠 것이다. 나는 허송 세월한 것으로 지적당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자기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할 때에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보상을 가져올 것인지 혹은 적은 보상을 가져올 것인지에 대하여 물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다만 일을 할 것이며 주는 보수를 받을 것이다. 그는 자기가 꼭 받아야 하리라고 생각했던 많은 보수를 기대할 수 없다는 구실로 직책을 거부하는 사례를 남겨놓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자기 동료들을 다루는 일에 어떤 행동을 취했는가 하는 그 원칙에 의해서 사람의 품성을 판단하신다. 만약 일반적인 사업 거래에 있어서 그의 원칙들이 결함을 드러내 보일 때에 하나님을 위한 그의 영적 봉사에도 똑같은 결함이 드러날 것이다. 모든 실들이 그의 전체적인 신앙 생애에 짜여 들어갈 것이다. 만약 그대가 그대 자신을 위하여 적은 보수를 받으며 일하기에는 자존심이 몹시 상한다고 생각된다면 주님을 위하여 일하라. 그리고 모든 결과를 주님의 금고에 바치라. 하나님께서 그대의 생명을 보존해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의 예물을 바치라. 그러나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태하지 말라(원고 156, 1897.)
일에 따라서 보수를 지불하라
주님의 방법은 공의롭고 평등하다. 학교에서 일하는 교역자들은 저들이 정직하고 열심히 일한 학교에 바친 시간에 따라서 보수를 받아야 한다. 어떠한 교역자에게도 불공평한 처사를 해서는 안 된다. 만약 한 남자나 여자가 학교에 전적으로 시간을 바쳤다면 그가 학교를 위해서 바친 시간에 따라서 보수를 받아야 한다. 만약 그 사람이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마음과 노력과 능력을 바쳤다면 그는 자기가 학교에 바친 그 가치 있는 봉사에 따라서 보수를 받아야 한다. 공의와 진리는 비단 현재와 장래의 명성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의에 따르는 우리들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서 유지되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아무리 사소한 불법이라도 짝하지 않으실 것이다(원고 69, 1898).
일의 특권 대(對) 보수
주님의 종으로서 명예를 누리는 특권에 대한 생각보다도 저들이 받는 보수에 대하여 더욱 많이 생각하는 자들과 보수를 받게 되었다는 자축의 정신으로 저희 일에 임하는 자들은 극기와 자아 희생의 정신을 발휘하지 않는다. 맨 나중에 채용된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옳은 일이라면 너희가 받으리라(마 20:7, 역자주:이 성구는 오직 King James Version에서만 찾아볼 수 있음)는 주인의 말을 믿었다. 저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품삯을 전부 받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으며 믿음으로 일하였기 때문에 제일 처음으로 보수를 받았다. 만약 하루 종일 수고한 자들이 사랑하는 마음과 신뢰하는 정신으로 일하였다면 저들은 계속해서 첫째가 되었을 것이었다.
주 예수께서는 어떤 정신으로 하였느냐에 따라서 그 사업을 평가하신다. 주님께서는 후일에 겸손한 믿음으로 당신의 계명에 순종하는 회개한 죄인들을 받으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사업에 종사하는 자들이 마치 저희 주인이 저들을 진실하게 다루지 않는 것처럼 약정된 금액을 위해서 흥정하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셨다. 주님께서는 불평자들이 저들의 가상적인 불평이 있다고 해서 동정을 받게 되지는 못하리라는 뜻에서 그 비유의 말씀을 주셨다(원고 87, 1899).
계속적으로 높은 보수를 갈망하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사업에서 그를 떠나게 하려는 유혹에 굴복하는 영혼에게 결코 참된 번영이 찾아올 수 없다. 하나님의 지혜가 주관하지 않는 한 어떤 사람, 어떤 가족 혹은 어떤 조직이나 어떤 기관에도 결코 번영이 따를 수 없다(서신 2, 전단 우리 교회 지도자들에게 4, 1898).
돈이 많이 드는 가족
사람들은 저희 가족이 돈이 많이 드는 가족이라는 핑계로 높은 보수를 받아야만 한다는 호소의 편지를 나에게 보내왔다. 이와 동시에 저들이 관련되어 있는 기관은 계속적인 지출을 충당하기 위하여 부득이 애쓰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어떤 이들은 높은 보수를 요구하는 이유로써 저들이 돈이 많이 드는 가족이라고 내세워야만 하는가? 그리스도께서 주신 교훈으로 충분치 못한가? 주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고 말씀하셨다.
우리 기관들은 영혼 구원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능률적인 방편으로 사용되기 위하여 세워진 것이다. 기관들을 위하여 종사하는 자들은 어떻게 하면 그 기관들의 재정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저들이 기관을 도울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만약 저들이 분수 이상으로 욕심을 낼 때에 저들은 하나님의 사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관에 종사하는 모든 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고액의 보수를 바라지 말 것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재정을 훔치는 것과 같은 것이며 자비의 기별의 선포를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경제적인 생활을 실천해 나아가야 한다. 선교지에 나가서 활동하고 있는 자들은 내가 하고 있는 일만큼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나는 나의 모든 능력을 다하여 저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돈이며 마치 그리스도께서 나의 입장에서 행하실 것처럼 나도 그렇게 행할 것이다. 나는 사치를 위하여 돈을 낭비하지 말 것이다. 나는 여러 선교지에서 수고하신 주님의 일꾼들을 기억할 것이다. 저들은 내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욱 재정의 필요를 느낄 것이다. 저들은 사업을 하는 가운데서 심한 궁핍과 고통을 겪고 있다. 저들은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하고 헐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어야 한다. 나는 저들과 더불어 사랑의 수고를 분담하기 위하여 나의 지출을 제한하여야 한다(특별한 증언 B, No. 19. 19, 20페이지).
평등을 위한 호소
우리들 가운데 더욱 평등한 정신이 있어야 한다. 보수에 대한 지나친 욕심들이 있다. 수고한 일에 대하여 이기적인 평가를 한다. 어떤 사람도 자기가 특수한 일에 적응성이 훌륭하다고 해서 월급을 더 많이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며 하나님을 위하여 수행된 일과 당신의 사업에 발전을 위해서 행한 일이 돈만을 바라보는 정신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많은 것을 받은 자에게는 많은 것이 요구될 것이다. 저들의 재능과 특수한 은사들을 구실로 하여 더욱 많은 급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저들 스스로 내가 사용하고 있는 재능들이 본래 누구에게 속한 것들인가? 하나님께 가장 큰 영광을 돌리기 위한 목적으로 나는 이 재능들을 사용하였는가? 나에게 맡기신 달란트를 배가시켰는가? 라고 물어 볼 것이다. 이러한 달란트를 헌신적으로 사용하는 일은 하나님의 사업에 큰 수익을 가져온다. 우리들이 가진 모든 달란트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원금과 이자를 장차 하나님께 돌려 주어야 한다.
만약 다년간 하나님의 사업에 종사하여 온 자들이 올바른 원칙에서 떠나고 하나님의 사업에 써야 할 재정을 다른 영혼들을 부정한 길로 인도하기 위한 저들의 영향력을 활용하는 데 쓰는 등 현명치 못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포도원에 끼친 피해가 얼마나 컸던가를 신중히 검토해 볼 수 있다면 저들은 높은 보수를 바라는 대신에 다시 회개할 필요가 없는 그러한 회개로써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게 될 것이다. 저들은 스스로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을) 졌느뇨(눅 16:5)라고 질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재능을 그릇되게 사용한 것과 나 자신의 성화되지 못한 상상력을 따른 것으로 인해서 어떠한 책임 추궁을 받아야 할 것인가? 사업 자금을 제한하게 만든 나의 현명치 못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생긴 악한 결과들을 무슨 재간으로 도말시킬 수 있을까? 만약 모든 사람들이 성실하게 저들의 책임 있는 위치들을 지켰다면 오늘날 주님의 창고에 재정의 결핍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우리들의 관계는 일의 분량에 따라 얼마를 지불한다는 인간적인 평가를 따르는 돈에 고용되는 근거에 의해서 성립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저들의 봉사가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깨닫고 진실히 따른다면 주님을 위한 사업을 평가함에 있어서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아, 많은 것을 서슴치 않고 욕심 내는 사람들에게 고쳐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보상을 바라는 이기적인 욕망이야말로 얼마나 온당치 못한 것인가? 높은 보수를 바라는 허욕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몰아내었다. 지위의 교만은 깊이 뿌리박고 있는 악으로서 무수한 영혼을 멸망에 이르게 하였다. 사실 그렇다. 원칙을 망각함으로 말미암아 탁월성을 인정받고 싶어하고 능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야심에 가득 찬 무수한 일꾼들이 멸망에 이르게 되었다. 저들은 저희 자신들끼리 저울질해 보았으며 저희 자신들끼리 비교해 보았다. 인정과 보수를 바라는 저들의 열렬한 갈망은 영성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것은 모든 일꾼들이 신중히 연구해야 할 교훈으로써 저들은 하나님을 위한 사랑을 소멸시키고 영혼을 좀먹는 이기심과 탐욕 및 교만에 대하여 경고를 받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어떤 사람이든지 자기 일에 알맞는 적당한 금액을 받으면서도 자기가 받는 보수를 위하여 일하기를 거부할 때 그가 요청하는 보수를 받게 될는지는 모르나 대부분의 경우 자기 마음에서 금이나 은이나 보석보다도 귀중한 하나님의 은혜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원고 164, 1899).
많은 보수의 대가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은 자아 희생의 행위였다. 주님의 생애는 계속적인 극기의 생애였다. 인간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가장 고상한 영광은 하나님의 본체이셨던 독생자의 희생 가운데 나타났다. 이 이치야말로 경건의 큰 비밀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하는 모든 자들이 그리스도의 정신을 갖는 것은 저들의 특권이며 의무이다. 극기와 십자가를 지는 일없이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될 수 없다.
리뷰 앤드 헤랄드 사무실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많은 보수를 주기로 한 결의문이 제의되고 채택되었을 때 원수 마귀는 하나님의 목적을 빗나가게 하고 영혼들을 거짓된 길로 인도하는 일에 자기의 계획을 성공시키고 있었다. 이기적이며 욕심 부리는 정신을 가진 자들은 많은 보수를 받았다. 만약 교역자들이 그리스도의 교훈 가운데 밝혀진 원칙들을 실천하였다면 저들은 양심적으로 도저히 그러한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보수가 증가된 그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가족들의 생활 비용이 크게 증가되었다.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 보여 주신 교훈과 모본에서 이탈하는 생애를 살게 되었다. 교만한 정신이 머리를 들게 되고 방종에 빠지게 되었다. 허식과 불필요한 자기 만족을 위해서 돈을 낭비하였다. 세상에 대한 애착심이 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더러운 야심이 영혼의 성전을 지배하였다. 많은 보수는 하나의 저주거리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르지 않고 세상의 모본을 따랐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방종하는 생애로 인도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을 즐겁게 하고 만족시키거나 인간의 교만심을 키우는 일에 불필요한 자금 지출을 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 속에 품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언제나 영혼을 겸손한 정신으로 인도하며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하게 할 것이다(서신 21, 1894).
죄가 마음 속에 침노할 때 인간의 가장 고상한 부분을 습격한다. 죄는 하나님을 닮은 인간의 기능과 능력에 무서운 혼란과 참화를 일으킨다. 육신의 질병은 몸을 쇠약하게 하지만 이기심과 탐욕의 질병은 영혼을 망쳐놓는다(서신 26, 1897).
우수한 인물들에게 높은 보수를 주어야 한다는 제의
지난밤에 나에게 보여 주신 계시의 광경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은 깊은 슬픔에 잠기게 되었다. 나는 밤에 계시 가운데서 어떤 형제들이 내가 전혀 찬성할 수 없는 제의들을 말하는 것을 들었다. 저들이 한 말들은 저들 자신이 그릇된 길에 서 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저들은 속임수에서 저들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경험을 갖고 있지 못하였다. 어떤 우리 형제들의 입술로부터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진리에 대한 충성심을 표현하는 말들을 전혀 들을 수 없을 때에 나는 슬픔을 금할 수 없었다. 만약 그런 제안들을 채택하여 수행하였다면 똑바르고 좁은 길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고액의 보수로 재능이 우수한 인물들을 채용할 때에 저들은 우리들 가운데 남아 있게 되고 더욱 많은 사업을, 더욱 철저한 방법으로 성취할 수 있으며 진리의 사업이 더욱 고상한 토대 위에 세워질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이 문제에 관하여 결코 오류를 범하시는 일이 없는 주님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다. 만약 이 계획을 따른다고 가정해 볼 때 나는 과연 누가 진정한 유용성과 자기 동료 교역자들의 영향력을 측정하는 데 자신을 가지고 있는지? 라고 묻고 싶다. 인간은 아무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유용성을 판단할 자격이 없다.
한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나 직무만으로 하나님의 사업에 따르는 그 인간의 유용성에 대한 어떤 표시가 될 수 없다. 정신의 성화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계발시키는 것이 그에게 선을 위한 감화력을 줄 것이다. 하나님의 평가에 따르면 그의 충성심에 대한 차원이 그가 하는 봉사의 가치를 결정한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거룩한 성품에 참여한 자들의 봉사만을 가납하신다. 그리스도가 없이는 인간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하나님과 인류를 위한 사랑만이 인간들로 하나님과 더불어 승리할 수 있는 터전 위에 서게 한다. 거룩한 명령에 대한 순종심은 우리들로 하나님과 동역하는 자가 되게 한다. 사랑은 그리스도인 나무에 맺히는 열매이며 이 열매는 생명나무의 잎사귀처럼 열방을 치유하는 치유제이다(원고 108, 1903).
생활 필수품과 안락
영혼 구원 사업을 위하여 저희 시간을 전적으로 바친 자들에게 충분한 생활비를 주기 위하여 주님의 창고에는 넉넉한 재정이 있어야 한다. 저들이 받아야 할 공정한 보수를 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말라. 주님을 위하여 기꺼이 수고하는 자들은 생활 필수품들에 대한 결핍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 저들은 평안하게 생활할 수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기부금을 낼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생활비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헌금을 바치는 일에 종종 저들이 앞장 서는 일이 있어야 한다(원고 103, 1906).
세속적인 사업과 모순된 의무에서 손을 뗌
조정할 필요성이 있는 많은 것들이 있는데 만약 우리들이 원칙을 고수하려면 그러한 것들이 조종되어야 한다. 우리 목사들에 관하여 나에게 특별한 지시의 말씀을 주셨다. 저들이 부하게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저들은 세속적인 사업에 관여해서는 안 되는데 이는 저들이 영적 사물에 대하여 최선의 능력을 기울일 수 있는 자격을 빼앗기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들은 저들 자신이나 저희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하여 넉넉한 보수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저들이 교회 사업에 정신을 집중시킬 수 없을 정도로 저희 가정으로 인한 많은 부담을 느껴서는 안 된다. 아브라함이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한 것처럼 저희 자녀들을 가르치는 것은 저들의 의무이다. …
목사들과 교사들은 하나님께서 저들이 최선의 재능을 가지고 저희 직책을 수행하며 저들의 최선의 능력을 가지고 사업에 임하도록 책임을 지우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저들은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맡기신 사업과 상충되는 의무들을 짊어져서는 안 된다. 목사들이나 교사들이 계속적으로 재정적인 책임에 대한 부담 때문에 압박감을 느끼면서 피로하고 지친 모습으로 교단에 올라설 때, 떨리는 뇌신경과 신경 과민의 상태로 직무에 임한다면 하나님의 점화(點火)하시는 거룩한 불꽃 대신에 속된 불꽃밖에 더 기대할 것이 있겠는가? 무력하고 기진한 노력은 말하는 자를 상하게 하고 듣는 자들을 실망시킬 뿐이다. 그에게는 주님을 찾을 시간이 없었으며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기 위한 믿음을 구할 시간조차 없었다. 우리들은 이러한 상태를 변화시켜야 할 것이 아닌가? (원고 101, 1902).
비싼 것을 사는 버릇을 키우지 말라
교역자들은 먼 장래를 내다보도록 저들 자신을 일깨워야 한다. 많은 극기와 자아 희생의 정신이 그 생명을 잃었으며 이러한 정신적인 요소들은 그 생명을 다시 찾아야 한다. 사람들은 저들이 요구하는 많은 보수들이 주님의 창고를 고갈시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저들은 하나님의 돈을 사사로운 욕심을 위하여 묶어 놓으며 그러한 저희 행동으로서 저들은 세상을 향하여 주인이 더디 오리라(마 24:48)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는 변화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누가 과연 주님의 위대하신 모본을 따를 것인가? (서신120, 1899).
그대들의 빈약한 보수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 비싼 의복이나 가구에 대한 취미를 배양하지 말라. 단순한 극기와 믿음의 생애로 시작했던 것처럼 사업을 발전시키라. 새로운 독특한 질서가 잡혀야 한다(서신 94, 1899).
재림운동 초기의 극기의 정신이 요구됨
우리가 처음에 사업을 시작하였을 때만큼 오늘날에도 극기의 정신이 요구된다. 지극히 적은 수의 신자들끼리 흑암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작은 책자들과 작은 전단들을 인쇄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들은 극기가 무엇을 의미하며 자아 희생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 때에 우리들과 같이 일하던 자들로서 아직도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자들은 불과 몇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여러 해 동안 가장 단순한 음식과 의복으로써 간신히 연명해 나가는 것 외에 우리들이 받은 보수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들은 중고품 옷을 얻어 입는 것만으로도 기뻐하였으며 때때로 우리들은 기운을 지탱해 나갈 만큼 필요한 음식을 먹을 여유가 전혀 없었다. 모든 것을 사업에 투자하였다. 한동안의 세월이 흐른 후 나의 남편은 매주 6불(미화)의 보수를 받아 우리들은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했으며 나도 남편을 도와 사업에 몸을 바쳤다. 다른 사람들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수고하였다. …
성공리에 이끌어온 이 사업을 계승하기 위하여 들어온 자들은 매우 겸손하게 행하여야 한다. 저들은 자아 희생의 정신을 나타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사업의 기초가 놓여질 때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기관들이 자아희생의 정신으로 운영되도록 계획하셨다(대총회 회보 184, 1891. 3. 20).
원칙을 따라 이 사업을 행할 때, 진리를 믿고 회개하는 자들을 더하기 위하여 우리들이 거룩한 열정을 가지고 노력할 때 세상 사람들은 진리의 기별에 능력이 함께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신자들의 연합은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동일한 관심을 가짐으로 완전한 조화를 이루게 하는 진리의 능력을 증거할 것이다.
신자들의 기도와 헌금은 열렬한 자아 희생적 노력과 결합되며 진실로 저들은 이 세상과 천사들과 모든 인류에게 구경거리가 된다. 사람들은 새로운 회개를 맛보게 된다. 한때 보다 높은 보수를 바라는 허욕적인 보상을 붙잡았던 손이 하나님을 돕는 손이 된다. 신자들은 한 가지 관심, 곧 하나님께서 높임을 받는 곳에 진리의 중심을 삼고자 하는 강한 의욕으로 뭉치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연합과 사랑의 거룩한 결속으로 저들과 함께 하실 것이며 그 결속은 불가항력의 능력을 나타내 보일 것이다.
바로 이러한 연합을 위해서 십자가에 나가시는 그 시련의 일보 직전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서신 32,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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