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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537년: 스룹바벨의 지도 아래 진행된 1차 귀환 (성전 재건 착수)
BC 458년: 학사 에스라의 지도 아래 진행된 2차 귀환 (예배 및 영적 개혁)
BC 444년: 총독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 진행된 3차 귀환 (성벽 중건)
BC 432년: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에 다녀온 후의 4차 최종 귀환 (도덕적 개혁)
이 개혁의 생생한 현장을 그린 성화들이 많이 전해집니다. 3세기 두라 유로포스(Dura-Europos) 회당 벽화나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에도 율법책을 펼쳐 들고 연구하며 백성을 가르치는 에스라의 모습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프랑스의 세밀화가 구스타브 도레가 1866년에 남긴 판화 속 에스라의 영감 어린 모습은 오늘날 '에스라의 나무 강단'이라는 기별의 든든한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본서에 묘사된 에스라의 프로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아론의 16세손이며, BC 458년(아닥사스다 왕 7년)에 귀환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굳게 결심한 언약의 학자이자 제사장이었습니다. 아하와 강가에 이방 귀환민들을 모아 금식을 선포하고 장막 신앙 대회를 주도했으며, 귀환 공동체 내에 이방 여인과의 통혼이라는 심각한 영적 위기가 닥쳤을 때 옷을 찢고 기가 막혀 주저앉아 눈물로 중보 기도를 올렸습니다. 에스라의 고백 기도를 보면 공동체의 죄를 자신의 죄로 짊어지며 "우리"라는 회개의 단어를 무려 27회나 사용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통회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장엄한 역사의 막후 세력이었던 페르시아(바사) 제국의 왕조 계보는 성경의 기록과 고대 세속 역사가 정교하게 일치합니다.
고레스 대왕 (Cyrus the Great, BC 559~530): BC 539년 바빌론을 정복하여 제국을 창건하고, 포로들에게 본토 귀환과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너그러운 해방 조서를 내렸습니다.
캄비세스 2세 (BC 530~522): 에스라 4장 6절의 '아하수에로'로 비정되는 왕입니다. 그가 이집트 원정을 나간 사이, 조로아스터교(배화교) 사제였던 '가우마타'가 고레스의 둘째 아들인 '스메르디스'의 이름을 사칭하여 가짜 왕으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캄비세스는 귀국 도중 시리아에서 의문사했습니다.
가짜 스메르디스 (바르디야/가우마타, BC 522): 에스라 4장 7절의 '아닥사스다'로 언급되는 인물입니다. 불과 6개월의 찬탈 기간 동안 유대인들의 성전 건축을 강제로 중단시키는 방해 조서를 내렸습니다.
다리오 1세 대왕 (Darius the Great, BC 522~486): 가짜 왕을 처형하고 제국을 바로잡은 성왕입니다. 성전 건축을 방해하지 말고 국가 경비로 적극 도우라는 강력한 재건 조서를 내려 BC 516년에 성전을 완공(솔로몬 성전 파괴 후 정확히 70년 만의 성전 회복)하게 했습니다.
크세르크세스 1세 (BC 486~465): 에스더서의 주인공인 '아하수에로' 왕입니다. 헬라 그리스 원정(살라미스 해전)에 나섰다 패배한 후, 왕비 에스더와 총리 모르드개의 조력을 받아 제국 내 유대인들을 하만의 학살 음모로부터 구원했습니다.
아닥사스다 1세 (Artaxerxes Longimanus, BC 465~424): 손이 길어 롱지마누스로 불린 왕입니다. 재위 7년(BC 458년)에 에스라를 보내고, 재위 20년(BC 444년)에 느헤미야에게 성벽 중건 조서(다니엘 9장 70주일 예언의 역사적 기산점)를 내려 구약 역사의 성벽을 완성하도록 전폭적으로 도왔습니다. 이후 페르시아는 BC 331년 다리오 3세 때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멸망합니다.
특히 고레스 대왕이 전 세계 포로 민족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종교의 자유를 허락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1879년 고고학자 호르무즈드 라삼(Hormuzd Rassam)이 바빌론 유적지에서 발굴한 설형문자 점토판 '고레스 실린더(Cyrus Cylinder)'를 통해 고고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었습니다. 현재 영국 박물관에 소장된 이 22cm 크기의 원통형 유물에는 성경 에스라 1장의 조서 내용과 완벽히 부합하는 고레스의 관용 정책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성경 기록이 신뢰할 만한 역사적 텍스트임을 확증해 줍니다. 고레스의 시신이 안치되었던 파사르가다에(Pasargadae)의 거대한 6층 석묘 유적 역시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당시 영적인 거대한 물결은 동양과 서양을 동시에 뒤흔들고 있었습니다. BC 5세기 전후는 인류 사상사에서 엄청난 대변혁의 시기였습니다. 그리스에서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라는 3대 철학 거성이 나타나 인본주의 철학의 기초를 닦았고, 페르시아에서는 자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가 일신교 형태의 배화교를 창시하여 제국을 휩쓸었습니다. (훗날 19세기 철학자 니체가 그의 저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 인물을 가상 주인공으로 삼아 "신은 죽었다"는 허무주의와 진화론적 초인 사상을 외치며 인류 사상사에 큰 해악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인도에서는 석가모니가 불교를 시작했고, 중국에서는 공자가 유교 사상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이처럼 온 천하에 이교 철학과 종교적 혼란이 난립하던 폭풍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학사 에스라와 총독 느헤미야를 우뚝 세우사 이방의 사조를 타파하고 오직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과 성벽을 견고하게 수립하도록 섭리하신 것입니다.
에스라세의 구체적인 구조와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1부: 스룹바벨의 성전 재건 (1~6장)
고레스 왕의 해방 조서로 바빌론에서 1차 귀환한 명단(성인 남녀 및 종과 가축, 말과 낙타의 수까지 총 5만 명 규모의 정확한 통계 기록)이 열거됩니다. 사마리아 주민들의 정치적 방해와 가짜 왕의 명령으로 성전 공사가 일시 중단되었으나, 다리오 왕의 재허락 조서와 학개·스가랴 선지자의 강력한 영적 격려에 힘입어 마침내 BC 516년 성전이 준공되고 감격적인 유월절 제례를 올립니다.
제2부: 에스라의 개혁과 말씀 부흥 (7~10장)
아닥사스다 왕의 전폭적인 신임 조서를 받아 예루살렘에 정착한 에스라는 레위인들을 보강하여 예배 행정을 전수했습니다. 공동체 내부에 만연했던 이방인과의 무분별한 통혼과 우상 전염의 죄악을 직시하고 뼈저린 회개 기도를 이끌어내어, 이방 아내들과의 절연을 결단하는 철저한 성결 개혁 운동을 단행하며 책을 마칩니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 그리고 역대기에 나오는 영적 대각성 운동의 절정은 느헤미야 8장에 기록된 수문 앞 광장의 나무 강단 선포 사건입니다. 일곱째 달(종교력 7월 티스리월) 초하루 나팔절 아침, 학사 에스라가 온 백성의 청에 따라 특별히 제작한 거대한 나무 강단 위에 높이 올라섰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위대하신 율법책을 펼쳐 들자 온 백성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손을 들고 "아멘, 아멘"으로 화답하며 얼굴을 땅에 대고 눈물로 통회했습니다. 에스라가 새벽부터 정오까지 율법을 낭독하고 레위인들이 그 뜻을 해석해 주자 백성들이 큰 은혜를 깨닫고 크게 기뻐하며 초막절 축제를 거행했습니다.
에스라가 선포한 이 '나무 강단'은 단순히 나무로 만든 지형지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타협 없는 하나님의 순수한 법과 말씀이 온 천하에 선언되는 권위의 강단이며, 절망에 빠진 귀환 공동체에게 영적인 힘과 각성을 수립해 주는 부흥의 보좌입니다.
우리는 에스라서를 읽을 때마다 세속 역사의 물결을 조종하사 자기 백성의 회복을 기필코 완수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목도하게 됩니다. 지나온 모든 연대와 조서의 타이밍 속에 하나님의 세밀한 기산점이 숨겨져 있습니다. 에스라처럼 날마다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가르치기로 결심하는 성숙한 신앙을 확립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핵심 요약정리
명칭과 성경적 구성의 통합성:
'에스라(Ezra)'는 '도움'이라는 뜻의 명칭이며 원래 히브리 성경(타나크)에서는 느헤미야와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연속된 책입니다.
본서는 BC 537년 스룹바벨의 1차 귀환부터 BC 432년 느헤미야 시대까지의 포로 귀환 및 포로 후 시대(Post-Exilic Period)의 중대한 구속 역사를 다룹니다.
역사의 주관자와 고레스 조서:
에스라서 1장 1~4절은 역대하 36장 22~23절의 마지막 문장과 완벽하게 일치하여 동일 저자(에스라)임을 증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70년 포로 해방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사 조서를 내리게 하셨음을 천명하며, 고래스 실린더 유물을 통해 성경이 신뢰할 만한 역사적 사실임이 고고학적으로 입증됩니다.
에스라의 프로필과 사역적 의의:
에스라는 아론의 16세손 정통 제사장이며 하나님의 율법에 숙련된 학자(학사)입니다. 모세가 율법의 제정자라면 에스라는 구약 39권의 정경을 최종 확정하고 회당 제도를 확립한 '율법의 교육자이자 정경의 편집자'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다(에 7:10)"는 그의 선언은 모든 신앙인의 거룩한 모델입니다.
성전 중건과 수문 앞 나무 강단:
전반부의 사마리아인들의 격렬한 방해를 이겨내고 완성한 스룹바벨 성전 건축(BC 516년 완공) 역사와, 후반부 에스라의 이방 통혼 단절을 향한 눈물의 중보 회개 개혁 사역을 축으로 삼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8장의 수문 앞 광장 사건처럼, 특별히 제작한 '나무 강단' 위에서 에스라가 선포한 하나님의 순수한 율법 기별은 침체된 귀환민 공동체에게 영적 생명력과 정체성을 회복시키는 부흥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